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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삶] 20세기 심리학 훔쳐 보기
[책과삶] 20세기 심리학 훔쳐 보기
  • 허준석/ 자유기고가
  • 승인 2005.09.1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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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강의를할때,항상주저하게되는대목이있다.
“매몰비용은잊으세요.”어차피주워담을수없는돈이니연연하지말고깨끗하게잊는것이합리적이라는얘기다.
도박판에서이미날려먹은돈이든,아니면더럽게재미없는영화에들인극장비와시간이든,혹은불어터진맛없는자장면이든간에.물론지혜가모자라그런것이겠지만,기업의맥락이아닌다른곳에서매몰비용에대해서말할때면나는으레머뭇거리게된다.
나의행동이대부분그렇지않은데,매몰비용에연연하는것은경제학적으로합리적이지않다는말이좀처럼떨어지지않는것이다.
왜일까?(나를포함해)인류가경제학적으로계몽이덜되어서?아니면경제학이사람들을잘못보고있기때문?후자의질문은경제학과심리학의거리를좁히게해주었고,심리학자대니얼카네만이2002년도노벨경제학상을수상하게된데는이런사정도무관하지않았을게다.
서점가를둘러봐도,경제와심리라는단어가뒤섞인책이심심치않게눈에띈다.
하지만정작책을펼쳐보면별로건질게없는경우가많아실망하고있던차에이책을발견했다.



주요연구중가장논쟁적일법한10가지


심리학자로렌슬레이터가쓴이책은쉬우면서도날카롭다.
저자는20세기심리학의주요연구중에서가장논쟁적일법한10가지를골라낸다.
물론,심리학의문외한인내가이연구들이심리학의역사에서얼마나중요한지정확히알기는힘들다.
다만심리학의거두인스키너와,권위에쉽게복종하는인간의심리적성향을밝혀낸실험연구로유명한스탠리밀그램이포함되어있으니일단믿음은간다.


스키너에서출발하는책은처음부터범상하지않다.
저명한심리학자로만알고있었을뿐이어서인지,책앞머리에소개된도시전설(urbanlegend)같은이야기에관심이쏠렸다.
미국에서대학교육을받은사람들의다수가스키너의이름에서모종의사악함을우선떠올린다고한다.
스키너는자신의이론을입증하기위해둘째딸을작은상자안에가두고관찰했으며,이로인한충격때문에그녀가호텔방에서목을맸거나정신이상자가되었다는것이다.
나치와그가직접연결되어있었다는대중적인의혹에이르면스키너가혹시과학을앞세운악마는아니었을까하는생각이들정도이다.
물론저자가밝히고있듯이,이모든것은괴담수준의거짓에불과하다.
하지만보상과처벌을통해인간의행위와성격전체를바꿀수있다는강한믿음을지녔던스키너에게는왠지어울리는괴담이아닌가!

실증주의에경도된멋없는학문으로만심리학을재단했던나에게슬레이터가들려주는몇가지연구들이더욱신선하게다가왔다.
정신과의사가환자를골라내고그를계속감금시켜두는기준이전혀과학적이지않다는사실을정신병원에직접감금되면서까지밝혀낸데이비드로젠한이나,약물중독이란약의성분이신체에가하는화학적작용이기에앞서사회적인구성의문제라는점을설파한브루스알렉산더의연구에서는통쾌함까지느껴진다.
사랑의본질을심리학적으로재구성하고자영장류에대한가혹한실험을주저하지않았던해리할로,전두엽절제술을무식하리만치과감하게밀어붙였던안토니오모니즈의이야기는과학자들의집요함과집착증을새삼깨우쳐준다.
슬레이터는“훌륭한통찰력이담긴극적인이야기들대부분이과학논문처럼딱딱하고단조로운문체로설명되어있는것”이못마땅해책을쓰게되었다고밝히고있는데,내용의깊이를떠나서그의목적하나는분명하게달성하고있는셈이다.



인지부조화이론과경제학함수관계


역시경제학에한발을딛고있는입장에서가장흥미롭게읽은대목은‘인지부조화이론’을다루고레온페스팅거를소개하는장이다.
인지부조화이론이란쉽게말해살짝뒤틀린‘신포도’의논리다.
즉,자신의행위가자신의믿음과심하게괴리를일으켜믿음이나신념이정당화되지않을때이를해결하기위해엉뚱한믿음을끌어들인다는것이다.


페스팅거는거짓말을하는대가로한집단에게는20달러를,다른집단에게는1달러를주는실험을기획했다.
과연누가끝까지거짓말을진실이라고우겼을까?경제학적인추론에따르면행위에따른인센티브가큰20달러집단일테지만,결과는흥미롭게도정반대였다.
이실험을설계하면서페스팅거가보이고자했던가설은1달러로거짓말을하는자신의행동을정당화시키기힘들다는것이었다고한다.
즉,인지부조화이론에서는자신의믿음과일치하지않는행동에대한보상으로사소한것을받으면받을수록인지부조화를해결하기위해자신의믿음자체를바꿀가능성이높다고예측한다는것이다.


인지부조화이론은한국전당시중국군이미국인포로들을어떻게그토록효과적으로공산주의로전향시킬수있었는가에관한놀라운사실을설명해주기도했다.
당시중국군이미군포로들에게반미적인글을쓰도록하기위해동원한수단은가혹한고문이나거창한뇌물이아니었다.
중국군은그들에게소량의양식이나사탕몇개를주었을뿐이다.
그런데도반미선언문을쓰고하찮은보상을받았던많은미군들이나중에정말로공산주의로전향을했다고한다.
하찮은것들때문에조국을배신했다는불편함혹은스스로도한심한멍청이나배신자가되지않기위해좀더그럴듯한이유를만들었던셈이다.
한번뱉은말을돌이킬수없다면아예믿음을바꾸어더이상부조화를겪지않아도되는것을선택하는편이더욱속편하다는것이다.


이대목에서문득왜강압적이거나규율을강조하는조직에서하나같이인센티브가거의없거나부족할까하는평소의궁금증이새삼떠올랐다.
경제학은경제주체가조직내에서겪을수밖에없는심리적마찰에따른비용은쏙빼놓고있던것은아닐까?그핵심이강제나타율로엮인조직에서는인센티브를과도하게부여함으로써조직에대한사람들의기계적이고종교적인믿음과신념이해체되는역효과를낳게될지도모를일이다.
요즘일련의군관련사고가생기자사병의월급을올려군의사기를진작하자는대책이나온바있다.
하지만월급을올리면정말로군기가살아날까?오히려반대가되는것은아닐까?물론그렇다고믿음을강화하기위해사병들에게더욱강력한강압을행사하자는뜻은아니다.
중요한대목은군기를살리는길이단순한보상의차원보다더욱밑에놓여있을지도모른다는것이다.



스키너의심리상자열기

로렌슬레이터지음
조증열옮김
에코의서재펴냄
1만35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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