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뱅의 도화선이 될 자본시장통합법의 윤곽이 드러나면서부터다.
재정경제부는 이달 20일까지 법안을 입법예고하고, 국무회의의결등을거쳐국회에제출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증권업, 자산운용업, 선물업에 대한 겸영화는 물론 은행, 보험 영역의 장벽까지 제거한다는 복안이다.
국내 증권사를 중심으로 금융기관의 대형화를 유도, 세계적 투자금융사(IB)를 육성해나가겠다는 것. 그러나 이러한 정부의 구상에 대해 여전히 희망과 우려의 시각이 공존한다.
증권업계 일부에서는 동북아 금융 허브에 걸 맞는대형IB 탄생의 길이 열렸다며 벌써부터 자축분위기가무르익고있다.
수년내자본시장 관련 금융업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명실공히‘한국판골드만삭스’가등장할 것이라는 꿈에 한껏 부풀어 있는 것. 반면무리한겸업에따른혼란, 업종별이해상충, 외국금융사의시장잠식등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금산분리 논란 재점화 이번에 공개된 자본시장통합법의 핵심은 금융 권역간 영역 파괴다.
이 법안은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사 등의 업무 범위를 대폭 확대, 상호 겸영을 허용하기로 했다.
투자금융사가 6가지(투자매매, 중개, 집합투자, 일임, 자문, 신탁)로 나눠진 투자 관련 업무를 모두 영위할 수 있도록 해 대형화, 겸업화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겠다는 것. 또 투자성(원본손실 가능성)이 있는 경우 ‘금융투자상품’으로 일원화하는 포괄주의를 도입, 상품 개발과 판매를 용이하게 했다.
이렇게 자본시장통합법이 구체화되면서금융기관들의 행보 또한 분주해졌다.
금융 산업 전체에 몰아닥칠 대규모 지각 변동을감지한 탓이다.
증권사, 자산운용사,은행,보험사 등 주요 금융기관들은 법안 도입에 따른 이해득실을 따지며, 생존을 위한 몸부림을 시작하고 있다.
자본시장통합법의 구상대로라면 국내 금융산업은 은행 중심의 구도를 탈피, 대형투자금융회사를 축으로 재편될공산이크다.
그핵심에투자금융부문의 상대적 우위를 점하고 있는 증권사들이 있는 것은 당연하다.
황건호 증권업협회 회장이“동북아 금융허브를 향한 매우 의미 있는 첫걸음”이라며 쌍수를 들어 환영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증권업계 내부에서도 이해관계는 복잡하기만 하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무장한 대형 증권사들과 체질의 한계로 고심하고 있는 중소형사들의 입장차가 대비되고 있는 것. 자본시장통합법의 최대 수혜자로 꼽히는대형 증권사들은 상대적 우위에 있는 투자금융 노하우와 자본력을 바탕으로 투자금융시대를 선도할 태세다.
반면 중소형 증권사들은 한치 앞을 예측하기 힘든 위기 상황에 빠졌다.
업무영역 확대로 단기적 수익성을보장받을수있겠지만, 언제든피인수합병 대상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위기감에 흥이나지않는다.
이들이앞다퉈자기자본확충 계획을 내놓으며 몸집불리기에 올인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금융권에서는 향후 중소형 증권사, 자산운용사, 선물사 등을 인수한 2~3개의 대형증권사들이금융지주회사체계를갖추고새로운 경쟁구도를 만들게 될 것으로 분석하고있다.
IMF 이후은행권을강타했던구조조정 폭풍이 조만간 증권업계에 몰아칠 것으로 판단하고 있는 것. 문제는 이러한 전망과 함께 금산분리 논란이 또 한번 불거지고있다는 점이다.
대기업 계열 증권사들이 최대 수혜를 입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산업자본의 금융지배에 대한 논쟁이 일고 있는 것. 이동걸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이“특정 업종과 특정 기업 또는 특정 기업집 단의 이해를 지나치게 대변하는 양상을 보이고있다“며정부와대립각을세운것도같 은 맥락이다.
향후 투자금융기관으로 변모한 대형 증권사들이 투자금융 업무와 은행₩보험 영역 까지아우르게되면, 대형은행을넘어선무소불위의 권한을 갖추게 된다.
이런 상황에서 대기업 계열의 특정 증권사가 M&A를 통해 덩치까지 키울 경우, 은행을 소유하지않더라도 금융지배의 효과를 낼 수 있다는것이다.
권영준 경희대 경제학부 교수는“증권사들이 증권금융의 지분 33%를 갖고 있는 상황에서, 엄밀히 말하면 금산분리 원칙에도 어긋난다”며“대기업계열의특정 증권사가증권금융의 최대주주로 올라설 수 있고 이는 곧 대기업의 금융지배를 의미한다”고밝혔다.
은행, 자산운용업계 반발 자본시장통합법 도입으로 사활의 기로에선 자산운용업계 역시 정부 정책의 제도적 허점을 파고들고 있다.
자산운용업계는 2인 이상의 사모펀드만을 인정한 조항이 펀드시장의 심각한 위축을 초래할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하고 있다.
총 수탁액의36% 가량을 차지하고 있는 단독사모펀드를 인정하지 않을 경우 대규모 자금인출 사태가 발생, 자산운용시장이 고사할 수도 있다는 것. 현재 자산운용 업계의 펀드 규모는 223조원으로 이중 단독사모펀드가 80조원대에 이르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자산운용 업계의 구조조정을 위해 의도적으로 논란이 돼 왔던 조항을 강행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대형 기관들은회계처리의편리함등으로단독사모펀드를 선호하고 있다”며“이들이 자본시장통합법 시행 후 공모펀드나 일임 자문으로 옮겨가지 않는 한 시장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또“정부가 정책적으로 업계의 구조조정을 유도하려는게 아닌지 의심스럽다”는 말도 덧붙였다.
은행권 역시 고유영역으로 분류되던 소액결제지급을 증권사에 허용하도록 한 법 안의 위험을 경고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행까지 지급결제제도를 반대하고 나서면서논란은 더욱 가중되고 있는 상황. 은행권에서는 지급결제 서비스를 효율성 차원에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안정성을 담보해야 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증권의 가치변동 위험으로 지급결제 시스템의 리스크를 담보하기 어렵다는 것. 반면 재경부는 결제대상금액을 고객예탁금(매매계좌 내 현금)으로 한정해 안정성을 높였다며 강행 의지를 굽히지 않고 있다.
그러나 증권사의 고객예탁금 계좌 활성화로 100조원 가량의 저축성 예금이 빠져나갈 위험에 처한 은행들로서는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다.
은행권 관계자는“자본시장통합법 시행에 대비해 파생상품과 투장금융업에 많은 준비를 해왔지만, 지급결제 부분은 포기하기 힘든 부분”이라며“은행권 전체가 공동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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