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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뚜앙떼르요르]게임, 영화의 뒤통수를 후려치다.
[푸뚜앙떼르요르]게임, 영화의 뒤통수를 후려치다.
  • 허준석 게임평론가
  • 승인 2005.11.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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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즈음, 할리우드의 키워드로 잠깐 “인터랙티브 시네마”(Interactive cinema, 이하 IC)가 부상한 적이 있었다.
IC란 말 그대로 관객을 의자에 앉아 수동적으로 스토리를 수용하는 존재에서 이야기에 개입하는 능동적인 존재로 바꾸자는 발상이었다.
<스파이더맨2>의 한 장면으로 가보자. 아이들을 가득 태운 버스와 사랑하는 그녀가 동시에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보통의 영화 관객이라면 가슴 졸이며 눈을 크게 뜨고 결과를 기다리겠지만, IC에선 그럴 필요가 없다.
영화가 관객에게 묻는다.
“누구를 먼저 구하시겠습니까?” 일견 그럴듯해 보이는 이 발상은 실제로 많은 이들을 사로잡았고 몇몇 작품이 제작되어 유통되기까지 했다.
하지만, IC는 상업적인 운도 떼보지 못한 채 사라져버렸다.
오늘날, IC의 흔적이란 DVD의 서플먼트나 포르노 DVD에서 주로 제공되는 다각도 앵글에서 찾을 수 있을 정도로 미미하다.
결국 관객은 그냥 편안하게 바라보기를 원했을 따름이었다.
물론 게임이 바로 IC의 혼과 이상을 그대로 이어받았던 것은 아니다.
일찍이 그 태생부터 게임업계의 할리우드에 대한 짝사랑은 실로 애절했다.
블록버스터 영화를 게임화하는 것은 기본이요, 할리우드의 스태프를 영입해 게임을 만들거나, 하다못해 마케팅 문구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라는 문구를 빼놓지 않을 지경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 사랑이 알찬 결실을 맺은 경우는 매우 드물어서, 한때 게임으로 북미를 휘어잡은 ‘아타리’(Atari)는 영화 의 게임 소프트웨어 덕분에 몰락을 재촉했고, 게이머들 사이에 ‘영화 원작’이란 문구는 흥미를 떨어뜨리는 보편적 수식어로 인식되기도 했다.
그런데, 최근 게임이 IC를 무덤에서 불러내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 게임이 불러낸 IC는 도리어 영화에 치명타가 될지도 모른다.
최근 출시된 게임 <인디고 프로페시>(우연이겠지만, 이름만 다른 회사에서 물려받은 ‘아타리’ 브랜드에서 출시되었다)가 대표적인 사례로, 이 게임은 관객·플레이어가 이야기에 능동적으로 융합하도록 이끈다는 점에서 IC의 목표를 겨누고 있다.
살인자로 몰린 사람에서 경찰에 이르기까지 캐릭터들 간의 위치를 바꿔가며 뉴욕의 연쇄살인 사건을 추적해 가는 재미는 웬만한 할리우드 영화를 울릴 만한 수준이다.
게다가 과거의 IC가 정해진 스토리를 분기에 따라서 이러저러 옮겨다는 것에 불과했다면, 이 게임에서는 주인공과 캐릭터의 성격이 관객·플레이어의 결정에 따라서 역동적으로 변화하게 된다.
예를 들어,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따라 주인공의 덕성이 결정되고 이것이 다시 이후 플레이·관람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식이다.
게임이 모든 면에서 영화의 기법을 철저히 답습하고 있다는 점은 무척 흥미롭다.
플래시백이나 몽타쥬와 같은 영화의 스토리텔링 기법은 물론 카메라의 동선까지도 철저히 영화를 벤치마크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인디고 프로페시> 제작에는 영화 제작에 필요한 수많은 스태프와 성가신 절차가 거의 생략된다.
필요한 것은 시나리오와 이를 컴퓨터에서 재현하기 위한 도구들(이러한 가교 격의 소프트웨어 형식을 흔히 ‘엔진’이라는 용어로 부른다), 그리고 연출과 표현에 대한 감독의 구상뿐이다.
물론, 아무래도 진짜 영화에 비해 화면의 질이 떨어져 보일지 모르겠다.
하지만 제작의 비용이라는 경제적인 측면과 재능을 형상화할 수 있는 접근성이라는 측면, 그리고 수동적인 관람용 영화에서는 기대할 수 없는 깊숙한 몰입감이라는 측면에서 게임으로 접근하는 영화가 기존의 영화나 드라마에 대해 지니는 경쟁력 또한 무시하기 힘들다.
액션 게임으로 널리 알려진 <퀘이크3>의 엔진을 활용해 단편영화를 만드는 ‘Machinema’(Machine과 Cinema의 합성어이다)는 이미 비주얼 아트의 주목할 만한 분야로 급부상하고 있다.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예전과 같이 스케치로 콘티를 구성하는 대신, 게임의 엔진을 활용해 촬영할 장면을 미리 완벽하게 재현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한다.
“영화야 게임이야”라는 과장 섞인 문구를 썼던 과거의 모 게임기 광고가 곧 현실이 될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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