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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삶]발랄하고 깜찍한 평등보험을 아세요?
[책과삶]발랄하고 깜찍한 평등보험을 아세요?
  • 이경숙/ 객원기자
  • 승인 2006.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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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금융질서-21세기의 리스크 지은이 로버트 쉴러 옮긴이 정지만 황해선 도은진 펴낸이 민미디어 가격 2만원 “이 사람은 뭔가 성공하지 못했다.
결국 그는 화가 치밀어 이렇게 외친다.
‘세상이여 망해버려라!’”(니체, <서광> 중 세계파괴자) “개인과 기업의 성공은 키워야 할 열망이자 장려해야 할 목표이며 축하해야 할 업적이다.
하지만 성공이 사라질 때까지 세금이 부과되는 것은 참으로 이해할 수 없이 당황스러운 일이다.
”(캐나경영자협회가 1999년 장 크레티앵 총리에게 전한 비망록) ‘경제적 낙오’의 증가는 성공한 자에게도, 성공하지 못한 자에게도 ‘리스크’다.
성공하지 못한 자는 내일의 삶이 없을 수도 있다는 ‘리스크’에 고통받고, 성공한 자는 ‘성공이 사라질 때까지’ 뺏길 수도 있다는 ‘리스크’에 불안해한다.
우리나라에서도 ‘리스크’는 양쪽에서 모두 높아지고 있다.
4월17일, 우리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빈곤층에게는 그 열매가 돌아가지 않는다는 연구결과가 보도됐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여유진, 김미곤 박사팀이 내놓은 ‘빈곤과 불평등의 동향 및 요인 분해’라는 연구보고서가 그것이다.
이 보고서에 따르면 1996년부터 2003년까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몫은 비 빈곤층에게는 충분히 돌아갔지만 빈곤층의 몫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가구 총소득이 100만큼 늘어났다면, 비 빈곤층은 104나 106 늘어난 데 비해 빈곤층(중위소득 40% 미만 계층)의 소득은 오히려 4나 6 정도 감소했다는 것이다.
어떤 이는 “자본주의 경쟁시스템에서 양극화, 즉 격차 확대는 불가피하다”며 ‘인위적’으로 불평등을 조정하는 소득 재분배 정책에 반대한다.
어떤 이는 “격차 확대는 사회 불안정을 야기하고 장기적으로 경제 발전 기반을 훼손한다”며 더욱 강력한 재분배 정책을 펴자고 주장한다.
시장친화적·사회친화적 아이디어 가득 끝나지 않을 줄다리기의 양끝에 서서 지쳐가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금융질서-21세기의 리스크>를 다시 한번 펴보길 권하고 싶다.
1996년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과 함께 주식시장의 이상과열을 경고해 당대의 스타로 떠오른 로버트 쉴러 예일대 교수가 쓴 이 책엔 ‘시장친화’적이면서도 ‘사회친화’적인 아이디어가 가득 차 있다.
그가 이미 3년 전에 내놓은 밑그림은 지금 보기에도 새롭다 못해 발랄, 깜찍하다.
그의 아이디어를 풀어서 설명하자면 이렇다.
보통 한국인: “양극화 해소는 좋아. 그런데 세금을 더 내라니. 월급쟁이가 봉이야?” 로버트: “오우~ 그러면 세금 대신 보험 어때요? 불평등지수가 높아지는 만큼 고소득층은 보험료를 더 내고 저소득층은 보험금을 더 받는 거예요. 그래서 불평등이 줄어들면 최고소득층은 보험료를 덜 내거나 안 내게 되니, 좋지 않아요?” 보통 한국인: “외환위기 이후 살기가 너무 어려워졌어. 회사에서 언제 짤릴지 모르니, 재테크를 잘해서 나중에 먹고 살 도리를 마련해놔야지.” 로버트: “오우~ 그러지 말고 우리 같이 생계보험에 들어요. 미래 언제든 소득이 줄어들면 그만큼 소득을 보전받을 수 있어요.” 이밖에도 그는 주가지수처럼 한 나라의 GDP를 지수화해 거래하자든가, 개인의 소득에 연계해 돈을 많이 벌수록 많은 이자를 내고 돈을 적게 벌수록 적은 이자를 내도록 하는 소득연계대출상품을 만들자든가 하는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고령화로 이미 곯을 대로 곯은 국민연금 문제에 대해선, 은퇴세대가 받을 연금 규모를 근로세대가 버는 소득 규모에 연계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또 어떤 나라는 급성장하고 다른 나라는 경제가 후퇴하는 문제에 대비해 국가간 경제리스크를 공유하는 ‘국제협약’을 맺자고 주장하기도 한다.
갖가지 경제적 공상과 꿈에 빠져들게 만들어 너무 공상적이지 않냐고? 주식시장의 거품을 예측한 이 노련한 학자는 근거 사례도 꼼꼼히 모와놨다.
예컨대, 한 나라의 GDP(국내총생산)와 이자율을 연계시키는 상품은 이미 1994년 씨티뱅크가 발행했다.
채권 형태로 18억6500만 달러의 자금을 조달해주면서 불가리아가 높은 성장률을 달성할수록 높은 이자를 내는 구조였다.
비록 불가리아 경제가 기대 이하의 성장세를 나타내 씨티뱅크가 이자를 받지 못하게 됐지만, 이제 막 자본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는 아프리카나 아시아 저개발국 정부가 듣기에는 귀가 솔깃할 만한 상품일 것이다.
소득 불균형 해소 수단으로 싱가포르 저소득층에게만 2001년에 판매된 ‘신싱가포르 증권’은 3%의 보장금리와 함께 경제성장률과 동일한 비율로 배당금을 지불하도록 설계됐다.
2007년이 만기이니 조만간 이 상품이 어떤 성과를 거뒀는지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가장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등록금 인상 문제를 이렇게 푸는 건 어떤가? 1971년부터 1978년까지 예일대학은 일부 학생들에게 등록금 유예 옵션(Tuition Postponement Option)을 후원했다.
대학이 등록금을 후원해준 학생이 졸업한 뒤, 돈을 많이 벌면 더 많은 금액을 상환하고 돈을 더 적게 벌면 적은 금액을 상환하도록 한 것이다.
덕분에 졸업 후 소득이 적은 직업에 종사한 예일대 졸업생들은 실제로 적은 채무를 지는 혜택을 받을 수 있었다.
젊은 세대에겐 ‘불만연금’이 되어버린 국민연금 문제에 대해선 이런 아이디어가 나왔다.
은퇴 후 세대에 지급하는 연금 급여를 ‘일정액’으로 지급하지 않고 젊은 세대가 벌어들인 소득에 대한 ‘비례금액’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고령화 리스크를 젊은 세대만 부과하지 않고 늙은 세대도 함께 부담하는 효과가 나타난다.
1998년부터 2001년 사이에 스웨덴이 도입한 사회보장제도가 이런 시스템을 일부분 도입했다.
이 책은 독자들을 갖가지 경제적 공상과 꿈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런데도 책을 덮은 후 그 꿈이 흐릿해지는 건, 쉴러의 대안은 결국 ‘소득 규모’가 제대로 파악되지 않는 나라에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장치이기 때문이다.
세금 회피 규모가 아무리 커도 기부만 하면 용서해주는 ‘여린 국민’이 다수를 차지하는 한, 우리나라에선 어떤 대안도 ‘리스크’를 제대로 헤지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경숙/ 객원기자 nwijo@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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