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조상은 9세기 통일신라 때 중국에서 귀양 온 분이다.
이런 식으로 외국의 연원을 가진 성씨들로 우리 역사는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그렇게 ‘바깥에서’ 들어온 사람들이 어떻게 ‘우리’가 되고 우리 역사를 만들어 갔는지 추적한다.
최대의 성(姓) 김(金)씨를 보자. 경주김씨의 시조는 김알지이다.
대체 김(金)이란 성은 어디서 나왔을까. 추사 김정희가 판독한 ‘문무왕비문’에는 자신들을 ‘투후’의 후손이라고 했다.
투후는 흉노왕 휴도의 아들 김일제(金日磾)다.
김일제에게 김씨성을 준 사람은 한나라 무제. 그런데 왜 하필 김을 택했을까. 아마 그것은 흉노족이 알타이족의 일파이고, 알타이의 뜻이 금(金)이라는 사실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흉노와 신라의 관계는 학문적 관심사인지 오래다.
화산이씨의 시조로서, 베트남 왕족이자 대장군이었던 이용상(李龍祥)은 우리 땅에 망명 와서 후손을 널리 퍼뜨린 ‘성공한 망명객’이다.
그는 베트남의 첫 독립국가인 리씨왕조가 멸망, 멸족의 위기에 처하자, 고려까지 피난 왔다.
그는 몽골에 맞서 싸우는 ‘백마장군’으로 명성을 떨쳤다.
10년 전 한국의 화산 이씨 후손들이 베트남을 찾았는데, 국가적 환대에 놀랐다.
화산이씨는 이후 양국 우호의 상징이 됐다.
김수로왕비인 아유타국의 공주 허황옥은 김해 허씨의 시조이다.
그렇다면 김해김씨는 절반은 ‘외국인’이란 소리다.
외국인 원나라 공주를 따라와 덕수 장씨의 시조가 된 장순룡이든 이성계의 오른팔로서 조선건국의 주역이 된 청해 이씨시조 이지란 장군처럼 이들 귀화인들은 우리 역사의 가장 극적인 순간을 장식하곤 했다.
그런데 당시 이들 ‘귀화인’들을 ‘선주민’이 차별하거나 배척한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한민족이 단일민족이란 것은 신화에 불과 할뿐, 우리는 여러 민족이 어울려 형성된 잡탕민족국가이다.
오늘도 농촌에선 4쌍 중 한 쌍이 국제결혼을 하고 있다.
이제 우리는 우물 안에서 나올 때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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