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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전기,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
[특집]전기, 경제를 움직이는 원동력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6.03.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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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력을 사고파는 '시장'을 찾아
△한국전력거래소의 중앙급전소 모습 ⓒ이코노미21 박미향 기자 한국전력거래소(KPX)의 탄생은 지난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된 전력산업구조 개편과 맞물려 있다. 우리나라는 오랫동안 한국전력이 발전에서부터 송전, 배전, 판매까지 모두 책임지는 독점체제를 유지해왔다. 여기에 ‘시장’을 도입해 효율성을 높이자는 것이 개편안의 핵심이다. 이에따라 한국전력의 발전부문이 한국수력원자력, 한국남동발전, 한국중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동서발전 등 6개의 자회사로 떨어져나갔으며, KPX가 설립됐다. 초기의 전력 거래는 이들 6개 발전회사와 한국전력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에 민간 발전사업자가 잇따라 뛰어들면서 지금은 시장 참가자가 66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여전히 발전회사로부터 전기를 구매해 소비자에게 판매하는 곳은 한국전력 한곳뿐이다. 쉽게 말해 발전 분야에서만 경쟁체제가 도입된 것이다. 지난해 KPX에서는 3389억kWh, 금액으로 따져 17조2809억원어치의 전력이 거래됐다. 기업별로는 원자력발전소와 수력발전소를 소유하고 있는 한국수력원자력의 거래비중이 41.8%로 압도적으로 높았다. 전력거래가 실제로 이루어지는 방식은 흥미롭지만 다소 복잡하다. 우선 발전회사들은 하루 날 ??운전가능 용량을 입찰한다. 그러면 KPX에서 이를 받아 각 시간대별 발전계획을 짜게 된다. 이때 KPX는 다음 날 예상되는 전력수요량과 발전비용, 계통 등 3가지를 요소를 고려한다. 먼저 예상전력 수요에 맞춰 발전비용이 싼 것부터 선택한다. 발전비용을 조금이라도 낮춰 전체적인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하지만 그렇다고 ‘계통’에 대한 고려까지 무시할 수는 없다. 폐쇄적인 전력산업에 '시장'도입해 효율성 높여 발전 연료만 놓고 보면 가장 저렴한 것은 원자력발전이다. 최현석 KPX 기획예산팀 과장은 “평균 발전 원가가 kWh당 50원인데 원자력은 7원으로 훨씬 싸다”며 “처음 지을 때 2~3조원의 투자가 필요하지만 연료비 자체는 가장 싼 편”이라고 했다. 경제성으로 본다면 최대한 원자력 발전소로만 돌리는 게 가장 이득인 셈이다. 하지만 제약조건이 따른다. 대부분의 원자력 발전소가 해안가에 위치한 반면, 전력 수요의 40%가 수도권에 집중돼 있는 것이다. 이는 원자력 발전소에서 전력 소비지인 수도권까지 전력을 끌어와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송전선에 과부하가 걸리거나 병목현상이 발생할 경우 큰 사건이 빚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최 과장은 “4차선 도로에 8차선만큼의 차량이 몰리지 않도록 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다. 입찰에 참여한 발전회사들은 KPX가 수립한 발전계획에 맞춰 다음 날 가동에 들어간다. 이 모든 과정을 KPX가 통제한다. KPX가 시장관리자(MO)와 계통관리자(SO)의 역할을 함께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입찰을 통해 발전에 참여한 업체들은 해당 시간대에 발전비용이 가장 높은 곳을 기준(한계가격)으로 26일 후 거래대금을 지급받게 된다. 하지만 이런 원칙을 그대로 적용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 이를테면, 일정한 시간대에 원자력과 석탄, 중유, LNG 발전소가 함께 가동될 경우, 연료비가 가장 비싼 LNG 발전소의 발전비용이 한계가격이 되고, 나머지 발전소들은 자동적으로 이 가격의 적용을 받게 된다. 연료비가 싼 원자력 발전소 입장에서는 엄청난 이득을 챙기게 되는 셈이다. 이 때문에 전력시장은 원자력과 석탄 등의 기저시장과 그밖의 일반시장으로 이원화돼 있다. 마찬가지로 가격 역시 일반시장의 계통한계가격(SMP)과 기저시장의 기저한계가격(BLMP) 등 2개가 존재한다. 하지만 좀더 엄밀하게 말하면 전력의 시장가격은 ‘한계가격+용량가격’으로 결정된다. 한계가격이 순수하게 발전에 들어가는 연료비, 즉 변동비만을 계산한 것이라면 용량가격은 발전소 건설에 들어간 설비투자 비용을 반영해주는 것이다. 용량가격은 주기적으로 별도의 위원회를 통해 산정된다. 발전회사 입장에서 수익을 극대화하는 길은 가능하면 발전에 많이 참여하는 길밖에 없다. 그러자면 철저한 사전예방정비가 필수적이다. △한국전력 별관에 있는 한국전력거래소명 ⓒ이코노미21 박미향 기자
최 과장은 “전력산업에 시장거래를 도입하면 발전비용의 거품이 빠지고, 효율성이 높아진다”며 “이미 그런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
한국전력에서 분리된 발전자회사 가운데 누구나 적자를 예상하던 곳이 있었는데, 의외로 흑자를 냈다는 것이다.
바로 경쟁을 통한 효율성 제고의 결과라는 해석이다.
최 과장은 전력거래 시장 참가가가 크게 늘어난 것도 중요한 성과로 꼽았다.
최 과장은 “발전사업에 관심을 갖는 곳이 많아지고 있다”며 “지난해에만 10여 개 회원사가 새로 전력거래소에 가입했다”고 말했다.
KPX 회원에 가입하려면 120만원의 연회비와 kWh당 0.07원의 거래수수료를 내야 한다.
전력수요를 통한 경제성장률 예측 정확성 높아 한국전력 본사 별관 5층에 위치한 KPX 중앙급전소는 전국의 전력공급 상황을 통제하는 곳으로 출입이 엄격히 통제되는 국가 보안시설이다.
한국전력이든 발전회사든 모두 중앙급전소의 지시를 따라야 한다.
이곳에서는 전국에 흩어져 있는 모든 발전기의 정보를 실시간으로 읽어오고 4초마다 발전 목표값을 내려보낸다.
송전망의 경우는 2초마다 상황이 확인된다.
또한 중앙급전소는 전력의 품질을 관리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
전력의 품질은 다름 아닌 전력 주파수의 안정성이다.
전력은 일반상품과 달리 저장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공급과 수요가 동시에 이루어져야만 한다.
수요과 공급의 균형이 무너지면 전력 주파수가 불안정해지고, 이는 반도체 공장처럼 정밀작업이 필요한 곳에는 치명적인 악영향을 줄 수있다.
전경희 급전운영팀 과장은 “60Hz가 기준선”이라면 “주파수가 이보다 떨어지면 발전기를 더 돌리고, 올라가면 가동을 줄이게 된다”고 설명했다.
중앙급전소에서는 6명이 한 조를 이뤄 24시간 근무가 이루어진다.
이곳에서 근무하다 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생활 유형을 어느 정도 읽어낼 수 있게 된다.
전 과장은 “아침 7~9시면 전력 부하가 급증한다”며 “그러면 이제 사람들이 일어나 밥을 짓는 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전 과장은 가장 흥미롭던 경험으로 2002년 한일월드컵을 꼽았다.
“한국전이 있는 시간이면 전력수요가 500만kWh씩 떨어졌어요. 공장에서 기계를 멈추고 다들 TV 앞에 앉은 겁니다.
보통은 변동폭이 50만~100만kWh 정도인데 엄청난 변화죠. 월드컵이 처음 있는 일이라 어느 정도 줄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어요. 재미있는 건 전반전이 끝나고 쉬는 시간이 되면 순간적으로 부하가 100만kWh 급증했다는 거죠. 아마 커피를 마시려고 커피포트를 켠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다음부터는 전반전이 끝나기 전에 발전기를 대기시켰다 켜곤 했어요.” 이상철 수요예측팀장과 박종인 과장은 이러한 전력수요와 국민생활의 연관관계를 보다 정교하게 다듬어낸 경우에 속한다.
이들은 전력수요를 이용한 경제성장률 전망 모델을 세계 최초로 개발해냈다.
이상철 팀장은 모델 개발 과정을 이렇게 설명했다.
“모든 경제활동은 결국 전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어요. 전기가 경제를 움직이는 기본 원동력이기 때문에 이건 누구나 직관적으로 알 수 있습니다.
수요예측팀의 일은 미래의 전력수요를 전망하는 것인데, 오차율이 1% 미만일 만큼 비교적 정확했어요. 이런 기술을 응용하면 경제성장률을 예측하는 것도 충분히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가졌지만, 실력이 짧아 엄두를 못냈죠.” 이 팀장과 박 과장은 1999년부터 집중적으로 ‘공부’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오랜 노력 끝에 나름대로 모델을 만드는 데는 성공했지만 학술적 검증을 받는 게 문제였다.
이 팀장은 “전력 하는 사람들이 무슨 경제성장률 전망이냐는 비난이 나올 게 뻔했다”며 “둘다 학사출신이라는 것도 걸렸다”고 했다.
그래서 이들은 2002년 한국경제학회에서 내는 학술지 <경제학연구>에 논문을 내는 모험을 택했다.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전력수요을 이용한 경제성장률 전망은 기존의 방식에 비해 상당한 장점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속보성에서 뛰어나다.
한국은행에서 발표하는 경제성장률 통계는 1~2개월 후에나 결과가 나오지만, 이들의 방식은 거의 실시간으로 결과를 알 수 있다.
그만큼 경제상황에 대한 신속한 진단이 가능한 것이다.
지난 몇 년 동안의 결과만 본다면, 정확성 측면에서도 KDI 등 다른 전문연구기관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
지난해 1월, 이들은 2005년 경제성장률을 4.2%로 전망했지만 실제 결과는 4.0%(한국은행 추정치)였다.
3.8%~4.6%까지로 전망한 다른 연구기관들에 비해 오히려 정확도가 높았다.
이들은 올해 경제성장률을 4.9%로 전망하고 있다.
지난해보다 경기가 다소 좋아질 것이라는 좋은 소식인 셈이다.
이 팀장은 “이제는 전력량이 경제현황을 진단하는 데 유용한 지표가 된다는 인식이 많이 확산됐다”며 “경제전망을 낼 때마다 한국은행과 다른 연구기관에서 문의가 많이 온다”고 했다.
이들은 자신들의 연구성과를 국제적인 확술지에 발표할 계획도 갖고 있다.
최근 전력거래시장의 가장 큰 특징은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자들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에만 110개 업체가 신재생에너지 발전사업에 뛰어들었다.
곽왕신 신재생에너지팀 과장은 정부의 신재생에너지 활성화 정책을 가장 큰 요인으로 꼽았다.
KPX 신재생에너지팀은 정부와 지자체에 들어온 인허가 신청의 경제성과 타당성을 검토해주는 역할을 한다.
현재 정부는 태양광, 풍력, 소수력, 매립지가스 등 신재생에너지를 이용해 생산한 전력은 훨씬 높은 가격에 사고 있다.
이를 통해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활성화하고 기술개발을 촉진한다는 것이다.
태양광 발전의 경우 kWh당 716.4원의 기준가격이 적용된다.
같은팀 이성무 과장은 “외국의 경우도 신재생에너지 분야는 정부의 주도로 발전하고 있다”며 “미국에서는 신재생에너지 사업의 경제성을 평가할 때 일자리 창출 효과도 함께 고려한다”고 했다.
물론 아직은 전력거래에서 신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낮은 수준이다.
비교적 덩치가 큰 풍력의 경우도 지난해 전체 거래금액이 66억원에 불과했을 정도다.
하지만 신규 사업자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낙관적이다.
이 과장은 “최근 신규사업자가 크게 증가하고 있는 것을 분명하지만 정부의 목표치에 맞추려면 이보다 훨씬 더 늘어나야 한다”고 했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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