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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투자은행 시대가 열린다1]투자은행 육성은 21세기 ‘금융주권’ 찾기?
[기획연재/투자은행 시대가 열린다1]투자은행 육성은 21세기 ‘금융주권’ 찾기?
  • 최중혁 기자
  • 승인 2006.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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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싣는 순서> 1. 프롤로그/투자은행 육성은 21세기 ‘금융주권’ 찾기인가? 2. 영국과 미국이 보여주는 규제완화의 공과 3. '한국판' 골드만삭스가 아니라 '한국형' 투자은행을 말하자 4. 관(官)은 치(治)할 것인가, 조(助)할 것인가 5. 국내 금융기관들의 성공 전략 엿보기 6. 에필로그/좌담회
'외국자본 대항마 육성'보다는 새로운 금융체계에 대한 효과적인 지원체계 마련에 무게둬야 국내에서 자본시장통합법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외국자본 대항론’도 그 중 하나. 최근 론스타 등 투기성 외국자본들의 행태로 국내에 반외자 정서가 높아지면서 토종자본을 키워야 한다는 논리가 설득력을 높여왔다.
이는 곧 한국경제가 외환위기 당시 1달러도 아쉽던 시기에서 벗어나 혹독한 구조조정 끝에 정상궤도로 들어서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다소 반가운 측면도 있다.
이렇듯 투자은행을 둘러싼 논의의 배경에는 분명 ‘한국경제의 자신감 회복’과 ‘외국자본 대항마 육성’의 논리가 자리 잡고 있지만, 그렇다고 온전히 ‘토종자본 vs 외국자본’의 시각으로 보는 것 역시 무리는 있다.
그보다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 자본시장의 환경 변화와 주요 관심사의 변천사를 먼저 살펴보는 게 유의미할 듯싶다.
'칸막이식 금융법 바꾸자' 논의 물꼬 터 우리나라에서도 투자은행을 육성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2003년 들어 구체화된다.
좀 더 엄밀히 말하면 투자은행 육성 논의가 시작됐다는 표현보다 외환위기 이후 진행해 온 규제완화가 한계에 봉착했다는 표현이 더 어울리지도 모르겠다.
2003년 2월 당시 재정경제부 변양호 금융정책국장이 한 언론사에 기고한 ‘칸막이식 금융법 바꾸자’라는 글은 이를 잘 대변하고 있다.
당시 변 국장은 외환위기 이후 5년 동안 금융통화 부분에서 437건의 규제를 폐지했음에도 국민 대부분은 금융규제가 여전히 많다고 생각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서부터 의문을 제기했다.
은행, 증권, 보험 세 영역의 칸막이가 너무 견고해 규제완화를 해도 효과가 제대로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 게다가 국회 사정 등으로 인해 법 개정이 쉽지 않아 그 때 그 때 급한 것부터 고치다보니 영역 간 일관성도 부족하고 규제나 감독수준이 금융기관마다 차이가 발생하는 기현상까지 발생했다고 통탄했다.
그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가 앞으로 4~5년에 걸쳐 금융법 체계를 금융기관 중심에서 기능별로 전면 개편하는 것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다.
결국 외환위기 이후 그 누구도 거역할 수 없었던 신성한 두 단어, 즉 ‘구조조정’과 ‘규제완화’를 5년 동안 열심히 진행하던 정부가 보다 근본적인 문제와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자본시장의 첨단을 달린다는 미국도 20년 전 똑같이 경험했다.
1980년대 중반 미국에서는 우리나라의 외환위기와 비교되는 저축대부조합(Savings&Loan, S&L)의 총체적 부실사태가 발생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지 부시 대통령은 6년여 동안 총 2273억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자금을 투입했다.
우리나라가 1998년부터 5년 동안 거쳤던 혹독한 구조조정기를 미국은 1980년대 중반에, 아시아에 비해 강도가 약하기는 했지만 이미 경험한 것이다.
이 때 미국 정부는 자산유동화 방식을 다양하게 발전시키며 자본시장의 활성화, 보다 구체적으로는 인수합병(M&A) 시장의 활성화를 유도했다.
정부의 규제완화 노력과 재정건전화 정책, 기업들의 기술혁신 및 구조조정 노력도 병행됐다.
글래스-스티걸 법에 수정(지주회사 내 은행, 증권, 보험의 겸업을 허용)을 가하며 대대적인 금융규제 완화에 나선 것도 바로 이 시기다.
1994년 미국과 2003년 한국의 유사성 이 과정에서 지지율이 하락한 부시 대통령은 결국 연임에 실패했지만 바통을 이어받은 클린턴 행정부는 구조조정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렸다.
1994년 무렵부터 미국경제는 구조조정기를 졸업하고 IT 붐에 편승, 10년 장기호황을 누리며 본격적인 확장의 시대로 접어든 것이다.
그리고 불행히도 이 장기호황의 시기에 1997년 아시아의 외환위기는 ‘제조업의 금융화’ 현상을 경험하던 미국의 기업들과 벌처펀드들에게 좋은 수익 기회를 제공했다.
이처럼 우리나라의 재경부가 투자은행을 본격적으로 고민한 2003년은 미국의 1994년 상황과 많이 닮아 있다.
그리고 미국경제가 확장을 모색하던 배경 및 과정과도 맥이 닿아 있다.
이 과정을 구체적인 숫자로 살펴보자. 미국 기업들은 1990년대 초부터 인수합병(M&A) 및 해외직접투자 활성화로 대표되는 확장기를 겪는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자료에 따르면 1985년부터 1992년까지 500억달러를 오르내리던 미국 기업들의 설비투자는 1995년 1천억달러에 이르고 1997년에는 1500억달러를 훌쩍 넘어섰다.
증가세는 이어져 2001년에는 2500억달러도 돌파해 9·11 테러가 발생하기 전까지 약 10년여 동안 장기호황이 이어진다.
이 기간 해외직접투자도 크게 늘어나 1993년 약 500억달러에 머물던 것이 1996년 1500억달러, 1999년에는 2천억달러도 넘어섰다.
제약, 석유, IT, 자동차 등의 업종들이 유럽과, 남미, 아시아에 활발히 투자했고 최근에는 금융기관들의 해외투자가 크게 늘어났다.
이 같은 변화는 기업들의 자산구조 변화로도 이어졌다.
유형자산보다 금융자산의 비중이 커지면서 이른바 ‘제조업의 금융화’ 현상이 진행된 것이다.
해외직접투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유형자산에 직접 투자하기보다 현지 기업들의 지분 매입 방식을 선호한 결과다.
1989년부터 1994년까지 미국 기업들의 유형자산 총액은 6조달러 안팎에 머무르다 2000년 9조달러까지 치솟는다.
금융자산의 증가는 이보다 더 급격해서 1989년 3조달러에서 2000년 9조달러를 기점으로 유형자산 총액을 넘어서기 시작한다.
금융자산이 유형자산보다 많아진 것이다.
은행과 대출 쏠림과 자본시장 취약성 한계 2004년부터 우리나라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연출된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해외직접투자는 2004년 한 해 동안 3904건, 79억4천만달러(신고기준)를 기록해 전년에 비해 건수와 금액면에서 각각 26.6%, 36.8% 모두 증가했다.
이는 외환위기가 발생했던 1997년의 59억7천만달러에 비해 약 20억달러(33%)가 증가한 것으로 이전 8년 이래 최고 규모였다.
기업들의 출총제 폐지, 금산법 완화 요구는 줄곧 계속돼 온 것이지만 기업들의 투자활성화에 대한 정부의 간절한 바람과 맞물려 이 시기 들어 그 목소리가 더 강해졌고, 정부는 정부대로 외환위기 당시와는 정반대의 상황, 즉 국내에 넘쳐나는 달러를 해외로 보내기 위해 부동산 취득 규제 완화 등 해외투자 활성화 방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미국의 상황과 결정적으로 차이가 나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은행의 대출쏠림 현상과 자본시장의 취약성이 그것이다.
기업의 해외투자 확대는 자금수요의 확대로 이어지지만 국내 금융시장은 변 전 국장의 지적처럼 이를 뒷받침할 만한 상황이 못됐다.
금융이 산업을 지원하는 본연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지 못한 것이다.
지난해 3분기 가계신용 잔액은 506조1683억원을 기록, 처음으로 500조원을 돌파했다.
외환위기 전 200조원과 비교하면 불과 8년만에 300조원이 불어난 것으로 은행의 대출쏠림 현상이 얼마나 진행됐는지 잘 보여준다.
기업들이 은행(간접자본시장)에 자금을 기대할 수 없으면 주식이나 채권시장(직접자본시장)에 기대야 한다.
이 부분에서 다시 얘기는 투자은행의 필요성으로 이어진다.
재경부 금융정책국 최상목 증권제도과장의 말이다.
“2003년부터 금융시장통합법 제정을 위해 연구기관에 용역을 의뢰하는 등 연구에 착수했다.
그 과정에서 영국을 주목하게 됐다.
86년 자본시장을 통합했고 2000년에는 전체 금융시장을 통합했다.
영국의 사례에서 보듯 은행, 증권, 보험의 영역을 허물고 네거티브 방식의 규율체제를 정립하기 위해 가장 손대기 좋은 분야는 자본시장이라고 판단했다.
금융혁신이 항상 일어나고 변화 속도도 빠르기 때문이다.
은행은 잘못되면 시스템 리스크가 발생하지만 자본시장은 잘못돼도 시스템 리스크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는 것도 장점이다.
조금 더 도전적인 시도가 가능하고 전체 통합의 3분의1 수준의 작업이 진행돼도 효과는 6~70% 발생할 것으로 본다.
” 현재 정부는 기업들이 자본시장을 통해 자금을 제대로 조달받지 못하는 것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다.
주식을 통한 자금조달은 지난 2000년 14조원에 달했지만 2005년에는 7조원을 기록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회사채를 통한 자본조달 역시 2001년 87조원에서 지난해 48조원으로 크게 감소했다.
이에 따라 금융시장 가운데 자본시장의 비중은 2004년 52.2% 수준에 머물렀다.
반면 증권사는 지난 1999년 33개사에서 2005년 44개사로 오히려 증가해 구조조정이 미흡했고 자기자본도 4천억원 규모로 예나 지금이나 변동이 없는 상황이다.
인수합병 시장 활성화시켜 상시적 구조조정 추진 한국증권연구원의 신보성 연구위원은 “우리나라 증권사들은 수수료 자율화와 온라인 매매라는 두 가지 결정적인 변화를 겪으면서 수익력이 매우 안좋아졌다”며 “이제는 브로커리지 하나로 도저히 살 수 없게 됐으므로 투자은행 업무를 통한 새로운 수입원 발굴만이 살 길”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정부는 △기능별 규율체제로의 전환 △금융투자상품의 포괄주의 도입 △업무범위의 확대 △투자자 보호제도의 선진화 등 자본시장 관련 법률을 단일 법률로 통합해 금융 빅뱅을 유도하겠다고 지난 2월 자본시장통합법 제정 방안에 대해 밝혔다.
이러한 작업이 순조롭게 진행되면 국내 증권사들도 선진 투자은행과 동등한 영업모델의 선택이 가능해지고 겸영에 따른 시너지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기대하고 있다.
또한 △다양한 신종 금융상품 설계·제공에 따른 경쟁력 강화 △대형화에 따른 규모의 경제 달성 △통합법 제정에 따른 규제 혁신 등의 효과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 같은 정부의 계산은 참여정부 출범 이래 추진돼 온 △금융허브 전략 △사모주식투자펀드(PEF) 활성화 △IT, BT, NT 등 벤처활성화를 위한 금융지원 △종합투자계획 활성화 △제로베이스 금융규제 개혁방안 등과 직·간접적인 연관을 맺고 있다.
참여정부는 미래 성장동력, 즉 일자리 창출 분야로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에 희망을 걸었고, 대기업 못지않게 IT 등 혁신형 중소기업의 육성에 정책지원의 초점을 맞췄다.
값싼 노동력을 무기로 뒤를 쫓아오는 중국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고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전환이 늦을 경우 선진국 진입에 실패할 수도 있다는 위기감이 정책 추진의 배경이 됐다.
결국 자본시장통합법을 통한 투자은행 육성 전략은 투자위험이 높은 벤처기업에 원활히 자금을 공급하고, 인수합병(M&A) 시장을 활성화시켜 상시적인 구조조정이 일어나게 해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수준을 한 단계 향상시키는 데 목적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투자은행 논의의 핵심은 ‘외국자본 대항마 육성’보다는 과거 은행 민영화나 종금사 허용처럼 새로운 금융수요에 대한 효과적인 지원체계 마련에 보다 의미를 둬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과정의 끝에 반드시 ‘동북아금융허브 구축’이라는 장밋빛 미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란 보장은 없다.
어떻게 보면 참여정부 출범 당시 대선공약의 아이디어 수준에서 제시된 ‘금융허브 전략’은 집권 3년만에 첫 단추를 꿰맸기 때문이다.
다만 투자은행 육성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외환위기 이후 외국자본에 일방적으로 당하던 관행은 많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최중혁 기자 tjp2010@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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