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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츨총제 폐지 발언의 끝은?
[이슈추적]봇물 터지듯 쏟아지는 츨총제 폐지 발언의 끝은?
  • 최중혁 기자
  • 승인 2006.03.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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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총제 폐지를 언급하는 전 현직 경제관료들(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강봉균 열린우리당 정책위의장, 윤증현 금융감독위원장, 한덕수 경제부총리, 박승 한국은행 총재)
첫 포문은 열린우리당의 강봉균 정책위 의장이 열었다.
그는 지난 9일 한 라디오의 아침 시사 프로그램에 나와 “출총제의 원래 취지는 기업이 규모를 키우는 것을 막자는 게 아니라 투명성과 소유·지배구조가 제대로 돼 있는지에 초점을 맞춘 것”이라며 “기업들의 자율규제 방식으로 전환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나타냈다.
같은 날 한덕수 경제부총리 역시 정례 기자간담회 후 오찬에서 “출총제를 신중히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피력했다.
다만 “대기업 지배구조가 제대로 작동하면”이라는 단서는 달았다.
이 같은 릴레이 발언은 퇴임을 앞둔 박승 한은 총재로까지 이어졌다.
박 총재는 지난 15일 한 강연에서 “재벌들이 부채에 의존해 양적으로 팽창하던 시기에는 출총제나 금산분리 원칙(금융과 산업의 분리원칙)이 필요했지만 기업투자가 절실한 지금 시점에서는 이 같은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런 제도들이 외국 자본에 비해 국내 자본을 역차별하는 효과가 있다”는 우려도 덧붙였다.
이 밖에 윤증현 금감위원장은 재직 기간에 재벌규제 완화 필요성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고, 강철규 전 공정거래위원장도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 원칙을 언급하면서도 출총제 폐지 가능성 또한 늘 열어놓은 바 있다.
국민의 정부에 이어 참여정부에서도 재벌정책의 핵심 역할을 해온 출총제에 대해 청와대를 제외한 경제정책 라인(경제부총리-금감위원장-한은총재)에서 일관된 목소리가 나오는 이상 출총제 폐지는 시간 문제인 듯 보인다.
다만 권오승 신임 공정거래위원장은 “순환출자의 폐해를 막을 대안을 찾아야 하지만 대안이 없다면 현행 출총제가 필요하다”는 원칙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그럼에도 ‘제한적 유지’라는 강철규 전 위원장의 입장과는 별반 다르지 않는 대목이다.
이런 움직임에 대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열린우리당이 경제개혁을 포기하고 재벌을 비호하는 당으로 전락했음을 반증한다”며 반대 목소리를 드높였지만 외환위기 직후의 시퍼런 서슬에는 훨씬 못 미치는 분위기다.
출총제는 자산 6조원 이상의 기업집단이 다른 회사에 출자할 수 있는 총액을 순자산의 25% 이내로 제한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는 97년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재벌 기업들의 ‘문어발 경영’이 지적됨에 따라 우리나라의 대표적 재벌정책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그러나 출총제를 둘러싼 최근의 발언은 단순히 재벌정책의 향방에만 초점이 맞춰지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선 패러다임 전환에 가까운 시장 상황의 변동이 있다.
출총제가 만들어질 당시만 해도 ‘기업 구조조정’이 최대 화두였지만 지금은 ‘투자활성화’로 바뀌었다.
기업들은 지난 8년 동안 구조조정기를 거치며 혹독한 시련을 거쳤지만 살아남은 기업들은 경쟁력을 갖춰 수익창출 욕구가 커졌다.
그러나 금융부문은 여전히 외환위기 때의 ‘안정 지상주의’ 패러다임에 머물러 가계대출에만 집중하는 등 기업에 피(자금)를 공급하는 본연의 임무를 소홀히해 왔다.
최근 정책당국이 내놓은 자금시장통합법도 궁극적으로는 이 같은 산업과 금융의 불균형 상태를 바로잡으려는 노력의 일환에서 나온 것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뉴브리지캐피탈의 제일은행 매각, 골드만삭스의 진로 매각, 론스타의 외환은행 매각 등의 과정에서 불거진 ‘내국인 역차별론’과 SK, KT&G 등의 경영권 방어 과정, 워크아웃 기업들의 주인찾기 등도 출총제 폐지 움직임에 큰 압력으로 작용했음은 물론이다.
출총제가 기업지배구조 개선 본연의 임무보다 기업투자 저해, 외국인의 경영권 위협 등 부작용에 더 노출됐다는 것이 주된 논거이다.
물론 기업지배구조의 합리화가 아직 덜 진행된 탓에 멀쩡한 기업이 계열사 부실로 망하고 소액주주들이 그 피해를 고스란히 입고 있다는 출총제 유지 여론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과거보다는 강도가 많이 약해진 상태이다.
오는 20일 열린우리당 수뇌부와 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들은 모임을 갖고 경제현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현 상태에서 출총제 폐지를 외치는 정책 당국자들의 본심이 이 같은 흐름을 인식하고 불가피한 결단을 내린 것인지의 여부는 좀 더 지켜봐야 하지만, 출총제 폐지 분위기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조성된 만큼 재계는 이번 기회를 최대한 활용할 것이 분명해보인다.
최중혁 기자 tjp2010@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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