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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 ‘발톱 세운’그들 ‘발톱 무뎌진’그들
[스페셜리포트] ‘발톱 세운’그들 ‘발톱 무뎌진’그들
  • 이코노미21
  • 승인 2006.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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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족쇄 찬 재계 거물 현주소] 김윤규 칩거 중 서울 평통 부의장직 충실 상반기 중 4~5차례 강연 참석도 장치혁 강원도 펜션서‘와신상담’최태원 길 열어준 손길승은‘오리무중’ 기지개 펴는 거물들 김윤규 전 현대아산 부회장. 그는 대북사업의 전도사로 불린다.
‘ 왕회장’(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을 도와 대북사업의 초석을 세운 주인공이다.
그는현대가문의 충직한 신하였다.
‘ 왕회장’의 마지막 남은 가신이라는 말도 들었다.
그의 입지가 흔들린 것은 MH(정몽헌 전 현대아산 회장)의 사후부터. 김 전 부회장은 개인비리 의혹을 받고 롤러코스터를 탔다.
지난해 10월 부회장직을 박탈 당한데 이어 11월 등기이사에서도 해임되면서 사실상 퇴출됐다.
이를테면 사형선고를 받았던것. 이후 그는 공식석상에서 자취를 감췄다.
칩거였다.
김윤규‘북한’에 박용성‘해남’에 그렇다고 김 전 부회장이 활동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개인비리에 휘말리기 직전인 지난해 7월 임명된 서울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평통) 부의장직에 충실했다.
평통은 민주적 평화통일 달성에 필요한 제반 정책수립에 관해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그 자문에 응하기 위해 발족된 헌법기관이다.
총16개 지역협의회가 있고 각 협의회마다 부의장이있다.
부의장의임기는2년. 임명은의장이 직권으로 한다.
김 전부회장이 재직중인 서울 평통부의장의 역할은 25개 서울협의회 회장 모임을 주관하는 것이다.
협의회의 역할과 활동 방향을 논의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것도 그의 책무. 김 전 부회장은 올 상반기 중 25개 협의회가 개최하는 총 10여 차례의 강좌 중4~5차례 참석했다.
때론 인사말로 분위기를 띄우고 때론 남북경협에 관한 소신과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임학무 평통 담당관은“남북경협과 관련 김 전 부회장은 늘 적극적이고 열성적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런 그가 최근 침묵을 깨고 기지개를 펴고 있다.
지난 8월26일~29일까지 3박4일 일정으로 베이징을 거쳐 평양을 방문한 것. 애당초 귀뚜라미보일러가 함께 방북할 예정이었다.
귀뚜라미보일러가 대북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북측에 보낸 보일러의 운용실태를 확인할 참이었던것. 하지만 막판 귀뚜라미보일러의 불참으‘단독방북’모양새가 됐다.
김 전 부회장이 몸을 풀자 갖가지 억측이 나온다.
한편에선“대북사업 재개를 시작한게 아니냐”는 눈초리를 보낸다.
다른 한편에선“현대 아산이 아닌 또 다른 기업과 손을 잡았다”는 말도 나온다.
또 다른 업체로는 북측으로부터 수차례에 걸쳐 대북사업제의를 받은 롯데관광이 거론된다.
그 뿐 아니다.
최근 중견 부동산개발업체 유니콘종합개발이 북측과 개성공단 사업계약을 체결한 것을 둘러싸고도‘역할론’이 새어나온다.
김 전 부회장이‘입김’을 불어 넣은 게 아니냐는 것. 이에 대해 김 전 부회 장측은 침묵하고있다.
이렇다할 변명도 반박도 없다.
김 전 부회장의 행적을 잘 알고있는 (사)개성사랑 김규철 대표 역시“의중을 알 길이 없다”면서 고개를 갸우뚱했다.
다시금 남북경협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보이는김전부회장. 그의 일거수 일투족에 재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경제정글’로 묘사되는 재계. 이곳은‘피도 눈물도 없다.
나락으로 떨어지면 좀처럼 재기하기쉽지않다.
정상의 위치에 있을땐 투자자들이 넘쳐나지만 한번 쓰러지면 언제그랬냐는듯사라진다.
때문에 재기에 성공한 재계 거물급인사는 극히 드물다.
한때 대우그룹을 쥐락펴락했던 김우일 대주홀딩스 그룹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 대우그룹이 붕괴해도 나만은 살아남을 줄 알았다.
자신도 있었다.
그만큼 나를믿고 따르던 무리가 많았다.
그런데 대우그룹이망하자마자한결같이등을돌렸다.
한건의투자를받는것도쉬운일이아니었다.
재계가 무서운 곳이라는 사실을 새삼 느꼈다 ….” 장치혁 전 고합그룹 회장은 재기를 꿈꾸는 거물급 총수 중 한 명이다.
장 전 회장은한 때 국내 화섬업계의 최고봉으로 군림했던 주인공이다.
80년대 중반, 국내 화섬업계가 메가톤급 중국발(發) 섬유태풍에 직격타를 맞기 직전까지 그의 입지는 난공불락처럼 탄탄했다.
하지만‘고품질·저가전략’으로 무장한 중국 화섬업체들의 진격 앞에무릎을 꿇었다.
70년대 속칭‘해피론’을 개발, 업계에 선풍을 일으켰던 그였지만 속수무책이었다.
결국 장 전 회장은 악수(惡手)를 던졌다.
그룹 연명책의 일환으로 편법경영을택했고, 편법내부거래를 자행했다.
그결과 사법부의 엄한‘단죄’를 받았다.
서울고법 2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선고받은 것. 그러나 그도 한 때는‘참경영인’의 표상으로 불렸던 총수였다.
그가 단죄를 받은 사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내비친 재계 관계자들이 적지 않았던 까닭이다.
분신과 같았던 고합이 법정관리에 들어간 이후 장 전 회장은 강원도 원주에서 가족이 운영하고 있는 펜션에 일주일에 한 번꼴로 들러 심신을 위로했다.
주체못할 회환도 이곳에서 달랬다.
약 1만평에 달하는 부지위에 조성된 펜션은 이곳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한다.
재충전이 된 것일까. 장 전 회장이‘재기’를 위해 활동을 시작했다는 말이 들린다.
울릉도 심층수를 이용한 소금사업에 관여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왔다.
한때화섬업계의‘상징’으로 불리며 승승장구하다 비리 혐의에 휘말리면서 낙마한 장 전 회장. 그의무거운(?) 재기의 날갯짓에 재계의 촉각이 모아진다.
화섬업계 상징 장치혁 재기 날갯짓 전라남도 땅끝 마을 해남. 이곳은 두산그룹의 본산이다.
창업자인 고(故) 박승직씨가 사실상 두산그룹의 기틀을 만든 곳이다.
박씨는 청년시절(17세), 민영완 당시 해남현감의 보좌역이었다.
그가 연고가 없는 해남에 3년간 거주했던 이유다.
이곳에서 그는 지역 상인들과 교류하면서 사업에 눈을떴다고 한다.
박씨가 두산그룹의 모태인‘박승직 상점’을 연 곳은 물론 해남이 아닌서울 배오개(지금의 종로4가)다.
하지만 이상점을 여는데 사용한 종잣돈을 해남에서 마련했다는 게 두산그룹 한 관계자의 귀띔이다.
ⓒEconomy21
지난 8월말,‘ 형제의 난’이후 공식석상에서 모습을 감춘 박용성 전 두산그룹 회장이 해남을 찾았다.
그룹의‘뿌리’를찾기위해 지난 2004년 11월 시작된‘배오개에서 땅 끝까지’라는 역사기행의 마지막을 함께했던 것. 해남을 찾은 박 회장은“해남은 두산그룹 창업의 토대가 마련된 의미 있는 지역”이라면서“창업자의 초심을 살려‘글로벌 두산’의 미래를 설계하는 계기로 삼겠다”고 밝혔다.
이를 두고 호사가들은 박 회장의 경영 복귀가 빨라지는 게 아니냐고 말한다.
두산그룹의 본산을 찾은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두산그룹 관계자는 손사래를 친다.
가족행사에 참석한 것 이외 또 다른 포석은 전혀깔려 있지 않다고 항변한다.
실제 박 전 회장은 여전히 외출을 삼간다.
주말에 지인들을 만나는 것이 박 회장 일정의 전부다.
두산그룹에도 발길을 끊은 지 꽤 오래 됐다는게 두산그룹 한 관계자의말이다.
박 전 회장은 지난 6월말 서울고법 형사1부 심리로 열린 결심 공판에서 이렇게 말했다.
“남들이 다 부러워하는 집안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자랐으면서 사려 깊지 못한 행동으로 많은심려를 끼쳐 드린것 죄송하다.
두산그룹 임직원들에게 깊은상처를 준것이 마음을 무겁게 누르고있다.
심기일전해 다시 한번 국가와 사회에 기여할 수 있도록 간곡히 부탁을 드린다.
”반드시‘재기’하겠다는 뜻이 읽히는 최후 변론이다.
하지만 그가 넘어야 할 산은 높고 가파르다.
박 전 회장을 바라보는 시민단체의 눈초리는 여전히 날카롭다.
참여연대는 박전 회장 등 두산그룹 총수일가가 집행유예판결을 받은것에 대해 온정적판결이라고 못 박은 지 오래다.
두산그룹 일가의 비자금 조성 행위에 대해선 최저 법정형이 징역 5년 이상이라는 입장이다.
넘어야 할 산은 또 있다.
박 전회장이 경영에 복귀하면 두산그룹의 오랜 전통인‘가족경영’이 또 다시도 마위에 오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 전 회장이 어떤 모습으로 경영에 복귀할 지주목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칩거하고 있는 거물들
ⓒEconomy21
경제정글에선 욕심을 버려야명성을 유지할 수 있다.
예전의 금력(金力)을 갈망하면‘버림과 단절’을 또 다시 경험하기 마련이다.
경제정글에서 불명예스럽게 떠난 총수들 대부분이 재계와 발을 끊은 채 칩거생활을 마다치 않는 까닭이다.
손길승 전 SK그룹 회장은 샐러리맨의 신화다.
대졸 평사원 출신으로 5대그룹 총수에 오른 경제 정글의 기린아다.
그는 한때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정직함과 진솔함 그리고 회사에 대한 충직함 때문이었다.
그런 그도 낙후된 경제 현실 탓에 사법처리를 받는 뼈아픈 시련을 겪었다.
분식회계 혐의로 징역 3년을 선고받았던 것. 재판관도 존경한 손길승 침묵 그럼에도 그는 구치소 생활을 그 누구보다 충실하게 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잠 들때까지 군소리 한번, 불평 한번 늘어 놓은적 없다는게 구치소 한관계자의전언이다.
거물급 인사들은 수감 후 6개월이 지나면 인격파탄 현상이 일어나기 일쑤지만 그만은예외였다.
교도관들은 물론 재판관마저“존경할 만한 피고인”이라고 말했다.
그를 변호했던 조대현 헌법재판관(당시 법무법인화우변호사)의평도 다르지않다.
“ 손전회장 같은 사람 처음 봤다.
정말 강직하고 묵묵한 사람이다.
” 손 전 회장은 분식회계와 불법 정치자금 전달은 나쁜 재계의 관행이라는 점을 인정하고 있다.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연루된 점에 대해서도 회환의 뜻을 내비쳤다.
그렇다고 SK에 대해 섭섭한 감정을 가졌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는 늘 SK만 생각했고, 늘었다”면서“김 전 회장도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때 김 전 명예회장이 재기를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뒷말이 나돌았다.
하지만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올 초 쌍용과 공식 결별함으로써 재기의 발판을 잃어버렸기때문이다.
또 계열사 자산을 헐값으로 매입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재산을 늘린 혐의로 법정 실형을 받은것도 부담스런 게 사실이다.
성곡미술관은 쌍용그룹이 기업이윤의사회 환원을 위해 만들었다.
공교롭게도쌍용과쌍용의계열사를자신의 재산 증식을 위해 이용한 김전 회장은 바로 이곳에서 살고 있다.
과연 그가어떤 상념에 빠져 있을지 궁금하다.
SK의 미래를 걱정했다.
최태원 회장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는 게 조 재판관의 귀띔이다.
손 전 회장에겐 꿈이 있었다.
한-중-일동북아 경제동맹을 이뤄내고 싶어 했다.
하지만 비자금 사건에 연루된 후 SK를 떠나면서 꿈을 완전 접었다.
오매불망 소원이었지만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이유는 단 하나. 최 회장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지인들에 따르면 그는 여전히 최회장에게‘누’를 끼칠까 항상 행동을 조심한다.
말도 아낀다.
혹여사람들의눈에띌까좋아하는 등산마저 서울 인근으로 나갈 정도다.
SK와 관련된 것이라면 더더욱 조심한다.
최 회장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한‘손길승식 배려’다.
한 때 SK는 워커힐 호텔 별관에 손 전 회장의 사무실을 마련해줬다.
예우 차원이었다.
물론 최 회장의 지시가 있었다.
하지만이 사무실은 단 두 달 만에 폐쇄됐다.
정작 손전회장이 발길을 끊었기 때문이다.
이에대해 조 재판관은“손 전 회장은 SK가 최회장 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수차례 말했다”면서“그는SK와최회장을 위해 모든꿈을 접고 뒤로 물러날 사람”이라고 말했다.
이제는 모습을 보기 힘든 손 전 회장. 비록 불법 대선자금에 연루 돼‘비리경제인’이라는 주홍글씨가 새겨진 그이지만 뒤안길만큼은 아름답다.
광화문에 위치한 성곡미술관. 이곳은 쌍용그룹의 본산이다.
쌍용그룹 창업자인 고(故) 성곡 김성곤 선생의 생가터다.
그 호을따서 만든 성곡미술관은 지난 95년 만들었다.
김 전 회장은 지금 성곡 미술관의 3층에 거주한다.
하루에 꼭 한 번씩은 성곡 미술관 마당을 거닌다.
이곳에서 관람객들과 종종 대화를나누기도한다.
김전회장은문화사업에 유독 관심이 많다.
특히 장애인들에게 정성을 쏟기로 유명하다.
최근 성곡미술관은 대대적인 리모델링 공사를 했다.
천정을 높이고 3층 전시관을 폐쇄했다.
장애인들의 쉬운관람을 위해서다.
흥미롭게도 이아이디어는 김 전 회장이 냈다.
성곡미술관 신정아 학예연구실장은“김전 회장이 처음 장애인을 위한 리모델링 공사를 제의했을 때 깜짝 놀랐다”면서“누구도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장애인의 관람이 무려 2~3% 가까이늘었다”면서“김 전 회장도 만족스러워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한 때 김 전 명예회장이 재기를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뒷말이나 돌았다.
하지만 현재로선 불투명하다.
올 초 쌍용과 공식 결별함으로써 재기의 발판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또 계열사 자산을 헐값으로 매입하는 방법으로 자신의 재산을 늘린 혐의로 법정 실형을 받은것도 부담스런 게 사실이다.
성곡 미술관은 쌍용그룹이 기업이윤의사회 환원을 위해 만들었다.
공교롭게도 쌍용과 쌍용의 계열사를 자신의 재산 증식을 위해 이용한 김전 회장은 바로 이곳에서 살고 있다.
과연 그가 어떤 상념에 빠져 있을지 궁금하다.
비리 연루 경제인 복귀 비판 여론
ⓒEconomy21
지난 8·15 사면복권 대상자 명단에서 재벌 총수들이 제외됐다.
두산그룹 박전회장, 고합그룹 장 전 회장, SK 손 전 회장도 사면되지 못했다.
재계는 향후 경제 살리기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면서 큰 아쉬움을 내비쳤다.
한·그리스 비즈니스 포럼에 참석하고 있는 강신호 전경련 회장이 직접 나서“대통령이 계속 기업인들의 기를 살려줬으면 좋겠다”면서“지난 8·15 특별사면에서 기업인이 빠진 점에 대해 다시 한번 건의하겠다”고 말한 까닭이다.
재기를 위해 날개를 펴고 있는 이들에겐 더할나위 없이고마운 말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찮다.
“ 사면복권과 경제 살리기는 아무런 관계가 없으며 사면복권을 요구하는 것은 몰염치 한 행위”라는 비판까지 나옫다.
그만큼 이들이 차고있는‘족쇄’는 무겁고 단단하다.
‘ 비리경제인’이라는 족쇄를 찬 한 때 경제정글을 호령했던 일부 총수들. 그들의 목소리도 이제예전 같지 않은 것 같다.
이윤찬 기자 chan4877@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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