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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삶]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책과삶]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 박복영/ 자유기고가
  • 승인 2005.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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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웅진닷컴 펴냄 노마디즘 틀 아래 인류사 뒤집어 보기 유목민이라는 뜻의 ‘노마드’(nomad)라는 말이 최근에 부쩍 유행하고 있다.
IT제품의 광고에도 등장하고 대학로나 홍대 앞 거리의 카페 이름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현대 사회를 분석하는 사회과학자들의 글에도 노마드라는 단어는 어김없이 등장한다.
이쯤 되면 이 단어를 모르면 웬만한 자리에서는 대화에 끼지도 못하고 시대의 낙오자 같은 부류로 찍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슬슬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도 노마드에 대해 어디서 얼핏 주워 듣기는 했었다.
몽고족이 인류사에서 가장 광활한 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던 것이 그들의 그 유목민적 성격, 즉 말을 이용한 신속한 이동성과 끊임없이 기존의 경계로부터 벗어나려는 습성에서 비롯된 것과 마찬가지로, 현대 사회에서도 이런 유목민적 성격이 경쟁력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노마드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내용의 거의 전부였다.
조급증을 해소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인터넷 검색이다.
검색창에 ‘노마드’라고 쳤더니 가장 많이 검색된 것이 ‘디지털 노마드’였다.
휴대폰, MP3, PDA, 메모리스틱, 노트북 등 온갖 디지털 기기를 몸에 걸치고 이리저리 공간을 이동하며 놀거나 일하는 신세대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한다.
광고에 왜 노마드가 등장하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디지털 기기를 몸에 휘감고 다니지 않으면 당신은 뒤떨어진 아날로그 정착민이야!”하고 겁을 주기 위해 노마드를 사용하는 것이다.
‘디지털 노마드’는 빙산의 일각 그런데 좀더 검색하니 전혀 다른 차원의 설명이 있었다.
노마드는 프랑스 철학자 들뢰즈가 쓴 <차이와 반복>(1968)이라는 책에서 처음 소개된 개념인데, 노마디즘은 기존의 가치와 삶의 방식을 부정하고 불모지를 옮겨 다니며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내는 일체의 방식을 의미한다고 한다.
“노마드란 공간적인 이동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가치와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 가는 창조적인 행위를 뜻한다.
철학적으로는 철학, 문학, 정신분석학, 수학, 경제학 등 학문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삶을 탐구하는 사유의 여행을 의미한다.
”(네이버 백과사전) 결국 이리저리 옮겨 다니는 유목민의 삶의 방식은 프랑스 철학자에 의해 사유의 방식으로 응용되었고 사회학자에 의해 현대사회의 문화현상으로 재해석되었으며, 종래에는 광고 카피라이터에 의해 상술로 변질됐다.
이런 복잡한 진화과정을 거친 개념을 제대로 이해해 보자는 욕심에 자크 아탈리의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을 손에 들었다.
저자의 약력을 보면 저자 자신이 노마드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아탈리는 1943년 알제리에서 태어나 프랑스의 그랑제콜에서 공학, 토목학,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소르본느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테랑 대통령의 특별보좌관과 유럽부흥개발은행(EBRD)의 총재를 지냈다.
남에서 태어나 북으로 이주했으니 공간적 의미에서 노마드이고, 학문 영역의 경계를 허물며 연구했으니 사유양식에서의 노마드이며, 또 학자와 공직자의 직업을 자유로이 오갔으니 직업 노마드(job nomad)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파리로 출장 가는 비행기 안에서 읽었는데, 처음에는 출장길에 읽기에 참 적절한 책을 골랐다고 생각했다.
책 첫머리에 친절한 요약이 있어서 좋았고, 먹고 살기 위해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가야 하는 노마드 신세가 되어 ‘호모 노마드’를 읽으니 제격이라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요약글을 다 읽고 본론에 접어드는 순간 쉽지 않은 책임을 바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기대했던 것, 즉 ‘디지털 노마드’ 같은 현대인의 생활양식이나 노마드적 사고방식이 갖는 경쟁력 따위에 관한 책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 책은 우리가 알고 있는 6천년의 정착민 역사는 6백만년의 노마드 역사에 비하면 아주 예외적인 시기에 불과하고 정착민의 역사 역시 정착에 안주하는 민족이 끊임없이 이동하는 노마드 민족에 의해 정복되는 과정의 역사라고 주장하며, 6백만년이라는 장대한 인류사를 노마드의 역사라는 관점에서 재해석하고 있는 엄청난 책이다.
그래서 앞부분 4백 페이지는 마치 인류학 책을 읽는 느낌을 준다.
여기서 아탈리는 노마드를 정착민의 대립어로만 사용한다.
쉽게 말하면 공간적으로 이동하며 삶을 영위하는 인간을 모두 노마드로 폭넓게 정의하면서, 책 제목 그대로 유목성이 인간의 원시적 본성-호모 노마드-임을 우리에게 세뇌시킨다.
억지스러울 정도로 인류 역사를 노마드적 관점으로 해석한다.
정착민이 발명한 것이라고는 국가, 세금, 화약 정도이며, 불, 사냥, 언어, 농경, 연장, 예술, 바퀴, 민주주의, 시장, 유일신 주의 등 대부분의 문화는 노마드의 창조물이라는 주장에 이르면 고개가 쉬 끄덕여지지는 않는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역시 현대사회에 대한 노마드적 해석이다.
아탈리는 세 번째 세계화시대의 마지막 정착민 제국이라고 할 수 있는 미국이 세 가지 범주의 노마드 세력, 즉 시장, 이슬람, 민주주의에 의해 도전을 받고 있다고 설명하면서, 세계화와 9·11사태 등을 이런 관점에서 해석한다.
그리고 아탈리는 현대 인류를 세 가지 부류로 나누고 있다.
첫째는 농민, 상인, 공무원, 엔지니어와 같은 정착민이며, 두 번째 부류는 이주노동자, 추방자, 이동 근로자와 같은 비자발적 노마드(혹은 인프라노마드)이고, 마지막은 자발적 노마드들이다.
자발적 노마드에는 CEO나 예술가와 같은 창의적 직업을 가진 하이퍼노마드와 관광객과 같은 유희적 노마드가 있다.
비자발적 노마드 포용을 고민해야 이런 이름 짓기가 얼마나 의미 있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프랑스 이민노동자에 의한 소요사태를 보면 인프라노마드의 잠재적 폭발성에 대한 아탈리의 지적은 매우 적절한 것 같다.
더욱이 이런 폭발성이 타자에 대해 가장 넓은 관용이 베풀어진다고 알려진 프랑스에서조차 발견된다는 것은 정착민 사회에서 타자로서 살아가는 인프라노마드들을 통합하기가 혹은 길들이기가 얼마나 어려운 과정이 될 것인지를 예고하는 대목이다.
1996년에도 프랑스의 ‘상 빠삐에(Sans papier: Without paper)’- 체류허가증을 갖지 않은 불법체류자-들이 생 베르나르 성당을 점거하며 격렬한 시위를 벌였다.
이때 저명한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를 비롯한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이 이들을 지원했지만 결국 경찰에 의한 강제해산으로 종결되었다.
그 후 이 문제는 프랑스 사회에서 중요한 사회문제로 인식되었다.
올해 우리나라에서 공연되어 뮤지컬 애호가들을 열광시킨 <노트르담 드 파리>는 생 베르나르 성당 점거사건을 모티브로 이용해 ‘노트르담의 종지기’를 현대적으로 각색한 것이다.
프랑스 예술가들의 예술적 우월성과 더불어 창의성과 진보성을 동시에 보여주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덮을 즈음 21세기의 진정한 경쟁력의 원천은 젊은이들을 디지털 기기로 무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아탈리와 같이 노마디즘적 지식 습득과 사유양식을 통해 자신의 고유한 프리즘으로 역사를 집요하게 재해석함으로써 끊임없이 질문을 유도하는 책을 쓰는 것이나, 하이퍼노마드 예술가들이 현대 인프라노마드의 저항과 고전을 결합하여 세계의 유희적 노마드들을 열광시킬 수 있는 뮤지컬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우리 사회가 진정 노마드화되어 가고 있다면 유비쿼터스의 선두라고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도 이제 타자로 살아가는 인프라노마드를 포용하는 데에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박복영/ 자유기고가 bypark@kiep.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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