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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뚜앙떼리요르]시장 독재와 합법적 개발마피아
[푸뚜앙떼리요르]시장 독재와 합법적 개발마피아
  • 강수돌 고려대 교수
  • 승인 2005.12.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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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 이후 약 20년간 남한 사회를 지배해 온 박정희식 ‘개발 독재’ 시대가 79년에 마감되고 80년 초부터 전두환으로 상징되는 신군부 세력이 5월의 광주를 피로 물들이며 남한 역사에 두각을 드러냈다.
내가 대학을 다닌 시절도 바로 그 무렵이다.
당시는 대학을 다녔는지 데모를 다녔는지 모를 정도로 ‘대학=데모’였다.
물론 나는 주동자급은 아니고 피라미 수준이었다.
우리의 열망은 군부 독재 타도 및 민주주의 쟁취였다.
나는 신문에 나오는 기사들이 왜 그토록 한심한 논조를 갖고 있는지 안타까웠다.
동시에 나는 대학생들이 쓴 ‘대자보’를 보면서 한국 사회가 이 대자보 내용들만 잘 반영한다면 참다운 선진사회가 될 것 같다고 느끼기도 했다.
그런 민주화 투쟁들은 87년 6월항쟁과 87년 여름의 노동자대투쟁에서 절정에 이르렀고, 마침내 한국 사회의 민주화도 급물살을 탔다.
마침내 90년대 초에는 군사 독재가 종식되고 문민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제 대학가나 사회 내 어느 곳에서도 한국 사회의 민주화를 외치는 데모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신자유주의적 ‘시장독재’를 경험하고 있다.
그것은 쌀 시장 개방 문제와도 맞물린다.
한국 입장에서 보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이 있는 반도체나 휴대폰, 자동차 따위는 살리고 경쟁력이 없는 쌀농사 같은 것은 죽여야 한다고 한다.
개발 독재 대신 시장 독재다.
어떤 의미에선 이것이 더 위험하다.
차라리 개발 독재 시대엔 잘 사는 농촌을 만든답시고 여러 가지 시도도 했고 그린벨트를 두어 자연도 보존했다.
그러나 시장 독재 시대엔 농촌 죽이기와 동시에 그린벨트를 체계적으로 죽인다.
이런 시장 독재와 함께 개발마피아 문제도 심각하다.
개발마피아란 국가와 자본, 공무원 등이 유기적인 협력으로 천문학적인 개발이익을 도모하는 것이다.
박정희식 개발 독재는 이에 비하면 차라리 ‘소박한 밥상’이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개발마피아 시대는 이미 신군부인 전두환 시절에 ‘제도화’되었다.
그 중 하나가 국가가 주도하고 건설자본이 보조 역할을 하는 방식으로, ‘택지개발촉진법’이 대표적이다.
쉽게 말해 주택공사나 토지개발공사가 어떤 땅이든 건교부 장관의 이름으로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하면 그 지역은 강제 수용된다.
예컨대 시가로 평당 10만원인 땅을 국가가 30만원씩에 산다.
국가는 다시 이를 평당 300만 원에 건설자본에게 넘긴다.
건설자본은 아파트를 지어 평당 500만 원 이상에 소비자인 국민들에게 분양한다.
국민들끼리는 먼저 산 사람이 일정한 프리미엄을 챙기고 ‘후배’ 소비자에게 팔아넘긴다.
여기서 생기는 프리미엄은 개발마피아들이 가져가는 어마어마한 이익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이런 식으로 약 20년 이상 개발마피아 시대가 작동함으로써 서울의 상계동, 목동, 평촌, 산본, 일산, 분당 등지가 대형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용인과 수지, 판교 등은 현재진행형이다.
최근 경기도 광주의 오포 비리는 이러한 개발마피아 시대가 가진 문제 중 빙산의 일각이다.
전국 각지가 이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물론 개발마피아 구조가 작동하는 또 다른 방식은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온, 건설자본이 주도하고 국가행정이 보조 역할을 하는 형태다.
개발 독재 시대가 지나고 시장 독재 시대가 오자 건설자본들은 국가 행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식으로 주도권을 쥔다.
이에 국가 행정은 “법적인 문제만 없다면 모두 인허가를 내준다.
”는 식으로 건설자본에게 문을 활짝 연다.
물론 이 과정에서 “법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건설자본과 국가 행정은 유기적 협동을 한다.
이 협동의 과정이 단순한 기술적 협동으로만 끝나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경제적 거래로 이어지는 경우, 그것이 바로 부정부패다.
누군가 대한민국을 ROTC(Republic of Total Corruption)라고 표현한 것은 정곡을 찌른다.
요컨대, 자본이 주도하든 국가가 주도하든 국토와 국민을 상대로 거대한 돈벌이 사업을 합법적으로 하는 것이 ‘개발마피아 시대’다.
지난 11월24일에는 ‘행정도시 합헌’ 판결이 났다.
행정도시 예정지역엔 ‘토지개발공사’ 명의의 ‘축하’ 풍선들이 춤을 추고 있다.
부디 이 축하가 수도권에서 개발마피아들에 의해 저질러진 난개발과 투기, 부정부패를 반복하는 역사적 오류로 이어지지 않길 바랄 뿐이다.
이를 예방하는 유일한 길은 국토와 국민을 살리기 위한 아래로부터의 운동, 자본과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이 아닐까 싶다.
Futur Anterieur(푸뚜앙떼리요르)란? '前미래'란 뜻으로, 미래 어느 시점의 특정한 변화나 행동을 위해서는 그에 선행하는 또 다른 미래의 변화나 행동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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