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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태동 주유산천기] 섬진강에 벚꽃이 필 때
[장태동 주유산천기] 섬진강에 벚꽃이 필 때
  • 장태동 전문기자·여행작가
  • 승인 2007.04.02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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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개장터에서 쌍계사에 이르는 벚꽃길 … 재첩도 강물 속에서 같이 핀다 봄의 거친 숨소리가 들린다.
이 땅 곳곳에서 새 생명을 피워내는 분주한 봄의 발걸음이 산과 들, 물가에 울려 퍼진다.
‘탕 탕 탕’ 총성처럼 울리는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계곡을 타고 지리산 자락으로 오른다.
화개동천의 절정은 모든 생명이 피어나는 봄이다.
그곳의 봄은 거칠면서 아름답다.
화개동천, 신선이 사는 세계 혹은 산과 물에 둘러싸인 경치 좋은 곳이란 뜻의 ‘동천’과 꽃이 핀다는 뜻의 ‘화개’가 만나 만들어진 말이 ‘화개동천’이다.
그러니까 이 말은 산과 물로 둘러싸인, 신선이 사는 마을에 꽃이 피어나 현실이 아닌 신선계를 만들어 낸다는 뜻이다.
자연이 만들어 낸 풍경을 두고 이처럼 ‘딱’ 어울리는 이름을 붙여 놓은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름 붙이기를 좋아 하는 사람들이 실제 보이는 경치보다 더 과장되게 이름을 붙이거나, 그 풍경은 볼만 하되 거기에 어울리지 않는 이름을 갖다 붙인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경우와 비교하지 않더라도 ‘화개동천’이란 이름은 마음을 움직이고 발길을 유혹하기에 충분하지 않는가. 이미 오래전부터 지리산 자락을 다녀본지라 화개동천을 경험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는데, 화개동천의 절정을 보지 못한 게 못내 아쉬워 대여섯 번의 발걸음 끝에 겨우 때를 맞추어 그곳에 도착하였다.
화개동천, 벚꽃의 절정 하동에서 구례로 이어지는 도로는 섬진강과 나란히 달린다.
그 길 가로수가 벚꽃나무다.
해마다 봄이 되면 어림잡아 100리 길에 벚꽃이 핀다.
꽃과 강이 어우러지는 도로의 풍경은 속도의 유혹을 잠재우고 오가는 사람들은 경치를 즐기는 여행자가 된다.
하지만 그곳이 화개동천은 아니다.
그 길을 달리다 보면 화개장터가 나오는데 거기부터 화개동천이 시작된다.
화개동천의 절정은 벚꽃이 피는 봄이다.
지리산에서 흘러 내려온 계곡물이 냇물을 이루어 섬진강으로 흘러든다.
4~5킬로미터의 그 물길을 거슬러 오르며 아름드리 벚꽃나무들이 일제히 꽃을 피운다.
흰색이 강해 분홍빛을 발산하는 벚꽃은 심해를 유영하는 형광의 생명체처럼 스스로 빛을 발산한다.
반짝이는 햇볕과 꽃의 빛이 어우러져 만드는 ‘꽃터널’,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빽빽하게 피어난 꽃천지 아래 서 보면 ‘화개동천’이란 말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다가온다.
늘어진 가지가 버스의 지붕에 닿는다.
버스가 지나간 자리 뒤에 생기는 진공의 공간으로 바람이 끌려간다.
그 바람에 가지에 붙은 벚꽃이 한꺼번에 떨어진다.
무리지어 떨어지는 꽃잎은 나비 떼의 군무다.
공중에서 나풀거리며 떨어지는 꽃잎마다 햇볕이 부서져 반짝인다.
나는 가만히 서 있는데 꽃잎이 자꾸만 내 얼굴에 떨어진다.
피어 있을 때 아름답지 않은 꽃은 없지만, 지는 모습이 아름다운 꽃은 벚꽃 하나다.
물기 마르기 전에 꽃잎 다 떨구는, 생(生)과 사(死)의 독한 마음이 없었다면 저렇게 아름답지는 않았으리라. 그 풍경 속에 매혹되어 천천히 걷거나 그 자리에 멈춰 선다.
꽃잎 띄운 막걸리 한 잔 꽃길을 걸어가다가 냇가로 내려가는 길을 만났다.
우리는 길을 벗어나 냇가로 내려갔다.
봄 냇물이 차가왔다.
냇물 바닥에서 올려 보는 꽃길의 풍경은 그 속에 있을 때와 또 달랐다.
찬 물에 발을 담그고 때 이른 ‘탁족’을 즐기며 주위를 천천히 둘러본다.
꽃그늘 아래 차밭이 푸르다.
곡우(24절기 중 6번째인 곡우는 봄의 마지막을 알리는 절기다.
이때가 차나무에서 첫 잎을 따는 시기와 비슷하다.
곡우에 가뭄이 들면 그해 땅이 마른다는 얘기가 있다)를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과 정성이 담긴 차밭이다.
이곳은 차가 처음 재배된 곳이기도 하다(쌍계사 입구 쯤 차를 처음 재배했음을 알리는 비석과 차나무가 있다). 차밭 건너편에는 이제 막 푸른 풀이 돋아난 들판이 층계를 이루어 펼쳐져 있다.
꽃과 냇물, 푸른 들판이 만들어 내는 풍경은 이 땅에서 일제히 생명을 피워내는 봄의 거칠고 푸른 숨소리를 담아내고 있었다.
냇가를 벗어나 꽃그늘 아래 차려진 간이주막을 찾았다.
도심의 일상이 정해 놓은 밥 먹는 시간은 이미 지났고, 꽃에 취해 떠돌던 발걸음에 배고픔도 잊고 있었는데, 꽃그늘 아래에서 ‘솔솔’ 피어나는 막걸리 향이 우리의 발걸음을 붙잡았던 것이다.
ⓒECONOMY21 사진
국수 한 사발에 막걸리 한 되를 시키고 우리는 걷느라 팍팍해진 다리를 두드리며 꽃길에 눈길을 두었다.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은 아름다움이다.
막걸리가 나왔고 우리는 한 사발 그득하게 잔을 채웠다.
바람 따라 날아든 꽃잎 한 장이 내 잔에 떨어졌다.
막걸리는 갑자기 화주(花酒)가 되었다.
어떤 막걸리집 주모가 이와 같이 눈치 빠르고, 어떤 술집 기생이 이보다 운치 있을 것이냐. 꽃향기를 맡았는지 아니면 막걸리 향을 따라 왔는지 벌 한 마리가 화주를 들이키는 내 코 앞에서 ‘윙윙’ 거린다.
녀석도 꽤나 급했나보다.
술잔에 온몸을 던져 빠져 버렸다.
꽃과 벌이 한 술잔에 담겼으니 나도 그것들처럼 한 잔 술에 담길 그 무엇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일었다.
물속에서 피는 꽃, 재첩 차를 돌려 섬진강가로 나갔다.
강물에 이는 은파금파의 만경에 눈길이 머문다.
섬진강 물결 위에 작은 배 하나 떠 있고 뱃머리에서 강바닥으로 무엇인가를 자꾸 담갔다 건저 올리는 사람 하나 있었다.
알고 보니 재첩을 잡는 것이었다.
ⓒECONOMY21 사진
사람이 직접 강에 들어가 허리를 구부리고 강바닥을 훑으며 재첩을 잡는 것이 아니라 배에서 기구를 사용해 강바닥 재첩을 건져 올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건저 올린 싱싱한 재첩을 손질해 손님상에 올리는 것이다.
햇살 부서지는 강과 배 위에서 재첩을 잡는 사람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보였던 그날 섬진강 풍경은 고단한 일상이라기보다는 낭만적인 풍경이었다.
재첩 우러난 뽀얀 국물과 벚꽃 색이 닮았다.
재첩 또한 벚꽃잎 모양과 닮았다.
이렇게 닮아 있는 재첩과 벚꽃이 섬진강을 따라 그 생태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길에는 꽃으로 강에는 재첩으로, 섬진강은 그렇게 강과 흙에서 모두 봄의 향기를 피워내고 있었던 것이다.
재첩국 맛은 그윽했다.
조개류에서 뿜어내는 그윽한 맛은 강바닥 삶을 산 재첩이 품고 있었던 강의 냄새이리라. 거기에 부추를 넣고 간을 맞춰 한 그릇 먹었다.
창밖으로 꽃비가 ‘후드득’ 떨어지고 나는 강의 벚꽃 재첩을 ‘후루룩’ 먹고 있다.
벚꽃 필 때 섬진강 물속에서는 재첩꽃이 핀다.
벚꽃 따라 꽃을 피운 재첩은 봄이 제철이다.
6월이 지나면 산란기를 맞는다.
재첩 맛은 섬진강 강바닥의 냄새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벚꽃 흐드러지게 피는 꽃그늘 아래 앉아 재첩국을 먹노라면 재첩에서 벚꽃향이 피어나는 것 같다.
화개동천의 절정, 벚꽃이 필 때쯤이면 섬진강 강바닥에도 재첩이 벚꽃처럼 절정으로 피어난다.
강산이 모두 꽃으로 피어나 절정을 맞을 때 누구라도 ‘화개동천’ 그 길에 서볼 일이다.
글·사진 장태동 전문기자·여행작가 jjcokr89@hotmail.com
*숙박

바로물가 여관 아래 지리산에서 흘러나온 물이 흐른다.
그래서 이름이 바로물가다.
1층에 식당이 있는데, 사정에 따라 영업을 하기도 하고 문을 닫기도 한다.
식당은 이 집 근처에도 있으니 여관식당이 문을 열지 않을 경우 근처 식당을 이용할 수 있다.
055-883-1985
*대중교통으로 가는길

서울강남고속터미널에서 하동까지 오전 9시30분, 오전 10시50분, 오후 1시30분, 오후 3시10분, 오후 4시30분, 오후 6시 30분. 하동에서 화개장터까지 오전 7시30분, 오전 8시에 있으며 오전 8시 이후로 1시간에 2대 꼴로 있음. 화개장터에 내려서 쌍계사 가는 길로 걸어가다 보면 개울가 도로에 벚꽃길이 이어진다.
*자가용으로 가는 길

서울 - 경부고속도로 - 대전 - 대전~통영 고속도로 - 함양 - 진주 - 하동IC 대전 - 대전~통영 고속도로 - 함양 - 진주 - 하동IC 광주 - 호남고속도로 - 순천분기점 - 남해고속도로 - 하동IC 대구 - 구마고속도로 - 현풍분기점 - 중부내륙고속도로(구마고속도로) - 마산분기점 - 남해고속도로 - 하동IC 부산 - 남해고속도로 - 진주 - 하동IC *남해고속도로 하동로IC 나와서 구례방향 19번 국도를 타고 가다가 화개장터 쪽으로 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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