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8 16:14 (목)
[커버]박승 시대 4년 무엇을 남겼나
[커버]박승 시대 4년 무엇을 남겼나
  • 최중혁 기자
  • 승인 2006.03.13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물가안정.독립성 강화 업적 쌓았지만 중앙은행 정체성 고민은 크게 부족... 한국 경제 전체를 아우르는 '독립성'해법 찾아야 우리나라 중앙은행인 한국은행. 국민들이 한국은행(이하 한은)에 기대하는 것은 무엇일까. 2003년에 개정된 한은법의 내용만을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아마도 ‘물가안정’이 최우선으로 꼽힐 것이다.
그럼 지난 4년 동안 한은을 이끈 박승 총재는 이와 관련해 어떤 평가를 받을까. 적어도 이 부분에서 박승 총재는 박한 점수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게 대체적인 분위기다.
부동산가격이 크게 상승했던 지난 2001년 초, 소비자물가지수는 최고 5%(전년 분기 대비)까지 치솟았지만, 이를 정점으로 이후 하락하기 시작해 박승 총재가 부임한 2002년 4월부터는 급격한 변동 없이 줄곧 2~4% 내에 머물렀다.
근원물가 역시 그의 취임 이후 2004년말까지 줄곧 3% 안팎에 머무르다 지난해 중순에는 2% 아래까지 떨어지는 등 한은이 2004~2006년 중 제시한 물가안정목표인 연평균 2.5~3.5%가 무난히 달성됐다.
이 같은 물가안정이 한국은행의 탁월한 통화정책 운용의 결과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어쨌든 결과만 놓고 본다면 충분히 좋은 점수를 받을 만하다.

▲ 박승 한은 총재
물가안정 달성·독립성 제고 등 업적 평가 게다가 박승 총재에게는 재임기간 중 한은의 독립성을 높였다는 평가도 따라붙는다.
지난 2003년 9월 제7차 개정 한은법에서 한은은 두 가지 중요한 과실을 따냈다.
그 중 하나는 지급결제제도에 대한 총괄적 관리 및 감시기능을 부여받은 것이다.
이는 한은이 금융시스템 안정성 감시자로서의 책무를 법률적으로 부여받았음을 의미한다.
또 하나는 금리를 결정하는 7인의 금융통화위원 가운데 부총재를 당연직 금통위원으로 추가시킨 것이다.
적어도 3명은 ‘확실히’ 한은의 목소리를 낼 수 있게 제도화시킨 셈이다.
개정법에서는 총재와 부총재를 당연직으로 함과 동시에 한은, 재정경제부, 금융감독위원회, 전국은행연합회, 대한상공회의소 등 5단체에서 각 1인을 추천토록 해 한은의 독립성을 높였다.
시장에서의 평가도 대체적으로 후한 편이다.
“말실수가 잦아 시장에 악영향을 끼치긴 했지만 나름의 색깔을 유지했고, 적어도 기존 한은의 오명인 ‘재경부 남대문출장소’ 이미지를 떨치는 데는 어느 정도 기여하지 않았나”는 의견이 다수다.
이밖에 예산 운용에서도 사업비 등 인건비 외에는 재정경제부의 승인을 받지 않도록 한 점, 위변조 방지기능 보강 등 23년 만에 지폐의 도안과 크기를 변경시킨 점, 징검다리식이긴 했지만 사상 처음으로 3차례 금리를 인상한 점 등도 박승 시대의 업적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한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 속에 ‘물가안정’ 외 다른 요소들을 포함시킬 경우 지난 4년에 대한 평가는 사뭇 달라진다.
예컨대 한국금융의 선진화, 특히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중앙은행의 오래된 본연의 책임을 묻는다면? 물론 이와 관련해선 ‘재경부나 금융감독원의 몫’이라는 의견과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의견이 여전히 갈리고 있다.
그럼에도 이 질문은 중앙은행인 한은이 앞으로 ‘통화관리청’으로 전락할 것이냐 말 것이냐를 판가름하는, 곧 비전과 리더십에 관한 질문이기에 한은으로서는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금융시장 안정에 대한 역할을 잣대로 삼을 경우 박승 시대의 업적은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중앙은행의 ‘르네상스기’ 분위기 강해 중앙은행에 대한 시대적 요구는 세월을 거치며 여러 모로 변해 왔다.
한은의 통화정책 역시 비슷한 궤적을 그려왔다.
한은의 통화정책 운용방식은 외환위기 여파를 겪으며 기존 통화량 목표제(monetary targeting)에서 1998년 물가안정 목표제(inflation targeting)로 변경됐다.
문제는 물가안정목표제가 여전히 ‘실험’ 중이라는 사실이다.
이 제도는 1990년 뉴질랜드가 처음으로 도입한 이래 아직 한번도 혹독한 시련을 겪어보지 못했다.
앨런 그린스펀보다 앞서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를 이끌었던 폴 볼커 의장 시절만 해도 인플레이션을 막는 것이 지상 최대 과제였지만, 각국의 개방화가 본격화된 1980년대 후반부터는 수요·공급 측면 모두에서 인플레 압력이 크게 감소했다.
기술발전에 따른 경쟁격화와 제품수명 단축, 개방경제의 진전으로 중국산 값싼 물건들이 범람함에 따라 중앙은행이 그다지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도 전 세계적으로 인플레이션 압력이 완화된 것이다.
이는 박 총재가 최근 제시했던 ‘위장된 물가안정론’과도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이런 현상을 두고 한은 내부에서는 중앙은행의 ‘르네상스기’, ‘부흥기’라고 예찬하는 분위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듯 보인다.
중앙은행의 최대과제라는 물가안정 목표가 별다른 장애물을 만나지 않는 탓이다.

 

▲ 한겨레 이정용
 
그러나 이런 분위기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종원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사실 한은이 잘 해서 물가가 잡히는 게 아니”라며, “물가안정 목표제(인플레이션 타게팅)에만 매달리지 말고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보다 큰 틀에 대한 한은의 새로운 인식이 필요할 때”라고 강조했다.
물가만을 놓고 본다면 ‘태평성대’이지만, 다른 부분, 즉 금융시장의 시스템 위험 변동성 확대(불확실성 증대에 따른 잦은 금융위기 발생), 금융시장 미발달에 따른 금리정책 파급 영향력 축소(통화정책 파급경로의 차단), 통화안정증권 누증에 따른 한은 재정의 대규모 적자(중앙은행의 독립성 저해), 자산가격 거품 등 지난 10여년을 거치면서 새롭게 맞이한 위기 요소에 관해서는 현재 한은이 뚜렷한 비전도, 해답도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자면, 우리나라에서도 중앙은행은 ‘르네상스기’를 구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위기’에 직면해 있는 셈이다.
문제는 현재 한은 내부에서 이런 문제의식이 남긴 목소리를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에 있다.
한마디로 말해 ‘물가안정은 지금까지 잘해 왔고 그밖에 금융시장 안정 부분은 재경부나 금감원의 책임’이라는 시각과 자세가 주류를 이룬다.
은행감독권, 외화자산 운용권 일부까지 빼앗긴 마당에 ‘그런 일은 하고 싶어도 못하고, 또 하고 싶지도 않다’는 분위기가 팽배해 있는 것이다.
‘하고 싶어도 못하고, 하고 싶지도 않다?’ 그럼에도 이 대목에선 분명히 한은의 이중적인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재경부보다 더 보수적이고 더 관료적’이라는 세간의 오랜 평가답게 ‘물가안정을 위한 금리결정권’이라는 협소한 독립만 보장된다면 한국경제 전체는 우리 관할 밖’이라는 사고방식을 읽을 수 있다.
자칫 위기가 닥쳤을 때 책임지는 일은 가급적 회피하되 시장에 대한 영향력은 더 키우거나 적어도 현행만큼은 유지하고 싶어 하는 이중성 말이다.
. 하지만 한은의 이런 움직임은 오히려 한은 자체를 옥죄는 부메랑으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
한은이 ‘물가안정을 위한 금리결정권’에만 안주할 경우 지금처럼 거대한 조직일 필요가 없다는 외부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이다.
실제로 재경부 일각에서 “지금처럼 금리결정만 하는 역할이라면 금통위 산하에 사무국 직원 500명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말이 흘러나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화폐분야는 조폐공사에 맡기고 지역본부는 없애는 등 통화관리청으로 축소시켜도 한국경제는 별 지장을 받지 않는다는 논리다.
결국 지난 4년에 대한 종합적인 평가는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보다 큰 틀에서 박승 총재 시대의 한은 집행부가 어떤 노력을 기울였는지에 대한 판단과 맞물릴 수밖에 없다.
박승 총재 재임 기간 중 대표적인 금융위기 쟁점사항이었던 ‘가계부채(카드사태)’와 ‘자산가격 거품논쟁’을 예로 살펴보자. 재경부는 98년 중반부터 2001년 말까지 내수진작 기조 아래 특별소비세 폐지, 신용카드 활성화 등의 정책을 양산했다.
이에 따라 건설부문 과열, 가계부채 급증, 신용불량자 양산 등 부작용이 가시화됐지만 이를 견제해야 할 한은은 문제를 분명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상반기 중 가계신용동향’(1999.9.14), ‘최근의 은행가계대출 동향’(2000.1.27)) ‘문제없다’는 낙관적 전망을 2001년 말까지 계속 유지했다.
2002년 4월 업무를 시작한 박 총재도 취임 직후 은행장과의 간담회에서 “현재로선 큰 문제가 없음”을 과도하게 강조한 바 있다.
2002년 5월 들어 콜금리를 올리며 처음으로 본격적인 대응에 나섰지만 그해 말까지 가계대출 증가세 둔화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부실화 가능성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는 결국 2003년 SK글로벌 분식회계에 따른 금융위기 발생 당시 2조원의 단기유동성 지원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대해 김홍범 경상대 교수는 2003년 말 한 토론회에서 “한국은행은 공공기관들 가운데 가장 다양한 정보원을 통해 가계부채 급증 등 문제를 심층적으로 감시·분석하고 종합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위치에 있었으나 자신의 정보우위를 활용해 공공기관간 협력 및 견제를 통한 올바른 대응을 이끌어내는 데 거의 기여하지 못했다”고 평가한 바 있다.
그는 또 “광범위한 금융통계 및 정보를 직접 다루고 양질의 대규모 전문인력을 보유한 한국은행이 정보수집 및 분석 면에서 민간보다 뒤질 것으로 믿기는 어렵다”며 한은 내부의 정보흐름 장애의 존재 가능성을 강하게 의심하기도 했다.
민간부문에서는 이미 2001년 4월에 가계부채 급증에 대해 적극적인 우려를 제기했음을 상기시키는 말이다.
카드사태·부동산 가격 급등에도 소극적 행보

▲ 한겨레 이종찬
한은의 뒤늦은 행보는 부동산가격 급등이라는 ‘자산가격 거품 논쟁’에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났다.
한은이 정부의 내수확장 기조에 동조해 수차례 금리를 낮추면서 시중에 자금이 넘쳐났지만 이 신용이 실물경제로 옮아가지는 않았다.
돈이 순환하지 않고 특정 부문으로 몰린 것이다.
이에 따라 ‘저금리가 지속되는데 왜 설비투자는 증가하지 않느냐’며 ‘자본파업’이라는 말까지 생겨났지만, 한은은 이 같은 패러다임 변동 상황에 대해 원인과 해결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기보다는 ‘물가안정목표제팅’만을 부여잡는 모습을 보여줬다.
한국경제 전체를 신경 쓰는 차원에서의 독립이 아닌, 금리결정에서만의 독립을 추구한 것이다.
한은이 이렇듯 중요 금융 쟁점사항들에 대해 무개입 혹은 소극적 개입을 견지해 온 것은 ‘물가안정목표제을 통한 물가안정’이라는 현행법의 테두리 안에 안주하려는 경향이 크게 작용했음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거기에 ‘선제대응해봐야 책임질 일만 많아지고 골치만 아프지 실적으로 평가받지는 못한다’는 관료주의까지 더해져 조직의 활동성은 더욱 위축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쨌든 지난 4년 동안 한은을 이끌어온 박승 총재의 임기는 이달 말로 끝이 난다.
연임될 수도 있지만 현재 그 가능성은 희박한 편이다.
박 총재의 공과를 이어받을 신임 총재에 대해 하마평이 무수하지만 누가 수장으로 오든지 간에 한은이 새롭게 직면한 세 가지 문제, 즉 조직혁신(인사적체), 대규모 적자, 통화정책 수단 개발 및 인프라 구축 등은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조직혁신은 한은이 맞닥뜨린 첫 번째 난제다.
현재 한은의 인사적체는 심각한 수준으로 최근에는 특정 직원들의 경우(52년생) 아예 1급 승진이 원천봉쇄됐다.
이런 상태에서 부하 직원들의 자발적 노력을 기대하기는 매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한은이 지난해 사상 최대 적자를 기록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올해에는 더 큰 적자를 볼 가능성까지 제기되는 상황에서 남은 3조8천억여원의 적립금마저 거덜난다면 한은은 정부로부터 재정보조를 받아야 한다.
재정보조 상황 아래에서 중앙은행의 독립성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
결국 신임 총재는 박 총재가 물려준 ‘금리독립성 강화’라는 공( 功)과 대규모 적자에 따른 독립성 위협이라는 과(過)라는 유산을 동시에 물려받은 셈이다.
감사원 정책감사 결과 공개 미뤄

▲ 한겨레 제공
이와 함께 가장 커다란 숙제, 즉 통화정책 파급효과의 유효성을 높이는 일은 한은의 위상정립과 함께 매우 중차대한 문제가 될 것이다.
현재의 ‘금리결정 독립성’에만 안주한다면 얘기가 달라지겠지만 그렇지 않고 국민연금 문제, 감세 공방, 양극화 문제, 금산법 논쟁 등 주요 금융문제가 등장했을 때 한은이 적극적으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을 경우에는 현 시스템의 대폭적인 수술은 불가피하다.
또한 통화정책 파급경로에 이상징후가 발견됐을 때 중앙은행으로서 미·거시적인 제 역할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재경부, 금감위(원)과의 협조·견제를 바탕으로 적극적인 정책수단 개발 및 인프라 구축에 더욱 힘을 써야 하는 과제도 안고 있다.
실제로 감사원은 이런 문제의식 아래 한은의 통화 및 외환정책의 문제점을 살펴보기 위해 지난해 중순 5년 만에 정책감사를 실시한 바 있다.
박승 총재의 임기를 고려했음인지 아직 ‘처분요구서’는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다.
한은 사람들은 외부인들이 자신의 직장을 ‘신도 다니고 싶어 하는 직장’, ‘신도 떨어지는 직장’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이 말은 한편으로는 한은의 자부심을 표현하는 말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편안한 직장’이라는 말로 해석될 수도 있다.
우리나라 중앙은행 한은의 진정한 자부심을 위해선, 변화가 필요하다.
지난 4년은 한은이 별다른 변화 노력을 보여주지 못했음을, 따라서 분명한 과제가 한은 앞에 높여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최중혁 기자 tjp2010@economy21.co.kr .
개정 한은법엔 어떤 내용이 담겨 있나
1998년 4월부터 시행된 제6차 한은법 개정에서 금리를 결정하는 금융통화위원회 의장이 재정경제부 장관에서 한국은행 총재로 바뀌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정부의 영향력 아래 있는 민간단체에서 금통위원을 추천하고 은행감독 기능이 금융감독위원회로 넘어감에 따라 한은의 독립성과 역할은 여전히 한계를 지니는 것이었다.
이에 2004년 1월부터 시행된 제7차 개정에서는 △ 한은 부총재의 금통위원 당연직 참여(증권업협회 추천 폐지) △ 지급결제제도에 대한 책임 및 감시기능 부여 △ 연 단위에서 중기 목표제로 물가안정목표제 이행 △ 급여성 경비를 제외한 한은 예산의 재경부의 승인 폐지 △ 금융기관 공동검사 요구제 보완 등의 진일보된 내용이 포함됐다.
이에 따라 금통위 회의에서 한은의 목소리 비중이 높아지고 금융국제화, 전자화 등으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지급결제 제도의 관리기능도 개선됐다.
아울러 1년 단위로 물가목표를 설정할 경우에는 무리한 통화정책 운용 가능성이 컸지만, 이제 중기로 바뀜에 따라 운용의 폭을 보다 넓혔다.
금융기관 공동검사 요구제도 기존 ‘요구에 응해야 한다’에서 ‘지체 없이 응해야 한다’로 개정됐다.
통화정책 운용목표(operating target)의 역사적 변천
각국 중앙은행은 ‘국민경제 안정’이라는 최종목표 달성을 위해 금리, 통화량, 환율 등을 중간목표로 삼아 통화정책을 펼친다.
운용목표란 설정된 중간목표의 달성을 위해 콜금리, 지준총량, 물가 등 중앙은행이 직접 영향을 미치는 경제변수를 말한다.
미국 등 주요 자본주의 국가들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석유파동 등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됨에 따라 통화량을 주요 운용목표로 삼았지만, 1980년대 들어서는 기술혁신 등으로 통화량 변동이 매우 심해졌고 물가와의 관계도 모호해짐에 따라 통화량 목표제를 포기하게 된다.
대신 1990년대에 들어서는 통화량이나 환율 등 명시적 중간목표 없이 사전에 설정된 물가목표를 직접 달성하고자 하는 물가안정 목표제(인플레이션 타게팅)이 대안으로 도입됐다.
1990년 3월 뉴질랜드가 최초 도입한 이래 영국, 캐나다, 호주, 스웨덴, 멕시코 등이 연이어 채택했으며 우리나라도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도입했다.
물가안정 목표제는 발달된 금융시장을 바탕으로 중앙은행의 신뢰성 확보가 성공의 핵심관건이기 때문에 중앙은행의 독립성 강화와 통화정책의 투명성이 전제조건으로 제시된다.
또한 물가조사, 장단기 금리격차 등 통화정책 파급경로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는 예측능력도 아울러 요구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차 석유파동 직후인 1975년부터 통화량 목표제(통화 타게팅)를 도입했고 인플레가 어느 정도 진정된 1982년 10월에는 운용목표를 비차입지준에서 차입지준으로 변경해 금리중심의 통화정책을 채택했다.
1993년 7월에는 통화량목표제 포기를 공식 선언했고, 현재는 페더럴펀드금리를 연방준비제도이사회가 운용목표로 사용하고 있다.
재임 기간 중에 생긴 몇 가지 설화(舌禍)
박승 총재는 한때 법으로 보장된 4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총재직에서 물러날 뻔했다.
지난해 6월 극히 이례적으로 여야 의원들로부터 자진사퇴 압력을 받은 것이다.
문제는 ‘가벼운 입’이었다.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의 외환보유액이 더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시장에 전달되자 원/달러 환율이 급락했던 것이다.
이를 만회하기 위해 한은은 10억달러를 사들여야 했다.
이에 앞서 “투자대상 통화를 다변화하겠다”는 국회 보고발언이 달러 매도 방침으로 외환시장에 전달되면서 원/달러 환율이 1천원대 아래로 급락하는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설화가 생길 때마다 아래 임직원들은 국회며 청와대며 뛰어다녀야 했다는 후문이다.
이 때문에 박승 총재의 발언과 관련된 신조어도 많다.
‘BOK(한은) 쇼크’는 비교적 점잖은 신조어. 도덕적 해이(moral hazard)에 빗댄 ‘오럴해저드’(oral hazard)라는 말까지 생겼고, 이러한 설화가 몇 차례 반복되자 ‘박승자박’이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이밖에 부동산 경기나 금리발언과 관련해 일관성 없는 발언으로 시장을 혼란스럽게 했다는 비판도 재임기간 중 늘 따라다녔다.
시장에서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분위기가 팽배했을 때는 ‘금리정책 무효론’을 주장하기도 해 한은의 존립근거를 스스로 훼손시키기도 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