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리 피오리나, 힘든 선택들
칼리 피오리나 지음, 해냄 펴냄, 1만5천원
잘난 여자가 계속 잘 나간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당사자가 아니면 모를 일이다. 잘난 남자가 성공을 유지시키기도 힘든 판에 여자가 남자들 틈바구니에 끼여 자기 성공을 지키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2005년까지 세계 최고의 여성 CEO로 불렸던 칼리는 지금은 백수다. HP의 최고경영자로 군림하던 그녀는 왜 그 자리에서 쫓겨났을까.
AT&T에 입사해 2년 만에 관리자가 된 그녀는 훗날 루슨트테크놀러지를 성공적으로 출발시켰고 선임 부사장으로 2년을 보낸 1998년에 <포춘>지 선정 비즈니스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1위에 오른다. 그녀가 HP의 러브콜을 받은 것은 1999년. 당시 HP는 누군가 와서 회사를 뒤집어줄 사람이 필요했고 그 적임자로 칼리를 선택한 듯하다. 잘 나가는 여자라면, 게다가 임무를 완성시킬 수 있는 여자라면 홍보 효과 만점인 칼리만큼 훌륭한 여자는 없었을 테니까.
예상은 적중했다. 그녀는 입사하자마자 ‘살아남은 것은 가장 강한 종이 아니라 변화에 가장 잘 적응하는 종이다’라는 다윈의 말을 인용하면서 87개 사업부문을 17개로 통합하는 대대적인 구조개혁을 단행했고 연구소를 확장했으며 대고객 서비스를 확대했다. 주가는 당연히 상승했고. 그녀의 승승장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녀는 창업자와 이사회 같은 내부의 적들과 힘겨루기를 한 끝에 컴팩을 인수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 앞에는 내리막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HP의 남자들은 이 ‘설치는 여자 CEO’의 능력이 두려웠을 것이고 때마침 떠돌아준 그녀에 대한 온갖 악소문은 대체 두려움을 모르는 이 여자를 처치하기에 좋은 재료가 됐다. 회사 개편설이 언론에 새나간 책임을 칼리에게 뒤집어씌운 것이다. 그녀는 “진실만이 모든 것을 이긴다”는 말로 자신이 해고당했음을 밝히고 떠났다. 토사구팽인가 아니면 능력 있는 여자들 특유의 과욕인가.
이재현 기자 yjh9208@economy21.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