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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한국판 골드만삭스, 그 무모한 꿈
[특집]한국판 골드만삭스, 그 무모한 꿈
  • 이정환 기자
  • 승인 2006.02.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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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실 없는 외형 성장 추구하는 자본시장통합법의 한계 직시해야 자본시장통합법이 도입되면 우리나라에서도 미국의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이 나올 수 있을까. 금융 빅뱅이니 한국판 골드만삭스니 온갖 장밋빛 전망을 떠들어대지만 우리는 먼저 이 회사들이 과연 어떤 회사들인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증권회사들은 한국판 골드만삭스가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건 과연 바람직할까. 1992년 영국의 검은 9월 사태는 골드만삭스가 어떻게 이익을 내는지 이해할 수 있는 한 사례다.
그 무렵 독일에는 돈이 넘쳐났다.
통일 이후 휴지조각이나 다름없었던 동독 돈을 서독 돈으로 바꿔준 데다 정부 투자가 크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중앙은행인 분데스방크는 돈을 마구 찍어내는 동시에 물가를 잡으려고 2년 동안 10번이나 금리를 올렸다.
골드만삭스를 비롯한 국제 투기자본이 우르르 독일로 몰려든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결국 마르크화 가치가 크게 올라갔고 상대적으로 다른 나라들의 통화 가치는 크게 떨어졌다.
영국 정부는 외환을 방출해 파운드화를 사들이는 동시에 금리를 끌어올렸다.
그런데도 파운드화 가치는 계속 떨어졌다.
영국 정부가 파운드화를 사들인다는 소문이 돌자 국제 투기자본은 일제히 파운드화를 내다팔기 시작했다.
영국은 유럽 기준 환율에 연동되는 고정환율제를 도입하고 있었는데 환율을 유지하려면 계속 파운드화를 사들여야 하는 상황이었다.
외환위기 조장해 막대한 이익 챙기기 영국 정부는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시작했던 것이다.
환율을 유지하는 데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고 투기자본 입장에서는 환율이 올라가면 그때 싸게 다시 사들여서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
1992년 9월16일, 갑자기 70억파운드의 파운드화가 쏟아져나왔고 영국 정부는 결국 환율 방어를 포기하고 환율을 높일 수밖에 없었다.
이게 이른바 검은 9월 사태의 전말이다.
골드만삭스 영국 지점은 이 거래로 무려 2억달러를 벌어들였다.
골드만삭스가 벌어들인 2억달러는 결국 영국 국민들의 세금이다.
통화시장이 비정상적으로 움직일 때 정부는 구경만 하고 있을 수 없다.
어떻게든 시장에 뛰어들어 바로잡아야 하고 투기자본은 이런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1991년 영국에 이어 그 이듬해에는 프랑스와 벨기에, 덴마크가 잇따라 외환위기를 맞았다.
1994년에는 멕시코가 외환위기를 맞았다.
그 모든 과정에 골드만삭스는 깊숙이 개입했고 크게 이익을 챙겼다.
1991년의 맥스웰 사태는 더욱 기가 막히다.
영국의 언론 재벌이었던 로버트 맥스웰은 골드만삭스의 최대 고객이었다.
그는 계열사들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주식을 공격적으로 사들였는데 골드만삭스의 수석 파트너 에릭 사인버그가 그 거래를 도왔다.
맥스웰은 1년 동안 4억파운드를 쏟아부었고 주가는 크게 뛰어올랐다.
골드만삭스는 그 과정에서 엄청난 수수료 이익을 챙겼고 맥스웰의 지분비율은 결국 한도인 70%까지 차 올랐다.
문제는 정작 돈이 필요한데 주식을 내다팔 데가 없게 되면서부터였다.
기록에 따르면 맥스웰은 과소비가 심했고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사람이었다.
맥스웰은 골드만삭스에서 여러 차례 거액의 돈을 빌리기도 했다.
재정 압박에 쫓긴 맥스웰은 급기야 직원들의 연금 펀드를 동원해 보유 주식을 떠넘겼고 골드만삭스가 그 주식 매매를 중개했다.
손실을 연금 펀드에 떠넘기면서 맥스웰과 골드만삭스는 엄청난 시세차익과 수수료를 챙겼다.
그러나 이런 장난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수는 없었다.
결국 궁지에 몰린 맥스웰은 요트에서 뛰어내려 자살했고 골드만삭스 또한 엄청난 손실을 입었다.
골드만삭스는 시세 조작과 연금 펀드 유용에 대한 혐의를 모두 부정했지만 명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었다.
이 사건은 소송으로 이어졌고, 골드만삭스는 재판 도중 2억5천만달러를 주고 합의하는 것으로 빠져나갔다.
이 사건 이후 골드만삭스는 3년 동안 심각한 슬럼프를 겪었다.
26억달러 벌어 161명이 나눈다 영국의 일간신문 <가디언>은 언젠가 골드만삭스를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탄자니아와 골드만삭스의 차이를 아는가. 탄자니아는 1년에 22억달러를 벌어서 2500만명이 나눠 갖는데 골드만삭스는 26억달러를 벌어서 161명이 나눠 갖는다.
” 골드만삭스는 1999년 주식시장에 상장하기 전까지 철저하게 소수정예 파트너십으로 운영돼 왔다.
파트너들이 자본금을 출자해 주주가 되고 이익을 균등하게 배분하는 구조였다.
유능한 인재들을 끌어들이고 최고의 보상을 약속하는 시스템이었지만 파트너가 빠져나가면 자본금이 줄어드는 약점이 있었다.
파트너 개인의 역량과 성과에 따라 이익 규모가 달라지는 것도 치명적인 약점이었다.
이를테면 래리 베케라라는 파트너는 1993년에 이탈리아 채권에 투자해 한 달 만에 8천억달러를 벌어들였다.
회사 전체 이익의 절반을 혼자서 벌어들인 것이다.
확신에 찬 그는 그달 월급을 모조리 새로운 거래에 쏟아부었다.
그러나 31개월 뒤 그는 혼자서 1억달러 이상의 손실을 냈다.
회사 전체로 봐도 마찬가지다.
1993년 12월 골드만삭스는 3억7500만달러의 이익을 냈는데 그 이듬해 11월에는 이익이 1억3300만달러로 줄어들었다.
한창 잘 나가던 1993년에 골드만삭스의 파트너들은 최고급 승용차와 자가용 비행기를 뽑느라 바빴다.
골드만삭스는 천문학적인 금액을 나눠줬고 품격에 맞는 소비를 장려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1993년 12월과 1994년 4월 사이에 골드만삭스는 3억5천만달러를 잃었다.
1995년에 와서야 골드만삭스는 중개인들의 거래를 하나하나 모니터링하고 규모가 큰 거래에 대해서는 위원회의 결재를 받도록 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한국판 골드만삭스 가능할까 골드만삭스는 우리나라에서도 여러 차례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1997년 진로 부도 직후 경영컨설팅을 맡았던 골드만삭스는 그 이듬해 화의 상태의 진로와 진로 홍콩의 채권을 무더기로 헐값에 사들여 경영권을 장악한다.
골드만삭스는 1조4600억원대의 진로 채권을 2742억원에 사들였다가 지난해 4월 하이트맥주에 3조1600억원을 받고 매각, 1조7천억원 상당의 시세차익을 남긴 바 있다.
골드만삭스는 경영컨설팅 과정에서 얻은 내부 정보를 활용해 이익을 올렸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밖에도 골드만삭스는 1999년 국민은행과 주택은행 합병 과정에서도 5억달러를 투자해 1조원 이상의 시세차익을 남긴 바 있다.
최근에는 하나은행 주식을 사들여 최대 주주로 부상하기도 했다.
동아건설 파산채권 인수에 나선 것이나 대우조선해양 등 알짜배기 자산을 보유한 교보생명 주식을 사들인 것도 눈길을 끌었다.
이번에 재정경제부가 발표한 자본시장통합법이 통과되면 증권회사와 선물회사, 자산운용회사 사이의 경계가 모두 무너지게 된다.
금융투자회사로 인가 또는 등록을 받으면 매매와 중개는 물론이고 자산운용과 투자자문, 투자일임, 자산보관 등 자본시장의 모든 업무를 맡을 수 있게 된다.
이제 우리나라에도 골드만삭스 같은 대형 투자은행이 나올 수 있다는 기대감이 무르익고 있는 것이다.
이번 자본시장통합법의 도입 취지는 자본시장을 키워 동북아시아를 포괄하는 금융허브를 건설해 홍콩이나 싱가포르를 따라잡겠다는 것이다.
증권연구원에 따르면 호주는 우리보다 앞서 2001년 금융서비스개혁법을 제정해 지난해까지 4년 동안 주식시장과 채권시장의 규모가 각각 2배로 불어났다.
외환시장 규모도 1.5배로 불어났다.
이번 자본시장통합법은 호주의 이 법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이 법은 올해 국회를 통과하면 1년의 유예기간을 거쳐 2008년부터 시행에 들어갈 계획이다.
재경부는 미국과 우리나라의 자본시장을 비교하는 자료를 곁들여 온갖 장밋빛 전망을 쏟아놓고 있다.
그 과정에서 금융지주회사나 대형 증권회사들을 중심으로 인수합병과 합종연횡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법안 마련을 총괄 지휘한 김석동 재경부 차관보는 “이 법이 가져올 변화는 1986년 영국 금융시장 빅뱅의 10배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했다.
그러나 동양종합금융증권 최종원 연구원은 “자본시장통합법의 수혜자는 일부 대형 증권사에 한정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투자은행의 전제조건으로 규모와 인력을 꼽았다.
국내 1위인 삼성증권도 국제 규모의 투자은행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고 무엇보다도 실무 경험을 갖춘 전문인력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증권연구원 신보성 연구위원은 “투자은행으로 가려면 투자 위험을 직접 떠안을 수 있는 능력이 있어야 하는데 국내 증권사들은 아직 그럴 준비가 안 돼 있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도 자기자본 규모가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는 또 급여보상체계의 한계도 지적했다.
“국내에 들어와 있는 외국계 증권사 인력 가운데 90% 이상이 국내 증권사 출신입니다.
성과에 따른 보상이 안 되니까 다들 빠져나가는 거죠.” 한국투자증권 최정욱 연구원은 “규제 완화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인 측면은 있지만 새로운 시장에 대한 기대일 뿐 지금은 증권회사들이 은행보다 자본력이 더 취약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한화증권 서보익 연구원도 “당장은 어렵고 길게는 10년, 20년을 내다보고 준비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했다.
서 연구원은 “금융 허브를 둘러싼 논의도 아이디어 차원일 뿐 실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인수합병과 구조조정의 우려가 앞선다.
사무금융연맹 증권업종본부 박진희 조직부장은 “이대로 가면 선물회사와 자산운용회사 가운데 절반은 정리된다고 봐야 한다”며 “증권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도 3분의 2 이상 퇴출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증권 노조는 고용안정을 요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새로 도입하기로 한 판매권유자 제도도 논란거리다.
판매권유자는 직접 가정을 방문해 금융상품을 판매할 수도 있도록 하는 전문 영업사원을 말한다.
문제는 이들이 보험회사의 보험설계사들처럼 특수고용 형태의 비정규직 노동자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들은 기본급은 물론이고 4대 보험 혜택도 없이 실적에 따라 성과급만 받게 된다.
박 부장은 “판매권유자 제도가 도입되면 일상적인 구조조정이 더욱 확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와 미국은 다르다” 진주산업대학교 산업경제학과 박종현 교수는 좀 더 본질적인 문제제기를 한다.
자본시장통합법의 진짜 의도가 뭐냐는 것이다.
박 교수는 자본시장통합법을 비롯한 정부의 금융허브 계획이 이른바 한국판 골드만삭스라는 대형화에 치중돼 있다고 지적한다.
“금융의 발전이 절대적인 목표가 돼서는 안 됩니다.
금융과 실물이 동반자 관계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 금융의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금융 허브라는 무모하고 불가능한 꿈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 미국의 경우 1980년대 이후 지속적으로 주가가 오르면서 가계의 보유자산이 늘어나고 소비가 뒤따라 늘어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박 교수는 회의적이다.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훨씬 변동성이 크고 취약하다.
게다가 설령 그런 선순환 구조가 가능하다고 해도 문제다.
갈수록 확산되고 있는 양극화와 소득 불평등을 마냥 방치할 것인가. 자본시장이 이들을 돌볼 수 있을까. “미국은 사회보장제도를 민영화하면서 연금재산을 주식시장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정부의 역할을 줄이고 국민들 각자 자본시장에서 알아서 미래를 찾으라는 것이죠. 그런 시스템에서 자본시장에 합류할 수 없는 계층은 계속 소외될 수밖에 없습니다.
양극화가 계속 확산되는 겁니다.
” 가장 결정적인 문제는 이런 시스템이 지속가능하냐는 것이다.
바야흐로 인구 고령화 시대, 자산을 세대간 재분배가 아니라 주식시장을 통해 이전하는 방식이 과연 가능할까. 박 교수는 역시 회의적이다.
미국의 경우 달러 경제의 헤게모니를 동원해 세계적으로 이머징마켓에서 이익을 빨아들이고 있지만 우리에게는 그런 헤게모니도 없다.
박 교수는 “우리는 골드만삭스가 될 수도 없고 될 이유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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