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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 환율 지키려다 국민 혈세 말아 먹을라
[커런트] 환율 지키려다 국민 혈세 말아 먹을라
  • 이정환 기자
  • 승인 2006.09.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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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환 평형기금 논란] 재경부의 승산 없는 환율 지키기 … 달러값 폭락으로 10조원 이상 손실 내기도 "순진한 재정경제부 공무원들이 국제 금융시장에 뛰어들었다가 농락당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단순한 환율방어의 실수가 아니라 금융사고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실 임수강 보좌관의 이야기다.
심상정 의원은 2004년부터 외국환평형기금의 파생상품 거래를 추적해왔다.
9월 15일 국회 재정경제위원회에서는 외평기금 운용 내역을 놓고 비공개 보고와 질의가 진행됐다.
철저하게 비공개로 운영되는 이 기금의 내역이 국회에 보고된 것은 1967년 기금 설립 이후 4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외환 담당 공무원들이 모두 국회에 출석해 외환 업무가 마비됐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였다.
외평기금이란 달러화의 공급 과잉으로 환율이 불안정할 때 달러화를 사들이기 위해 마련한 기금을 말한다.
한국은행이 관리하고 재경부 장관이 긴급한 사태 등 필요하다고 인정할 경우에만 쓸 수 있다.
자금이 부족할 경우 외국환평형기금채권을 발행해 조달할 수 있고 손실이 나면 정부 예산 가운데 잉여금으로 메워주도록 돼 있다.
40년 만의 국회 보고, 얼마나 심각하길래. 이날 재경부가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외평기금의 적자가 4조6천357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환위기 직후 2천548억원에서 18배 이상 불어난 셈이다.
1967년 이후 누적적자는 17조8천300억원에 이른다.
올해 우리나라 정부 예산의 12.3%에 이르는 규모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미국은 사상 최대 규모로 불어난 무역적자와 경상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전략적으로 달러화 가치를 낮추고 있다.
상대적으로 적자 규모를 줄이고 미국 기업의 경쟁력도 높이겠다는 의도에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이에 맞서 환율을 지키기 위해 엄청난 규모의 세금을 쏟아부어가면서 달러화를 사들여왔다.
그 결과가 바로 산더미처럼 불어난 외환보유액이다.
외환보유액은 2002년 말 1천214억달러에서 지난해 말 2천103억달러까지 늘어났다.
그 과정에서 외평기금도 144억달러 규모에서 462억달러로 세 배 이상 늘어났다.
문제는 그렇게 엄청난 기금을 조성해 쏟아 붓고서도 결국 환율 안정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세계적으로 달러화 환율이 떨어지는데 버텨낼 재간이 없었기 탓이다.
외평기금의 손실은 기본적으로 외평채를 발행하는데 드는 비용이 외환보유액을 운용해 벌어들이는 수익에 크게 미치지 못하기 때문이다.
외환보유액의 상당부분은 미국 국채에 투자되는데 이를테면 연 5%의 비용으로 조성한 자금을 3%의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미국 정부에 빌려주는) 어처구니없는 상황도 벌어진다.
심상정 의원은 외평기금의 손실이 단순한 이자 차이에 따른 손실 수준을 크게 넘어선다고 지적한다.
2004년에는 역외선물환에 투자해 단기적으로 환율을 끌어올리려다 투기세력의 반격을 받으면서 환율이 폭락하는 바람에 10조원 이상의 손실을 내기도 했다.
임수강 보좌관은 "재경부가 외국계 대형 금융기관과 대규모 파생상품 거래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보가 새 나갔을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셈이죠. 국제 투기자본 입장에서는 환율을 끌어올려야 하는 우리나라 정부와 맞서 무조건 이기는 싸움을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겠죠. 우리 정부가 그만큼 아마추어로 놀았다는 이야기입니다.
"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겼다 역외선물환은 거래금액의 10%만 증거금으로 걸면 되기 때문에 작은 규모의 자금으로 달러화 수요를 늘려 환율을 안정시키는 효과가 있다.
그런데 만약 환율이 계속 떨어질 경우 원금을 모두 날릴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재경부의 이런 거래 내역과 전략이 국제 투기자본에게 고스한히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 만약 누구라도 당시 재경부와 반대 방향의 선물환에 투자하고 환율을 떨어뜨리는 데 성공하면 엄청난 이익을 챙길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재경부가 투자한 역외선물환은 400억달러 규모. 환율이 1천200원대에서 지난해 900원대로 떨어졌고, 역외선물환은 모두 3조원에 이르는 손실을 낸 것으로 추산된다.
게다가 재경부는 당시 거래물량의 절반 이상을 만기 연장해 아직까지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평균 거래가격으로 추정되는 1천250원에서 최근 950원 미만까지 300원 이상 환율이 떨어졌다는 걸 감안하면 앞으로도 최소 6조원 이상의 추가 손실이 예상된다.
잘못된 거래 한 건이 두고두고 손실을 안겨주고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윤건영 의원 등이 최근 외평기금의 운용 실태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청구하겠다고 나선 것과 관련해 재경부가 곤혹스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가뜩이나 기금의 운용 전략이 뻔히 노출돼 있는 상황에서 감사원 감사를 받게 되면 그야말로 발가벗고 국제 투기자본 앞에 나서게 된다는 이야기다.
재경부 입장에서는 선택의 여지가 거의 없다.
당장 선물환을 정리하자니 6조원 이상의 손실을 감당해야 하고 계속 들고 가자니 환율이 떨어지면서 손실이 더욱 늘어나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한은도 사상 최대의 적자로 허덕이고 있는 상황이다.
한은은 2004년 10년 만에 적자로 돌아선 이래 올해 상반기에만 1조4천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내년에는 세금을 쏟아 부어 추가로 적립금을 마련해야 한다.
외환보유액이 늘어나고 통화량이 늘어나고 통화안정증권 발행이 늘어나면서 이자부담도 만만치 않게 됐다.
달러화 약세가 계속되는 상황에서 재경부와 한은은 궁지로 내몰리고 있다.
윤 의원은 "지금이라도 적정한 중장기 계획을 세워 정부 출연을 강제하는 등 외평기금의 누적적자를 줄이는 노력을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정환 기자 cool@economy21.co.kr

2270억달러, 세계 4위

외환보유액 지나치게 많아 탈


외환보유액은 얼마면 적당할까. 8월 말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은 2천270억달러에 이른다.
9월 14일 한국은행 주최로 열린 포럼에서 로렌스 서머스 하버드대학 교수는 "외환보유액은 수입액의 3~6개월분이면 충분하고 국제 자본의 움직임을 감안하더라도 1년 미만의 단기외채 정도면 적당하다"고 지적했다.
월 수입액이 250억달러 수준이기 때문에 6개월 수입액은 1천500억달러 정도, 1년 미만의 단기 외채는 지난 3월 말 기준 744억달러 밖에 안 된다.
결국 외환보유액이 적게는 700억달러에서 많게는 1500억달러 이상 넘쳐나는 상황이라는 이야기다.
서머스 교수는 외환보유액을 세계적 불균형의 관점에서 설명해 눈길을 끌었다.
지난해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는 8천50억달러 규모.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 1천530억달러와 산유국의 3천280억달러, 중국의 1천400억달러, 아시아 신흥국의 680억달러를 모두 더하면 얼추 맞아 떨어진다.
서머스 교수는 "가난한 나라들에서 부자 나라로 돈이 흘러들어간다는 것은 국제 금융시장의 아이러니"라며 "특히 신흥 시장국의 외환보유액 운용이 국제 금융시장의 흐름을 좌우할 정도로 커졌다"고 지적했다.
121개 나라들의 초과 외환보유액은 2조달러 규모, GDP의 19%에 이를 정도다.
서머스 교수는 "과도한 외환보유액도 문제지만 대부분 개도국 중앙은행의 외환보유액 운용수익률이 제로에 가깝다"며 "적정 수준 이상의 외환을 보유하는 데 따른 기회비용이 무려 신흥시장국들의 경우 국내총생산(GDP)의 1%에 이른다"고 덧붙였다.
외환보유액을 수익성 낮은 미국 국채에 투자하는 것은 범죄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한 부분도 눈길을 끌었다.
로렌스 교수는 "외환보유의 수익률을 5%만 늘려도 GDP가 1% 이상 늘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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