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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미국의 '리트머스 시험'을 통과하라
[커버]미국의 '리트머스 시험'을 통과하라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6.02.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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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조사국(CSR) 보고서를 통해 살펴본 한미FTA 협상 2년의 재구성 “2004년 초 한국 외교통상부에서 한미FTA를 제안하기 시작했다.
처음 부시 행정부는 이 제안에 냉담했다.
2004년 말, 한국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프레젠테이션이 당시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로버트 죌릭을 포함한 미국 핵심 정책가들에게 강한 인상을 주었고, 2005년 1월 양측은 FTA의 세부계획과 효과, 위험을 검토하는 6개월간의 과정을 시작했다.
” 미국 의회조사국(CRS)이 지난 2월9일 낸 ‘한미 경제관계: FTA를 위한 협력, 마찰, 전망’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는 한미FTA 논의의 첫 출발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이후 실제로 한미 양국은 2005년 상반기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모두 3차례의 한미FTA 사전 실무점검 협의를 가졌다.
그러나 이처럼 곧바로 실무급 협의에 돌입하는 것은 그 동안 정부가 다른 나라와 FTA를 체결하기 위해 밟아온 절차에 비춰볼 때 상당히 이례적인 것이다.
양국 정부와 민간, 학계가 함께 참여하는 ‘산관학(産官學)공동연구회’를 먼저 구성해 상당기간 FTA의 경제적 타당성을 검토하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2004년 말 이후 중단 상태인 한일FTA 협상 역시 산관학공동연구회가 1년반 가량 활동한 이후 시작됐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 FTA지역교섭과 관계자는 “별도의 공식적인 산관학 공동연구는 없었지만 2005년 상반기에 양국간 실무급 사전협의를 했다”며 “내용상 큰 차이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업계 측 대표가 논의 과정에서 배제됐다는 점에서 실제로는 적지않은 차이가 있다고 봐야 한다.
한국무역협회 관계자는 “우리도 산관학 공동연구를 희망했지만, 미국 측에서 민간이 참여하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입장이어서 정부 대표만 참여하는 사전 협의형태가 됐다”고 전했다.
외교통상부 관계자는 산관학공동연구 대신 실무 점검협의를 선택한 이유에 대해 “공동연구회는 대개 검토 결과를 최종보고서로 만들어 정부에 협상을 권고하는 형태로 활동을 마친다”며 “한미FTA의 경우, 이미 양국 정상간, 통상장관간 협상을 추진한다는 합의가 이루어져 있는 상태였다”고 설명했다.
즉 한미FTA의 경제적 타당성에 대한 세밀한 검토보다는 협상 개시를 위한 실무적인 점검이 더 중요했던 것이다.
그러나 산관학공동연구를 건너뛴 것은 공동연구회가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장치의 역할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를 남기고 있다.
어쨌든 양국간 실무 점검협의는 2005년 6월 끝을 맺게 된다.
한미FTA 협상을 위한 사전 작업이 마무리된 것이다.
하지만 이때 미국 측에서 협상 개시의 ‘전제조건’을 들고 나왔다.
“미국 통상대표 로버트 포드만은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에게 (양국간) 핵심 미해결 이슈들이 해결되기 전까지는 실제 협상을 개시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자동차와 의약품에 대한 한국의 수입장벽,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금지, 외국 영화상영을 제한하는 스크린 쿼터가 포함된다.
미국의 많은 관리들은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한국의 조치는 한국 정부가 미국이 FTA 협정에서 기대하는 타협들을 이끌어낼 수 있는 정치적 능력이 있는지에 대한 리트머스 테스트라고 말했다.
” 그 이후 지난 1월까지 7개월 동안 정부는 미국의 ‘리트머스 테스트’를 차례대로 통과해나갔다.
가장 먼저 의약품 부분에 대한 ‘양보’가 이루어졌으며, 자동차와와 쇠고기, 스크린쿼터가 뒤를 이었다.
그러나 정부는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이 한미FTA의 전제조건은 아니었으며, 그것과는 무관하게 자체적인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CRS 보고서는 한미FTA의 전제조건이 아니라는 정부의 주장이 정치적 수사 이상의 의미를 갖기 어렵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있다.
첫 번째 양보 - 의약품 “2005년 USTR의 포트만 대표는 의약품문제에서의 진전 없이는 FTA 협상이 시작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005년 10월 통상현안점검회의에서 한국 정부는 당분간 새로운 의약품 상환가격 정책을 도입하지 않고, 상환가격 결정을 재심사하는 독립된 기구를 설립한다는 데 동의했다.
” 그 동안 미국 제약회사들은 보건복지부의 투명성 부족에 불만을 터트려왔다.
특히 사전 예고 없는 잦은 제도변경이 혼란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CRS 보고서가 언급하고 있는 의약품과 관련된 첫 번째 양보는 바로 이 부분에 관련된 것이다.
한미 FTA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제도 변경을 중단한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전국민의료보험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때문에 약을 살 때 약값의 일부인 본인부담금만 내면 된다.
나머지는 의료보험심사평가원의 심사를 거쳐 지불된다.
상환은 이처럼 사후정산되는 과정을 가리킨다.
두 번째 부분은 상환가격에 이의가 있을 때 업체가 재심사를 요청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구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미국 제약회사들이 건강보험상의 상환가격을 문제삼는 이유는 자신들이 거액을 투자해 개발한 신약이 제 값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불만을 갖고있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미국이 요구한다고 해서 새로운 가격정책 도입을 중단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다만 업계의 우려를 감안해 신중하게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을 뿐”이라고 한발 물러섰다.
또 “재심 절차의 필요성은 미국 제약회사만이 아니라 국내 업체들도 요구해온 것”이라며 “이미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던 문제”라고 말했다.
두 번째 양보 - 자동차 “2005년 포트만은 FTA 협상 개시에 동의하기 전에 미국이 한국으로부터 양보를 요구하는 4분야의 항목에 자동차를 포함시켰다.
포트만은 협상 개시 계획 발표에서 한국의 엄격한 배출가스 규제에서 시장의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자동차 업체들에 2009년까지 예외를 허용한 한국 환경부의 2005년 가을의 결정을 언급했다.
그 이전에는 2007년 1월부터 규제가 적용될 예정이었다” 실제로 환경부는 지난해 11월 말 1만대 미만 자동차제조업체의 경우, 2006년부터 시행되는 배출허용기준 적용을 2009년까지 유예하는 내용만 담은 간략한 ‘대기환경보전법 시행규칙’ 개정안을 냈다.
당시 환경부의 개정안 국내 자동차업계와 환경단체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국산 승용차는 당장 2006년부터 대기환경 개선을 위해 총 생산량의 4분의 1은 의무적으로 배출가스 저감장치를 부착해야 하는 반면, 대부분의 수입차는 적용대상에서 빠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외교통상부는 “강화된 배출가스 규정이 도입될 경우, 미국산 차량의 40%가 수입이 불가능해진다는 미국 측의 강한 이의제기가 있었다”며 “당초 미국은 규제기준 자체의 변경을 요구했으나, 어려운 협상을 통해 유예기간 연장이라는 타협점을 찾은 만큼 일방적인 양보는 아니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세 번째 양보 - 쇠고기 수입 금지 “2004년 USTR 관리는 수입금지 조치가 유지되는 한 한국과의 FTA 협상은 시작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2006년 1월, 양국간 대화에서 한국은 수입금지를 부분적으로 해제하는 데 동의했다.
한국은 2006년 3월 말까지 30개월 미만의 뼈를 제거한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을 허용할 것이다.
뼈를 제거한 쇠고기는 2003년 한국 수출 무량의 전반을 차지했다.
” 이와 함께 보고서는 30개월 미만 조건은 당초 한국이 20개월 미만으로 한정하려던 데서 물러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한미간 쇠고기 문제에 대한 합의는 2005년 말 일본이 수입금지 조처를 부분 해제한 이후에 한 달 만에 이루어졌다.
하지만 한국이 수입 재개 결정을 내린지 불과 일주일뒤 일본은 미국에서 운송된 쇠고기에서 금지항목이 뼈가 발견되자 다시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의 이런 움직임 속에서도 기존 방침을 바꾸지 않았다.
네 번째 양보 - 스크린 쿼터 “미국 통상 관리들에게 스크린 쿼터 문제는 FTA 협상에서 제기될 어려운 정치적 양보를 할 수 있는 노무현 정부의 능력과 역량에 대한 상징이 되었다.
2006년 1월26일 한국 부총리는 스크린 쿼터를 절반인 73일로 축소한다고 발표했다.
그 다음주 양국은 FTA 협상 개시를 선언했다.
” 보고서는 양국에서 영화산업은 강력한 정치적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2002년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한국 유명 영화배우들의 지지를 받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노무현 정부는 수년간 스크린 쿼터 폐지가 아니라면 이를 축소할 수 있다고 보증해왔다는 것이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CRS 보고서는
이번 보고서는 미국 의회조사국(CRS) 마크 매닌 아시아 담당 연구원이 작성한 것이다.
CRS는 미국 의회의 정책전문가 집단으로 의회도서관에 부속되는 기구이지만 800여 명에 이르는 방대한 인력을 기반으로 고도의 입법보좌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지난 2월23일 외교통상부는 해명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보고서는 “한미FTA의 당위성에 대한 미국내적 성명 차원에서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며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통상문제에서 미국 의회가 차지하는 위상에 비춰볼 때 수긍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또한 보고서의 내용도 한미FTA의 당위성 전파와는 거리가 멀다.
보고서는 한미FTA 협상 개시 선언이 쇠고기, 자동차, 의약품, 스크린쿼터 4분야에서 한국의 양보에 이어 이루어졌음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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