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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철도 부채 10조원, 세금으로 메워야 하나
[이슈추적]철도 부채 10조원, 세금으로 메워야 하나
  • 이정환 기자
  • 승인 2006.02.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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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 노조가 3월1일부터 파업에 돌입하기로 결의했다.
쟁점은 인력 충원과 해고자 복직, KTX 여승무원의 정규직화, 그리고 철도건설 부채의 정부 인수 등이다.
이에 대해 한국철도공사는 해고자 복직이나 비정규직 문제 등은 아예 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정부 또한 총리 주재로 대책회의를 열고 노사 자율합의를 최대한 존중하되 불법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하게 대처한다는 입장을 세웠다.
노조의 주장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부분은 10조원에 이르는 철도건설 부채의 처리 방향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지난 1월 신년 기자회견에서 “공사에만 맡겨놓지 말고 정부가 나서서 근본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미뤄볼 때 조만간 해법을 찾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많다.
이미 국무총리실과 건설교통부를 중심으로 태스크포스팀이 발족돼 구체적인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1월 기준으로 철도공사의 부채규모는 10조4357억원에 이른다.
이 부채는 2004년에 완공돼 개통된 경부고속철도 공사비용인데 2단계까지 최종 완공되고 나면 그 규모는 11조9833억원까지 늘어날 전망이다.
구체적으로는 건설부채가 5조8910억원, 운영부채가 4조5447억원이다.
건설부채는 선로 부지 매입과 공사에 드는 비용, 운영부채는 역사와 차량 구입에 드는 비용을 말한다.
철도 부채 해마다 1조원씩 늘어나 문제는 이런 구조에서는 철도공사가 적자를 벗어날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데 있다.
철도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으로 이자와 선로 사용료를 포함한 부채 부담이 무려 4679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당기순손실 6200억원의 75.5%에 이르는 규모다.
올해에도 이 비율은 49.7%에 이를 전망이다.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2010년 기준으로 누적부채가 14조1천억원, 2020년이면 30조원에 육박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해마다 1조원씩 늘어나는 꼴이다.
이런 상황에서 철도 부채를 정부가 떠안아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단순명쾌하다.
철도가 교통 혼잡과 환경오염을 크게 줄여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를 마냥 시장에 맡겨둘게 아니라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가 일정 부분 시설 투자를 지원하지 않으면 수지 타산이 맞지 않아 철도사업을 계속할 수 없거나 신규 투자를 할 수 없고 결국 국민들 피해로 돌아온다는 논리다.
철도정책연구센터 오건호 연구위원은 “건설부채는 100% 정부가 인수하는 게 당연하고 운영부채의 경우도 철도공사 출범 시점을 기준으로 자산 재평가를 해서 부담비율을 다시 산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테면 고속철도 차량의 경우 1994년 계약 체결 당시 가격이 2조7천억원이었는데 개통이 늦어지면서 이자비용 등을 포함해 1조원이 더 늘어났다.
오 연구위원의 입장은 이런 비용은 정부가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도공사에 따르면 외국의 경우 철도공사의 시설비용을 대부분 정부가 지원하고 공사로 분리할 경우 부채의 대부분을 정부가 떠안는 게 일반적이다.
일본의 경우 27조7천억엔의 철도 부채 가운데 JR에 남겨진 부채는 120억엔밖에 안 됐다.
나머지는 모두 정부의 일반회계와 담배특별세 등 국민부담으로 처리됐다.
독일의 경우도 부채를 100% 탕감해주고도 해마다 5조~6조원을 지원해준다.
구체적인 처리방향을 놓고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크게 엇갈린다.
교통개발연구원 이재훈 연구위원은 “시설부채 인수는 동의하지만 운영부채의 인수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국철도기술연구원 양근율 선임사업단장은 “중장기적으로 회수만 가능하다면 굳이 지금 정부가 부채를 모두 떠안을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여러 세대에 걸쳐 상환하는 방안을 고민하자는 것이다.
철도공사 한문희 경영혁신실장은 “다른 교통수단은 정부 지원이 60%가 넘는다”며 "철도는 겨우 30%를 지원해주면서 많다고 하는 건 형평성에 맞지 않다”고 주장했다.
한 실장은 “환경이나 에너지 효율성 측면에서 철도에 대한 투자를 더 늘리고 이용을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려면 부채 인수는 물론이고 신규 투자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필수적이라는 이야기다.
건설교통부 철도정책팀 김한영 팀장은 “철도 부채를 올해 안에 해결한다는 방침 아래 외부 용역을 맡겨 실사에 들어갔다”고 밝혔다.
김 팀장은 “철도공사의 자립기반을 마련해 철도의 공공성을 강화한다는 입장이지만 국민들의 이해가 부족하고 정서적 반발이 심해 정부도 부담이 크다”고 덧붙였다.
요금 할인 안하면 적자 안 난다? 철도 부채와 관련한 또 하나의 쟁점은 장애인과 노인, 학생, 유아·청소년 등에 대한 요금 할인 문제다.
철도공사는 지난해부터 학생 할인을 폐지하고 장애인 할인 비율도 축소했다.
유아 할인은 6세에서 4세 이하로 낮춰졌고 노인 할인 제도는 반발에 부딪혀 일단 보류돼 있는 상태다.
문제는 이런 공공목적의 요금 할인이 엄청난 비용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여기에 드는 비용만 연간 322억원에 이른다.
1995년부터 2000년까지 요금 할인 규모는 모두 1조5228억원. 이 가운데 정부 지원은 4921억원밖에 안 됐다.
결국 철도공사가 들인 비용은 10조307억원으로 이 기간 내의 당기순손실 9553억원보다 754억원이나 더 많았다.
요금 할인만 없었어도 또는 요금 할인에 대해 정부가 충분히 보상해주기만 했어도 당장 흑자로 돌아설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정부는 계속해서 예산을 줄이고 있고 철도공사는 할인 혜택을 축소하는 추세다.
오건호 연구위원은 “공공목적의 요금 할인에 대해 정부가 전액 보상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의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면 요금할인이 계속 축소되고 사회적 교통 약자나 경제적 약자들이 철도 이용에서 소외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오 연구위원은 “철도 이용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라도 KTX를 비롯해 철도요금을 전반적으로 인하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철도공사가 인력구조조정 등 자구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내놓는다.
그러나 철도공사는 2004년 KTX의 개통으로 2800명의 추가 인원이 필요했는데 550명을 충원했을 뿐 나머지는 인력재배치 및 외주화 등으로 자체 흡수했다.
지난해 공사로 전환하고 주 40시간제를 도입하면서도 9천명의 추가 인원이 필요했으나 1700명을 충원하는 데 그쳤다.
철도공사의 매출액 대비 인건비 비중은 인천 지하철 등의 50% 수준이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이름 뿐인 철도위원회
철도공사에는 위원회가 무려 6개나 있다.
철도건설심의위원회를 빼고 나머지 5개 위원회의 위원만 무려 76명에 이른다.
그런데 최고 의사결정기구라고 할 수 있는 철도산업위원회는 지난해 딱 한차례 회의를 열었다.
그것도 그나마 서면회의로 대체됐고 회의록조차 남기지 않았다.
철도산업실무위원회는 아예 한차례 회의도 열지 않았다.
주목할 부분은 5개 위원회에 노동자 대표는 단 한 사람도 포함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프랑스 철도공사의 경우 이사회 구성원이 모두 18명인데 노동자 대표가 6명, 정부 대표가 7명, 그밖에 직능 대표가 5명으로 구성돼 있다.
스웨덴 철도공사의 경우도 19명의 이사 가운데 노동자 대표가 11명으로 과반수가 넘는다.
민영화됐다가 다시 공공화된 영국의 철도시설회사 레일트랙도 철도총회 회원 100명 가운데 60명이 승객과 시민, 노조 대표 등 공익회원으로 구성돼 있다.
민주노동당 단병호 의원은 현행 정부투자기관법과 별개로 철도공사에 이사회추천위원회를 두고 정부와 노동자·시민 대표 등을 2배수로 추천하도록 하는 철도공사법 개정안을 마련하고 있다.
정부의 낙하산 행정과 관료적 지배구조에서 벗어나 독립적인 철도정책과 재정계획을 마련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지배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발상에서 나온 대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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