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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포트]명품·온라인 시대 잊혀진 사금융
[현장리포트]명품·온라인 시대 잊혀진 사금융
  • 조수영 기자
  • 승인 2006.01.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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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당포’의 변신, 그곳에선 지금 어떤 일이? “갑갑하다.
” 신림사거리 근처에서 전당포 ‘신용사’를 운영하는 박유순 사장은 요즘 분위기가 어떠냐는 기자의 물음에 깊은 한숨으로 말문을 열었다.
낡은 건물 3층의 4평 남짓한 공간. 푸른빛이 도는 어두운 형광등 조명 아래 쇠창살에 방범유리창, 문 안쪽에는 3중 안전장치를 갖춘, 기대했던 모습 그대로인 전당포에서 박 사장은 어려움을 토로하기 바빴다.
13년째 같은 자리에서 전당포 문을 열고 있지만 요즘 같은 때는 없었단다.
2, 3일 씩 손님 없이 공치는 경우도 허다하고 고객수도 한 달에 30명을 넘지 못한다.
우선 담보로 맡을 수 있는 물건의 가짓수가 크게 줄어들었다.
신제품이 나오기까지의 기간이 짧은 디지털 가전이 대세를 이루면서 담보물은 이제 거의 귀금속에 한정되어 있고 카메라 등도 제값을 쳐주기 힘들다.
최근엔 손님들이 맡기고 간 담보물을 보관하는 창고도 크기를 확 줄였다.
캐비닛 한 개와 금고 하나가 물품 보관 장소의 전부다.
한때 카메라, 모피코트, 가전제품으로 가득 채운 데다 하나만으로는 부족해 캐비닛이 두세 개씩 있었다는 보관창고에는 이제 노트북 두어 개와 카메라 한대, 캠코더 정도가 썰렁한 전당포 분위기만큼이나 쓸쓸한 캐비닛의 빈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신고제 전환 이후 이미지 악화되기도 이 땅의 전당포업자들에게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한 위기상황이란다.
신림사거리 지역에서만 한때 30개에 달하던 전당포들 가운데 이제 10개 정도만 남았다.
그나마도 살아남은 것은 상대적으로 싼 가겟세 덕이고 대부분 “놀지 못해 열어두고 있는 형편”이란다.
최근 주변에 실내 경륜장이 생겨 좀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도 했지만 결과는 여전했다.
“경륜장에 오는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돈이 많은 사람들이 아닌데다 급전을 구할 때도 소비자금융권을 이용하더라”고 박 사장은 귀뜸한다.
게다가 1999년 전당포영업법이 폐지된 후 전당포 영업이 허가제에서 신고제로 바뀌면서 사채업자들까지 전당포 간판을 달고 영업하고 있어 전당포의 이미지가 더 나빠지고 있다며 박 씨는 혀를 끌끌 찼다.
예전엔 매일같이 들러 손님이 찾아가지 않은 담보물을 사가던 중간상인이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방문한다.
중고수요도 줄어들었고, 인터넷을 통한 직거래가 가능해지면서 청계천, 남대문의 중고시장이 예전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런 분위기는 다른 지역의 전당포라고 해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당포의 본고장 종로에서도 최근 몇 개의 전당포가 문을 닫았다.
종로에서 가장 크고 오래됐다는 ㄷ전당포 주인은 기자의 거듭되는 인터뷰 요청에도 “종로는 끝났다.
강남으로 가라”는 한마디로 거칠게 반응하며 요즘의 어려운 상황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종로3가에서 전당포 ‘주공사’를 운영중인 공영훈 씨는 “신용카드로 현금서비스를 받기 쉬워지고 소비자금융 업체들이 늘어나면서 전당포를 찾는 고객의 수가 줄어든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진주 수입업을 하던 공 씨가 전당포를 시작한 지는 이제 열 달 남짓. 전당포의 부정적인 이미지 때문에 처음에 자신도 일을 시작하기 꺼렸던 터라 기존의 어두운 이미지를 벗어버리기 위해 밝은 조명에 티테이블도 마련했지만 여전히 쇠창살과 방범유리벽은 남아 있다.
“이 지역 전당포들이 다 어렵다.
업종 자체가 사양길인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는 그에게 전당포를 열게 된 배경을 묻자 지갑 속에 보관하고 있던 신문조각을 꺼내어 보여준다.
1년 전, ‘중국에서 전당포 인기’라는 모 신문의 기사에 혹해 ‘아직은 괜찮겠다’ 싶어 시작하게 된 것. 전당업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긴 해도 아직은 초보자의 시행착오라 생각하고 계속 해볼 생각이란다.
하지만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다고 해도 전당업 자체가 한순간에 사양길로 접어든 것은 아니다.
도시의 다른 한켠에서는 ‘전당포’란 이름을 걷어내고 ‘폰뱅크’(pawn bank) 혹은 ‘폰숍’(pawnshop)의 이름으로 전당 업무를 이어가는 업체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일명 ‘명품전당포’라고 불리는 이들이다.
‘저당’, ‘담보물’(pawn)을 받는 ‘가게’(shop). 뜻으로는 전당포와 다를 게 없지만 이들은 ‘전당포’가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피하고 ‘숍’의 느낌을 강조하기 위해 ‘폰숍’이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한다.
우선 철창을 걷어내고 실내 조명을 환하게 밝혀 기존의 ‘전당포’가 갖고 있던 어두운 이미지를 걷어냈다.
현금대출을 하긴 하지만 텔레뱅킹으로 입금해주기 때문에 매장의 보안을 철저하게 할 필요가 없기에 가능한 변화다.
대신 티테이블과 안락한 소파도 마련했다.
담보가 되는 물건도 달라졌다.
‘전당포’에서는 귀금속, 금장시계 등이 주요 품목이었지만 이제 이곳에서는 ‘명품’이라면 가방, 구두 등도 어엿한 담보물이 된다.
압구정동 로데오 거리에 즐비한 중고명품 숍의 대부분은 매매뿐 아니라 중고명품을 담보로 대출까지 해주는 ‘폰숍’을 표방하고 있다.
폰숍 ‘브랜다이스’의 장수일 대표는 “전체 사업 중 담보대출의 비중은 30% 정도”라고 밝혔다.
폰숍들은 담보물건을 처분할 때도 중간상인을 거치지 않는다.
매장과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직접 판매하는 것. 청담동에 있는 폰숍 ‘캐쉬캣’에 들어서면 벽면을 가득 메운 명품 가방 외에도 숍 한켠에 있는 작은 스튜디오가 눈길을 끈다.
온라인을 통해 판매하기 위해 직접 물품의 사진을 찍는 장소인 것. 캐쉬캣 대표 김상현 씨는 “구멍가게를 오가듯 한 달에 몇 번씩 돈을 빌려가는 단골도 있다.
예전 전당포처럼 생계형 대출이 아니라 급전이 필요한 고객들이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지난날의 ‘전당포’에는 신용카드의 현금서비스가 위협요인이 되었지만 폰숍에는 오히려 기회요인으로 작용했다.
신용카드의 거품이 꺼진 후 신용불량자가 사회적 문제로 대두함에 따라 대출 과정이 까다로워지고 대출 한도액도 낮아진 상황 아래서, 폰숍들은 자신의 물건만 담보로 맡기면 신용기록을 남기지 않고 현금을 대출받을 수 있다는 점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젊은 전당은행’을 표방하는 폰뱅크 캐쉬콜은 기존의 전당업무에 무상출장감정, 무상택배 서비스로 새로운 개념의 전당포를 추구한다.
전면 유리벽에 화이트로 꾸민 사무실은 전당포라기보다는 오히려 깔끔한 카페에 가깝다.
담보물품도 명품 잡화에서 스쿠터, 자동차, 부동산까지 다양하다.
금융권 대출 벽 높아지며 활력 기대 “미국의 대표적인 전당은행인 ‘캐시 아메리카’의 기본틀에 차별화된 서비스로 한국적인 폰뱅크를 추구한다”고 밝힌 강태욱 대표는 “급하게 돈이 필요할 때 다른 사람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필요도 없고, 소비자금융권처럼 복잡한 절차를 밟지도 않는데다 개인 신용조회를 하거나 금융거래 기록을 남기는 불편 없이 물건만 맡기면 된다”며 폰뱅크의 편의성을 강조했다.
‘은행’을 표방한 만큼 중고매매 중심에 대출이 부가서비스로 운영되는 폰숍보다는 담보대출에 더 방점을 둔다.
사무실 한쪽에 있는 창고에는 쇼핑백에 포장된 명품 가방뿐 아니라 명품 브랜드 수트, 구두, 미니 바이크도 있다.
하루에 5, 6건의 대출이 꾸준히 이루어지며 프랜차이즈 문의도 잦다.
재미있는 점은 보통의 자동차보다는 명품 시계의 가치를 더 높게 쳐준다는 것. 며칠 전엔 한 고객이 명품 시계로 2천5백만 원을 대출해가기도 했다.
이 정도면 보통 자동차로는 대출받기 어려운 금액이라는 게 강 씨의 귀띔이다.
금융권 대출의 벽을 높이는 요즘의 정책이 계속된다면 전당업의 전망은 밝을 것으로 강 씨는 전망하고 있다.
이처럼 기본 업무는 비슷하지만 ‘전당포’는 폐업 도미노를 맞는 반면 ‘폰숍’은 호황을 누리는 아이러니한 상황의 핵심엔 ‘명품’과 ‘온라인’이라는 열쇠가 있다.
‘명품’이라 불리는 유명 수입브랜드에 대한 선호가 갈수록 높아지는 상황에서 가치에 대한 기준이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전당포에서 담보물로 맡던 물건들의 중고거래는 거의 사멸했지만 식을 줄 모르는 ‘명품’의 인기는 중고명품에 대한 지속적인 수요를 낳았다.
하지만 기존 전당업자들이 ‘명품’과 ‘온라인’에 적응하기는 무리라는 점이 전당포와 폰숍의 극명한 대비를 낳았다.
“명품을 다루는 일은 감각 그리고 진품을 구별하는 노하우가 필요하기 때문에 진입이 쉽지는 않다”는 ‘브랜다이스’ 장수일 대표의 말은 기존 전당업자들에겐 딱 들어맞았다.
명품 가방 등은 담보물로 받지 않느냐는 물음에 신림사거리 근처 ‘신용사’의 박유순 사장은 “강남 쪽에서는 명품도 받긴 한다는데…난 명품은 볼 줄도 모르고 감정할 줄도 몰라서…”라고 대답했다.
올해 54살인 박 씨는 그 지역 전당포 업자들 가운데 가장 젊은 편이다.
“사정사정 하기에 휴대전화를 (담보로) 잡긴 했는데, 이거 넘기면 천원이나 받으려나…” 물품 창고의 열쇠를 걸며 중얼거리던 박 씨의 혼잣말에서 묻어나는 2006년 ‘전당포’의 현실은 1월의 추위만큼이나 매서웠다.
조수영 기자 zsyoung@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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