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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 피플] 아직도 명함을 서랍 속에 두세요?
[이코노 피플] 아직도 명함을 서랍 속에 두세요?
  • 류근원 기자
  • 승인 2007.01.08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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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은숙 한국인식기술 대표이사

“딸만 셋이니까 경운기 엄마죠.”
명함인식기 ‘하이네임’을 개발한 한국인식기술 송은숙(44) 대표의 소갯말이다.


송 대표는 언제고 만나게 되면 불평을 늘어놓고 싶은 사람 중 한명이었다.
수 년 전 명함인식기의 기능에 좌절을 맛본지라 문자 인식단계의 여러 가지 오류사항을 놓고 조목조목 따져볼 각오였다.


명함을 교환하고 노트북을 먼저 연건 송 대표였다.
송 대표는 교환한 명함을 곧바로 하이네임 스캐너에 읽힌 후 노트북을 돌려 들이댄다.
밥상 다 펼쳐놓고 본론을 꺼내는 무서운 아줌마다.
몇 년 사이 하이네임은 크기가 두 배로 커져 있었고 디자인도 더 좋아 보였다.
노트북에 입력된 명함정보도 오류 하나 없이 항목별로 잘 분류되어 있었다.


“한꺼번에 두 장도 스캔하니까 시간도 절약되죠.”
확실히 밀어붙이는 힘이 강력하고 저돌적인 경운기 엄마다.


한꺼번에 두 장도 스캔

실제로 2년 사이 ‘하이네임 2.0’은 컬러명함을 인식하는 3.0으로 업그레이드 되어 있었다.
비록 명함 한 장을 스캔했지만 흠잡을 데 없이 똑똑한 놈이 되어 나타난 것이다.
‘하이네임 3.0’ 이름 뒤에는 'PRO'라는 꼬리표도 달려 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 했다.


“2년 전 하이네임2.0의 인식률에 상당히 불만족스러웠습니다.


혹평에 반해 송 대표의 대답에는 여유가 있었다.


“우리는 하이네임 2,0을 써준 분들을 항상 은인이라고 생각해요.”
하이네임도 그녀도 프로였다.


송은숙 한국인식기술 대표는 지난 2002년 창업자인 남편이 과로사로 세상을 떠나면서 회사를 이어 받은 인물. 대기업에서 현대그룹의 현정은 회장이 화제라면 중소기업체 중에서는 송은숙 사장이 단연 화제였다.


한국인식기술은 93년 송 대표의 남편인 고 이인동 박사가 창업주다.
그는 문자인식 솔루션 ‘글눈’을 내세워 한국인식기술을 당시 80억여원의 매출을 올리는 대전의 대표 벤처기업으로 키워냈다.
2002년 말 코스닥 진출을 한 달 앞둔 시점에서 그는 동맥경화 수술을 받고도 무리한 탓에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창업하고 남편은 9년 동안 3~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았어요.”

그때 무리하지 않도록 말렸어야 했다는 것이 지금 송 대표의 후회다.


설상가상으로 후임 대표는 현금 10억의 사기를 쳤다.
주가는 폭락했고 회사 경영은 크게 흔들렸다.
주식 지분 80%가 남편 앞으로 되어 있던 탓에 감당하지 못할 상속세도 문제였다.
결론은 직접경영뿐. 초등학교 교사 자리를 버리고 송 대표는 2003년 5월 경영에 뛰어들었다.


이후 송 대표의 첫 작품으로 2004년 명함인식기 ‘하이네임 1.0 버전’이 나왔다.
퍼셉컴의 ‘이르미’와 대만제 ‘월드카드’ 그리고 ‘하이네임’이라는 명함인식기 삼국시대가 개막된 해이기도 하다.


당시 명함 인식기는 얼리어답터에게 인기 순위 1위였다.
명함에 인쇄된 이름ㆍ회사ㆍ부서ㆍ연락처 등 각종 문자 이미지를 스캔하면 컴퓨터에 엑셀파일로 저장되며 차곡차곡 텍스트로 변환되니 신기한 노릇이었다.
또 이렇게 입력된 정보는 우편ㆍe메일ㆍ문자메시지를 발송하거나 지도검색 등을 하는 데 활용된다.


송 대표는 하이네임을 들고 발로 직접 뛰는 아줌마 영업을 펼쳤다.


인맥관리 솔루션을 가지고 인맥장사에 나선 것이다.
크게 도움을 준 인물은 대전 시장을 지냈던 염홍철 시장이었다.


“시장 비서에게 제품설명을 해야 하니 뵙게 해달라고 막무가내로 졸랐죠. 일주일 정도 시간이 흐른 뒤 염 시장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염 시장은 월 1회에 한 번씩 열리는 기관장회의에서 송 대표가 직접 제품을 설명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줬다.
망신도 당했다.
KT의 명함의 경우 명함에 있는 바탕색으로 인해 글자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이 문제에 대해 철저한 연구를 반복했다.
송 대표는 문자인식이 안 되는 명함을 계속 찾아 모았다.


“아마 우리 회사가 가장 다양한 종류의 명함을 갖고 있을 겁니다.


송 대표는 결국 2006년 4월에는 문자인식률을 크게 향상시킨 3.0버전을 마침내 출시했다.
하지만 명함인식기는 여전히 유통시장이 취약했다.
전자제품 시장을 치고 들어가기도 어정쩡한 상태였다.
이미지만 내세워 판매할 수 있는 온라인 시장도 무리였다.
직접 테스트를 해보이며 판매하는 발로 뛰는 식의 영업 외에 쉽게 먹혀들지 않는 것이 당시 한계였다.


송 대표는 이 문제를 B2B로 풀어내는 지혜를 발휘했다.
개인용 명함리더기를 넘어 기업을 상대로 한 ‘기업 인맥관리 솔루션’으로 고객을 확장하는데 비중을 더 실었다.


중국어 인식모드도 개발할 예정

‘기업 인맥관리 솔루션’은 직원들이 각자 관리하는 인맥을 중앙시스템에서 공유하며 필요할 때마다 간편하게 열람하고 업무에 활용하도록 하는 업무지원 시스템. 쉽게 말해 기업 주소록에 자동모듈 시스템을 도입하면 명함을 관리하던 직원이 갑작스레 퇴사해도 인맥 풀은 그대로 남는다는 점에서 경영진이 먼저 좋아했다.
송 대표는 이 상품을 출시하면서 고객의 80~90%는 서울과 경기에 있다는 판단을 내렸다.


우선 금융기관 등 잠재고객이 밀집한 서울 여의도에 영업소 둥지를 틀었다.
그해 겨울 그는 여의도를 돌며 적극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당시 송 대표는 “삼성생명의 경쟁력은 오래 전 인맥지도를 도입해 보험설계사가 인맥관리를 하도록 한데 있다”며 인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증권사 론칭을 필두로 한국전력 등 20여개 업체에 제품을 론칭하는 데 성공했다.
타사 제품과의 경쟁을 거쳐 청와대에도 납품했다.
올 2월에는 미래에셋에도 론칭을 할 예정이다.


영업과 동시에 제품 업그레이드도 계획 중이다.
한자의 경우 기존 4천자가 인식됐었는데 향후 8천500자로 늘릴 생각이다.
올해 안에 중국어 인식모드도 개발할 예정이다.
나아가 한자를 잘 모르는 요즘 젊은 층을 위해 한자를 다시 한글로 변환해주는 방법도 연구 중에 있다.


중국어 외에 다국어를 인식하는 문제와 필기체 인식 기술은 해외수출을 위한 중대한 사안이므로 송 대표의 향후 해결 과제인 셈이다.


또 명함인식기를 통한 다양한 부가서비스도 부지런히 준비 중이다.
자신이 확보한 명함데이터를 이용해 ‘나의 인맥지수 테스트’등을 테스트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나아가 송 대표의 꿈은 남편의 평생연구 업적인 문자인식 기술을 기반으로 휴먼네트워크 회사로 거듭나는 것이다.


그는 “현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관계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성공하려면 노하우가 있어야 한다.
그것은 경제활동에 관계된 사람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가정주부도 자기관리 노하우를 알면 나름대로 좋은 사람관계를 형성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류근원 기자 stara9@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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