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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금융감독 총체적 난맥상
[커런트]금융감독 총체적 난맥상
  • 활철기자
  • 승인 2006.07.0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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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담보 대출 중단’ 범인은 누구? 금감원 ‘지시’ 오락가락 … 은행·서민들만 ‘벙어리 냉가슴’ 금융감독기관의 주택담보 대출 과잉 규제 논란이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7월 들어 은행들이 서민층에 대한 대출 태도를 완화할 방침이지만, 넘쳐나는 실수요자들을 충당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사태를 두고 관치금융의 전형적 모습이라는 비판이 지속적으로 터져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고위 정치세력의 배후 개입설도 대두된다.
특히 일부 은행에 대한 특혜 의혹까지 불거져, 파장은 겉잡을 수없이 퍼져가고 있다.
이번 사태는 지난 달 15일 금융감독 기관이 시중은행들에 개인여신 리스크 관리 강화를 유도하는 지도공문을 발송하면서 시작됐다.
금융감독원이 은행들에 대한 대대적인 창구지도에 나선 것이 계기. 은행들은 가계여신의 주력 상품인 주택담보 대출을 사실상 중단했고, 돈줄이 막힌 고객들은 불만을 호소했다.
금융당국이 부랴부랴 “실수요자의 피해가 없도록 하겠다”며 진화에 나섰지만, 은행의 대출 태도를 돌려세우기가 쉽지 않다.
시중은행들이 금감원의 전례 없는 강경 규제에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구두지시, 윗선 개입했나 논란의 핵심은 감독기관이 이 과정에서 주택담보 대출의 총량을 제한하는 별도의 구두지시를 내렸는지 여부다.
금감원이 은행의 주 업무인 여신 총량을 직접 제한했다는 게 사실로 드러날 경우, 우월적 지위를 이용한 관치 행각은 명백해 진다.
금감원은 지도공문을 발송하긴 했지만, 구두지시는 없었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윤증현 원장까지 직접 나서 “(은행에) 총량을 제한한 사실이 전혀 없다“고 극구 부인했다.
시중은행들 역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일부 대형은행에서는 구두지시를 받은 적이 없다며 소리 높여 금감원의 주장에 힘을 보탠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관련 부서에 몇 번에 걸쳐 확인했지만, 공문 외 어떠한 구두지시도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뒷맛이 개운치 않다.
은행권 곳곳에서 금융당국의 직접 지시를 받았다는 관계자들의 증언이 터져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지시를 내린 당사자가 금감원 이상의 정부 고위층이었다는 얘기까지 들려온다.
이번 사태에 재경부와 청와대 등이 개입됐다는 배후설이 대두되는 까닭이다.
“주택담보 대출을 줄이라는 구두지시는 분명 있었다.
재경부와 청와대의 방침이라는 말도 전달받았다.
” 익명을 요구한 대형은행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그는 “다른 은행 임원급들에게는 정부 인사가 직접 전화를 걸어 이 같은 의사를 전달한 것으로 안다”고 덧붙였다.
윤증현 위원장이 국회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전적으로 내 책임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얘기다.
은행권에서는 사실상의 대출 취급 중단으로까지 이어진 이번 조치의 강도를 볼 때, 금감원이 단독으로 처리했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보고 있다.
특히 은행권의 리스크 관리 실태나 주택담보 대출 규제의 파장을 익히 알고 있는 금감원이 쉽게 이런 조치를 내리기 힘들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금융당국과 정부 간 사전 교감설이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은행권 관계자는 “서민들이 직접적으로 피해를 보게 될 이번 창구지도가 전방위적인 비판을 몰고 올 것을 (금감원이) 모를 리 없지 않느냐”며 “과당경쟁에 따른 부작용 우려만으로는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의혹의 눈길을 보냈다.
결국 금감원이 정부의 부동산 안정과 주식시장 부양 등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 총대를 멨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국민은행만 봐주기? 금감원의 그간 감독 태도를 봐도, 이번 규제가 지도공문만을 통해 진행됐다고 보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감독당국의 공문을 통한 영업 지도는 이례적인 일이 아니라, 거의 상시적으로 진행돼 왔기 때문이다.
특히 주택담보 대출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주기적으로 검사와 지도를 받아오던 부문이다.
이번 공문도 리스크 관리 강화와 부실화 대비라는 원론적 지적에 머물고 있다.
공문 자체만으로 신규 대출 중단으로까지 이어진 이번 사태를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IMF 이후 은행들이 여느 금융기관보다 리스크 관리에 주력하고 있다는 점은 감독기관이 더 잘 알고 있다”면서 “은행의 건전성 확보 차원에서 진행됐다기보다는 부동산에 묶여 있는 자금을 순환시키는 게 첫째 목표로 보인다”고 말했다.
실제로 은행들의 여신 건전성 지표는 나날이 개선되고 있다.
은행의 부실채권 비율은 2003년 2.6%, 2004년 1.9%, 올 3월말 1.2%까지 하락했다.
특히 주택담보 대출의 경우 가장 우량한 대출자산으로 분류된다.
부동산을 담보로 잡고 있어 부실화 가능성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주택담보 대출의 연체율은 대부분 1% 전후에 머물고 있고, 고정이하 여신비율도 1% 이하다.
특정 은행에 대한 형평성 문제도 또 다른 논란거리다.
우리, 신한 등이 사실상 신규대출을 중단하며 한껏 몸을 사린 데 비해, 국민은행 영업점에서는 주택담보 대출을 지속적으로 취급했다.
전처럼 적극적인 마케팅을 벌이진 않지만, 신규대출 중단으로까지 가는 사태는 발생하지 않았다.
실제로 금감원 공문 발송 이후에도 국민은행은 2천억원 정도의 실적을 올렸다.
1천억원을 밑돈 신한, 우리, 하나의 두세 배 수준이다.
국민은행 관계자는 “일부 은행이 대출을 사실상 중단하면서 고객들이 대거 우리 쪽으로 몰리는 것을 우려하기도 했다”면서 “타 은행과 보조를 맞추고 있지만, 상황이 좀 나은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국민은행 내부에서는 그동안 주택담보 대출과 관련, 금융감독 당국의 지시사항을 충실히 이행한 점이 인정됐기 때문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또 과도한 금리할인 경쟁에서도 한걸음 비껴나 있었던 점도 반영됐다는 설명이다.
다른 국민은행 관계자는 “일부 지점에서 전결 할인이나 우대 금리 등이 타 은행에 비해 낮아, 고객이탈을 야기한다는 불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득이 됐다”며 “그동안 LTV한도 등을 충실하게 이행해 금감원 조사에서 가장 모범적으로 평가받은 점도 인정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사태로 인해 돈줄이 막힌 실수요자들의 불만은 나날이 커지고 있다.
7월 들어 은행들이 주택담보 대출 물꼬를 조금씩 열고 있지만, 일제히 상승하고 있는 금리가 발목을 잡는다.
특히 본격적인 금리 인상기를 맞아 한번 오른 대출금리는 다시 떨어질 가능성이 적다.
은행권 관계자는 “그동안 과도한 경쟁에 따라 주택담보 대출 금리가 턱없이 낮았던 것은 사실이지만, 일시에 급격한 금리 변화가 있을 경우 가계 충격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금감원이 각 은행에 하달한 지도공문 내용

■최근 은행간 영업경쟁 심화에 대응한 리스크관리 철저 관련 지도사항(6월15일

□ 최근 은행 간 외형 확대 및 여수신 금리 경쟁 등이 심화되면서 은행 건전성 악화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고 있음. 적절한 리스크관리가 수반되지 않는 무리한 영업경쟁은 수익성 악화 및 신용손실 확대로 이어질 수 있으며, 경쟁심화 과정에서 나타나기 쉬운 주택담보 대출 등 특정부문으로의 자금 집중현상은 향후 거시경제 여건 악화시 은행 부실화뿐만 아니라 금융시스템 전체의 불안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음 □ 따라서 영업경쟁 심화에 따른 부작용 발생 방지를 위하여 다음 사항을 통보하오니 각 행에서는 이를 철저히 이행하시기 바람 ○ 주택담보 대출 규제사항의 준수 철저 ○ 최근 규모가 급증한 여신 등에 대한 개별 신용 리스크 관리 및 포트폴리오 차원의 리스크 관리 철저 ○ 외형 확대 및 단기 수익성 위주의 영업점 평가 지양 등 성과 관리체계의 합리화 ○ 신규 거래처 유치 및 점포 신설시 수익성 분석 철저 및 경영 건전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는 불합리한 여수신 금리 운용 억제 ○ 최근 영업경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리스크 요인에 대한 이사회(리스크관리위원회 포함)의 감시 및 대응체제 강화 ○ 환율, 주택가격, 유가, 금리 등 거시경제 변수 변동에 따른 위기상황 분석(stress test)의 정기적 실시(예: 분기 1회 이상) 및 비상시 대응계획(contingency plan) 수립 ○ 향후 부실 확대에 대비한 충당금 적립 등 내부 유보 강화 ○ 기타 대출모집인의 법규 준수 철저 (예: LTV 한도를 초과한 대출이 가능하다는 전단지 배포 금지) 등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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