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 부활이냐 몰락이냐
프랑크 쉬르마허 지음, 나무생각 펴냄, 1만2천원
‘1973년 8월 영국 섬머랜드 호텔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당시 약 3천명의 사람들이 휴가를 즐기고 있었는데 대부분 친구나 가족과 함께 온 사람들이었다. 불이 나자 사건 현장에 도착한 BBC 카메라 팀은 엄청난 속도로 번져가는 불길과 그 사이로 달아나고 있는 사람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사건이 종료되자 화재의 피해 규모가 드러났는데 최소한 사망자가 51명, 부상자는 400명 정도 되었다.
몇 년 후 심리학자 조나단 사임이 재미있는 사실을 밝혀냈다. 사람들은 화재 현장에서 있었던 사람들이 공포로 인해 방향을 잃고 허둥거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흩어져 혼자 싸우거나 더 강한 자가 살아남았을 거라고, 가장 빠른 길을 찾아 즉각 탈출을 시도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화재가 발생하자 가족들은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 오히려 순식간에 뭉쳐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고 함께 도망치기 위해 사력을 다 했다. 반면 친구끼리 온 사람들은ㄴ 전혀 그런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가족의 67%가 함께 움직였지만 친구들은 불과 25%만이 서로를 찾았다. ’
지은이가 책에서 밝힌 실제 있었던 사건이다. 가족의 힘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지 적나라하게 드러난 예다. 세계 최고의 저출산율을 보이고 있는 우리 입장에서 가족의 의미가 점점 사라지고 있는 마당에 가족의 힘이라니 실감이 나지 않는다. 남들 보다 자식을 더 많이 낳는 것을 손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옳은 일인가. 지은이는 아이들이 적은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은 커서 아이를 적게 낳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단순히 인구 감소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류의 위기를 예견한 책이다. 사회적 비용을 줄이기 위해 ‘둘만 낳아 잘 기르자’던 구호는 이제 우리를 가족이 없는 개인으로 만들고 있다. 집집마다 하나밖에 없는 아이들. 이제 이 아이들은 누가 지켜줄 것인가. 책장을 넘길 때마다 등골이 서늘하다.
이재현 기자 yjh9208@economy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