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9 15:19 (금)
[진단]'세계인들은 모두 축구 팬'은 착각
[진단]'세계인들은 모두 축구 팬'은 착각
  • 장승규 기자
  • 승인 2006.06.19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국인 56% ‘독일에서 월드컵’ 몰라 … 인구 많을수록 축구 잘해
△축구의 경제학에 따르면 경제적으로 부유하고 인구가 많은 나라가 축구를 잘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EPA
월드컵을 맞아 축구를 경제학적 관점에서 분석한 보고서들이 잇따라 발표돼 축구 팬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우승국을 예측한 투자은행이 있는가 하면, ‘축구와 세계화’라는 무거운 주제를 분석한 경제학자도 있다.
이에 따라 ‘축구경제학’(Soccernomics)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세계은행(World Bank)도 홈페이지에 ‘축구, 스포츠, 그리고 개발’이라는 특집코너를 개설해 관련 보고서들을 상세히 소개하고 있다.
짐 오닐 골드만삭스 글로벌리서치 본부장은 지난 5월3일 발표한 보고서 ‘월드컵과 2006년 경제’에서 축구와 경제의 상관관계에 대한 흥미로운 질문들을 던진다.
우선 많은 사람들이 축구야말로 진정한 ‘세계적’ 스포츠 경기라고 생각하지만 이는 착각일 뿐이다.
미국과 인도, 아시아의 일부지역은 전통적으로 축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하며, 참가자 면에서 보면 육상경기가 오히려 훨씬 광범위한 스포츠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15년 동안 이들 지역의 축구 인구가 증가한 것은 분명하지만, 일부 국가에서는 남성보다 여성 축구 인구가 훨씬 빠르게 증가했다.
육상 매니아 인구, 축구보다 많아 과연 축구와 경제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할까? 아니면 이런 의문은 단순한 소일거리에 불과한 것일까? 짐 오닐은 “브릭스 등 신흥경제가 세계 경제의 더 큰 부분이 되어가고 있다”며 “이러한 현상이 축구에는 좋을까, 나쁠까, 아니면 전혀 상관 없을까” 묻는다.
만약 브릭스의 성장이 축구에 좋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나 첼시, 레알마드리드, AC밀란, 유벤투tm, 바르셀로나 구단에 투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1인당 GNP와 FIFA 랭킹의 상관관계를 보면 흥미로운 결과가 발견된다.
일반적으로 부유한 나라가 더 축구를 잘한다.
G7 국가 중 6개 나라가 FIFA 랭킹 20위 안에 들어가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축구 성적과 경제력이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결론 내리는 것은 성급하다.
미국과 일본에서 여전히 축구가 크게 성장하지 못한 이유를 설명할 수 없기 때문이다.
지난 5월30일 GMI가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는 월드컵에 대한 미국인들의 무관심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세계 12개국 1만1천3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미국인의 56%가 2006년 월드컵이 독일에서 열린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월드컵 경기를 볼 계획이라고 답한 비율도 10%에 불과했다.
세계적 관점에서 경제적 성공과 축구성적의 명확한 상관관계를 발견하기는 어렵지만, 지역적 차원에서는 그러한 증거를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유럽에서 일반적으로 가장 경제권들이최강의 축구팀을 갖고 있다.
또한 상위 축구클럽은 가장 크고, 번영하는 도시에서 탄생하는 경향이 있다.
유럽에서 4대 대국을 제외하고는 월드컵 우승국이 없다.
이는 규모와 축구성적 사이에 공통분모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단순하게 말해, 유럽에서 축구성적은 인구 규모의 문제다.
또한 축구성적에서 16~35세 남성의 수가 중요하다.
만약 이런 가정이 맞는다면, 현재 상위권에 랭크되어 있는 이탈리아와 러시아의 성적은 인구 감소의 결과, 향후 추락할 것이라는 이야기가 된다.
이들 두 나라는 2050년이면 인구가 20% 줄어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반대로, 터키는 인구가 증가하기 때문에 유럽지역 축구 강국이 될 것이다.
만약 인구가 핵심 요소라면 2050년 월드컵은 2006년과는 다른 결과를 보일 것이다.
터키가 독일을 위협하는 강력한 경쟁자가 될 것이다.
그때 쯤이면 미국이나 러시아의 백만장자들이 영국이나 이탈리아의 축구구단을 사는 대신 터키로 발길을 돌릴지 모른다.
만약 인도나 중국, 미국이 축구에 흥미를 갖게 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물론 유럽의 축구 전문가들은 단순히 인구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교육, 생산성, 부가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할 것이다.
인구 규모의 문제는 남미에도 잘 적용된다.
인구 대국인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축구성적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이들 지역이 경제적 안정이 지속된다면 남미 지역의 축구 리그는 상업적으로 번창할 게 틀림없다.
그렇게 되면 남미의 축구 신동들이 더 이상 유럽 프리미어리그를 선택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거꾸로 이탈리아의 최고 선수가 브라질행을 택할지도 모른다.
불과 15년 전만 해도 세계의 톱 스트라이커들이 영국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게 될 것이라고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
바로 영국의 활기찬 경제가 이를 가능하게 한 원동력이다.
독일의 전 외무장관 요쉬카 피셔는 “오늘날 축구는 제1세계와 제3세계 사이의 성공적인 세계화를 보여주는 매우 인상적인 사례”라고 말한다.
1980년대까지만 해도 월드컵은 유럽과 남미 팀의 독무대였다.
하지만 이제는 모든 대륙에서 오는 팀들이 겨루는 진정한 세계 대회가 되었다.
지난 40년 동안 가장 놀라운 발전이 아프리카에서 일어났다.
1960년대 유럽의 축구 지도자들은 축구 발전을 돕기 위해 아프리카로 가는 것을 꺼렸다.
아프리카인들은 기초부터 시작해, 오랜 시간에 걸쳐 노하우와 열정을 배웠다.
아프리카의 새로운 젊은 축구선수 세대는 경기하는 방법뿐만 아니라 최신 기술을 활용해 효과적으로 플레이하는 법을 배웠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 최초의 아프리카 출신 프로축구 선수들이 유럽의 주요 리그에 발을 들여 놓았다.
그들은 거기에서 경험과 기술을 쌓았으며, 고국으로 돌아가 이를 전수했다.
축구에도 적용되는 신식민주의 1990년 유럽 법원의 판결로 유럽의 주요 축구리그들이 외국인 프로선수들에게 개방됐다.
그 이후 아프리카 출신 선수들은 유럽의 톱 구단이 성공하는데 결정적인 변수가 됐다.
이를 통해 아프리카 축구는 놀라운 발전을 이뤘다.
효과적인 기술과 경제적인 지원, 제 1세계의 핵심 축구 시장에 대한 시장 접근은 아프리카 축구 성공신화의 핵심 요인이다.
피셔는 “아프리카의 축구 혁명이 주는 교훈은 사람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개발하도록 효과적으로 지원하고 교육하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시장 접근을 허용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한다.
반면 세계은행의 수석 이코노미스트인 브란코 밀라노비치는 ‘세계화와 골: 축구가 길을 보여주나?’에서 세계화에 대해 피셔와는 다른 의견을 제시한다.
오늘날 축구는 세계화의 전형적인 사례다.
외국인 선수의 수를 제한하던 규제가 사라지면 이제 축구선수들은 어느 나라, 어떤 구단이든 자유롭게 옮길 수 있다.
소위 자유로운 노동력의 이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에 따라 축구 후진국 출신의 뛰어난 선수들은 최고의 리그에서 최고의 선수들과 경기하면서 기술을 익히고, 더 많은 수익을 챙길 수 있다.
그 결과 전반적인 게임의 수준은 향상되지만, 이는 불평등의 증가를 동반한다.
축구 후진국은 자국 선수들을 ‘수출’한 대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축구 구단이 점점 상업화 되고, 정보통신의 발달로 미디어가 중요해 지면서, 톱클래스 구단은 상품성을 유지하기 위해 경기 상대를 제한한다.
예전처럼 중소 도시의 구단이나, 하위권 팀들과 함께 뛰는 일은 사라진다.
이제 일류팀은 일류팀 하고만 경기하고, 이류팀은 이류팀 하고만 경기를 벌이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국가대표팀에 자국 선수만 넣도록 하는 FIFA의 규정은 ‘이단적’이다.
월드컵 때만 되면 제 아무리 뛰어난 선수라도 별 수 없이 자기 나라로 돌아가야만 한다.
축구후진국들은 해외 리그에서 활약하는 자국 선수들이 일시적으로 돌아오는 월드컵 기간에 비로소 이들이 쌓은 수준 높은 기술의 혜택을 받을 수 있게 된다.
브란코 밀라노비치는 FIFA의 이러한 규정을 “재분배적인 규정”이라고 부른다.
부자 구단들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FIFA는 자신들의 정책을 꿋꿋하게 고수하고 있다.
FIFA의 블래터 회장은 후진국의 재능 있는 어린 축구선수들을 싼값에 뽑아오는 부자 구단들을 “신식민주의자”라고 비판한다.
브란콘 밀라노비치는 세계화의 부작용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FIFA의 사례를 배울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월드컵 기간에 해외파 선수들이 고국에 돌아오듯이 모든 고급 두뇌 이민자들을 매 5년마다 1년씩 그들의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강제하자는 것이다.
장승규 기자 skjang@economy21.co.kr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