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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태풍’ 속 돌파구 마련 부심 ⑧
[커버스토리] ‘태풍’ 속 돌파구 마련 부심 ⑧
  • 김은지 기자
  • 승인 2007.04.0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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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FTA의 블랙홀] - 나제약씨의 FTA뜯어보기<제약업계> 제네릭 · 개량 신약 중소제약사 도산 위기 … 구조조정 없으면 치명타 국내 중소 제약사 개발담당 나제약(가명) 부장은 “요즘처럼 힘든 때가 없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한미 FTA 협상 타결 이후 제네릭 약품(오리지널 신약을 복제한 약품) 개발에 제동이 걸리면서 회사 사정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동료들이 속속 떠나고 대형 제약사와의 M&A설까지 불거져 나왔다.
나 부장의 회사뿐 아니라 제네릭 약품이나 신약을 일부 변형한 개량 신약에 주력하던 중소 제약사들은 도산 위기에 처했다.
제네릭 약품의 조기시장 접근이 차단되면서 국내 제약사의 손실액 규모는 3조~5조원으로 추산된다.
9천여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란 제약협회의 분석도 있었다.
나 부장은 “체감실업률은 더 높다”며 “‘제2의 IMF’가 불어 닥쳤다”고 한숨지었다.
지금까지는 원개발자(다국적 제약사)가 만든 안전성, 유효성 자료를 원용해 제네릭 약품이나 개량신약 허가를 쉽게 받을 수 있었지만 다국적 제약사의 신약 임상실험 자료에 대한 독점권이 허용되면서 출시가 일정기간(2년~5년) 제한됐다.
협상이 타결된 이후 의약품 내수시장에서 국내 제약사와 외국제약사 비율이 7대 3에서 3대 7로 역전되었다는 게 일반적 관측이다.
신약의 특성상 출시가 1~2년만 늦춰져도 매출의 5~10%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협상 타결 당시, 국내 의약품시장에서 제네릭 약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매출액 기준으로 49%, 수량 기준으로는 69%에 달했다.
오리지널 신약과 약효는 같되, 일부 화학 구조를 변경시켜 만든 개량 신약시장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신약보다 20~30% 싼 가격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였던 개량 신약시장은 국내 제약사들이 앞 다퉈 뛰어들었던 분야였던 만큼 더 타격이 심했다는 게 나 부장의 설명이다.
개량 신약 시판이 어려워지면서 소비자들의 부담도 더 커지게 됐다.
매일 아침 혈압약을 먹는 나 부장의 부인도 이전보다 250원이나 더 비싼 화이자의 노바스크로 바꿨다.
한 알에 300원하던 국내 제약사의 복제약이 더 이상 시판되지 않아서다.
한편, 수익구조 다변화와 독자적 신약개발에 앞장서왔던 상위 제약사들은 오히려 미국 시장에 뛰어들 호재로 보고 있다.
실제 생산 설비 및 제네릭 의약품의 한미 간 상호인정 조항으로 의약품 수출이 10~20% 정도 신장했다.
상위 제약사들은 M&A를 통한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다.
연구 개발비를 다국적 제약사와 동등한 수준인 15~20%까지 끌어 올려 미국 시장 지배력을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이에 대해 나 부장은 “다국적 제약사와 경쟁하려면 최소한 연매출이 1조원은 넘어야 ‘게임이 된다’는 소린데, 중소 제약사들은 더욱 입지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며 “제약업계의 양극화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2006년 당시 국내 제약시장은 10조원 규모로, 이 중 41개의 제약회사가 절반(4조9209억원)을 차지했지만 이젠 소수의 상위제약사로 흡수되는 분위기라고 나 부장은 귀띔했다.
“국내 제약사들의 뼈를 깎는 구조조정과 성공불융자제도(신약개발이 성공하면 융자금을 갚는 제도) 등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국내 제약업계는 회생할 수 없을 것”이란 나 부장의 말은 제약업계가 처한 절박한 ‘현주소’였다.
김은지 기자 guruej@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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