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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투자은행 시대가 열린다2]통합의 열매 어떻게 지킬 것인가
[기획연재/투자은행 시대가 열린다2]통합의 열매 어떻게 지킬 것인가
  • 최중혁 기자
  • 승인 2006.04.1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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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과 자본시장 간 보완관계 전제 아래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저가출혈 경쟁’자제해야
△EPA 제공 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금융권, 특히 은행 관계자들이 꼭 기억해야 할 단어는 ‘겸업화’와 ‘대형화’였다. 업무영역을 넓히면서 아울러 덩치도 키워야 한다는 것. 이 트렌드, 아니 절대명제 앞에 많은 지방은행과 중소은행들이 쓰러져갔고, 그 결과 현재의 6대 시중은행 체제가 자리 잡히게 됐다. 그러나 자본시장의 핵심인 증권사들은 상대적으로 이 두 단어에 무덤덤했다. 방카슈랑스 등으로 인해 은행창구에서는 보험상품과 펀드상품이 팔리는 와중에 증권사들은 여전히 위탁매매가 주요 업무였다. 위탁매매 수수료의 자율화, 온라인 매매의 활성화라는 격변기 속에 은행, 증권, 보험이라는 ‘칸막이식’ 규제에 묶여 영업에 제약이 따랐고, 감원바람에도 불구하고 증권사 숫자는 오히려 늘어났다. 은행 중심의 금융시장 재편에 대해 증권사 관계자들의 불만은 나날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이 은행통장과 유사한 CMA 계좌 등을 요구하며 재경부를 찾기 시작한 것도 2003년 무렵부터다. 잊을 수 없는 두 단어, ‘겸업화’와 ‘대형화’ 우리나라 자본시장통합법의 주요 참고 국가인 영국에서는 우리와 좀 다른 양상으로 자본시장 통합이 진행됐다. 영국의 대처 정부는 1979년 외환거래 규제 완전철폐, 1980년 경쟁법 제정 등 과감한 규제완화와 공공기관의 민영화를 핵심정책으로 추진했다. 1960년대 이후 ‘영국식 사회주의’로 불리며 진행된 공공기업의 국영화 흐름과는 정반대의 길을 선택한 것이다. 이 흐름을 틈타 1980년대 초 영국의 몇몇 금융기관들은 업무영역 확장을 주요 전략으로 삼고 다른 영역을 침범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공정거래위원회는 이러한 행위에 대해 시정을 요구했지만 ‘대처리즘’을 등에 업은 금융기관들이 이를 수용할 리 만무했다. 오히려 대처 정부는 1986년 10월, ‘금융빅뱅’이라 불리는 금융업법(Financial Services Act)을 제정하며 금융기관들의 업무영역 제한을 풀어줬다. 이는 대처 수상의 취임 첫 해에 단행된 ‘국내외 자본이동 규제철폐’의 부메랑 성격도 포함된 것이었다. 1980년부터 자유로운 자본이동이 가능해짐에 따라 런던시장의 증권거래가 상당 부분 미국 뉴욕으로 옮아갔고, 이에 영국 정부는 국제 금융 중심지의 지위를 되찾을 필요성을 갖고 있었다. 어쨌든 1986년 증권시장의 자유화 조치로 은행, 증권, 보험업간 경계가 허물어졌고 증권사의 위탁수수료는 완전 자율화됐다. 또한 미국과 유럽의 기업 및 금융기관들은 런던 증권시장에 상장된 회사들을 소유할 수 있게 됐다. 금융기관들에 대한 규제는 비정부기관인 증권투자위원회(SIB)로 넘어갔지만 SIB는 직접적인 규제감독 대신에 자율적 규제기관(SRO)을 통해 실질적인 규제를 실시했다. ‘빅뱅’의 효과는 대단한 것이었다.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들이 앞 다투어 런던에 상륙했고 대규모 인수합병(M&A)이 진행되면서 런던거래소의 거래량은 급증했다. 스웨덴 기업주식의 60% 이상이 런던에서 거래되는 등 자본유치 능력도 급격히 상승했으며 신용파생상품의 거래잔고도 세계의 절반을 차지했다. 또한 은행들의 해외융자는 미국을 누르고 1위를 기록했고 금융전문직의 신규고용 또한 활발해졌다. 게다가 런던에 상장한 기업은 영국의 회계기준을 따름으로써 영국의 회계기준이 유럽의 표준이 되는 부수적인 효과도 있었다. △EPA 제공
‘윔블던 현상’, 죽 쒀서 개 준다? 그러나 문제점도 발생했다.
우선 SG워벅, 모건그렌펠 등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하던 많은 영국의 명문 투자은행들이 외국자본에 넘어갔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윔블던 현상’이라 불렀다.
해마다 영국에서는 유명한 윔블던 테니스 대회가 열리지만 언제나 우승 트로피는 외국인이 가져가는 것을 빗댄 표현이다.
이러한 현상은 우리은행을 제외한 모든 시중은행들이 외국자본에 넘어간 우리나라에서도 경험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1995년 2월, 영국은 희대의 사건에 경악을 금치 못한다.
닉 리슨이라는 한 사람의 선물옵션 거래 딜러가 ‘80일간의 세계일주’에도 등장하는 유수의 베어링 은행을 파산시킨 것이다.
사이멕스(싱가포르외환시장)의 개설 초기, 싱가포르로 건너간 닉 리슨은 니케이 225지수의 선물을 주로 거래하면서 본사도 모르는 은닉계좌를 활용해 천문학적인 손실을 발생시켰다.
뿐만 아니라 게젤샤프트사의 선물환결제 불이행 사고, 연금 부실판매 스캔들 발생 등 잦은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이처럼 영국의 자본시장 개방은 시스템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등 큰 허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처럼 1986년 ‘금융빅뱅’ 이후 영국은 잦은 대형 금융사고로 금융감독 체제의 개편 필요성이 대두됐고, 1997년 5월 집권한 노동당 정부는 자율규제에서 법령에 의한 규제로 전환하는 금융규제개혁안을 발표하기에 이른다.
증권투자위원회, 영란은행 은행감독국 등 9개 금융관련 규제기관을 통합해 통합감독기구(FSA)를 설립하고, 이의 법적 근거 마련을 위해 법 개정을 진행, 2000년 통합금융법(FSMA, Financial Services and Market Act)을 입법화하는 게 그 내용. 민간 자율규제 중심의 체계에서 공적 규제 체계로의 변화를 꾀한 것이다.
영국의 이러한 사례는 외환위기 직후 우리나라가 금융감독원과 금융감독위원회를 설립하는 근거가 됐고, 현재의 자본시장통합법 또한 영국 모델을 핵심으로 하고 있기에 우리에게 의미가 있다.
현재 우리나라 금융감독원은 영국 금융감독청(FSA)과 업무제휴를 맺고 교류확대를 추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영국의 이 같은 극단적 경험과는 달리 호주는 비교적 보수적인 접근을 시도, 금융법 통합을 진행한다.
호주 정부는 회사법의 선진화를 위한 개혁 프로그램 실행을 위해 1996년 금융시스템조사단(FSI)을 설립했다.
이듬해 조사단은 최종보고서에서 약 115개에 이르는 금융산업 개혁과제를 제시하고 이는 2001년 금융서비스개혁법(FSRA, Financial Services Reform Act)에 적극 반영된다.
이 법의 특징은 금융기관의 경쟁력 강화에 법 제정의 목표를 두지 않고 겸업화, 대형화 시대에 어떻게 금융소비자와 투자자를 보호할 것이냐를 고민하는 과정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때문에 기존 업종별 규제방식이라는 큰 틀을 유지하면서 투자상품 및 투자 서비스에 대한 통일된 규제 마련에 초점이 맞춰졌다.
금융회사의 영업보다는 금융상품의 판매 및 영업행위, 즉 시장행위 규제라는 기능적 측면에서의 통합에 국한된 것이다.
이처럼 제한적인 목표에 따라 진행방식도 영국처럼 전면적이지 않고 단계적(9단계)으로 이뤄졌다.
미국, 호주, 일본의 서로 다른 전략 미국과 일본 또한 영국과는 다소 다른 방향으로 은행과 증권의 벽을 허물었다.
미국의 은행들은 증권업을 광범위하게 겸영해왔으나 1930년대 대공황을 겪으면서 줄도산, 규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이에 따라 1933년 일명 글래스스티걸 법(Glass-Steagall Act)을 통해 은행업과 증권업의 사내 겸영은 물론이고 자회사나 지주회사 방식의 겸업도 금지시켰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업계에서는 경쟁력 강화를 위해 규제철폐를 강력히 요구함에 따라 1999년 글래스스티걸 법은 개정되기에 이른다.
이때부터 자국에서 입지를 구축한 골드만삭스 등 미국의 대형 투자은행들은 해외로 눈을 돌렸다.
골드만삭스는 1980년대 미국 M&A 시장을 50% 이상 장악한 이후 유럽과 아시아 시장에 진출했고, 1999년에는 파트너십 체제에서 주식회사로 전환했다.
모건스탠리는 딘 위터와 합병했고 씨티그룹은 트래블러스 그룹과, UBS는 SBC와 합병하며 덩치를 키웠다.
그러나 글래스스티걸 법 개정에서 자회사나 지주회사 방식의 겸업만이 허용됐을 뿐 은행의 증권업무 사내 겸영과 증권사의 예금수취는 허용하지 않았다.
일본 또한 미국의 영향으로 은행업과 증권업의 사내 겸영은 물론 지주회사나 자회사 방식에 의한 출자도 금지했지만 1990년대 들어 자회사나 지주회사 방식의 겸업은 허용했다.
자, 그럼 우리 자본시장통합법의 모델은 어떠한가.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영국 모델을 근간으로 하되 은행의 증권업 사내 겸영까지는 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지난 2월 발표한 자본시장통합법의 핵심단어 두 개는 ‘기능별 규제’와 ‘상품의 포괄주의(네거티브 시스템)’로 요약할 수 있다.
이 두 단어의 대척점에는 ‘기관별 규율’과 ‘열거주의(포지티브 시스템)’가 있다.
기능별 규율체제의 핵심은 금융기관(수행주체)을 불문하고 동일한 금융기능에 대해서는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겠다는 것이고, 포괄주의는 모든 금융투자 상품의 설계·취급을 허용하겠다는 것이다.
증권, 선물, 자산운용, 투자자문, 신탁 등의 겸업을 허용함은 물론 원칙적으로 모든 부수업무를 허용한다.
자본시장에 국한된 것이긴 하지만 어쨌든 이는 기존 틀을 과감히 허물겠다는 것으로, 법안 마련을 총괄 지휘한 재경부 김석동 차관보는 “영국 금융시장 빅뱅의 10배 규모가 될 것”이라는 말로 압축 표현하고 있다.
영국만 따라가면 되나
△영국유수의 투자 은행 "베이링 그룹'을 파산시킨 닉 리슨이 공항에서 연행되고 있다. EPA 제공
이런 관점에서 전용 증권사가 아닌 우리, 신한, 하나 등 금융지주회사들이 자본시장통합법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가 될 것이다.
아직은 이들의 증권 자회사 규모가 은행에 비해 턱없이 작지만 지주회사가 어떤 전략을 세우느냐에 따라 내부 혁명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일단 정부는 외환위기의 경험을 곱씹어 은행부실이라는 시스템 리스크의 발생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입장이므로 국내에서 지주회사의 증권업 겸영은 제한적인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대해 한국증권연구원의 신보성 연구위원은 “은행의 보수적인 문화와 복잡한 의사결정 구조 때문에 투자은행의 장점인 업무의 신속성이 저하될 수 있다”며 “은행과의 밀접한 제휴로 투자은행 전략이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절대적인 상황이란 없으므로 금융환경 변화에 따라 이러한 전세가 역전될 가능성을 완전 배제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와 관련해 자본시장통합법에 관한 은행들의 반발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자본시장통합법 발표 이후 국내 시중은행들은 저축성 수신의 감소에 따른 금융시장 영향력 약화 등을 우려해 법안 반대를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시장통합법 자체가 IT, BT 등 미래의 성장동력이 될 기업들에 자금공급이 원활히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데서 출발하고 있으므로 이 역할에 취약한 은행들이 무턱대고 반대만 하는 것은 설득력이 낮아 보인다.
이에 대해 금융연구원 강경훈 연구위원은 한 기고문에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다.
“은행과 자본시장 사이에는 기본적으로 대체관계가 존재한다.
그러나 이러한 대체관계가 은행이나 자본시장이 어느 한 쪽을 위해 다른 쪽을 희생시켜야 한다는 논리로 곧 연결되지는 않는다.
파생상품시장과 자산유동화시장이 발달돼 있으면 은행은 합성 CDO를 발행해 대출 부실화 위험을 분산시킬 수 있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대출에 나설 수 있다.
” 은행과 자본시장 간 보완관계도 존재한다는 얘기다.
또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은 자본시장통합법을 외국 금융기관들은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이다.
풍부한 경험과 경쟁력을 확보한 세계적인 투자은행들이 두손, 두발 놓고 있을 리 만무하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출범 이래 재경부, 금감위 등 우리나라 금융감독 기관들은 외국자본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내·외국인 동등 대우’ 원칙을 강조해왔다.
이는 자본시장통합법이 외국 금융기관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됨을 의미한다.
앞서 살펴봤듯이 영국은 자본시장을 연 결과 국내 증권사들의 몰락과 함께 시장의 주역이 외국사들로 교체되는 광경을 목격했다.
우리나라도 대다수 은행들이 외국자본에 넘어갔듯 대형 증권사들 또한 ‘영국보다 10배 규모가 큰 빅뱅’을 겪으며 똑같은 전처를 밟을 공산이 크다.
투자은행 성공의 필수요건인 금융 전문인력 확보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국내 자본시장의 파이를 키워 얻은 열매를 외국자본이 고스란히 독식할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시장이 영국처럼 국제 금융 중심지의 지위를 경험해본 적도 없다.
통합의 열매를 지키는 방법은? 통합법 추진 과정에서 토종자본 육성을 위한 한시적인 예외(국내 기업의 해외매각 시 국내 투자은행에 우선권 부여 등)를 고려할 수도 있겠지만 그럴 때마다 ‘폐쇄적인 민족주의 국가’라고 공격해온 영국과 미국이 이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을지는 의문이다.
또한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돼 있는 외국기업이 전무하고, 한국 증권사들의 자산규모가 세계 주요 투자은행의 100분의 1에 머물고 있는 열악한 조건에서 과연 투자은행 전환을 선언한 증권사들끼리 과당경쟁이 발생하지 않을 지도 의문이다.
우리나라 증권사들은 시장점유율을 높이기 위한 ‘저가출혈 경쟁’에 익숙해 있기 때문이다.
기업신용평가 체제 구축이 미흡한 점도 걸린다.
어쨌든 이 부분은 한국 투자은행 후보자들의 성공전략과도 맞물려 있으므로 다음 편에서 좀 더 자세히 다뤄보기로 하자. 현재 정부가 내놓은 자본시장통합법 제정방안은 업종별 설명회를 거쳐 각계의 의견수렴 과정을 앞두고 있다.
시행 목표는 2008년. 성사 가능성은 불투명하지만 참여정부 임기 내다.
그만큼 실행 의지가 높은 것으로 읽힌다.
그러나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기본 틀을 통째로 바꾸는 거대 작업인 만큼 영국 모델의 법적 틀뿐만 아니라 ‘정부-금융기관-소비자’ 간 꾸준한 의사소통에 소홀하지 않았던 영국의 법률 제정 과정에도 눈을 돌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최중혁 기자 tjp2010@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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