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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황우석 폭풍’이 지나고 난 자리엔…
[커버]황우석 폭풍’이 지나고 난 자리엔…
  • 김윤지/ 객원기자
  • 승인 2006.03.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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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과학기술인 대상 과학 관련 현안 이슈 설문조사…“과학계 총체적 수술 필요” 한목소리 지난 연말 온 국민을 혼돈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황우석 파동’은 아직도 오리무중 상태다.
며칠에 한 번씩 주연급 배우가 바뀌며 온 국민의 가슴을 휘갈겨놓던 이 희대의 ‘사기극’ 연출자가 누구인지 아직 최종적으로 판가름이 나지 않은 것이다.
내로라하는 교수들에, 검찰들까지 팔 벗고 나선 지 한참이지만, 복잡한 시나리오 탓인지 결말은 아직도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이 과정을 지켜본 현장의 과학자들은 착잡하기만 하다.
이들은 누군가의 말대로 “월화수목금금금”요일 내내 실험실의 불을 밝혔다.
그럼에도 거액의 후원금을 받아본 적도,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아본 적도 없다.
유독 한 과학자에게만 쏟아지는 찬사를 바라보면서도 그것이 ‘과학자’의 위상을 높이는 일이라 여기며 애써 쓰린 속을 참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이 한 순간에 몰락하는 과정 속에서, 대한민국에서 과학자로 산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입을 열기 시작했다.
우리나라 과학기술인 대표기관인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와 기술경영경제학회는 지난 연말 과학기술인 722명을 대상으로 ‘과학기술 관련 주요 현안 이슈 조사·분석’을 실시한 바 있다.
이 설문에서 현장의 과학자들은 현재 과학기술의 발전을 위해 가장 시정되어야 할 현안은 아이러니하게도 ‘이공계 대학원 진학 지원’(총점 1692, 68.14% 응답)이라고 외쳤다.
수십억원의 후원금이 한두 과학자에게 쏟아졌던 상황 속에서 상상하기 힘든 결과였다.
은 최근 분석 작업을 마친 이번 설문조사 결과를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설문조사 방법은 <박스1> 기사 참조)

▲ 한겨레 김진수 기자
이공계 장학금, 대학생에만 적용돼 ‘이공계 대학원 진학 지원’. 이것은 현재의 과학기술계의 열악한 현실을 복합적으로 보여주는 좋은 예이기도 하다.
중고등학생들의 ‘이공계 기피 현상’은 이미 몇 년 전부터 사회적으로 문제가 된 바 있다.
자라나는 우수 인재들이 이공계를 멀리하고 의학계로만 몰린다는 현실은 사회적으로도 큰 충격이었고, 정부 역시 이 현상의 위험성을 극복하기 위해 다양한 이공계 대학 장학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현재 이공계 대학은 대학사회 안에서 가장 장학금 혜택이 높은 곳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장학금이 대학생에게만 적용된다는 게 문제였다.
이공계 학문의 특성상 석박사까지 지속적으로 지원해야만 결실을 맺을 수 있는데, 대학생 장학금만 지원하다 보니 지속적인 연구 인력의 양성이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다.
물론 학문을 계속해나가는 것이 직업적 안정을 보장해줄 수 있다면 장학금이 없이도 많은 학생이 몰릴 수 있다.
그러나 석박사 이후 연구인력들이 맞닿게 되는 곳은 4대 보험조차 적용되지 않는 차가운 비정규직인 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 이공계 대학원을 진학하는 학생들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대학 연구의 실질적인 손발 역할을 하는 대학원생이 없으니 제대로 된 연구 수행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들의 지적인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설문에서 가장 두드러진 것은 연구개발(R&D) 사업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관리해나갈지에 대한 규정이 마련되어야 한다는 목소리였다.
과학기술인들은 ‘연구개발사업 성과분석 평가기준 마련’(총점 1646, 72.3% 응답)을 두 번째로 가장 많이 응답했고, 그 다음으로는 ‘연구개발사업 관리규정 표준화, 감사 강화’( 총점 1474, 60.8% 응답)를 이야기했다.
적게는 몇 천만원, 많게는 몇 억원씩 정부기금이 집행되는 연구개발 사업의 성과가 어떤지, 또 예산이 적절하게 집행되는지에 대한 통일된 관리 규정이 없다는 이야기다.
대표적으로 황우석 교수팀에게 막대한 연구비가 지원되었는데도, 지금 그 연구의 성과가 어떤지, 연구비가 어떻게 쓰였는지를 도통 알 수 없는 것이 이런 현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 박미향 기자
연구개발 성과 평가 표준 잣대 필요 설문 응답 분석에 참가한 김병근 한국기술교육대 교수는 “현재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매년 정부기금으로 지원되는 국가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조사·분석과 평가를 실시하고 있지만 평가제도들의 평가 목적과 대상, 내용들이 상당히 혼재해 있어 평가의 공정성과 객관성에 대해 여러 의문들이 제기되고 있다”고 현 상황을 이야기한다.
피평가자들의 입장에서는 어느 부처에서 실시하는 평가인지, 또 어떤 인원들이 평가자로 구성되었는지에 따라 평가방법이나 결과가 들쭉날쭉하기 마련이라 평가 결과를 전적으로 신뢰하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이것은 연구비를 집행하는 것뿐 아니라 예산 확보를 하는 과정에서도 문제가 되고 있다는 게 응답자들의 이야기다.
적절하게 연구 내용을 분별할 시스템이 부족하다 보니 인맥과 학맥에 의해 연구비가 집행되는 예가 비일비재하다.
그 결과 어느 특정 분야, 특정 인물에게로만 연구 자금이 돌아가는 현상들도 발생하게 된다는 것이다.
한 설문 응답자는 “연구자들이 연구보다 정치에 힘써야 연구 자금을 많이 확보하게 되는 것도 이런 불완전한 시스템 때문”이라며 시정을 촉구하기도 했다.
또 성과 평가에서도 또 하나의 기현상이 있으니, 바로 연구개발의 성과를 SCI급 논문의 수로만 평가하는 관행이다.
SCI급 논문이란 인용 빈도가 높은 해외 우수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말한다.
자체적으로 연구 성과를 평가하는 잣대가 없다 보니 무조건 SCI급 논문을 몇 편 썼는가 하는 것으로 연구 인력의 성과를 평가한다는 이야기이다.
우수 학술지에 논문이 실리는 것은 중요한 일이기는 하다.
그러나 국내 연구의 성과를 무조건 SCI급 논문수로만 가늠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게 현장 과학기술인들의 지적이다.
국내에 꼭 필요한 연구보다는 논문 실리기에 좋은 연구를 해야만 연구 업적이 높아지는 엉뚱한 결과를 낳을 수 있다는 얘기다.
설문이 실시된 시기가 이른바 ‘황우석 파동’이 막 진행되던 지난 연말이었던 탓에 ‘과학기술 연구윤리지침 제정’에 대한 필요성을 답한 응답자도 예상 외로 많았다.
응답자들은 52.49%가 연구윤리지침의 필요성을 답해 이 항목이 전체 가운데 네 번째로 많은 응답률을 얻었다.
(관련기사 <박스2> 참조) 이공계 기피 현상을 낳은 과학기술인의 낮은 처우에 대한 불만도 이번 설문 조사에서 강하게 드러났다.
설문 응답자들은 ‘연구원들의 공무원 연금 가입 및 정년 확대’(총점 886점, 40.17% 응답)와 ‘과학기술인 처우개선 및 비정규직 해소’(총점 789점, 31.44% 응답)을 각각 다섯 번째, 여섯 번째로 많이 응답해 이 부분에 대한 개선을 요구했다.

▲ 박미향 기자
4대보험 적용 안 되는 비정규직 늘어나 과학기술인 처우 개선에 대한 목소리는 최근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오히려 상황은 더욱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 현장의 목소리다.
정부 출연 연구원의 경우만 해도 최근 신규 채용의 80% 이상이 비정규직으로 채워지고 있으며, 이에 따라 이직률도 60% 이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비정규직 연구원들은 임금 수준이 정규직 임금의 절반 미만인데다, 학연 협력 협약에 의해 연구원에서 일하는 대학원생들은 국민연금, 건강보험, 산재 및 고용보험 등 4대 보험조차 적용받지 못한다.
또 정부 출연 연구원의 경우 공무원으로 분류되지 않아 공무원 연금에 가입할 수 없다.
당연히 퇴직 뒤 연금 혜택도 없다.
그야말로 우리 사회의 기본적인 안전망에서 내몰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밖에도 설문 응답 속에는 과학기술계의 혁신을 위한 다양한 해결 방안들이 많이 쏟아졌다.
설문 응답 순위 11위인 ‘이공계 관련 인력관리책 마련’(총점 226, 9.97% 응답)은 정부의 이공계 인력 관리 대책의 방향이 조금 바뀌어야 함을 촉구하는 목소리다.
과거엔 과학기술입국을 위해 무작정 이공계 대학 정원을 늘려 왔지만, 이제는 그렇게 배출한 인력을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정원 축소를 검토할 단계라는 것이다.
하지만 또 한편에선 지금 쏟아지는 이공계 졸업자들을 흡수하기 위해 연구원 채용 인원을 크게 늘려야 한다는 의견도 함께 담겨 있다.
설문 응답 순위 13위인 ‘정부 출연 연구소 개혁, 연구과제 중심제도(PBS) 개선’(총점 212, 8.73% 응답)도 현재 과학기술계의 논란거리 가운데 하나이다.
정부 출연 연구소의 기능과 역할을 재정립해 중복 연구를 줄이고, 민간 연구기관과의 관계도 조정해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 ‘정부 출연 연구소 개혁’을 주장하는 응답자들의 이야기다.
출연연구원 사기 저하의 주범 PBS 이와 함께 현재 정부 출연 연구소 연구원들의 사기를 저하하는 주범으로 꼽히는 연구과제 중심제도(PBS)도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PBS제도란 정부기관이나 기업이 발주하는 연구과제를 연구원이 직접 수주해 연구를 진행하는 제도다.
이 제도에 따르면 연구원이 평균 1년에 3~4건의 과제를 확보해야 자신의 인건비와 연구비를 충당할 수 있다.
과제비 안의 인건비 비율이 턱없이 낮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참 연구원은 연구과제를 따내는 데 집중하고 비정규직 연구원이 연구하는 경우가 많아 문제가 돼왔다.
과학기술부도 최근 “PBS제도를 일부 필요한 사업에만 활용하고 대부분 폐지할 방침”이라고 밝혀 이미 제도의 문제점에 대해선 폭넓게 인식된 상태이다.
설문 응답 순위 14위인 ‘이공계 공직 진출 확대 및 소양교육 강화’(총점 181, 8.31% 응답)도 눈길을 끄는 답변들 가운데 하나이다.
주로 연구와 관련해 정부 공무원들과 접촉이 높은 과학기술인들이 이공계 연구의 특수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공직자들의 문제는 이공계인들의 공직 진출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제안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과학기술인들도 자신의 전문분야 외의 다양한 인문사회적 소양을 늘려야 한다며 이를 위한 교육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밖에도 현장의 과학기술인들이 내놓은 응답은 다양했다.
특정 분야에만 지원할 것이 아니라 기초과학 분야에도 폭넓게 연구비를 확대해야만 장기적으로 경쟁력이 있다는 의견을 비롯해 기업, 대학, 연구원이 공동으로 연구를 진행하는 산학연 연구에 대한 지원 확대, 연구 관련 행정의 유연화, 연구 경쟁력 확대를 위한 방안 마련 등 시급히 풀어야 할 문제들을 폭넓게 쏟아냈다.
손 대야 할 부분이 한두 군데가 아니라는 것이다.
수술의 범위가 넓을수록 위험은 크기 마련이다.
하지만 위험하다고 수술을 하루 이틀 미루다가는 치료 시기를 영영 놓치는 경우도 많다.
‘황우석 사건’ 이후 우리 과학자들의 해외 논문 기고율이 떨어졌다는 책상물림용 걱정보다는, 기본적인 체질 개선을 먼저 생각하라고 현장의 과학기술인들은 이야기하고 있다.
김윤지/ 객원기자 yzkim@economy21.co.kr
설문조사, 어떻게 진행됐나 이번 설문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이하 과총)와 기술경영경제학회가 과학기술계의 의견 수렴을 통해 과학기술계가 다룰 주요쟁점과 구체적인 과제를 설정하기 위해 실시했다. 2005년 12월26일부터 31일까지 인터넷으로 과총 및 과학기술인연합, 기술경영경제학회의 회원들을 대상으로 인터넷으로 설문을 진행했으며, 모두 722명의 과학기술인들이 설문에 참여했다. 설문 답변은 과학기술 관련 주요 현안 가운데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순서로 5개씩 주관식으로 작성하도록 했다. 중요도에 따라 우선순위 5~1점을 반영해 총점을 산출했으며, 순위도 우선순위가 반영된 총점 기준으로 집계했다. 따라서 응답률은 중복 응답이 반영된 수치다. 설문응답자는 남성이 656명으로 90.86%, 여성이 66명으로 9.14%였으며, 직업별로는 교수 164명(22.71%), 대학원생 및 기타 165명(22.85%), 연구직 341명(47.23%), 정책/기획/조사 52명(7.20%)로 주로 현장 과학자들이 많았다. 연령은 20대 69명(9.56%), 30대 218명(30.19%), 40대 251명(34.76%), 50대 이상 184명(25.48%)으로 20~30대 비율보다는 40대 이상의 비율이 좀 더 높았다.
황우석 사건은 ‘과학기술 윤리문제 종합세트’
이번 설문이 실시된 시점이 지난 연말 ‘황우석 파동’이 진행되던 때라 설문 응답에는 이 사태의 여파가 많이 반영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과학기술 연구윤리지침 제정’ 항목이었다.
이 항목은 총점 1050, 응답자의 52.49%가 답해 전체 항목 가운데 네 번째로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이전의 비슷한 설문 조사에서는 볼 수 없던 현상이었다.
특히 이번 사건이 과학기술윤리가 다루는 모든 범주가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었기 때문에 관심이 크게 늘어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 송성수 부연구위원은 “과학기술윤리가 다루는 범위는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된다”면서 “연구실에서의 객관성 유지, 논문 발표시 저자 표시와 공로 배분, 실험실에서의 권위와 차별, 생명현상을 다루는 과학기술의 윤리,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 등인데, 이번 사건에는 이 다섯 가지가 모두 연관돼 있다”고 말한다.
이 가운데 ‘연구실에서의 객관성 유지’란 연구과정에서 데이터 혹은 이론을 날조, 변조, 표절과 같은 기만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황우석 사건의 핵심 가운데 하나다.
이 항목이 중요해진 것은 이미 1980년대 미국에서도 연구활동에서 경쟁이 극도로 심화되면서 여러 건의 대규모 기만행위 사례가 보고돼 커다란 사회적 물의를 빚은 바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도 이런 행위에 대한 대비책이 필요한 시점이 되었다는 평가다.
또 ‘과학기술자의 사회적 책임’은 공공자금을 이용한 연구에서 연구비를 적절한 용도에 사용했는지의 문제인데, 최근 검찰 조사가 이뤄지고 있는 연구비 유용 부분이 이 분야와 연결돼 있다.
이밖에 ‘논문 발표 시 저자 표시와 공로 배분’에는 연구에 직접 관여하지 않은 박기영 전 청와대 보좌관 등이 명예 저자로 등재된 사실이 연관돼 있고, ‘실험실에서의 권위와 차별’에는 연구원들이 연구 조작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던 현실이 연관돼 있다.
마지막으로 ‘생명현상을 다루는 과학기술의 윤리’ 항목과는 난자 채취 문제가 관련돼 있다.
이렇듯 황우석 사건은 과학기술윤리 문제를 총체적으로 점검할 수 있는 하나의 종합 세트라는 이야기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이런 문제들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과학기술윤리지침의 제정과 함께 과학자들에게 윤리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한다.
송성수 부연구위원은 “일회적인 대응이 되지 않기 위해선 연구윤리에 대한 교육이 병행되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교재의 개발과 교수진의 확보가 시급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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