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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유럽에서 벌어지는 차등의결권 논란
미국.유럽에서 벌어지는 차등의결권 논란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6.04.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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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 경영으로 기업가치 높여" vs "무능한 경영자에 '영구권력' 부여" “공개기업으로 전환하면서 우리는 외부인이 구글을 인수하거나 영향을 미치는 것을 더 어렵게 하는 기업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또한 이 구조는 경영진들이 장기적인이고 혁신적인 접근방식을 따라가는 것을 더 쉽게 만들 것입니다.
(...) 학문적 연구들은 순수한 경제적 관점에서 차등의결권 구조가 기업 주가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모든 주식은 경제적 권리는 동일하며 다만 의결권만 차이가 날 뿐입니다.
” 지난 2004년 기업 공개를 하며 투자자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구글의 공동창업자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자신들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구글이 주식을 1주 1표를 갖는 A주와 1주 10표를 갖는 B주로 나누어 발행하기로 한 결정은 많은 투자자들의 비난을 불러왔지만, 편지에서는 ‘그렇다면 구글 주식을 사지 마라’는 강한 자신감이 베어난다.
△EPA 제공
구글, "차등의결권 구조 싫으면 사지 마라" 구글을 제외하고도 미국에도 차등의결권 제도를 갖고 있는 기업들이 적지 않다.
워런 버펫이 소유한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는 그 가운데서 상당히 특이한 경우에 속한다.
버크셔 해서웨이의 A주와 B주는 의결권이 200배나 차이가 난다.
또한 구글과는 달리 배당에서도 30배의 차이가 있다.
미국 자동차 업계의 거인 포드와 GM을 비교하는 것도 흥미롭다.
포드는 포드가문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통해 5%의 지분으로 40%의 의결권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GM은 일반적인 미국 기업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최근 미국 자동차 회사들은 시장 점유율의 급격한 하락과 비용상승으로 고통을 받고 있다.
포드와 GM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다.
GM은 ‘기업 사냥꾼’ 커크 커코리안의 표적이 됐지만, 포드는 계속 안정적으로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바로 차등의결권이 이러한 차이를 만든 것이다.
하지만 최근의 하버드 대학과 와튼스쿨의 공통연구는 일반적으로 대주주와 경영진 등 내부자들의 의결권 비중이 높아질 수록 주주 수익은 낮아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포드처럼 내부자들이 40%의 의결권을 갖고 있는 경우, 차등의결권 제도가 없는 비슷한 다른 기업에 비해 15% 낮은 수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물론 구글이나 버크셔 해서웨이는 이러한 통계에서는 예외가 될 것이다.
미국은 차등의결권 제도를 허용하고 있다.
법적 규정이 없어 기업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하면 그만이다.
뉴욕증권거래소 역시 이를 허용한다.
다만, 일단 상장하고 난 이후에는 의결권을 낮추나, 더 높은 의결권을 가진 새로운 주식을 발행할 수는 없다.
차등의결권은 미국에서도 상당한 논란거리다.
옹호자들은 차등의결권을 통해 경영진들이 다음 분기의 성과 초점을 맞추는 월가의 단기적인 관점에 영향을 받지 않고 장기적인 시야를 유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또한 의결권이 높은 B주는 거래되지 않기 때문에, 기업이 어려운 시기를 버틸 수 있는 충성스런 투자자들을 확보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준다.
하지만 같은 이유에서 차등의결권 제도는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우선 기존 주주의 의결권을 낮추는 것은 부공정하다는 것이다.
차등의결권 제도는 ‘열등’ 주주를 만들어내게 되고, 선택된 소수에게 기업 지배권을 넘겨주게 된다.
이는 이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재무적 리스크를 떠넘기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되면 창업자 가문이나 경영진들은 그들의 능력이나 성과에 관계없이 자신들의 위치를 ‘영원히’ 유지할 수 있게 된다.
세계 3위의 미디어 재벌 콘라드 블랙은 차등의결권 제도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경우다.
전 세계 수많은 언론사를 소유한 홀링거 인터내셔널의 창업자이자 대주주인 그는 30%의 지분으로 73%의 의결권을 행사해왔다.
콘라드는 지난 2005년 11월 무려 935억원의 공금을 빼돌린 혐의로 기소되 미국 시카고 법정에 서는 운명을 맞았다.
그동안 콘라드는 회사를 자신의 사금고처럼 이용해온 것으로 드러나 충격을 줬다.
홀링거의 이사회는 모두 콘라드의 친구들도 구성돼 전혀 견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홀링거의 일반 주주들은 과도한 보수나 인수합병, 독약처방의 도입 등 어떤 결정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는 힘을 갖지 못했다.
미국보다 훨씬 많은 기업들이 차등의결권 제도를 갖고 있는 유럽에서는 이를 축소하거나 폐지하려는 노력이 유럽연합(EU)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아일랜드 재무장관을 지낸 찰리 맥그리비 EU 역내시장담당 집행위원이 주도하고 있다.
그는 ‘1주 1표 원칙’을 EU 지역에서 회사법을 현대화하고 기업지배구조를 개선하는 행동지침의 핵심 요소로 보고 있다.
한 조사결과에 의하면 에릭슨, BP, 까르푸, 토탈 등 FTSE 유로퍼스트 350 지수에 속하는 유럽의 최대 기업들 가운데 3분의 1이 ‘1주 1표 원칙’에 어긋난 다양한 형태의 차등의결권 제도를 갖고 있다.
EU는 아주 다양한 지배구소와 통제 수단의 존재는 진정한 유럽 단일 시장의 형성이 장애물이 된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얼마나 많은 나라들의 EU의 움직임에 동조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차등의결권 제도를 갖고 있는 기업들은 ‘1주 1표 원칙’이 더 우수하다는 증거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이들은 오히려 장기적인 목표를 추구하는 데는 차등의결권 제도가 더 적합하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비판자들은 차등의결권이 일반 주주들이 소유주로서의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것을 막고 있을뿐이라고 지적한다.
EU, '1주 1표 원칙' 강화 주도 정치적인 분위기도 ‘1주 1표 원칙’에는 부정적인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최근 주목할 만한 것은 독일증권거래소의 움직임이다.
지난해 헤지펀드들이 런던증권거래소의 인수를 무산시킨 이후, 독일증권거래소는 헤지펀드들의 공격을 방어하기 위해 2년 이상 주식을 보유한 경우 2표의 의결권을 주는 프랑스의 차등의결권 제도를 도입하는 것을 고려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에서는 CAC 40 기업 가운데 23곳이 이러한 제도를 정관에 규정하고 있다.
더구나 이를 폐지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나타나고 있지 않다.
지난해 알카텔, 비방디, 소시에테 제네럴 등의 주주총회에서 차등의결권 제도의 폐지가 제안되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기존 대주주와 경영진이 훨씬 많은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상황에서는 이러한 제안이 현실적으로 통과되기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실제로 차등의결권의 혜택을 보고 있는 대주주 가문과 그 관계자들이 대거 반대표를 던질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또한 ‘1주 1표 원칙’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것을 경제적학적으로 정당화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반면, 스웨덴에서는 차등의결권을 축소하거나 폐지하는 사례들이 조금씩 나오고 있다.
에릭슨이 1대 1천이던 의결권 차이를 1대 10으로 축소한데 이어, 최근에는 볼보가 매년 일정 규모의 A주(1주 10표)를 B주(1주 1표)로 전환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볼보는 이러한 주식 통합이 주주들의 결정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어쨌든 비록 느린 속도이기는 하지만 꾸준한 변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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