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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하청에 재하청 ‘한달 월급 100만원’
[스페셜리포트] 하청에 재하청 ‘한달 월급 100만원’
  • 이정환 기자
  • 승인 2006.08.2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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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SW 산업, 대안은 없나] 재벌 계열 SI 업체에 편중 … 공공부문 저가 출혈 경쟁도 심각 중소 SI(시스템 통합)업체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개발자 박아무개씨는 거래업체에 나갈 때 삼성SDS라고 찍힌 명함을 들고 다닌다.
거래업체에서는 당연히 그가 삼성SDS의 직원인 줄 안다.
그런데 사실 그의 회사는 삼성SDS의 하도급 업체다.
삼성SDS가 수주한 사업 가운데 일부를 하도급 받아 삼성SDS 직원인 것처럼 위장해 박씨 등을 내보내는 것이다.
"거의 같은 일을 하는데 연봉은 절반 밖에 안 되니까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죠. 그나마 우리는 나은 편입니다.
삼성에서 바로 하도급을 받으니까요. 우리 같은 회사에서 다시 하도급을 받은 회사들은 훨씬 더 열악하죠. 갑을 관계가 아니라 갑을병정무기까지 내려가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데서는 월급 100만원도 못 받고 일하는 개발자들도 많아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 SW업계에서는 이미 오래된 관행으로 굳어져 있다.
재벌 계열 대기업 SI업체들이 대형 사업을 싹쓸이하고 그 가운데 일부를 하도급 업체들에게 떼어주는 것이다.
일거리가 아쉬운 탓에 하도급 업체들은 낮은 가격이라도 일단 잡고 보자는 심정으로 뛰어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개발자들이 짊어지게 된다.
박씨의 회사는 10년 넘게 삼성전자와 직거래를 해왔는데 지난해부터 삼성SDS가 중간에 끼어들었다.
삼성전자가 SI사업을 삼성SDS에 밀어주면서 박씨의 회사는 삼성전자의 2차 하청업체로 전락했고 당연히 납품 단가도 크게 떨어졌다.
삼성SDS는 이런 방식으로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삼성그룹 계열사들 SI사업을 모두 싹쓸이하고 있다.
20배 이익, 삼성SDS의 성장 비결은? 삼성SDS의 실적은 정말 놀랍다.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3년 만에 무려 20배 가까이 뛰어올랐다.
2002년까지만 해도 이 회사는 매출 1조5천511억원에 영업이익 106억원으로 가까스로 흑자를 내는 정도였다.
영업이익 비율이 0.7%도 채 안 됐던 이 회사가 지난해에는 매출 1조8천752억원에 영업이익이 2천18억원까지 늘어났다.
매출액은 20% 정도 늘어났는데 영업이익이 20배 가까이 뛰어오른 것이다.
이 회사는 올해 상반기에 매출 9천524억원에 영업이익 1천182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46.4%나 늘어난 것이다.
영업이익 비율도 이제 12.4%나 된다.
지난 3년 동안 이 회사에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진주산업대학교 송원근 교수에 따르면 삼성SDS의 지난해 매출 1조8천752억원 가운데 1조2천567억원이 그룹 계열사들에서 나왔다.
내부거래 비중이 무려 67.0%에 이른다.
삼성SDS 뿐만 아니라 다른 그룹도 상황은 비슷하다.
LG그룹의 LGCNS도 내부거래 비중이 45.3%에 이른다.
SK그룹의 SKC&C도 이 비중이 68.3%나 된다.
이밖에도 포스코 계열사인 포스데이터가 67.3%, 신세계백화점 계열사인 신세계I&C와 동부그룹의 동부정보기술도 각각 62.1%와 85.9%로 내부거래 비중이 매우 높다.
이 비중은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정보통신부에 따르면 민간 SW시장에서 이런 내부거래가 차지하는 비중이 41%를 웃돈다.
문제는 이렇게 내부거래 비중이 높아지면서 박씨네 회사 같은 중소 SI업체들의 설 자리가 비좁아진다는 데 있다.
결국 재벌 계열사들 하청업체로 들어가거나 공공부문 사업에 목숨을 걸 수밖에 없는데 어디나 경쟁이 치열해서 납품 단가가 턱없이 낮아지게 된다.
그런 까닭에 중소 SI업체들은 출혈경쟁을 넘어 생존경쟁에 직면해 있다.
영업이익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동안 이 회사의 직원 수는 2001년 말 6천448명에서 올해 6월 말 7천93명으로 645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는 부분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SI사업은 기본적으로 사람 장사다.
직원 수가 거의 늘지 않았고 납품 단가도 내내 제자리걸음인데 영업이익이 20배나 늘어나기까지는 무슨 비결이 있었던 것일까. 직원 안 늘리고 하청업체만 늘려 삼성SDS는 주식시장에 공개돼 있지 않기 때문에 정확한 사업 내용을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다만 2004년 11월 전국IT노동조합연맹 조사에 따르면 삼성SDS의 하도급 업체 수가 1999년 220개에서 2003년에는 400개까지 늘어났다.
이 업체들 직원 수도 1천400명에서 2003년에는 4천명으로 3배 가까이 늘어났다.
결국 영업이익의 상당 부분이 하도급 업체들의 희생에서 나왔을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삼성SDS의 하도급 업체들 표본 조사에서는 이 기간 동안 실적이 크게 악화되거나 적자로 돌아선 기업들이 관찰되기도 했다.
삼성SDS는 매출을 늘리되 직원 수는 늘리지 않고 헐값에 하도급을 주는 방식으로 영업이익을 늘려왔다.
ⓒ임영무 기자
김주일 한국기술교육대학 교수가 2004년 11월 SW산업 종사자 1천5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2차 하도급의 경우 원청업체인 대기업이 전체 사업비용의 10~30%를 떼고 1차 하도급 업체가 3~15%, 결국 2차 하도급 업체에는 87~55%가 남는다.
2년 전보다 상황이 더욱 악화된 지금은 절반 이하로 떨어지는 경우도 많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 고현진 원장은 "대기업의 수직 계열화 구조만 해결돼도 우리나라 SW산업이 크게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고 원장은 "천문학적인 매출과 이익을 내는 재벌 그룹들이 왜 SI사업까지 손을 대느냐"면서 "중소기업에 시장을 넘겨줬으면 매출 1천억원 규모의 SI업체가 수십 개는 생겼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중소 SI업체들의 불만은 공공부문 사업에서도 터져 나온다.
정부의 조달 단가가 턱없이 낮게 책정돼 있다는 게 가장 큰 불만이다.
소프트웨어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업체가 책정한 표준 가격을 100으로 봤을 때 실수요 기관에 납품하는 가격은 표준 가격의 76%, 조달 단가에 따른 조달청 납품가격은 표준 가격의 70.3%로 나타났다.
조달 단가가 표준 가격보다 30% 가까이 싸게 공급된다는 이야기다.
여기에 여러 차례 하도급까지 거치면 표준 가격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게 된다.
재계약을 할 때마다 납품 가격을 깎는 것도 관례화돼 있다.
조달청을 거쳐 공공기관에 공급하는 자료관 솔루션의 경우 2003년 이래 4차례 재계약을 거치면서 납품 가격이 조달 단가에서 30%나 더 떨어지기도 했다.
공공부문까지 싹쓸이, 헐값에 하도급 그나마 공공부문에서도 대기업의 싹쓸이가 심각한 수준이다.
행정자치부의 전자정부 프로젝트에서도 굵직굵직한 사업은 모두 삼성SDS와 LGCNS, SKC&C 등 이른바 빅 3에게 돌아갔다.
가뜩이나 헐값인데 여러 차례 하도급을 거치고 나면 가격이 형편없이 떨어지게 된다.
들어가서 손해나 안보면 다행이라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대기업 입장에서는 계열사들이 밀어주니까 공공부문에서 출혈 경쟁을 감당할 만한 여력이 됩니다.
직접 사업을 맡지 않고 하도급을 주면 되니까 부담이 없을 거고요. 결국 중소 SI업체들만 죽어나는 거죠." 익명을 요구한 SI업체 부사장의 이야기다.
이 회사는 최근 1억8천만원 규모의 공공부문 사업을 대기업 SI업체에서 7천500만원에 하도급 받았다고 했다.
정통부가 내놓은 SW공공구매 혁신방안도 딱히 실효성을 거두지 못하고 있다.
발주 기관이 하도급 여부를 확인하고 관리하도록 하는 발주 관리지침을 내놓기도 했지만 업체들끼리 맺은 이면계약까지 확인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심지어 박씨의 경우처럼 가짜 명함까지 만들어 다니는데 무슨 수로 적발하겠는가. 소프트웨어진흥원 조사에 따르면 발주 기관이 하도급 여부를 알고 있는 경우가 11% 밖에 안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통부는 공공부문 SI사업의 50~60%가 하도급으로 나가고 도급 가격의 70% 수준에서 하도급 가격이 결정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결국 표준 가격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가격에 납품을 한다는 이야기다.
최저가 입찰제도 문제로 지적된다.
기술평가 항목이 있긴 하지만 변별력이 없어 대부분 가격평가 항목에 의존, 더 낮은 가격을 적어낸 업체가 낙찰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심지어 신생 업체들의 경우 수주 실적을 만들려고 1원에 입찰하는 사례도 있다.
발주 기관에서도 SI사업은 얼마든지 깎을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돼 있기도 하다.
유지보수 비용도 턱없이 낮게 책정돼 있어 문제로 지적된다.
예산편성 지침에는 유지보수비가 10~15%로 규정도 있는데 보통은 10% 미만에서 결정된다.
무상하자 보수기간도 규정에는 1년인데 관행에 따라 2년으로 잡는 경우가 많다.
그만큼 SI업체들, 특히 하도급 업체들의 비용 부담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해 8월 삼성SDS를 비롯해 9개 SI업체들의 불공정 하도급 거래를 적발했으나 경고나 시정명령에 그쳐 솜방망이 처벌을 내렸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3년 1월부터 2005년 3월까지 2년 남짓한 동안 적발 건수는 무려 7천302건이나 됐다.
공정위 적발 이후에도 이런 불공정 하도급 거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청와대 정보과학기술보좌관실에서도 최근 공공부문 SW 발주 관행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내놓기도 했다.
이 보고서에서는 "행정 편의와 담당자의 전문성 부족 때문에 대형 SI업체와 일괄 계약을 하고 있어 문제"라고 지적한 부분이 눈길을 끌었다.
중소 SI업체에는 직접 계약 기회가 원천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또한 심의 과정에서 예산이 삭감돼도 사업 규모를 조정하지 않아 SW 사업비가 원가보다 부족한 경우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소프트웨어진흥원에 따르면 예산 삭감 이후에도 사업 규모가 조정되지 않았던 경우가 63.2%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업무량이 늘었는데도 사업 규모가 조정되지 않았던 경우도 21.7%나 됐다.
공공기관 저가수주 악순환 끊어야 그러나 청와대 보고서는 문제는 잘 짚었으나 그동안 숱하게 나왔던 정부 대책처럼 구체적인 대안이 없다는 비판을 받았다.
대중소기업상생협회 조성구 회장은 "하도급법이나 부당경쟁방지법만 제대로 적용해도 중소 SI업체들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다"며 "제도는 있는데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안철수연구소의 안철수 소장이 2004년 미국 유학길에 오르면서 "빌 게이츠도 성공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독설을 쏟아낸 것도 이런 맥락에서 다시 이해할 수 있다.
안 소장은 "대기업 SI업체는 그룹 내 사업으로 손실을 보전하고 중소기업은 눈 먼 돈으로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면서 "공공기관이 저가 수주를 요구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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