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장수기업, 세기를 뛰어넘은 성공
윌리엄 오하라 지음, 예지 펴냄, 1만9천700원
질문 하나로 출발해보자. 요즘 가장 잘 나가는 기업 하나를 다음 빈칸에 넣어보라. “00는 언제 업계에서 사라질까?” 불경스런 느낌이 들지도 모른다. 가장 힘 센 자의 사멸을 논하는 것은 어느 시대나 금기였으니까. 하지만 과연 그럴까.
미국에서 1900년에 상장한 회사 가운데 지금까지 남아있는 것은 GE 뿐이다. 지난 100년 간 일본의 100대 기업 평균수명은 약 30년, 한국은 23.8년이다. 이 기업들이 다음 세대에도 존재할 확률은 12%, 3세대로 가면 그중 3-4%만 생존한다. 한 기업이 수백 년을 버틴다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이 책은 시간의 시험을 견뎌내고 ‘기적’을 이뤄낸 장수기업들의 이야기이다.
먼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백제인 곤고 시게츠미(金剛重光, 한국명 유중광)가 일본에 사찰건축 전문회사 ‘콘고구미(金剛組)’를 세운 건 578년. 콘고구미는 오사카에 일본 최초의 절 사천왕사를 세웠다. 콘고구미의 건물들은 10만 채의 건물이 완파된 1995년 고베지진을 아무 손상 없이 견뎌냈다.
장수기업 전문가 윌리엄 오하라는 세계 최고(最古) 20개 기업을 통해 장수의 비의를 보여준다. 718년부터 47대가 이어오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여관 ‘호시료칸’(法師旅館)에서 보듯 이 회사들은 모두 가족기업이다.
하지만 가족일지라도 철저히 능력을 따져 경영에 참여시킨 것이 첫 특징. 600년을 이어온 포도주의 명가 ’마르께지 안티노리‘, 르네상스시대부터 총을 만든 ’베레따’(1526년 창업)처럼 주위 환경을 따라 빠르게 변화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도 공통점이다.
재무관리는 보수적이지만 무엇이든 자기 자본으로 추진하기 때문에 경쟁자를 이길 수 있는 대안이 있을 땐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두드러진 특징이다. 이제 빈칸에 남의 것 말고 당신의 회사나 조직의 이름을 넣어보라. 이 책에 쓰이진 않았지만 장수기업의 가장 큰 특징은 그 경영자들이 하루에도 몇 번씩 그렇게 자문한 것 아닐까.
정진욱 전문위원·북칼럼니스트 chung8888@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