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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 컴백열전] ‘롯데캐슬’ 대박신화 다시 한번 ①
[CEO 컴백열전] ‘롯데캐슬’ 대박신화 다시 한번 ①
  • 이윤찬 기자
  • 승인 2006.11.27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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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그룹 건설부문 임승남 회장] 내년 목표 매출 1조억…2015년 건설업계 10위권 진입 포부 건설업계의 ‘대부’ 임승남(69) C&건설부문 회장. 그는 학구파다.
고희(古稀)가 얼마 남지 않았음에도 책을 손에서 떼는 법이 없다.
직원들에게도 “책을 읽으라”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냉엄한 경제정글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임 회장은 지난 8월8일 박사학위(도시공학 전공)를 받았다.
중도하차를 수차례 고민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배움에 대한 ‘갈망’ 때문이었다.
임 회장이 ‘배움’을 중시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그는 건설업계에선 찾아보기 힘든 비(非)건설 전공(화학공학과 졸업) CEO다.
여기서 비롯된 한계를 늘 배움으로 극복했다.
건설공법을 배우기 위해 전문가를 만난 것도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선진기술이 있는 곳이면 해외출장도 마다치 않았다.
비건설 전공 CEO ‘임승남 신화’가 활짝 열린 까닭도 여기에 있다는 평가다.
학구파 임승남 “배움으로 신화 창조” 임 회장이 건설업계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것은 지난 81년. 신격호(85) 회장이 ‘롯데건설 중동본부장’에 임명하면서부터다.
사실 그는 수차례에 걸쳐 고사의 뜻을 밝혔다.
“건설은 전공이 아니다”는 게 이유였다.
공채 1기로 입사(64년)한 그는 건설과는 무관한 기획조정실 상무 겸 롯데리아 마산 크리스탈호텔 대표이사를 맡고 있었다.
그러나 신 회장은 이미 그를 낙점한 상태. 빠져나갈 방도가 없었다.
‘영(令)’을 따르지 않는 길은 오직 ‘퇴사’밖에 없었다.
고민 끝에 그는 중동본부장직을 수락했고 혼신의 힘을 쏟았다.
날밤을 새운 것은 부지기수. 차디찬 콘크리트 바닥에서 새우잠을 잔 날도 비일비재했다.
그러나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임 회장이 중동에 투입됐을 때 사업은 이미 엉망이었고, 공사 진척률은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결국 임 회장은 신 회장을 찾아가 ‘중동사업 철수’를 건의했다.
중동사업에 사활을 걸고 있었던 신 회장이 분노한 것은 당연지사다.
“자전거는 굴러가지 않으면 쓰러진다.
중동사업을 그만두자는 것은 회사 문을 닫자는 말 아닌가. 그럴 것이면 아예 할복자살하라.” 하지만 임 회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중동에서 사업을 철수해야 그룹의 안위가 보장된다고 믿었다.
“지금 접지 않으면 그룹이 위험해 집니다.
자전거도 돌뿌리에 걸리면 쓰러집니다.
” 임 회장의 판단은 적중했다.
당시 중동에 진출했던 한국기업은 줄줄이 도산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를 ‘패장(敗將)’이라고 불렀다.
‘변명’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고 회상한다.
그런 임 회장에게 신 회장은 또 다시 ‘기회’를 줬다.
“롯데그룹의 운명이 달려 있는 잠실 롯데월드 프로젝트를 진행하라.” 임 회장은 이번에도 손사래를 쳤다.
“중동사업 실패의 장본인이 대규모 프로젝트를 맡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며 버텼다.
신 회장의 고집도 만만찮았다.
“한국엔 건설기술자도 많고 유능한 CEO도 많다.
내가 (임 회장에게) 중책을 맡기는 이유를 헤아려라.” 임 회장은 결국 롯데월드 건설 프로젝트에 자신의 운명을 걸었다.
결과는 대성공. 불과 3년 만에 설계부터 준공까지 마치는 기적을 연출했던 것. 한발 더 나아가 부산호텔롯데(45층) 건설 프로젝트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기염을 토했다.
‘패장’에서 일약 ‘공신’으로 급부상하는 순간이었다.
‘임승남 신화’가 열리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 때부터다.
승승장구를 거듭하던 지난 98년 4월. 신 회장은 또 다시 임 회장에게 ‘특명’을 하달했다.
“롯데건설을 정리하라.” 롯데건설은 당시 그룹의 애물단지였다.
부채비율은 무려 400%에 달했다.
차입금의 규모는 6천억원대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임 회장은 신 회장의 뜻을 거역했다.
정리작업을 6개월여 진행하던 그는 신 회장을 찾아가 “롯데건설을 회생시키겠다”는 뜻을 밝혔다.
“롯데건설 직원들이 마음에 걸렸습니다.
저들을 쫒아내면 과연 무엇을 하고 살까라는 걱정도 들었습니다.
” 임 회장은 마음이 약하다.
정(情)에 쉽게 끌리기 일쑤다.
때문에 ‘덕장’으로 불리지만 때론 인사처리에 냉정하지 못하다는 지적도 받는다.
어쩌면 롯데건설을 과감하게 정리하지 못한 이유도 ‘정’ 때문일지 모른다.
임 회장의 ‘롯데건설 회생론’은 하지만 초반부터 벽에 부딪쳤다.
“롯데건설을 껴안았다간 그룹에 ‘누’를 끼칠 것이다”는 견해가 중론이었던 것. 바로 이 때, 임 회장은 신 회장에게 파격적인 제안을 한다.
▲5년 내 무차입 경영 실현 ▲인건비 비율 3% 이하로 축소 ▲1인당 생산성 20억원 이상 등이 골자다.
그야말로 ‘모험’이었다.
그룹 일각에선 코웃음을 쳤다.
절대 불가능한 목표라고 비웃는 인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신 회장만큼은 달랐다.
“뜻대로 해보라”며 임 회장에게 전권을 위임했다.
일단 큰소리는 쳤지만 임 회장에게도 부담스런 목표치였음은 분명해 보인다.
무엇보다 멀쩡하던 기업도 줄줄이 문을 닫는 IMF 상황이라는 점이 마음에 걸렸다.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시점이었던 셈이다.
임 회장이 꺼내든 비책은 ‘브랜드’의 도입. 롯데건설을 상징할 수 있는 브랜드를 만들어야 ‘회생’할 수 있다고 판단했던 것. 그래서 삼고초려 끝에 선택한 브랜드가 ‘캐슬’이다.
“잠실 롯데월드 석촌호수에 캐슬(고성)이 있습니다.
캐슬 앞은 늘 사람들로 붐빕니다.
특히 신혼부부들이 사진을 많이 찍죠. 아름다운 캐슬에 대한 동경 때문이라고 봅니다.
롯데건설 아파트의 브랜드를 ‘캐슬’로 지은 까닭입니다.
C&‘제2의 롯데건설'될까 롯데건설의 브랜드를 ‘캐슬’로 명명한 임 회장은 철저하게 부자들을 타깃으로 삼았다.
고급형 아파트를 만들기로 작정했던 것. IMF 때라도 부자들은 돈을 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한편에선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룹을 말아먹을 사람”이라는 원색적인 비난까지 감수해야 했다.
그러나 임 회장의 ‘승부수’는 통했다.
모델하우스가 오픈 되자마자 ‘롯데캐슬’은 폭발적인 반응을 받았다.
분양 성공률은 100%를 기록했고 전국에 ‘롯데캐슬 바람’을 불러일으키는데 성공했다.
‘대박신화’를 활짝 연 롯데건설은 이후 매년 50% 이상의 성장을 기록할 정도로 승승장구를 거듭했다.
매출은 2조원을 훌쩍 넘어섰고, 불가능할 것으로 보이던 임 회장의 공약도 3년 만에 달성됐다.

임승남 회장의 ‘실패학’

“실패를 감추면 영원한 실패가 된다”


C& 건설부문 임승남 회장은 ‘실패학(失敗學)’의 전도사다.
지난 2001년 <이제는 실패학이다 · 하가 시게루 교수>는 일본 서적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한 주인공이다.
임 회장은 “사업에서 성공 확률이 10%에도 미치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는 성공보다 훨씬 가치 있는 자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실패’를 밑거름으로 삼아야 성공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인 셈이다.
때문에 임 회장은 혹여 실패를 하더라도 호통을 치는 법이 없다.
큰 실수를 저질러도 용납해준다.
하지만 예외가 있다.
실패를 숨겼을 때는 불호령이 떨어진다.
“실패를 감추면 영원한 실패가 된다”는 확신에서다.
그러나 임 회장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지난 2003년 비자금 조성 · 법인세 포탈 등의 혐의로 실형(2년6월 · 집행유예)을 선고받았기 때문이다.
그 역시도 건설업계의 ‘관행’인 비자금 조성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실형을 선고받은 이후 40년 이상 근무했던 롯데를 미련 없이 떠났다.
못내 섭섭하고 아쉬웠지만 롯데의 미래를 위해 결단을 내리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자신의 최대 목표였던 ‘롯데건설 시공순위 5위권 진입’을 목전에 두고 낙마해 더더욱 아쉬움이 컸다고 말했다.
2004년 롯데건설의 시공순위는 8위였다.
정든 롯데를 떠난 이후 그의 인생은 가시밭길을 방불케 했다.
지난해 석가탄신일 때 사면된 후 건설사 사이에서 ‘영입 1순위’로 거론됐지만 날개를 활짝 펴는 데는 실패했다.
우림건설(2004)에 잠시 머무른 뒤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반도건설(2005)에 영입됐지만 결과는 기대치를 밑돌았다.
반도건설은 부산에 연고를 둔 도급순위 62위의 중견 건설사다.
반도건설을 택한 이유는 권홍사 회장(현 대한건설협회장)의 간곡한 요청 때문이었다.
“권 회장과는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롯데건설 사장 시절에도 ‘함께 일하자’는 의사를 수차례 내비친 바 있죠. 권 회장은 반도건설을 성장시키고 싶어 했습니다.
때마침 대한건설협회장에 당선돼 경영에 전념할 수 없게 되자 저한테 도움을 요청했던 것입니다.
” 그러나 두 사람은 의기투합을 하는데 실패했다.
권 회장은 안정적인 사업을 중요시했다.
반면 임 회장은 리스크가 크더라도 사업영역을 확장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팽팽한 기세싸움의 연속이었다.
“의견차이가 꽤 컸습니다.
오너(권 회장)와 생각이 다르면 회사를 떠나는 것이 옳다고 여겼습니다.
그래서 미련 없이 떠났습니다.

C&우방 브랜드 ‘유쉘’

가족 같은 아파트 만드는 게 ‘꿈’


C&그룹의 현재 계열사는 18개다.
C&컨리(컨테이너 리스업체) · C&진도(컨테이너 제조업체이자 모피업체) · C&상선(선박업체) · C&우방(건설업체) 등이 대표적 계열사다.
주축은 해운업이고 건설, 레저업이 뒤를 받친다.
C&그룹 건설부문의 주력회사는 C&우방(전 우방)과 C&우방ENC(전 아남건설)이다.
C&우방의 브랜드는 ‘유쉘’이다.
유셀은 Your(당신의)와 Shell(공간)을 합성, ‘당신을 위한 집’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유쉘의 U는 '첨단 IT 기능'을 의미하는 Ubiquitous(유비쿼터스)와 '독특한 · 창조적인'을 뜻하는 ‘Unique (유니크)’ ‘Unison (유니슨)’을 의미한다.
또한 ‘Shell’은 발음기호를 차용 ‘어머니의 품’을 상징하기도 한다.
부드럽고 여성적인 아파트 주거공간을 강조해 ‘가족 같은 아파트’를 만들겠다는 뜻이다.
C&우방은 특히 아파트 건설의 주 콘셉트로 로하스(LOHAS : 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개념을 도입, 건강과 환경, 사회 기여에 이바지 하는 아파트 문화 창달에 앞장서겠다고 강조하고 있다.
C&그룹 임병석 회장은 “연내에 유쉘을 실용성과 안정성을 제공하는 고품격 아파트 브랜드로 정착시켜서 예전 우방 아파트 명가의 이름을 되찾겠다”고 밝혔다.
이어 “새 브랜드 탄생을 계기로 C&우방이 지역사회라는 이미지를 불식시키고 전국을 무대로 한 건설회사로 도약하고자 한다”며 “현재 확보하고 있는 대구 경북지역의 높은 로열티를 발판으로 수도권과 호남 등으로도 영역을 넓혀가겠다”고 말했다.
임 회장은 반도건설을 떠난 직후 ‘은퇴’를 결심했다.
나이도 나이였지만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이 너무 비좁다고 느꼈다.
이런 시점에 만난 사람이 바로 C&그룹 임병석(45) 회장이다.
C&은 쎄븐마운틴그룹의 바뀐 사명이다.
항해사 출신 임병석 회장이 4천500만원의 자본금으로 만든 ‘칠산해운’이 모태다.
그룹의 주축은 해운업이고 건설 · 레저문화업이 뒤를 받치는 형태다.
(상자기사 참조) ‘영입 제안’은 임병석 회장이 먼저 했다.
‘경기에 민감한 해운업을 보완하기 위해 건설업을 강화하겠다’는 의지에서다.
그런 임병석 회장에게 ‘건설업계의 대부격’인 임 회장은 더할 나위 없는 적임자였던 셈이다.
임 회장 역시 흔쾌히 영입 제안을 받아들였다.
“임병석 회장은 상당히 꼼꼼하고 치밀한 성격입니다.
두뇌회전도 빠르고 모험도 즐깁니다.
젊은 시절 신 회장보다 더 모험적이라고 할 수 있지요. 반면 순수하고 진솔한 측면도 많습니다.
임병석 회장의 그런 성격에 매료됐죠. 사람이 좋아서 C&그룹을 선택한 것입니다.
” 임 회장의 공식직함은 C&건설부문 회장이다.
C&그룹 건설 관련사 C&우방(우방건설 인수) · C&우방ENC(아남건설 인수)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C&그룹의 새로운 동력이 ‘건설부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의 역할은 상당히 크다.
하지만 그가 또 다시 ‘기적’을 창조할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무엇보다 건설업계가 불황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다.
법정관리를 벗어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회사(우방건설)를 인수해 조직정비가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았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사업범위가 지나치게 대구에 편중돼 있다는 단점도 없지 않다.
우방건설은 C&그룹에 인수되기 직전까지 대구 건설업계의 ‘절대강자’였다.
이에 대해 임 회장은 “기우일 뿐이다”라고 잘라 말했다.
오히려 “성장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고 맞받아치고 있다.
“C&우방은 지난 1년 동안 무려 1조8천억원의 수주실적을 기록했을 정도로 알짜배기 회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지난해 매출실적은 3천500억원대에 달합니다.
안정적인 성장을 위한 조건은 이미 만들어져 있는 셈입니다.
C&건설부문은 올해 목표의 90% 정도 달성했습니다.
내년 목표는 매출 7천억원에 수주 2조5천억원입니다.
물론 궁극적인 목표는 건설업계 10위권 안에 진입하는 것입니다.
예상 시점은 2015년입니다.
” 임 회장은 재계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60대 CEO다.
때문에 노련하고 경륜과 경험이 많다.
게다가 추진력도 남다르다.
한번 결정하면 ‘끝장’을 봐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건설업계의 ‘불도저’로 불린다.
그런 임 회장이 최근 건설업계 한복판에서 또다시 날개를 펴고 있다.
건설업계의 '신흥세력' C&그룹이 어떻게 변모될 지에 건설업계의 혹각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윤찬 기자 chan4877@economy21.co.kr 사진=임영무 기자 namoo519@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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