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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책]잊혀진 발해 역사가 되살아난다
[화제의책]잊혀진 발해 역사가 되살아난다
  • 정진욱 북 컬럼니스트
  • 승인 2007.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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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역사를 시작한 선조들은 웅혼한 사람들이었다.
고조선을 세운 환웅 단군의 한(桓)이나 단(檀)은 모두 크다는 ‘한’을 한자로 적은 것이다.
부여를 세운 사람들은 태양을 숭배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해’라는 성씨를 썼다.
‘해’는 백제 때도 그대로 쓰였다.
고구려를 세운 주몽의 고(高)씨는 어떤가. 신라를 세운 박혁거세의 박은 밝다의 ‘밝’이니 하늘의 해와 통한다.
발해의 건국자들은 성씨가 대(大)이다.
중국 역사에 이런 스케일의 성씨들을 가진 건국자가 있던가. 작가 김홍신이 바로 그 발해와 함께 돌아왔다.
그는 1986년, 처음 중국을 방문했을 때 조선족 향토사학자에게서 “중국이 고구려와 발해 역사를 중국 역사로 규정하고 북한을 속방으로 삼기 위해 역사 왜곡을 강행할 것”이란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는다.
그는 당시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그저 재야 사학자의 사무친 국수주의적 발상이려니 했다.
그럼에도 그때 작가의 가슴속엔 의문의 씨앗 한 알이 뿌려졌고 중국의 동북공정이 드러나자 그 씨앗은 금세 거목으로 자라났다.
대하소설 <대발해>는 이렇게 탄생했다.
발해는 넓디넓은 강역에, 중국 만리장성까지 쳐들어가는 거침없는 승부를 벌이곤 했던 강국이었으니 ‘대발해’다.
이 소설을 쓰기 위해 작가는 지난 8년 동안 구당서, 신당서, 발해국지 등 수백 권의 자료를 뒤졌다.
발해사의 내밀한 현장까지 더듬으며 치밀한 고증과 취재를 했다.
그것들이 그의 손끝에서 고스란히 박진감 넘치는 서사로 재탄생했다.
작가는 30년 뒤 우리가 과연 자신의 역사를 가진 독립국으로 남아 있을지, 중국이란 블랙홀에 빨려 들어가 정체성을 잃을 것인지 고민하며 썼다고 한다.
“발해를 우리 민족사에 남기는 게 국회의원 열 번 하는 것보다 낫다.
그래서 30년 뒤의 대한민국을 예견하는 지혜를 얻으라”는 정신적 스승 법륜 스님의 회초리에 ‘발해공정’(渤海工程)을 작심했다고 그는 밝혔다.
정진욱 전문위원·북 컬럼니스트 chung888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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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화제에 늘 오르곤 하지만 누구도 정확하게 모르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그라쿠스 형제. 평민을 위해 싸운 호민관이란 건 알겠는데, 그들이 구체적으로 주장한 것이 뭐지? 기원전과 기원후는 흔히 예수 탄생을 기점으로 나눈다고 한다.
하지만 예수는 기원전 4년 무렵 태어났다고 돼 있다.
왜 이렇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는 알겠는데, 그럼 가장 작은 나라는? 숨은 세계정부 같은 음모론에서 꼭 등장하는 프리메이슨이 대체 뭐야. 한번 잘 알아두면 평생 두고두고 써먹을 150개 꼭지 가운데 몇 개를, 아니 몇 십 개를 모를 수도 있다.
사실 나는 첫 꼭지인 ‘고양이 상인 휘딩턴’부터 막혔다.
모르면, 읽으면 된다.
즐겁게 책을 읽다가 건진 지식을 깔끔하게 정리한 지은이처럼.
조선 선비와 일본 사무라이
호사카 유지 지음, 김영사 펴냄, 9900원
선비와 사무라이. 가장 이상적인 인간형으로서 그들의 정신세계는 여전히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본에서 귀화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는 두 인간형을 다양한 각도에서 비교하면서 그 내면을 탐색했다.
선비는 붓, 사무라이는 칼로 싸운다.
선비는 문(文)을, 사무라이는 무(武)를 숭상한다.
사무라이가 손자병법을 깊이 연구한 반면 선비로서 손자병법을 연구했다는 기록은 거의 없다.
그것이 임진왜란을 불러왔을까. 그러나 사무라이는 조선 유학의 전래 이후 선비와 닮은꼴로 바뀐다.
그것이 임란 이후의 평화를 가져왔다.
앞으론 어떨까. 원래의 사무라이 DNA가 다시 발현될 것인가. 평화주의자 유지 교수의 마음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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