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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삶]우리 안의 야스쿠니를 제거하는 첫걸음
[책과삶]우리 안의 야스쿠니를 제거하는 첫걸음
  • 양영권/ <머니투데이> 기자
  • 승인 2005.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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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월30일 오사카고등법원은 일본 고등법원으로서는 최초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위헌’이라는 판단을 내렸다.
‘내각총리대신’의 신분으로 참배하는 것이 헌법상 정교 분리 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공적인 의무로 참배하는 것이 아닌데, 왜 재판부가 위헌이라고 보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즉각 반발했다.
10월17일에는 취임 이후 5번째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한국과 중국에서는 규탄 성명이 잇따랐다.
그렇지만 일본 국내에서는 그의 지지율이 2년 중 가장 높은 수준으로 치솟았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에 대해서는 여론조사에 응한 일본인 과반수가 ‘찬성’ 편에 섰다.
9월11일 총선 압승으로 자신을 얻은 고이즈미 총리는 ‘야스쿠니’를 자신에 대한 지지 여부를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로 사용하고 있다.
온건파로 분리되던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이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가 최근 이뤄진 개각에서 제외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평화로운 나라’(靖國)라는 뜻을 가진 이 종교시설은 어떻게 일본 국내의 정치적 논쟁, 아니 동북아 국가 간의 외교적 쟁점의 중심에 서게 되었나. 고이즈미 총리는 왜 위헌 시비와 국제적인 비판을 무릅쓰고 신사 참배를 강행하는가. 일본 국민들은 왜 그에 대한 지지를 아끼지 않는가. A급 전범 합사에만 매달려선 안돼 일본 도쿄대 교수 다카하시 데쓰야의 <결코 피할 수 없는 야스쿠니 문제>는 이 같은 의문을 바탕으로 야스쿠니 신사의 본질을 정리하고, 일본 정계와 주변국에서 문제의 해법들로 제시되고 있는 대안들을 종교적, 문화적, 역사적 관점에서 조목조목 비판하고 있다.
1869년 도쿄초혼사(東京招魂社)로 창건돼 10년 뒤 현재의 이름으로 바뀐 야스쿠니 신사는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전몰자 제사의 중심시설로 지위를 확립했다.
야스쿠니 신사에서 전쟁의 부정적인 면들은 모두 가려진다.
전사자가 천황에 의해 신격화됨으로써 전쟁터에서 죽는 것에 대한 회의나 부정적인 감정들이 철저히 억압된다.
이곳은 ‘추모’나 ‘애도’가 아닌 공적을 내세워 기리는 ‘현창’(顯彰)을 위한 시설이다.
야스쿠니신사에서 전사의 불행은 행복으로, 비극은 영광으로 180도 전환된다.
국가는 새로운 전쟁에 ‘천황을 위해 죽기를 원하는’ 병사들을 지속적으로 동원할 수 있게 된다.
야스쿠니 신사가 국제적인 논란의 전면에 떠오르게 된 계기는 1985년에 있었던 나카소네 야스히로 총리의 공식 참배. 도조 히데키를 비롯한 A급 전범들이 합사돼 있는 야스쿠니 신사에 일본 총리가 참배하는 것에 대해 국제적으로 비판 여론이 일었다.
이 부분에서 저자는 다수의 비판이 야스쿠니 신사에 A급 전범 합사에 집중되는 것에 우려를 나타낸다.
자칫 A급 전범, 즉 전후 도쿄 재판에서 침략 전쟁을 주도한 죄로 기소된 28명에게만 전쟁의 책임을 전가하고 일반국민들의 전쟁 책임을 축소하는 ‘희생양’의 논리로 이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야스쿠니 신사에는 강화도 사건, 임오군란, 갑신정변 때의 일본군 전사자와 경술국치 전후 조선인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사망한 일본인들이 합사돼 있다.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관련자로만 책임이 집중될 경우 기나긴 일본 식민주의 역사의 상당 부분을 간과할 수 있다.
야스쿠니 신사를 대체할 수 있는 것으로 논의되고 있는 국립 추도시설 역시 저자의 비판 대상이다.
역사 인식을 애매하게 한 채 일본 군인과 피침략국의 전사자를 함께 추도한다면 가해자와 피해자를 동일화하려는 것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그는 추도시설이 제2의 야스쿠니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추도’가 ‘현창’되지 않아야 하며, 국가는 과거의 전쟁에 관해 확실하게 책임을 지고 군사력을 폐기해 전쟁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맹세를 현실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헌법의 정교 분리 원칙을 의식한 고이즈미 총리의 ‘개인적인 참배’라는 해명에 대해 정면으로 비판한다.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내가 총리가 되면’ 야스쿠니 신사에 참배한다”고 공약한 것으로 미루어, 참배가 사적이거나 개인적이 될 수 없음이 명백하다는 얘기다.
문화비평가 에토 준은 정교 분리의 헌법 원칙을 거론하기 전에 ‘산자와 죽은 자가 공생하는’ 일본의 문화에서 신사 참배의 논리를 찾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역시 “왜 자국의 전사자, 그것도 민간인 전사자를 배제한 일본 군인 및 군속의 영혼만 야스쿠니 신사에 모셔야 하는가”라고 반박한다.
과거 침략전쟁 와중의 일본 정치세력과 마찬가지로 고이즈미 총리는 일본 제국주의 전쟁의 지주(支柱) 야스쿠니 신사에 집착한다.
신사참배는 전시가 아닌 평소의 국국주의 유지를 위한 국가교(國家敎) 예식행위다.
‘외교적 고립’은 역설적으로 그 자체로 군국주의 강화에 또 다른 논리를 제공한다.
고이즈미 총리에게도 전쟁의 이미지를 이용하는 행위는 ‘정치의 연장’에 다름 아니다.
극단적인 국가 우선주의는 일종의 ‘국가교’ 일본인이 ‘천왕, 즉 국가를 신으로 하는’ 국가교 신자이기 때문에 순교자를 전부 신으로 모시는 야스쿠니 신사가 가능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 참배가 일본 국민의 대대적인 반발로 이어지지 않고, 오히려 지지도 견인 도구로 작용하는 이유도 이 ‘국가교’에서 그 배경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극단적인 국가 우선주의에 원인을 둔 현상을 우리 사회 내부에서도 흔히 겪을 수 있다.
일단 ‘국가’라는 개념이 개입하면 논리적인 인과관계가 무시된다.
‘반공’이 ‘애국’과 동일어처럼 쓰이던 시대에 반공이라는 이름으로 수없이 많은 인권 침해가 정당화됐으며, ‘반공=국가안보’라는 논리가 정치적으로 악용됐다.
야스쿠니 신사를 비호하는 논리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역사적, 문화적 배경이 정당화 논리로 작용하기도 한다.
공산당이 싫다고 외치다 간 이승복은 초등학교 교정마다 동상으로 부활함으로써 신격화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의 강정구 교수 불구속 수사 지휘 사태가 이성적이고 차분한 논의를 제쳐두고 ‘국가’ 정체성 논란으로 비화돼 재보선 정국에서 최대의 이슈로 떠올랐던 것을 보면 이 같은 현상은 현재도 유효하다.
결국 ‘야스쿠니의 문제’는 좁게는 일본이 명실공히 국가 기관으로서의 야스쿠니를 폐지하고 일본이 탈군사화를 추진함으로써 해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에 앞서 야스쿠니 신사라는 신화에 코드화된 정치논리를 타산지석으로 삼지 않는다면 우리 안의 야스쿠니를 제거하는 작업은 그만큼 더뎌질 수밖에 없다.
양영권/ <머니투데이> 기자 ttubul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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