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미국산 수입 쇠고기가 9월 중순이나 늦어도 10월초까지는 수입 재개되어 우리 추석상에 오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이에 대해 각계에선 광우병의 위험성을 경고하며 미국산 쇠고기의 국내 수입을 강력히 반대하고 나섰다.
하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는 미국산 쇠고기의 국내 수입 재개 문제는 우리 정부로서도 도저히 피할 수 없는 일이 됐다.
지난 2003년 12월 미국산 쇠고기 수입 금지 조치 이후 미국 측은 꾸준히 미국 쇠고기 수출 재개에 총력을 기울여 왔다.
FTA 타결을 앞둔 최근에는 더욱 적극적이며 공세적인 자세로 나오고 있다.
미 농무부 농업마케팅국(AMS)은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검역 절차를 강화하는 수출인증(EV) 프로그램을 개정했다.
프로그램은 올 4월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 측은 우리에게 현지 점검단을 파견하라고 압박했다.
여기에 발 맞춰 미국 상원의원 31명은 노무현 대통령에게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즉각 재개하라는 편지를 보냈다.
한국 정부가 수입 재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FTA 협상 자체가 무산될 수 있음을 경고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산 수입 쇠고기에 대한 우리 정부의 적절치 못한 대처 방식에 대해 소비자들의 불만의 목소리는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정부가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정당화하고 명분화 하는데 신경 쓸 것이 아니라 수입 재개 이후의 유통 관리 시스템을 보강하라는 지적이다.
원산지 표시제, 정육점에서는 공염불 그 중 가장 문제로 대두 되는 것은 수입 쇠고기가 국산으로 둔갑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현재 국내 유통 경로에서 소비자가 미국산 쇠고기를 미국산으로 알 수 있도록 해주는 제도적 장치는 허술하다.
비록 정육점과 기타 쇠고기 판매처 등에서 원산지 표시를 의무화한 ‘원산지 표시제’가 있긴 하다.
또 음식점의 ‘음식점 식육 원산지 표시제’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두 가지 제도 모두 허점을 내포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원산지 표시제의 경우 업소 측이 서류상으로만 원산지를 증명하면 그만이라는 점은 치명적인 허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원산지 표시제를 지켜야 할 우리나라의 식육 판매업소는 백화점, 슈퍼마켓, 할인매점, 농ㆍ축협 직매장, 한우 전문판매점, 브랜드육 전문점, 수입 쇠고기 전문판매점, 일반정육점 등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
여기서 ‘일반정육점’의 비율은 전체 판매업소의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일반정육점이 자체 점검 시스템을 갖춘 대형판매업체보다 원산지표시제 준수 의식이 낮음은 불 보듯 자명한 일이다.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은 지난 상반기 ‘원산지 표시제’의 위반사례 적발건수를 밝혔다.
관리원측의 보도자료에 의하면 돼지고기가 389건으로 1위, 쇠고기 191건으로 2위를 차지했다.
많은 업소에서 서류상으로만 원산지 증명을 하는 점을 악용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인해 원산지 표시제에 대한 소비자의 반응은 더욱 회의적이다.
경기도 일산구에 사는 이보라(35) 주부는 “백화점이나 대형 할인마트에서는 원산지 표시제를 어겨 적발되었다는 소식을 종종 접하는데 그렇다면 과연 시중의 정육점은 이런(서류상으로 증명하는 형태의 형식적인) 원산지 표시제를 얼마나 잘 지킬 것인지 의문이 든다”며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올해 6월 보건복지부가 발표한 자료에 개정안에 따르면 영업장 면적이 90평 이상인 음식점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육류의 원산지와 종류를 표시하도록 의무화 하고 있다.
여기서 첫 번째 문제는 이 제도가 올해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 재개 된 이후인 내년부터 시행된다는 것이다.
또 면적이 90평 이상인 중대형 음식점에 우선적으로 실시된다는 것이다.
90평 이하의 음식점은 표시제 대상에서 일단 제외된다는 점은 다수의 업소를 의식한 눈치 보기 행정의 하나로 짐작된다.
더구나 최근 서울YWCA 소비자정보센터가 전국 주부 및 직장인 3541명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이런 우려는 더욱 커진다.
이번 조사에서 쇠고기를 구입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으로 응답자의 28.7%가 ‘국내산 여부’라고 답했다.
국내산과 수입산을 식별하는 방법으로는 응답자의 절반 가량이 고기 색(33.4%)과 원산지 표시(28.5%)라고 밝혔다.
그러나 국내산과 수입산을 구별할 수 있다고 답한 소비자는 19.4%에 불과했다.
결국 원산지 표시제로 확인하는 방법을 제외하고 국산과 수입산을 구별할 수 있는 소비자는 10명 중 2명이 안 되는 것이다.
또한 이번에 수입 재개될 미국산 쇠고기의 경우 이미 수입되고 있는 호주산 쇠고기와 좀 더 세심하게 구별해야 한다는 일부 관계자의 지적도 나왔다.
미국산은 호주산처럼 목초를 먹여 키우는 방목이 아니라 곡류 등의 사료를 먹여 키우기 때문에 국내산 한우 못지않게 고기의 빛깔이 좋고 맛도 좋다는 것이 이들 관계자의 견해다.
국산 돼지고기에도 타격 줄 듯 서울 서초구에서 10년 넘게 쇠고기 전문 식당을 운영해온 이모씨는“미국산 소는 오로지 양질의 육질을 얻을 목적으로 방목이 아닌 축사 사육만으로 키워진다.
단백질이 많이 포함되어 맛도 호주산보다 월등하다”며 “미국산 먹다가 호주산(목초비육) 쇠고기를 먹으면 고기 맛이 맹탕이라는 말까지 나온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는 국내 축산 농가들에게도 시름을 안겨주고 있다.
특히 국내 양돈 농가들은 미국산 쇠고기 수입 재개가 국내 돼지고기 소비에 찬물을 끼얹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이 재개되면 현재 국내 유통 중인 호주 청정우와 대결을 위해서 저가정책을 펼칠 확률이 크다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양돈 농가는 국산 돼지고기로 둔갑한 수입 돼지고기와 싸우기도 벅찬 상황에서 미국산 쇠고기와의 가격 경쟁을 치러야 할 생각에 걱정이 태산이다.
그들은 향후 미국산 축산물의 거센 공격에서 국내 식탁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국가 정책적으로 ‘생산 이력제’가 실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생산 이력제란 구매한 축산물의 질병과 항생제 사용 정도 등 사육 과정과 생산자 연락처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이미 생산 이력제는 국내에서 일부 백화점 측이 유통 매장에 설치된 스크린이나 인터넷을 통해 축산물의 이력을 확인 하는 방식으로 운영 중에 있다.
류근원 기자 stara9@economy21.co.kr
저작권자 © 이코노미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