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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고건 한국공개SW활성화포럼 운영위원장
[초대석]고건 한국공개SW활성화포럼 운영위원장
  • 이희욱 기자
  • 승인 2005.10.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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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어깨 걸고 공개SW로 기술독립 이룰 것” 의례적인 명함 교환이 끝나자마자 고건(58) 교수는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언가를 꺼냈다.
평소 늘 휴대하는 태블릿PC였다.
가만히 보니, 고건 교수의 ‘필수품’은 그뿐 아니었다.
목에 2개나 매달고 있는 USB 메모리. 하나는 그의 전 재산이 담긴 보물창고요, 다른 하나는 그때그때 필요한 사람에게 각종 자료를 복사해 주기 위한 것이란다.
나이가 무색할 정도의 ‘파워 유저’다.
고건 교수는 1983년부터 ‘서울대 교수’ 명함을 유지하고 있다.
계산통계학과 교수에서 출발해 지금은 바뀐 학부제에서 컴퓨터공학부에 몸담고 있다.
진짜 주목할 점은 다른 데 있다.
고건 교수는 얼마 전, 한국공개소프트웨어활성화포럼(이하 활성화포럼)의 운영위원장으로 선임됐다.
활성화포럼 전체를 이끄는 대표는 남중수 KT 사장이 맡았다.
활성화포럼은 한국·중국·일본 세 나라가 공동 추진하는 공개SW 활성화 정책의 구심점, ‘ 한·중·일 공개SW활성화포럼’(이하 한중일 포럼)의 한국측 대표단체다.
한·중·일 포럼은 “자본의 논리에 좌우되지 않고 제 힘으로 개발·운영·관리할 수 있는 공개SW를 함께 만들고 보급하자”는 기치를 내건 ‘범아시아 연대’다.
고건 교수는 세 나라의 정책 수립과 의견 조율을 위한 무대의 한국측 총 감독인 셈이다.
고건 교수는 국내 운영체제(OS) 개발의 산 증인이다.
서울대학교에서 교편을 잡기 시작한 1983년부터 서울대학교 운영체제 연구소(OS랩)를 설립해 23년 동안 운영해 오고 있다.
OS랩에서 개발해 내놓은 ‘SNU도스’와 ‘SNU유닉스’는 비슷한 시기에 나온 ‘K도스’와 함께 국내 최초의 토종 운영체제로 꼽힌다.
지금도 고건 교수의 제자들은 국내 SW산업지도의 곳곳에 뿌리내리고 기술 개발과 후진 양성을 위한 씨앗을 뿌리고 있다.
-남중수 의장 체제의 2기 활성화포럼이 출범했다.
소감은. =이전 의장이셨던 이용태 삼보컴퓨터 회장님이 개인 사정으로 그만두시면서 후임으로 남중수 KT 사장님이 오시게 됐다.
동시에 조직에도 소폭 개정이 있었는데, 운영위원장이 신설되면서 내가 맡게 됐다.
사실 1기 때도 교육분과위원회와 총괄 기획을 맡아 낯설지는 않다.
-언제부터 공개SW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80년대부터다.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마치고 곧바로 벨연구소 연구원으로 취직했다.
벨연구소는 유닉스 운영체제를 만든 곳이다.
그런데 유닉스의 후속 세대가 대표적 공개SW인 리눅스다.
유닉스와 리눅스는 70~80%가 비슷하다.
그러니 25년 전부터 이미 인연을 맺었다고 봐야 한다.
-한·중·일 포럼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 달라. =한·중일· 포럼은 세 나라에서 공개SW를 확산하기 위해 만들어진 거다.
2003년 9월 제주에서 열린 한·중·일 IT장관회의에서 세 나라가 동북아시아 공개SW 활성화를 위해 공개SW 개발에 서로 협력하기로 합의한 데서 출발했다.
지난해 4월 중국 베이징에서 첫 포럼이 열렸고, 7월과 12월에는 일본 삿포로와 서울에서 2, 3회 회의가 개최됐다.
공개SW 확산이란 게 이렇다.
예컨대 똑같은 공개SW인데 3국이 언어가 다르고 환경이 제각각이다.
우리는 3국의 표준을 논의하고 공동 프로젝트를 추진한다.
세 나라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세 나라가 공통으로 정보를 나눠야 할 사안들이 많다.
이런 것들을 표준화하고 공동 개발하면 서로 윈-윈할 수 있다.
-왜 공개SW를 활성화해야 하는가. =이 세상엔 두 종류의 SW가 있다.
시스템SW와 응용SW다.
이 가운데 시스템SW는 일종의 원천기술이다.
어느 나라, 어느 회사도 한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
리눅스는 왜 중요하냐면, 소스코드가 다 공개돼 있다.
역사상 처음으로 컴퓨터가 어떻게 만들어졌나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를 먹여살리는 게 소나타나 애니콜 같은 건데, 앞으로는 원가의 50~60%를 시스템SW가 차지할 것이다.
그런데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우나 썬의 솔라리스 같은 걸 도입한다면 결국에는 이들 기업의 정책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공개SW를 도입하면 우리가 주도권을 쥘 수 있다.
정책의 방향을 우리가 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개SW 확산은 일부 자본의 종속에서 벗어나 한 나라가 진정한 기술독립을 이루는 길이다.
-오는 12월에 베이징에서 4차 포럼이 열린다고 들었다.
주요 의제는 무엇인가. =내가 운영위원장을 맡기 전에 교육·훈련분과를 맡았다.
거기서 추진해 온 게, 공개SW가 대략 100여가지가 있는데, 나라별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과목을 10개씩 정한 다음 서로 협상되는 것부터 공동 교육하고 훈련시키자는 방안이었다.
한국과 일본은 이미 나왔다.
4차 포럼에서 중국을 포함한 3국 협의안이 나올 듯한데, 그렇게 되면 내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공동 교육과 훈련이 이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2기 활성화포럼이 역점으로 두고 있는 사업은. =가능하다면 3국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싶다.
공개SW를 써서 하는 프로젝트 말이다.
구체적인 것은 생각 중이다.
예컨대 전자태그(RFID) 기반의 물류 시스템을 구축하거나, 3국이 공동으로 범죄인 인식 시스템을 구축해 운영하거나, 경찰업무 협조 같은 것도 생각할 수 있다.
공공부문 데스크톱PC를 리눅스 기반으로 확산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학교나 관공서에 들어갈 리눅스 기반 데스크톱PC 같은 것도 3국이 공동 개발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3국 민간업체가 손잡고 이미 ‘아시아눅스’를 내놓은 바 있는데. =그건 민간 차원에서 협력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런 게 많이 생길 수 있도록 관련 업체들이 표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독려하는 역할이다.
-아시아눅스와는 별도로 또 다른 표준 공개SW가 활성화포럼에서 나올 수도 있다는 얘긴가. =그렇다.
바로 지금 그 일을 진행 중이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키보드와 프린터 같은 PC 주변기기도 표준화돼야 한다.
주변기기를 관리하는 게 OS이기 때문이다.
표준화란 게 쉬워 보여도, 그 범위는 굉장히 포괄적이다.
-외국에 비교해서, 국내 공개SW 보급 수준은 어느 정도인가. =우리나라는 사실 그동안 SW정책이 없었다고 봐도 크게 틀리지 않다.
5년 전만 해도 정부에서 쓰는 예산에 SW 구매항목이 없었다.
그렇다고 그 전엔 SW를 안 썼겠나. 그렇다면 어떻게 SW를 구했는지 뻔하지 않나. SW 정책 자체가 최근까지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는 얘기다.
진대제 정통부장관도 얼마 전 만난 자리에서 2가지를 약속했다.
하나는 SW국장을 만들겠다는 것, 둘째는 SW정책을 전담하는 부서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공개SW는 장점도 많지만 인터넷뱅킹이 안 되는 등 불편함도 있다.
관련 인력도 부족하고. =유닉스에 인터넷뱅킹이 들어가는 데 30년 걸렸다.
리눅스는 이제 10년밖에 안 됐다.
5년, 10년을 더 주면 리눅스에도 충분히 인터넷뱅킹이 들어간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나라가 빨리 공개SW 인력을 확보해 놓아야 한다.
삼성멀티캠퍼스나 비트컴퓨터 등에도 공개SW 관련 과목이 많이 있는데, 다 폐강됐다.
아무도 신청을 안 하기 때문이다.
정부기관에도 왜 리눅스 안 사냐고 물으면 기술인력이 없다고 이유를 댄다.
우리가 3국 공동 인력 개발에 주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결국은 시장 확대가 공개SW 활성화의 관건이다.
어떻게 확대할 수 있을까. =SW진흥원에서 많이 노력해서 내년에는 많은 제도가 달라진다.
예컨대 정부기관의 서버를 리눅스로 해라, 그러면 일단 꺼리게 마련이다.
잘 돌아가던 유닉스를 빼고 리눅스를 넣는 모험을 해야 하니까. 비용이 절감된다고는 하지만, 그렇게 되면 나중에 그 부처의 예산이 쪼그라든다.
누가 좋아하겠나. 그래서 이제는 공개SW를 도입해 아낀 비용을 다른 데 전용하도록 최근에 제도가 개선됐다.
또 공개SW를 썼다가 문제가 생기면 문책당할까 봐 담당자가 도입을 꺼리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서 공개SW 사용으로 인한 문제는 담당자의 책임을 면제해 준다든지 하는 정책적 배려도 필요하다.
글=이희욱 기자 asadal@economy21.co.kr 사진=박미향 기자 blue@economy21.co.kr ※고건 한국SW활성화포럼 운영위원장 약력 1967~1974년 서울공과대학 응용물리학 학사 1976~1981년 미국 버지니아대학 전산학 박사 1981~1983년 미국 벨연구소 연구원 1983년~현재 서울대학교 계산통계학과 교수 1988~1989년 IBM T. J. 왓슨 연구소 객원교수 1991~1993년 서울대학교 중앙교육연구전산원 원장 1996~1999년 국가정보화추진위원회 자문위원 2001~2002년 서울대학교 학술정보원장 2004~2005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초빙교수 2005년~현재 한국소프트웨어활성화포럼 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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