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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투자은행 시대가 열린다5]고요한 호수... 물 속은 생존싸움 치열
[기획연재/투자은행 시대가 열린다5]고요한 호수... 물 속은 생존싸움 치열
  • 최중혁 기자
  • 승인 2006.05.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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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conomy21 사진 외환위기가 어느 정도 수습되던 시점인 2000년대 초, 국내 증권사들은 혹독한 인력 구조조정을 겪으며 만신창이가 됐지만 한숨 돌릴 여유조차 찾기 힘들었다. 구조적인 수익성 악화에 따라 앞으로는 한 업체의 몸집 줄이기에 그치지 않고 대형 M&A 등 업계 전체의 구조재편이 일어날 것이란 전망 때문이었다. 2002년 상황을 살펴보자. 그 해 4월 종합주가지수는 9백37포인트까지 올랐지만 불과 5개월 만에 6백46포인트로 무려 31%나 하락했다. 위탁 및 자기매매 업무가 전체 매출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증권사들의 수익은 같은 기간 48.4%나 감소해 종합주가지수의 하락폭보다 더 컸다. 수익모델 자체가 특정 업무에 편중됐고 증권사들마다 차별성도 없어 주식시장 상황에 따라 수익규모도 널을 뛴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당시 위탁매매업무 수수료가 영업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업계 평균 50%를 넘었고 그런 실정은 지금(2005년말 5대 대형사 평균 56%)까지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세전 수익률 변동성은 미국의 증권산업보다 4배나 높았다. 게다가 생산성 면에서 국내 증권사들은 한 점포당 1천만원이 조금 넘는 순이익을 보인 반면 외국계 증권사들은 3억원을 넘겨 효율성이나 경쟁력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에 업계에서는 대형 증권사들이 투자은행을, 중소형 증권사들이 시장·고객·상품별로 특화전략을 추구하면서 전체적으로는 적대적 인수합병(M&A)이 활발히 진행될 것으로 기대했다. 실제 일부 대형 증권사는 기존 약정고 중심에서 고객 수익률 중심으로 인센티브 제도를 변경했고 자산관리 서비스를 도입하는 등 사업구조를 과감히 개편하는 움직임을 보였다. 그러나 몇몇 증권사들의 변화 모색이 전체 업계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1999년 23개이던 은행이 지난해 말 19개로 줄어드는 동안 증권사는 오히려 11개 늘어나 44개사가 됐고 자산운용사는 31개에서 38개로 7개사가 늘었다. 반면 2001년 14.5%이던 자산운용사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2005년 5.4%로 떨어졌고 같은 기간 증권사의 ROE도 1.6% 증가(5.5%→7.1%)하는데 그쳤다. 업계 평균 자기자본도 지난 5년 동안 4천억원 안팎으로 변함이 없었고 위탁매매중심의 사업모델도 변함이 없었다. 결국 외환위기 이후 간접금융시장(은행)은 정부 주도로 겸업화, 대형화가 진행돼 구조조정을 꾀했지만 직접금융시장(증권사)은 그 길을 걷지 못했다. 이는 증권사들의 지배구조가 은행과 달리 사적 구조인 점도 한몫 했다. 그러나 주변 환경은 급속도로 변했다. 키움닷컴, 미래에셋 등 할인 증권사들과 외국계 증권사들이 약진하는 동안 대형 증권사들의 수익성은 급격히 악화됐다. 게다가 조금씩 완화되던 정부의 규제는 올해 들어 ‘자본시장통합법’이라는 완결판을 선보였다. 정부 당국자의 표현을 빌자면 영국보다 10배나 큰 빅뱅이 자본시장에서 예고된 것이다. 이는 증권업계의 자율적 구조조정이 지지부진함에 따라 정부가 제도 개선을 통해 강제 구조조정에 나서게 됐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빗장은 열렸다...어디로 뛸 것인가 그럼 빅뱅은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지난해 초 한국증권연구원의 김형태 부원장은 ‘단계별 대형화’ 추진을 권고하고 있다. 소규모 개방경제라는 한국경제의 특성상 선도적 역할을 맡을 투자은행 육성이 필요하고 이는 3단계의 과정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 1단계는 최소한 국내 시장에서 국내 기업과 관련된 IB 업무를 외국계 투자은행과 경쟁할 수 있을 정도의 역량을 갖추는 것이고, 2단계는 동북아시아 등 국제 지역시장에서 활동하기 위해 일정 수준 이상 규모를 확대하는 것, 3단계는 특정 틈새시장에서 ‘글로벌 플레이어’를 모색하는 것이다. 이 과정을 염두에 두고 우리나라 증권업계를 살펴보면 몇 가지 대응방향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우선 삼성증권, 대우증권, 현대증권, 메리츠증권, 동양종금증권 등 이른바 재벌 계열 대형 증권사들의 대응이 한 축이다. 대우증권 구철호 애널리스트는 자본시장통합법에 따른 최대 수혜주로 투자은행으로의 전환이 가능한 톱5(삼성, 대우, 현대, 우리, 대신) 대형증권사들을 꼽고 있다. 통합법으로 단순화되는 매매, 중개, 자산운용, 투자자문, 투자일임, 자산관리보관업 등 6개 금융투자업을 모두 영위할 수 있는 금융투자회사로 발전 가능한 금융사는 현 시점에서 대형증권사군이 유일한 후보라는 것. 이 중에서도 국내 투자은행 업무의 ‘선구자’로 꼽히는 삼성증권의 지난 5년은 눈여겨 볼만 하다. 삼성증권은 노무라증권, 다이와증권 등 일본 증권사들이 투자은행 업무에 주력하는 움직임에 자극받아 IB 업무에 뛰어들었다. 삼성증권은 업계 최초로 1988년 3개 팀으로 구성된 ‘IB사업본부’를 발족시켰다. 그런 가운데 2001년 황영기 씨(현 우리금융지주 회장)가 사장으로 부임하면서 투자은행 업무는 크게 확대됐다. 50% 이상인 위탁매매 수수료 비율을 30%대까지 낮추는 대신 자산관리서비스(30%)와 투자은행 업무(20%), 캐피털마켓 업무(20%) 비중을 크게 늘리기로 한 것. 황 사장이 직접 IB 전문인력 채용을 위해 뛰어다녔고 그 결과 골드만삭스, 메릴린치 등에는 못 미치지만 국내 업계 중에서는 최상의 맨파워를 자랑하게 됐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 고객 예탁 자산규모 2위인 우리투자증권은 우리은행, 우리자산 운용과의 협력을 통해 투자은행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economy21 사진
2004년 바통을 물려받은 배호선 사장 역시 자산관리영업과 IB업무를 핵심 사업 분야로 선정했다.
그 결과 지난해(2005년 4월~2006년 3월) 삼성증권의 수익 가운데 위탁매매수수료 비중은 40%를 기록해 빅5 중 가장 낮았다.
현대증권과 대신증권이 60% 이상, 우리증권과 대우증권이 50% 이상인 점과 비교하면 매우 주목할 만한 변화다.
반면 IB 수수료와 자산관리 수수료 비중은 20%를 넘어 수익구조 다변화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빅5 평균이 10%를 약간 넘는 것을 감안하면 삼성증권의 변화는 눈부시다.
이에 따라 2005회계연도 영업이익과 당기순이익은 각각 2천5백77억원과 2천2백억원을 기록해 전년 대비 각각 2백62%, 6백1% 증가하는 놀라운 성과를 보여주었다.
삼성증권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대비해 은행이나 보험을 능가하는 확실한 투자은행으로 성장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IB 부문에서 기업공개(IPO)와 인수합병 등에 ‘선택과 집중’ 전략을 구사해 경쟁력을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PB 인력에 대한 맞춤교육을 통해 투자은행으로의 전환에 필수요건인 우수인력 육성에 주력하고 상품에 있어서도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전략을 추진 중이다.
주목할 만한 삼성증권의 수익 다변화 삼성증권에 이어 대우증권과 현대증권 또한 투자은행 업무 강화를 외치기는 매 한가지다.
2005 국내 기업공개(IPO) 실적 1위를 자랑하는 대우증권은 기업금융 부문에서의 강점을 바탕으로 IPO 업무 및 선박펀드와 같은 실물 자산운용, 프로젝트 파이낸싱(PF) 업무를 강화한다는 전략이다.
옛 대우 계열사들과 무관해 재벌계로 분류하기는 어렵지만 투자은행으로의 성장 욕심은 다른 기관 못지않다.
대주주가 산업은행인 만큼 퇴직연금과 신탁업에서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특히 자본시장통합법 대비를 위해 태스크포스팀을 구성, IB본부 내 PI(자기자본투자) 팀을 신설해 장외파생상품 및 외환관련 업무에 집중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 최초의 시도다.
현대증권 또한 기업금융팀을 중심으로 기업에는 장기 자금조달을 투자자들에게는 양질의 투자 대상을 제공한다는 전략을 짜 놓았고, 동양종금증권은 투자은행으로서의 전환을 위해 자기자본 확충과 신사업영역 개척, RM 영업 확대 등을 중점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들 대기업 계열 증권사들의 장점으로는 연관 계열사를 통한 시너지 효과와 상품개발능력, 브랜드파워, 고객기반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계열사내 제조업체와 연계마케팅이 가능한 점은 큰 이점이다.
그러나 한계도 많다.
앞서 1~3단계 과정으로 봤을 때 지금으로서는 1단계에서부터 큰 산이 버티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는 물론 금산분리 원칙에 따라 덩치를 키우기가 쉽지 않다.
금융지주회사로 가는 것도 한 방안이지만 아직까지 이런 전략이 구체화된 증권사는 없다.
현재 여당에서 출총제나 금산법 완화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고 있는 점은 매우 긍정적이다.
이런 여러 가지 정황들을 고려했을 때 재벌계 증권사 가운데 투자은행으로의 전환은 삼성증권이 한 발 앞선 가운데 다른 증권사들의 추격전이 치열할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 주목할 만한 전략은 우리, 신한, 하나, 한국 등 금융지주회사 소속 증권사들의 선택이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은행 등 지주사 내 다양한 금융계열사 간 시너지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동시에 미흡한 부문은 추가 인수합병 등을 통해 보강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증권사 가운데 고객 예탁 자산규모 2위인 우리투자증권은 우리은행, 우리자산운용과의 협력을 통해 투자은행 부문을 강화하고 있다.
고객 수수료에 기대지 않고 종합자산관리와 IB 업무를 두 축으로 메릴린치 같은 안정적 수익모델을 갖추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특히 채권과 파생상품 분야에서 부문별 제휴를 맺어 시장을 선점한다는 계획이다.
신한지주 내 굿모닝신한증권은 지주회사 체제의 시너지를 본격 활용해 고객 자산규모를 획기적으로 늘리고 고부가가치 종합자산관리 영업에 매진한다는 전략을 짰다.
지난 달 통합법 대응을 위해 TFT를 구성하고 구체적인 전략 마련에 들어갔다.
전체적으로는 혁신적인 IB 모델을 구축해 기업고객 네트워크를 확장하고 중국 등 해외시장 개척에도 적극 나선다는 방침이다.
선물 등 지주사 내 부족한 부문은 증권사 내 법인선물옵션 판매 네트워크 등을 통해 시장 선점에 나선다는 계획. 지주회사는 은행의 역할 정립이 관건 LG카드 인수에 나선 하나금융그룹의 경우 하나증권, 대투증권, 대한투신 등의 계열사들을 통해 투자은행 경쟁에 나선다.
은행과 증권의 통합점포를 올해 30개까지 늘려 개인고객 자산관리 영업을 강화하고 고수익 부동산 펀드 등 대안투자 상품을 적극적으로 개발한다는 계획도 세워놓았다.
동원증권과 한투증권이 합쳐 생긴 한국투자금융지주 또한 2020년까지 시가총액 20조를 달성하고 자기자본이익률 20%를 달성한다는 목표 아래 올 한 해 6천~7천억원의 자기자본을 해외시장에 투자해 IB 업무강화와 자산관리영업 강화에 공격적으로 나서고 있다.
이들 금융지주회사의 최대 장점은 은행 등 금융자회사간 고객 공유로 자산관리 업무에 강점을 지닌다는 것이다.
즉, 대기업 계열 증권사들이 골드만삭스처럼 기업고객들과의 관계를 바탕으로 IPO, M&A 등에서 강점을 지니는 반면 지주회사는 개인 고객들의 자산관리에 초점을 두는 메릴린치 형 투자은행에 가깝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지주회사는 은행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아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투자은행 본연의 임무를 제대로 수행하기 어려울 것이란 우려도 있다.
자본시장이 위험을 감수한 리더가 모든 것을 먹는 시스템인 반면 은행은 본질적으로 실패를 방지하는 데 초점이 맞춰진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지주회사의 투자은행 업무 성과는 은행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하느냐와 증권 자회사의 비중 및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는지가 성패를 가늠할 것으로 보인다.
이밖에 대신증권, 미래에셋증권 등 중대형 증권사들과 교보증권, 한화증권 등 보험사를 중심으로 한 증권사, 키움닷컴·SK·유화·신영증권 등 중소형 증권사들의 전략도 앞으로의 시장재편에 큰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공격적으로 해외시장 구축에 나서고 있는 미래에셋증권의 움직임이 주목된다.
미래에셋은 아직 자기자본이 5천억원에 불과하지만 올 초 IB 분야를 3개로 세분화하고 M&A, 유가증권 투자, 지분출자 등 자기자본을 활용한 IB 사업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홍콩, 싱가포르에 자산운용사를 설립한 데 이어 중국, 인도, 베트남 등 아시아 시장 개척도 구체화하고 있다.
박현주 회장은 2년내 자산운용사 등 10여개사를 인수해 아시아 외에도 유럽, 브릭스(브라질·러시아·인도·중국), 북미시장도 공략한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워놓고 있다.
이 과정에서 IPO, PEF, PF 등을 국제시장서 직접 펼쳐 투자은행 업무 노하우를 쌓는다는 복안이다.
이와는 별도로 산업은행의 거취도 주요 관심사다.
그 동안 산업은행은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위험 완충역할을 위해 시장논리와 어긋나는 행동까지도 서슴지 않았지만 통합법 시행 이후에는 이러한 역할이 자연스레 축소될 전망이다.
더 이상 국책은행이 아니라 민영화돼야 한다는 논의도 이러한 맥락과 닿아 있다.
실제 산업은행은 2003년 1월 ‘선 투자은행 후 민영화’를 선언해 2011년까지 자기자본 15조원, ROE 18%을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우선 기업금융 전문은행으로 입지를 굳히고 동북아시아를 거점으로 하는 선도은행으로 탈바꿈한 뒤 장기적으로는 세계적 투자은행으로 도약하겠다는 것. 이를 위해 산업은행은 브라질, 우즈베키스탄 등 해외 금융자회사만 34개를 두고 국내 최대 투자은행으로의 변모를 꾀하고 있다.
△우니라나 금융시장의 완충 역할을 위해 시장논리와 어긋나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던 산업은행은 통합법 시행 이후 이런 역할이 자연스럽게 축소될 전망이다.
ⓒeconomy21 사진
본격적인 합종연횡은 2009년에 그러나 올해 중으로 이들 세 그룹 내, 혹은 그룹 간 본격적인 합종연횡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올 2월 발표된 자본시장통합법은 현재 업계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 있고 본격적인 시행은 2008년 말 혹은 그 이후에나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올 한 해는 증권사별로 자체 수립한 전략을 차근차근 추진하면서 조용히 시장변화 상황을 지켜볼 것으로 보인다.
통합법의 입법 과정에서 시행령이 어떻게 규정되고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어떻게 설정되는지에 따라 각 증권사들의 전략도 수정이 불가피할 것이다.
이러한 과정이 어느 정도 일단락되고 나면 그 때부터는 사활을 건 적대적 인수합병이 활발히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어떤 증권사가 됐든 모두 40여개에 달하는 자산운용사와 투신사, 선물회사 등을 인수해 ‘덩치키우기’에 나서지 않으면 생존이 위협받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결국 2~3개의 대형 투자은행과 특화된 중소형 증권사들이 시장을 형성하는 방향으로 재편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중혁 기자(tjp2010@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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