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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승규 기자의 영업왕 열전]이주현 한국화이자제약 MR
[장승규 기자의 영업왕 열전]이주현 한국화이자제약 MR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5.12.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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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의 매력에 빠진 무서운 신인 한국화이자의 영업왕으로 소개받았는데 너무나 앳된 모습이다.
몇 살이나 되었을까. “스물네살이에요. 81년생이죠. 올 2월에 입사해 4월부터 필드에 나와 영업을 시작했어요.” 한국화이자제약 부산영업소 이주현(24) 씨의 거침없는 대답이다.
이 씨는 올해 부산지역에서 줄곧 랭킹 1위를 달렸고, 특히 요즘 화제가 되고 있는 COPD(만성폐쇄성폐질환) 치료제 분야에서는 전국 1위를 차지했다.
한국화이자에 들어온 것은 행운이었다.
지방대 출신과 여자라는 ‘최악’의 조건에서도 취업의 좁은 문을 뚫었다.
“백수로 지내는기는 정말 싫었어요. 졸업반이 되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준비를 했지만 쓴잔도 많이 마셨지요. 원서를 내고, 면접을 본 곳만 해도 50군데는 되는 것 같아요. 하반기 취업시즌이 끝나고 한참 괴로워하고 있을 때 한국화이자 공고가 떴어요. 다른 건 안 보고 능력만 본다고 하던데, 정말 그렇더군요.” 입사 1년 만에 272% 달성 전국 1위 차지 입사 후에는 고강도 교육이 뒤따랐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의학용어가 낯설기만했다.
평생 한 것보다 더 많은 공부를 16주 동안 했다.
“커트라인이 85점이었어요. 떨어지면 재시험을 쳐야 했지요. 새벽 3~4시까지 책을 읽느라 입사 후 동기들과 이야기도 잘 못 나눠봤어요. 회사에서 지방에서 올라온 사원들을 위해 회사 근처에 호텔을 잡아줬는데, 그 근처에 구립도서관이 있었어요. 주말에 나만 있겠지 하고 가 보면 동기들이 다 거기 모여 있었지요.” 이 씨는 그때 배운 것이 ‘필드’를 뛰는데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이 씨가 맡은 곳은 부산 동래구, 금정구와 경남 양산시. 이 지역에 있는 소규모 동네 클리닉들이 주된 영업 대상이다.
대형 종합병원보다는 발품을 훨씬 더 팔아야 한다.
“병원으로 의사 선생님들을 방문하는 걸 저희는 ‘콜’이라고 해요. 평균적으로 하루에 12콜 정도 하지요. 물론 급할 때는 20군데도 더 나가죠. 하도 여기저기 다녀서 그런지 굳은살도 박이고 발이 참 못생겨졌어요. 구두를 한 달 전에 샀는데 벌써 굽을 2번이나 갈았거든요.” 그가 맡은 제품은 통증과 호흡기 관련 전문의약품. 신경에 원인이 있는 통증 치료에 가장 많이 쓰이는 세계적인 ‘블록버스터’ 뉴론틴과 COPD 치료제 스피리바가 주력 품목이다.
약을 얼마나 팔았나? “전문의약품 영업은 병원이나 약국에 약을 직접 파는 게 아니에요.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처방을 내릴 때 우리 제품을 더 많이 선택할 수 있도록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저희들의 역할이지요. 매출은 제가 맡은 구역의 의사들이 우리 제품을 더 많이 처방하고, 그래서 인근 약국에서 판매가 늘어나면 증가하게 되는 거죠.” 한마디로 ‘약 외판원’과는 거리가 있다는 설명이다.
이 씨의 직책은 ‘MR’. ‘메디컬 레프리젠터티브’(Medical Representative)의 약자로 의사들에게 의학 관련 정보를 제공해 준다는 뜻을 담고 있다.
그러면 매출은 어떻게 따질까. 담당 지역 약국의 약품 판매량을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매월 회사에서 실제 처방(판매) 통계가 나온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판매액 자체가 아니라 달성률. 과거의 자료 등을 참조해 미리 정해 놓은 목표치를 얼마나 달성했느냐다.
전국 1위를 차지한 스피리바의 경우도, 이 씨의 실제 판매량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월 800백만~1천만원 수준. 하지만 달성률은 무려 272%에 달했다.
전문 의약품의 경우 정보가 넘치는 서울에 비해 지방은 판매 여건이 열악할 수밖에 없다.
비결이 뭔가? “의사 선생님들의 성향에 맞춰 각기 다른 전략을 세우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맺고 끊는 게 분명한 분한테 날씨 이야기부터 시작한다면 당장 그런 쓸데없는 이야기하러 왔느냐는 반응이 튀어나오겠죠. 그러면 의학적인 임상 데이터 설명이고 뭐고 힘든 거죠.” 주변 정보 수집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COPD 치료제 스피리바의 매출에 큰 기여를 하고 있는 호흡기 전문 클리닉이 있다.
처음에 간호사들을 통해 의사가 의학 관련 책을 좋아하고, 인간적인 친밀감도 중시한다는 ‘팁’을 얻었다.
회사에서 호흡기 관련 책이나 논문이 나올 때마다 빼놓지 않고 챙겨 주었다.
“병원에서 주차하시는 분과도 굉장히 친해졌어요. 병원에서 아주 오래 일한 분이라 원장님에 대해 잘 알고 있었고, 여러 가지 정보를 많이 얻었어요.” 제약 영업에선 접대가 성공 여부를 결정한다는 인식이 많은데. “한국화이자의 경우 그런 걸하고 싶어도 처음부터 할 수가 없어요. 회사에서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지요. 선물 규정도 까다롭고, 식사 대접도 몇만원 이상은 할 수 없어요. 만약 식사 대접을 한다고 해도 어떤 목적으로 어떤 설명을 했는지 다 보고해야 돼요. 다른 곳에 비해 영업할 수 있는 ‘툴’이 없다는 불만도 있을 수 있지만, 과학적인 데이터와 정보로 승부하는 게 저한테는 오히려 좋은 기회인 것 같아요.” 필드에 나가서도 ‘공부’는 그치지 않았다.
매주 한 차례씩 모여 새로 나온 의학논문을 읽는 세미나를 한다.
한 달에 1~2번꼴로 발제도 해야 하고, 시험에 떨어지면 재시험도 봐야 한다.
“친구들과 있을 때 저도 모르게 의학용어가 튀어나올 때가 있어요. 너무 입에 배서 그런 거죠. 처음보다는 공부하는 게 훨씬 수월해졌고, 점점 가속도가 붙을 거라고 생각해요.” 힘들 때 산에 올라 혼자 풀기도 어려움은 없었나? “영업 사원이 항상 환영받는 건 아니죠. 한번은 환자도 많고, 우리 약을 처방할 경우가 많은 의사 선생님이 계셨어요. 명함을 드렸는데 보는 데서 던져 버리더군요. 만약 그때 얼굴이 굳어지고 어찌할 바를 몰라하면 다시는 선생님을 못 보게 되는 거죠. 독하게 이를 깨물고, 더 당당하고, 더 씩씩하게 이야기를 했더니 놀라시더군요.” 정말 힘들 때는 금정구에 있는 금정산에 올라 소리를 질렀다.
끈기 있는 노력 끝에 이제는 친한 사이가 돼 금정산에 올랐던 이야기를 하며 서로 웃곤 한다.
‘콜’을 할 때는 시간 선택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환자가 가장 많은 월요일 오전에 방문하는 것은 절대 금물. 점심 식사 전인 12시에서 1시 사이에는 환자가 비교적 적어 만나기 어려운 의사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요즘은 저녁 늦게까지 진료를 하는 클리닉이 많아져 때로는 늦은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는 일까지 생겼다.
“책 때문에 친해진 선생님도 있어요. 이야기는 잘 들어주시는데, 제 말에 큰 관심이 없다는 게 느껴지는 분이었지요. 진료 틈틈이 인문서적 보는 걸 즐기신다는 말을 듣고, 마침 읽고 있던 <파이만씨는 농담도 잘하셔> 이야기를 꺼냈죠. 금새 의자를 당겨 앉으며 제 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더군요.” 재택근무가 힘들지 않나? “1주일에 한 번 사무실에 나가 영업 상황을 브리핑하고, 세미나를 하지요. 그밖에는 모든 걸 스스로 알아서 하면 되요. 제가 맡은 지역은 전적으로 저 혼자 책임져야 하는 거니까, 겁이 나기도 하죠. 여기서 실적이 떨어지거나 우리 약품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대부분이라면, 다 책임을 져야 하니까요. 선생님마다 각기 다른 전략을 짜야 하고. 여기서는 제가 사장이고 모든 걸 관리해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에 해이해진다는 건 생각할 수도 없지요. 바로 이 점이 영업의 매력이기도 한 것 같아요.” skjang@economy21.co.kr
이주현 씨의 영업 비법
이주현 씨는 의사들의 성향을 4가지 타입으로 분류해 공략한다.
‘에미어블’(우호형), ‘드라이버’(주도형), ‘익스프레시브’(표현형), ‘애널리티컬’(분석형). 심리학에서 나오는 일반적인 분류법이다.
에미어블한 타입은 인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침밀감을 먼저 형성한 다음 과학적 데이터 등을 제시해야 한다.
반면 드라이버 형은 거두절미하고 본론을 곧바로 제시해 주어야 한다.
쓸데없이 날씨 이야기 등을 꺼냈다가는 핀잔을 받기 십상이다.
항상 시간에 쫓기는 의사들은 아무래도 드라이버 형이 많다.
애널리티컬은 임상 정보를 제공할 때 출처나 근거를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물론 정확한 성향 파악을 위해서는 개별 테스트가 필요하지만, 이주현 씨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의사들의 유형을 나누고 이를 노트에 기록하고 있다.
물론 사람의 성향은 복합적이다.
4가지 타입 중 한 가지에만 해당하는 경우는 드물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에미어블-애널리티컬’은 우호적이면서도 꼼꼼하고 분석적이다.
이런 식으로 하면 16개의 유형이 나온다.
거기에 맞춰 서로 다른 영업 기술을 적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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