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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 은행권 전자가계부는‘속빈 강정’
[커런트] 은행권 전자가계부는‘속빈 강정’
  • 황철 기자
  • 승인 2006.10.3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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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좌통합 서비스의 허와 실] 호응도 저조, 사업 축소·철수‘속출’…절차 복잡, 정보유출 가능성도 은행권의 전자 가계부 서비스가 속빈 강정으로 전락하고 있다.
편의성과 효용성을 앞세워 최고의 금융재테크 활용 수단으로 부각했지만, 역설적이게도 까다로운 이용절차와 보안 문제로 고객에게 외면받기 일쑤다.
여기에 감독당국의 전자 금융 보안 강화 방침은 인터넷 가계부의 핵심 기능인 계좌통합 서비스 활성화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은행 입장에서도 계좌통합 서비스는 ‘뜨거운 감자’다.
일부 은행은 인터넷 가계부 기능을 축소하거나, 아예 사업을 접었다.
막대한 서비스 투자비용에 비해 이용자 수가 저조한 게 가장 큰 이유다.
사고 발생 시에도 은행, 대행업체, 고객 간 책임 소재가 명확하지 않아 분쟁 소지가 크다.
은행권의 전자 가계부는 은행, 증권, 카드사에 나눠진 금융자산을 한 곳에서 관리할 수 있다는 장점으로 높은 관심을 모았다.
각종 계좌 입출금 현황과 카드 사용 내역 등을 손쉽게 조회할 수 있으니, 인터넷 뱅킹 사용자들에게는 반가운 소식이다.
은행에게도 ‘뜨거운 감자’ 은행들은 수년 전부터 앞 다퉈 인터넷 가계부 서비스를 무료로 공급하기 시작했고, 입력된 금융정보를 바탕으로 자산 동향 분석, 재테크 방법을 제시하기도 했다.
금융권 외부에서도 계좌통합 전문 업체들이 속속 생겨났고, 주요 포털 사이트 역시 동일 기능을 제공해 왔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전자 가계부 서비스는 은행들의 골칫거리로 전락했다.
뛰어난 효용성을 앞세웠지만, 고객들의 호응도가 기대만큼 크지 않기 때문이다.
실사용자는 은행마다 수천 명에서 1만명 정도가 고작이다.
전체 인터넷뱅킹 이용자를 500만명 정도로 볼 때, 극소수에 지나지 않는다.
이렇게 은행들의 전자 가계부가 외면 받고 있는 것은 핵심 기능인 계좌통합 서비스 이용 절차가 지나치게 까다롭기 때문이다.
계좌통합 서비스는 은행, 증권, 카드 등 금융회사들의 계좌정보 조회, 각종 이체 서비스, 상품에 대한 정보 등을 통합·관리하는 기능이다.
가계부를 이용하기 위해서는 조회할 계좌를 만든 은행들에서 일일이 인터넷 뱅킹을 신청해야 한다.
증권사, 종금사, 카드사 등에 대한 인터넷 회원 가입도 필수다.
물론 일부 금융사의 경우 인터넷 뱅킹 가입절차 없이도 계좌번호·비밀번호만으로 거래내역을 조회할 수 있다.
그러나 금감원의 ‘전자금융 종합대책’에 따라, 내년 2월부터는 계좌조회 서비스가 중단될 예정이어서, 이를 이용하려면 인터넷 회원 가입이 의무적으로 필요하다.
인터넷 뱅킹 가입은 영업점 방문, 서비스 가입 신청, 온라인 회원가입, 공인인증서 발급·인증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한다.
보안을 위해 불가피한 수고이긴 하지만, 계좌통합 서비스를 위해서는 거래은행 수만큼 같은 행위를 반복해야 한다.
여기에 증권사, 카드사 자산까지 관리하려면 비슷한 시간과 노력을 더 기울여야 한다.
A은행 e-비지니스 관계자는 “계좌통합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금융사마다 인터넷 뱅킹을 가입해야 하고, 각각의 ID와 패스워드를 입력해야 한다.
웬만큼 부지런한 고객이 아니고서는 중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다.
또 “프로그램 이용 방법 등이 전문적인 경우가 많아 컴퓨터에 익숙한 하드유저가 아니면 어려움이 크다”고 덧붙였다.
효용성 부분에 있어서도 의문이 제기된다.
일단 조회가 가능한 금융기관이 한정돼 있다.
은행 입장에서도 계좌통합 서비스를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가 적어, 투자비용 대비 효과가 적다.
현재 계좌통합을 이용해 전자 가계부를 제공하고 있는 금융사는 국민은행과 우리은행 정도다.
이들은 핑거와 웹케시 등 계좌통합 전문업체를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은행·증권 계좌 정보는 대부분 서비스 전문업체를 통해 조회가 가능하지만 종금사나 카드, 보험사의 경우 제휴가 되지 않은 곳이 상당수여서 완벽한 자산관리가 어렵다.
또 증권·종금사의 CMA(자산관리계좌)는 대부분 정보제공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일부 대형은행은 보안성을 이유로 정보제공 차단까지 검토하고 있어, 향후 조회 가능 계좌가 줄어들 가능성도 있다.
은행 입장에서도 수요자가 많지 않은 서비스를 큰 비용을 들여가면서까지 유지할 필요가 있느냐는 의구심이 제기되고 있다.
B은행 e-비지니스팀 관계자는 “기업고객들은 위험관리, 수익률 관리를 위해 복수거래를 하는 경우가 많아, 계좌통합 서비스 수요가 많이 발생할 수 있다”면서 “그러나 개인고객은 한두 곳의 주거래 은행을 가질 뿐이어서, 특별히 계좌통합 서비스가 필요한 인원이 한정돼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우리은행은 계좌통합 서비스를 유지하고 있지만, 그동안 수차례 중단을 고려해 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기업 CMS(기업 자산관리 서비스)와의 연계를 통해 다양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다고 보고 서비스를 지속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경우 지난 상반기 계좌통합을 이용한 가계부 서비스를 과감히 중단했다.
2001년 이후 5년 이상 이 제도를 운영해 왔지만, 실 이용자가 만 명 정도에 불과해 큰 효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신한은행은 향후 개인 웹페이지 방식을 이용한 새로운 가계부 서비스를 내놓을 계획이다.
계좌통합 서비스에 비해 기능이 떨어지더라도 싸이월드처럼 개인별 페이지를 제공해 손쉽게 가계부를 쓸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하나은행은 자사 계좌에 대한 조회만 가능하도록 가계부를 간단히 하고 있다.
프로그램 투자나 전문업체와의 제휴에 비용을 쏟을 만큼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 때문이다.
보안성, 해묵은 숙제 계좌통합 서비스의 보안문제 역시 해묵은 과제다.
개별 금융사들의 아이디와 패스워드, 계좌번호 등 각종 금융정보들을 상세히 수록해야 하므로, 정보 유출 위험성이 도사리고 있다.
계좌통합 서비스는 서비스 전문업체들이 제공하는 스크린 스크래핑 기술에 의해 이뤄진다.
스크래핑은 각 금융기관의 사이트에서 거래정보를 긁어와 데이터화하는 기술이다.
그러나 고객 요청 서비스를 은행 인터넷뱅킹 서버와 송수신하는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서버방식의 경우 이체 서비스의 과정에서 계좌·이체비밀번호, 공인인증서 비밀번호 등을 자체 서버에 저장하고 있어, 정보유출 시 심각한 금융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특히 이들 업체들은 비금융기관이기 때문에 금융감독원의 감시 대상이 아니다.
결국 사고가 발생하면 은행, 서비스제공업체, 고객 간 분쟁 소지가 크다.
포탈 업체들이 최근 가계부 서비스를 접은 것도 이러한 위험 때문이다.
C은행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에서도 정확한 가이드라인 없이 계좌통합 서비스의 보안 위험이 있으니, 은행별로 적절히 서비스업체에 대한 정보 제공을 차단하라고만 권고하고 있다”면서 “최근 결성된 금융정보협의회(가칭)에서 방안을 강구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뚜렷한 대책이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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