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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30년 은행맨에게 '대출 관리나 …'
[커런트]30년 은행맨에게 '대출 관리나 …'
  • 황철 기자
  • 승인 2007.07.16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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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무 창출 부재, 성과 관리 전무 … 고용불안 해소책이 인사 적체만 심화시켜 시중은행들이 임금피크제 문제로 딜레마에 빠졌다.
제도 도입 4년차를 맞고 있지만, 고령 인력에게 부여할 마땅한 직무를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은행들은 고육지책으로 채권추심, 여신관리 등 지점 후선지원 업무에 이들을 투입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단순업무마저도 매년 수십 명씩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상황이다.
은행권은 그동안 ‘임금피크제 1번지’로 통할 만큼 제도 도입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공공성에 대한 유무형의 압박을 받고 있는 은행 입장에서, 정부의 강력한 고령화 대책 의지를 외면할 수 없었던 탓이다.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금융업 특성상, 고령자들의 풍부한 경험을 활용하는 것 또한 나쁘지 않다는 현실적 판단도 작용했다.
지난 2004년 산업, 기업, 수출입 등 국책은행은 가장 먼저 제도 도입에 나섰다.
이듬해 우리, 광주, 대구은행 등이 이들과 보조를 맞췄다.
올 초에는 하나은행이 임금피크제 대열에 가세했고 국민, 외환은행도 연내 도입을 위해 노사 협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표면적 성과 역시 나름대로 화려하다.
은행별로 해마다 40~70여명이 신규 대상자에 이름을 올려, 지난해까지 250여명이 수혜를 입었다.
우리은행에서는 2년 만에 140명을 돌파했고 기업, 산업은행에서도 각각 72명, 53명이 임금피크제를 수용했다.
향후 은행권 전체로 제도가 확산되면, 연말까지 400~500명 가량의 신규 수요가 발생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타 업종에 비해 인사적체가 심한 은행권에서 임금피크제는 최대한 갈등을 줄이면서 인력 구조를 개선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면서 “영업적 측면에서도 고령자들의 전문성과 업무 노하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현실은 이러한 원론적 기대에 전혀 부합하지 못하고 있다.
막상 임금피크제를 도입했지만, 해당 인력들을 수용할 마땅한 직무가 없기 때문이다.
현재 은행들은 내부감시, 채권관리직, BPR(영업지원), 여신·카드심사 등 지점 후선업무를 이들에게 맞기고 있다.
본부 부서에 배치돼 거래 기업 자문위원이나 고문 역할을 맡는 경우도 일상적 업무를 갖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다.
수십 년간 영업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고급 인력들이 줄줄이 단순 업무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시중은행 임금피크제 한 대상자는 “직무 개발이 선행되지 않는 한, 고령자들은 잉여 인력으로 취급받을 수밖에 없다”면서 “임금을 삭감하더라도 이들에게 적절한 위치와 직무를 부여해 업무 효율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더 큰 문제는 후선보직조차 이들의 수요를 충족할 만큼 자리가 넉넉하지 못하다는 점이다.
은행들이 매년 계약직 행원을 늘리면서, 단순 업무 인력이 넘쳐나고 있기 때문이다.
기존 명예퇴직자들에 대한 전직지원제도 역시 영업지원 업무에 집중돼 있어, 경쟁률은 더욱 치열하다.
해당 인력들의 사기 문제도 넘어야할 무형의 산이다.
한직으로 밀려나 후배 상사의 눈치를 봐야 하는 정신적 고충은 말할 것도 없고, 적당히 자리나 보존하겠다는 패배주의까지 만연한 상황. 은행권 임금피크제 대상자 중 상당수가 스스로 명예퇴직을 결정하고 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로 산업은행 임금피크제 대상자 75명 중 22명이 퇴직을 결정했고, 우리은행에서도 시행 첫해 약 20% 정도가 제도 수용을 포기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임금피크제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는, 고령자에 대한 직무 창출과 명확한 성과 관리 체계를 병행해야 한다”며 “이를 선행하지 못할 경우 도리어 인사적체를 심화해, 은행 인력 구조와 영업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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