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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기득권 덫에 걸린 IP-TV는 어디로?
[이슈]기득권 덫에 걸린 IP-TV는 어디로?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6.01.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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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만난 통신업체 CEO는 뚜렷한 대안도 없이 시간만 끌고 있는 IP-TV 문제에 대해 답답한 감정을 토로했다.
그는 외국의 전문가들이나 투자자들이 한국에 대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현상 가운데 하나가 바로 IP-TV 서비스의 지연이라고 전했다.
세계 최고 수준의 브로드밴드 네트워크를 갖추고도 세계 여러 나라에서 몇 년 전에 이미 시작한 간단한 IP-TV 서비스를 아직도 하지 않고 있는 이유를 아무리 설명해도 제대로 납득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지상파 방송사들도 모두 찬성하는데 유독 발목을 잡는 곳이 바로 케이블TV 업계라며, 지역에 기반한 이들의 정치적 파워가 법적·제도적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터넷 관련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도 비슷한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세계에서 IP-TV를 가장 잘할 수 있는 나라는 바로 한국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서비스를 아직 시작도 하지 못하는 것은 방송계의 기득권 문제가 걸려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는 1995년에 아리랑 위성을 발사해 놓고도 방송법 개정이 이루어지지 않아 5년 동안 위성방송 서비스가 지연되었던 사례와 IP-TV를 비교하기도 했다.
IP-TV없는 브로드밴드 강국 IP-TV 문제의 핵심은 과연 IP-TV가 방송으로 볼 것이냐 통신으로 볼 것이냐에 있다.
정보통신부와 방송위원회는 이 문제를 놓고 입장이 명확하게 갈린다.
지금까지 나온 내용을 정리하면 이렇다.
방송위원회는 IP-TV는 사실상의 방송이며 방송법에 의한 엄격한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본다.
특히 IP-TV는 디지털 케이블TV와 내용상 동일한 서비스이기 때문에 IP-TV도 케이블TV와 똑같은 규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케이블TV는 지역이나 소유 제한 등 각종 규제 하에 있는 데 비해 IP-TV는 그런 게 거의 없기 때문에 불공정 경쟁이 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반면 정통부는 통합 융합이라는 큰 흐름에 맞춰 IP-TV를 방송과 통신 어느 한쪽으로 보기 어려운 제3의 융합 서비스로 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국회 역시 상임위별로 의견이 나뉘기는 마찬가지다.
문화관광위에는 IP-TV에 케이블TV와 동일한 규제를 부과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제출돼 있는 반면, 과학기술정보통신위에는 정통부 입장에 근접한 법안이 올라와 있는 상태다.
하지만 IP-TV 문제를 둘러싼 논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표면적인 논란을 한꺼풀 벗겨볼 필요가 있다.
실제로 방송이냐 통신이냐는 대립의 배후에서는 통신사업자와 케이블TV 업체들 간의 숨막히는 시간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먼저 ‘선 제도정비, 후 서비스 실시’를 주장하는 케이블TV 업계의 속사정을 들여다보자. 단순 통계로만 보면 우리나라 케이블TV는 세계적으로 손꼽힐 만큼 높은 가입률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1700만 가구 가운데 무려 1300만 가구가 케이블TV를 본다.
그러나 이런 외형에 비해 내실은 빈약하기만 하다.
산악지형이 많은 우리나라는 원래 난시청지역이 많을 수밖에 없었고, 덕분에 과거에는 중계유선들이 성행했다.
무려 800만~900만 가구나 중계유선을 통해 TV를 시청했다.
그 고객들을 그대로 가져온 곳이 바로 케이블TV다.
그러다 보니 서비스 가격이 낮을 수밖에 없다.
공중파 재전송 중심이기 때문에 가입자는 많지만 수익성은 크게 떨어지는 것이다.
한운영 디지털케이블연구원 센터장은 “케이블TV와 서비스 내용이 똑같은 IP-TV까지 들어오면 가뜩이나 수익기반이 취약한 케이블TV 업체들은 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는 “KT가 IP-TV를 통해 포화상태에 이른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벌이고 있는 것과 똑같은 제살깎기식 출혈경쟁을 케이블TV에 볼러올 게 틀림없다”며 “10년 동안 어렵게 키워온 시장을 그냥 내줄 수는 없다”고 했다.
케이블TV가 출범하던 10년 전 KT는 네크워크사업자(NO)로 선정돼 케이블TV 사업에 참여한 적이 있다.
그러다가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하고 기존 네트워크를 케이블TV 사업자들에게 팔아치우고 철수했다.
한 센터장은 “그걸 인수받아 10년 동안 이만큼 키워왔는데, IP라는 이유만으로 같은 서비스를 갖고 아무런 규제도 받지 않고 들어오겠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그는 “기존 사업자를 망하게 하기 위해 신규사업을 허가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새로운 서비스를 허가할 때는 기존 산업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케이블TV, 초고속인터넷 시장서 급성장 물론 최근의 움직임을 볼 때 케이블TV 업계가 일방적으로 수세적인 입장에 몰려 있다고만 보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것은 케이블TV 업체들이 KT의 아성인 초고속인터넷 시장을 빠른 속도로 잠식해 가고 있다는 점이다.
2002년 36만명(3.5%)에 불과하던 케이블TV의 초고속인터넷 이용자 수가 이미 100만명을 돌파했으며 시장 점유율도 10%대에 근접하고 있다.
케이블TV와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번들로 묶어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는 전략이 대성공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KT가 지난해 12월27일 IP-TV 시험서비스를 서둘러 시작한 것도 이를 의식한 조치였다고 할 수 있다.
케이블TV 업체들이 초고속인터넷 시장을 파고드는 만큼, KT도 언제든 이들의 시장 공략에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케이블TV 업계는 지난해부터 기존 방송망의 디지털 전환에도 본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디지털 케이블TV의 경우 노래방이나 뱅킹 등 각종 데이터 서비스가 가능하기 때문에 IP-TV의 강력한 경쟁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KT를 바짝 긴장하게 하는 것은 따로 있다.
바로 케이블TV 업체들의 인터넷전화(VoIP) 진출 움직임이다.
자신들의 텃밭인 음성통화 시장마저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케이블TV 업체들은 지난해 9월 VoIP 사업을 추진한 한국케이블텔레콤(KCT)을 공동으로 설립하고 정통부에 기간통신사업자 신청서를 제출했다.
만약 KCT가 VoIP 사업에 본격적으로 나서게 되면 케이블TV 업체들은 기존의 방송 서비스에다, 번들 형태로 팔고 있는 초고속인터넷 서비스와 VoIP를 통한 음성통화 서비스까지 함께 제공할 수 있게 된다.
방송, 통신, 초고속인터넷을 아우르는 트리플플레이서비스(TPS)를 구현하는 막강한 경쟁력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오히려 방송 서비스가 제외돼 절름발이가 된 IP-TV가 수세에 몰리게 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 12월 정통부가 KCT의 인터넷전화 역무허가 신청 승인을 보류한 것도 이런 우려감을 반영한 것이다.
정통부는 IP-TV 서비스 실시와 KCT의 VoIP 진출의 맞교환을 내심 바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KT가 IP-TV 시험 서비스에 전격 돌입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한운영 센터장은 “케이블TV의 위협론은 지나치게 과장된 것”이라고 일축했다.
그는 “KT는 케이블TV 업체들이 초고속인터넷 서비스를 번들로 팔고 있다고 비난하지만, 실제로 통신사업자 가운데 넷스팟, 원폰, 스카이라이프 등 가장 많은 번들을 갖고 있는 곳이 바로 KT”라며 “전국 119개 케이블TV 업체를 모두 합해도 KT 매출의 10분의 1인 1조3천억원에 불과하다”고 했다.
KT의 지나친 엄살이라는 것이다.
시간 끌면 이길 수 있다? 하지만 이인찬 정보통신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이 연구위원은 “케이블TV 업계는 몇 년 동안 M&A가 꾸준히 진행되면서 몇몇 MSO(복수케이블TV방송사) 중심으로 시장의 재편이 상당수준 이루어졌다”며 “IP-TV와 경쟁할 수 있는 정도의 규모를 이미 갖추었다”고 분석했다.
현재 태광MSO·씨엔엠·CJ케이블넷·중앙네트워크 HCN·큐릭스·온미디어 등 대형 MSO들이 전체 SO의 68.5%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업계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70%에 이르고 있다.
또한 이들 가운데 재벌계업체들은 그룹 소속 콘텐츠 업체들과 수직 계열화되어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 연구위원은 “대형 MSO들은 인접 지역을 클러스터 형태로 묶어 탄탄한 지역기반을 확실하게 구축하고 있다”며 “시간을 끌면 IP-TV와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공교롭게도 케이블TV 업계에서 디지털 전환이 완료되는 2010년에 IP-TV를 허용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인터뷰/ 이영희 KT 미디어본부장 "IP-TV는 콘텐츠 산업 발전의 토대"

▲ 이영희 KT 미디어본부장

KT는 지난 12월27일 IP-TV ‘시험’ 서비스에 들어갔다.
방송법 관련 논란 때문에 지상파 재전송 등 방송 서비스는 제외되었고, 서비스 명칭도 ‘IP 미디어’로 바뀌었다.
이영희 KT 미디어본부장은 “케이블TV는 지역별 독점 체제”라며 “소비자인 국민들의 편익을 위해서는 건전한 경쟁 관계가 형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이 본부장은 “콘텐츠 산업의 육성을 위해서는 프로그램 공급자(PP)와 케이블TV 방송사(SO) 간의 불공전 거래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사실상의 상용 서비스라는 비판이 있다.
= 상용 서비스라면 기본적으로 돈을 받아야 한다.
이번에 시작한 것은 시험 서비스다.
일종의 테스트라고 보면 된다.
또 결정적으로 방송법 때문에 공중파뿐만 아니라 PP 채널들이 다 빠졌다.
이게 가능하려면 법적으로 방송채널 서비스를 먼저 허가해 줘야 한다.
어쨌든 우선은 규제 이슈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 케이블TV 업계에서는 디지털 케이블TV와 IP-TV는 사실상 동일한 서비스라고 보는데. = IP-TV는 완전 IP 기반 네트워크인 반면 케이블TV는 주파수를 분할해 쓴다.
이런 기본적인 방식의 차이 때문에 고품질 서비스나 양방향 서비스에서 IP-TV가 분명한 강점이 있다.
아직 실제 서비스가 보급되지 않았기 때문에 당장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 2006년 IP-TV에 3천억원을 투자할 예정인데 구체적인 계획은. = 주로 가입자측의 FTTH(광가입자망)에 투자가 이루어진다.
서비스 플랫폼이나 콘텐츠 개발에도 500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 콘텐츠 확보도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데. = 현재 PP들이 SO와 같은 계열사로 수직 계열화되어 있는 곳들이 적지 않아 PP들이 독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후발주자인 KT가 콘텐츠 확보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어쨌든 PP들이 우리의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를 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이전에 PP와 SO 간의 방송계의 불공정거래 문제들은 먼저 해결되어야 한다.
KT가 중소·영세 PP들을 육성하면서 함께 갈 수 있다.
- 케이블TV와 공존이 가능하다고 보나. = 현재 케이블TV는 지역별 독점체제다.
고객들은 선택권이 없이 주어지는 것만 봐야 한다.
경쟁이 이루어지면 가장 큰 혜택을 보는 것은 소비자인 국민이다.
고객이 품질이나 서비스를 비교해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그게 건전한 경쟁관계다.
아무리 기술적으로 앞서 있더라도 결국 소비자의 선택을 받지 못하면 그만이다.
이런 경쟁과정을 통해 SO들도 한단계 업그레이드될 것이다.
- IP-TV 서비스가 몇 년째 지연돼 왔는데. = 이제는 컨버전스 시대다.
모든 망은 결국 하나며, 인터넷·방송·통신 등 트리플플레이서비스가 다 되어야 한다.
이게 빨리 안 되고 있다는 것은 국가 경쟁력에 치명적이다.
과거에 초고속통신망이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콘텐츠라고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었다.
그런데 초고속통신망이 깔리면서 온라인 게임이나 다른 많은 서비스들이 쏟아져 나와 콘텐츠 산업이 활성화됐다.
IP-TV 역시 콘텐츠 산업이 발전할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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