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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플] 나부터 시작한 구조조정으로 흑자전환
[피플] 나부터 시작한 구조조정으로 흑자전환
  • 진희정 기자
  • 승인 2006.08.0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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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력으로3년흑자경영김성호KBSi 사장 자본금의 3분의 2 잠식, 전환사채 48억원, 연간 매출 40억원에 영업 손실 12억원. 2003년 김성호 사장이 KBSi에 부임했을 때 받았던 초라한 성적표다.
하지만 김 사장은 강도 높은 구조조정과 회사 운영 시스템 변화로 불과 4개월 만에 적자 회사를 흑자로 바꾸어 놓았다.
이후 매년 흑자를 거두며 지속적인 성장을 거둬 온 이 회사는 지난해의 경우 200억원대 매출을 돌파했다.
김 사장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KBSi’는 2000년 4월 KBS와 KT가 합작해 설립한 회사다.
처음에는 ‘크레지오닷컴’으로 출발해 2002년 9월 회사 이름을 바꿨다.
김성호 사장은 2003년 6월 ‘KBSi’에 부임했다.
당시 회사는 난파해 좌초될 위기였다.
자본금 147억 원의 3분의 2가 넘게 잠식된 상태였다.
영업손실 12억원 회사 4개월만에 흑자로 1999년 KBS밀레니엄기획단장으로 재직했을 때, ‘KBSi’의 설립 주역이기도 했던 김 사장은 침몰 위기에 있는 회사를 그대로 둘 수는 없었다.
그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자신의 급여 30%를 자진 반납했고 업무추진비 50%를 스스로 삭감했다.
또한 비서실을 폐지했고, 전용 승용차와 운전기사를 없앴으며, 본인은 버스를 타고 출퇴근을 했다.
외부에서 손님이라도 오면 커피를 타는 일부터 복사에, 신문을 받아보는 일까지 사장인 자신의 몫이 됐다.
이렇게 제일 높은 자리의 CEO가 솔선수범을 하자, 직원들의 마음이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강도 높은 구조조정은 순조롭게 진행되어 후유증 없이 마무리되었다.
“저는 적자를 내는 CEO를 ‘죄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제 월급이나 회사에서 준 혜택은 모두 받아먹으면서, 직원들을 해고하거나 급여를 줄이는 구조조정을 실시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죠. 하지만 저부터 이렇게 시작하자 직원들도 잘 따라와 주었습니다.
” 그는 밤늦게까지 야근하는 것은 보통이었고 어떤 날은 밤을 꼬박 새고 다음날 새벽에야 집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임직원의 수도 줄이고 임원급 연봉도 깎았지만, 사원들의 급여는 삭감하지 않았다.
당시 그가 일하는 사장실은 간이 칸막이로 막아서 만든 1평 남짓한 공간이었다.
하지만 그는 사장실이 누추한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자기양심에 부끄러운 것이 없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열심히 일했다.
이렇게 4개월이 흘렀다.
그러자 드디어 월 단위 흑자를 낼 수 있었고, 2003년 4분기에는 분기 흑자를 기록했다.
김 사장은 스스로 “오프라인 세대이며 온라인은 모른다”고 말한다.
다만 그는 “경영은 직원이 하는 것이고 CEO는 이를 지원해야 한다.
”는 지론을 갖고 있다.
실무에 일일이 간섭하는 것이 아니라 큰 틀을 보고 제대로 갈 수 있도록 방향과 지침만을 제시해 준다는 얘기다.
KBSi의 성공은 공영방송 KBS의 자회사라는 우산 속이 아니라, 자력으로 방송 콘텐츠 전문 인터넷 기업으로 반듯하게 성장하고 있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자본잠식 상태에서 과감한 구조조정과 전 직원들의 단합된 노력으로 단기간에 흑자를 일궈낸 것이기 때문이다.
KBSi의 직원 수는 김 사장이 부임한 이후 1년 동안 161명에서 144명으로 11%가 감소했지만, 1인당 월매출은 400만원에서 800만원으로 두 배 정도 늘어나면서 생산성이 월등히 좋아졌다.
2005년의 경우 KBS에 75억 원의 재정 기여액을 기록했는데, 이는 불과 2년 전 25.9억 원의 3배에 가까운 액수다.
"KBSi가 KBS를 퇴직한 고위간부의 자리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더 이상 저 같은 개발세대가 주역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세대는 젊은 직원들이 발전할 수 있도록 돕는 가교 역할을 할 뿐입니다.
" 김 사장의 경영철학은 평균 연령 28세의 직원들이 모두 회사 대표처럼 일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또한 그가 1999년부터 2년 동안 KBS밀레니엄기획단 단장을 맡으면서 익혔던 방송시장의 미래에 대한 안목이 한몫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사장은 KBSi가 공영방송의 자회사라는 한계 때문에 국내 시장에서 유료 서비스 모델을 크게 성공시키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iMBC나 SBSi처럼 드라마 등의 방송물을 유료로 판매했을 때 시청자의 비난을 감당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는 생각을 바꿨다.
온라인 동영상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일본, 중국, 동남아 등으로 수출 문을 두드리고 인터넷과 달리 초기부터 유료 모델로 발전한 모바일 분야로 사업영역을 넓혀 왔다.
이런 전략에 의해 KBSi는 지난 3월 일본의 NTT와 방송물을 인터넷으로 공급하는 계약을 맺었고, 대만의 통신사와도 콘텐츠 공급 계약을 체결했다.
또한 방송 콘텐츠 판매의 다각화를 통해 올해에는 지난해보다 50% 이상 증가한 270억원 매출에 영업이익 30여억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목표는 인터넷 방송콘텐츠의 해외 수요 증가, B2B 모델 정착, 방송통신 융합으로 인한 새로운 판로 등장 등 사업 환경이 좋아지고 있어 어느 정도 달성 가능할 것으로 김 사장은 예상하고 있다.
다만 일본에서의 한류가 잦아들면서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이 또한 새로운 사업모델을 개발해 커버해 갈 계획이다.
지독한 회사 사랑 ‘더불어 한 길’ 김성호 사장은 감성적이면서도 우직하다.
그의 아호인 송인(松印)에서 알 수 있듯, 소나무처럼 잘 흔들리지 않는다.
자신의 천직으로 문학과 방송을 놓고 고민하다가 방송을 선택했고, KBS에 들어온 이후 36년 동안 오직 한 길만 걸어왔다.
그는 회사에 들어오면서 ‘일생동안 한 가지 업을 갖고 한 회사에서 일하자’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요즘처럼 회사의 이직률이 잦은 세대들이 들으면 이상한 얘기로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만큼 김 사장은 회사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있었다.
그는 초심을 읽지 않고 처음처럼, 순수하게 열정적으로 살아온 전형적인 지조형 한국인이다.
“위기는 기회입니다.
위기란 말 자체가 위험과 기회를 포함하고 있으니까요. 위험이 닥쳤을 때, 반전의 기회로 삼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 회사 직원들의 평균 연령은 만 30세도 안 됩니다.
이들은 회사 미래의 주역입니다.
젊은이들이 희망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회사, 자신의 일에서 비전을 느낄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습니다.
” 그의 사장실 한편에는 ‘더불어 한 길’이라는 낯익은 서체의 글씨가 걸려있다.
바로 성공회 대학교 신영복 교수의 글씨다.
신 교수의 부인은 한때 KBS에서 PD로 일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감명 깊게 읽었던 김 사장은 신 교수와의 교류는 없었지만, 함께 근무했던 그의 아내에게 부탁해 이 글씨를 받았다.
벌써 20년 정도 됐지만, 그는 항상 이 글씨를 보면서 한 회사에서, 함께 일하는 직원들과 이렇게 ‘더불어 한 길’로 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진희정 기자 jhj155@economy21.co.kr
*김성호 사장 약력

▲서강대학교 국문학과 졸업 ▲1970년 아나운서로 KBS 입사 ▲PD를 거쳐 기획조정실 정책담당 차장, 위성방송 부장, 원주방송 국장, 연수원 교수, 신경영기획단 방송부주간, 방송문화연구소장(부장급), KBS개혁기획단장, 밀레니엄기획단장, 경영개선추진단장 등 역임 ▲2003년 6월 KBSi 사장으로 취임 ▲서강대 언론대학원, 광운대 대학원 졸업. 현재 서울대, 가톨릭대, 광운대 등에서 ‘방송론’과 ‘언론사’ 강의 및 대학적십자사 온라인자문위원장 등을 맡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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