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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당신의 가정엔 폭발물이 몇 개?
[이슈] 당신의 가정엔 폭발물이 몇 개?
  • 황철 기자
  • 승인 2006.09.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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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전식 리튬 이온 배터리 잇딴 발화 … 국산 노트북, 로봇청소기 등도 ‘위험’ 최근 전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델 노트북 폭발사고. 이 사건은 제품 410만대 리콜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불렀고, 해당 기업 델과 소니(배터리 제공업체)사 명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입혔다.
국내에서도 매년 휴대전화 폭발이 잇따라 사용자들이 불안에 떨기도 했다.
모두 충전식 배터리로 사용되고 있는 리튬이온 전지가 화근이다.
그러나 관련 업계, 학계, 정부의 대처는 안일하기만 하다.
어느 곳에서도 속 시원한 해법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
리튬이온 전지 안전성에 대한 공론화를 주도한 사례도 찾아보기 힘들다.
차세대 산업 육성과 상업성이라는 미명 아래 위험성 경고나 대책 마련에 소극적인 것이다.
2차 전지 시장(충전 가능 전지)의 혁명이라 불리는 리튬이온 전지가 세상에 등장한 지 15년여가 흘렀지만, 안전성에 대한 갖가지 논란이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리튬이온의 태생적 한계 전문가들은 리튬이온 전지 폭발 위험이 비단 노트북, 휴대폰에만 있지 않다고 경고한다.
로봇청소기, 카메라, PDA 등 충전식 배터리를 사용하는 생활 가전제품 대부분에서 위험성은 상존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언제든 델 노트북 폭발과 같은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일례로 인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국내 로봇청소기의 경우, 최근 생산된 제품을 제외하면 대부분 소니사의 리튬이온 전지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로봇청소기는 휴대폰이나 노트북보다 수배에 달하는 대용량 배터리를 사용하고 있어, 위기 발생시 위험성이 더욱 크다.
익명을 요구한 전지 업체 한 관계자는 “우리나라가 리튬이온 전지 개발국인 일본의 기술력을 많이 추격했다고 하지만, 안전성 부분에서 특별히 뛰어나다고 보기 힘들다”면서 “특히 기존 국내 가전제품들은 폭발을 일으킨 소니사의 배터리를 사용한 것이 상당수여서 문제의 소지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 리튬이온 전지의 안전성을 위협하는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리튬이온의 태동과 역사는 그 원인과 한계를 고스란히 집약하고 있다.
리튬이온 배터리는 1991년 2차 전지 시장의 후발주자였던 소니 그룹이 개발했다.
당시 소니 그룹은 자신들의 강점인 전자 부분의 노하우를 화학 분야에 적용, 리튬이온 전지의 상용화에 성공한다.
리튬이온 전지는 기존 니카드(Ni-Cd)나 니켈수소(Ni-Mh) 전지에 비해, 경제성과 효율성 측면에서 혁신적 개가를 올렸다는 평을 받았다.
동일 무게 대비 1.5~3배에 달하는 용량을 확보했고, 수명 또한 몇 배나 길기 때문이다.
노트북, 캠코더, 휴대전화 등 소용량 기기에 사용하기 적합한 구조. 소니 에너지텍은 이 같은 성과로 산요, 도시바가 군림하고 있는 세계 2차 전지 시장의 가장 강력한 다크호스로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15년여가 흐른 지금 델, 애플 등 세계적 컴퓨터 회사의 노트북이 잇따라 폭발하는 사고가 터졌다.
공교롭게도 이 제품들은 리튬이온 전지에 관한 한 가장 오랜 노하우를 보유한 소니사의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었다.
이 같은 역사적 사실은 리튬이온 전지의 태생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소니 그룹은 리튬이온 전지 개발 당시만 해도 화학 분야에서 집약된 기술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러나 소니는 자신들의 핵심 사업인 전자 분야의 기술을 응용해 리튬이온 전지의 화학적 위험성을 봉쇄했다.
리튬이온 전지의 가장 큰 단점은 핵심 재료인 전해액의 휘발성이 매우 강하다는 것이다.
니카드나, 니켈 수소 전지의 경우 전해액으로 물과 흡사한 알칼리 수용액이 사용된 반면, 리튬이온은 액체 상태의 가연성 유기 용매가 쓰인다.
최근 유기용매를 액체 상태에서 고체 상태로 전환한 리튬폴리머 전지가 등장했지만 발화 시간을 지연시켜 위험성을 줄였을 뿐, 근본적인 한계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리튬이온 전지는 또 경량화를 위해 양극·음극 재료로 각각 금속산화물(리튬코발트산화물, 리튬망간 산화물)과 탄소(카본)를 사용하고 있다.
이들 재료는 기존 전지에 사용되는 니켈(+), 카드늄(-), 수소흡장합금(-)에 비해 열적으로 대단히 불안정한 구조를 갖고 있다.
리튬이온은 전지의 핵심 구성인 전해액, 양극·음극 재료 모두에서 발화와 폭발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이러한 위험성을 상쇄하기 위한 것이 전지 안에 내장된 보호회로다.
화학적 위험을 전자적 기법으로 제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전자회로로 이러한 위험성을 100% 제거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내외부 조건이 변하면, 보호회로의 오작동이나 자체 결함 등으로 언제든 델 노트북 폭발과 같은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전지 관련 연구소 한 관계자는 “기업들의 경영이 걸린 문제라 2차 전지의 안전성 부분은 언급하기 쉽지 않은 문제”라고 전제한 뒤 “리튬이온 전지의 위험성을 전자적으로 제어한다고 하지만, 다양한 변수에 의해 내외부 조건들이 악화될 수 있다.
이 전지는 생산, 운송, 사용 단계 모두에서 위험성을 안고 있다”고 밝혔다.
이 연구원이 첫 번째로 지적한 문제는 리튬이온 전지의 전기적 위험성이다.
과충전, 과방전 상태에 노출되면 폭발이나 고장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리튬이온 전지에 사용되는 양·음극 재료가 충전 상태에서 열적으로 대단히 취약해지기 때문이다.
환경적으로도 고온 상태에 노출되거나 오염 물질에 접촉하면 안전을 위협할 수 있다.
사용 단계에서 차량 속에 넣어둔 휴대폰이 폭발하거나 부주의로 물에 빠트려 사용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최근 노트북 폭발도 CPU 등의 온도 상승에 따른 사고로 의심할 수 있다.
리튬이온 전지는 150~200도 이상의 고온 상태에 이르면 스스로 폭발한다.
국내 안전 기준 '유명무실' 생산이나 운송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외부 충격도 위험성을 가중시킨다.
리튬이온 전지는 앞서 언급한 태생적 한계로 외부 충격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면을 보인다.
제품 포장, 트럭 운송, 배송 등의 과정에서 배터리에 심각한 충격을 입힐 수 있다.
이 같은 면은 생산단계에서 안전성을 충분히 검증받은 제품이라도 2차적 결함을 유발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업계 한 관계자는 “리튬이온 전지가 위험에 노출되는 경우의 수는 무수히 많다”면서 “수익성이나 효용성 측면에서 큰 장점을 갖고 있지만, 그만큼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느냐는 게 의문”이라고 밝혔다.
또 “해외 선진국들이 이 전지 생산을 기피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라고 전했다.
실제로 리튬이온 전지 시장은 한·중·일 삼국이 주도하고 있다.
소니를 필두로 한 일본 회사들이 선두권을 달리고 있고, 국내에서 삼성SDI, LG화학 등이 맹추격하고 있다.
미국, 유럽 등에서도 생산업체가 있긴 하지만, 소규모 벤처사가 있을 뿐이다.
세계 2차 전지 시장은 기술력이나 점유율이 떨어지는 중국을 제외하면, 일본과 한국의 각축전 양상을 띠고 있는 것이다.
그만큼 국내에서도 2차 전지 산업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러나 차세대 육성 산업에 대한 기대감은 왜곡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성장성과 상업성이라는 논리 속에 사용자 안전에 대한 부분은 외면되기 일쑤다.
리튬이온 전지의 폭발 사고가 잇따라도 제대로 된 공론화 과정을 거친 적조차 없다.
기업들의 자체 연구나 폐쇄적으로 이뤄지는 전문가 집단들 간의 교류에 의존할 뿐이다.
심지어 국내 안전 기준이나 인증 제도가 정부의 방관과 생산업체들의 외면으로 유명무실화되는 일까지 벌어진다.
추가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는 기업들의 불만과 전지산업 위축을 우려하는 정부 입장이 맞아떨어진 것이다.
국내 기업들은 버젓이 국내에 관련 제도가 있음에도 미국 UL 안전성 규격에 인증을 맡기고 있다.
학계 한 관계자는 “제대로 된 리튬이온 전지 회사조차 없는 미국에서 안전성을 인증 받는다는 자체가 국가 간 호혜주의에 어긋난다”면서 “정부와 기업 모두 비용 문제와 상업적 목적을 두고 근시안적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비판했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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