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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리포트]개미들의 무덤 ‘작전주’, 눈뜨고 당하는 달콤한 ‘유혹’
[스페셜리포트]개미들의 무덤 ‘작전주’, 눈뜨고 당하는 달콤한 ‘유혹’
  • 황철 기자
  • 승인 2007.08.20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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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가조작 수법, 갈수록 ‘지능적’ … 대박 노리고 덥석, 쪽박의 ‘지름길’ ‘일장춘몽(一場春夢)’을 꾼 듯하다.
꿈의 지수로 불리던 ‘코스피 2000’에 오른 것도 잠시, 국내 증시가 깊은 수렁에 빠졌다.
지난달 25일 최고점을 찍은 국내 주가는 20여일 동안 폭락을 거듭했다.
일별 40포인트~80포인트 떨어지는 건 예사였고, 지난 16일에는 급기야 125포인트 추락이라는 진기록까지 세웠다.
주식 시장을 힘겹게 떠받치고 있던 개인들도 더는 버틸 여력이 없어졌다.
이들은 연일 계속하던 ‘사자(buy) 행진’을 멈추고, 매도 대열에 합류했다.
과열론 경고를 애써 외면하던 개인투자자들이 장밋빛 환상에서 깨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때를 놓쳤다.
이들에게 돌아온 것은 눈덩이처럼 불어난 투자손실과 뒤늦은 후회뿐이다.
현 증시와 작전 상황의 공통점 최근 증시 상황은 작전·세력주에 얽힌 공통적 사연들과 절묘하게 닮았다.
우선 개인 투자자의 역할과 행보부터가 판박이다.
작전주란 일부 세력들이 결집해, 대량 매집과 매도를 되풀이하며 인위적으로 시가를 높이는 주식을 말한다.
지금까지 증시 활황을 이끈 주력부대가 일반 투자자였듯, 작전에서도 개미들은 주가 부양의 지렛대 역할을 하고 있다.
작전 세력들이 고도의 매집·매도 기술을 이용해 시세를 조종하려면, 무엇보다 개인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자신들의 자금만으로는 주가 부양에 한계가 있으므로, 작전을 통해 일반 투자자의 참여를 유도해야 하기 때문이다.
작전 성공으로 목표 주가에 도달해 대량 매도에 나설 때도 물량을 받아 줄 개인이 필요하다.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이듯 아무리 대박주라도 살 사람이 없으면, 말짱 헛일이다.
작전을 흔히 매도의 기술이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가를 떨어뜨리지 않으면서 매도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 작전의 성공 여부가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작전 세력들은 허수주문, 가장매매 등을 통해 주가 고점을 유지하며, 단계적으로 물량을 팔아 나간다.
대량 매도에 따른 주가 하락을 막고, 작전에 대한 개인들의 의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다.
허수주문과 가장매매는 실제 매매 의사보다 많은 수량을 허위로 주문하거나, 세력들이 공모해 겉으로만 거래가 이뤄진 것처럼 조작하는 위법 행위다.
예를 들어 자신들이 내놓은 매도 물량의 일정량을 공모한 세력들이 사들이며, 조금씩 팔아치우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개인들은 대량 매도에 따른 주가 하락 의혹을 버리고 매수세에 쉽게 동참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며, 상향가에 매물을 모두 팔아치우는 것이 작전 세력의 일반적인 매도 기술이다.
△증시 급등락 과정에서 보인 일반 투자자의 역할과 희비는 작전 하에서의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 떨어진다. ⓒ한겨레 이정아
김현철 증권거래소 시장감시팀장은 “작전주의 경우, 통정매매를 통해 거래량을 늘리거나 허수성 주문을 이용해 가격을 끌어올리는 사례가 많다”면서 “시장 감시가 치밀해지고, 투자자 역시 신중해져, 작전에 의한 주가 조작이 줄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불공정거래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개미들의 ‘살신성인’ 그러나 작전이 끝났다고, 곧바로 주가 폭락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물량을 넘겨받은 개인들 사이에서 활발한 매매가 일정 기간 지속되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다.
추가 상승에 대한 일반 투자자의 기대 심리가 주가를 떠받치는 것이다.
이 또한 최근 증시 상황과 절묘하게 맞아떨어지는 대목이다.
그러나 개미들의 기대는 오래가지 않는다.
대부분의 작전주는 짧은 시간 내 저점까지 떨어진다.
상승기에 뛰어든 개미들이 피해를 보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운좋게 세력들과 함께 짭짤한 이득을 챙긴 이들도 있지만, 작전에 걸려든 투자자 대부분은 매도시기를 놓치고 대규모 손실을 보게 된다.
이들 중에는 작전주라는 신호를 포착하고도 악마의 유혹에 빠진 경우도 상당수다.
문양근 하이리치 대표 애널리스트는 “작전주의 90% 이상은 이미 시장에서 재차 경고를 보냈던 종목들”이라며 “시장감시체제나 조사를 강화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 투자자들이 투기적 성향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기관 투자자들 역시 작전의 덫에 종종 걸려든다.
작전 막바지, 공모자인 펀드매니저 등의 역할로 기관 투자자들이 매수 세력으로 나서는 경우다.
그러나 안정적 투자를 선호하는 기관들이 중소형 작전주에 관심을 두는 일은 흔치 않다.
작전 세력 입장에서도 자금이 풍부한 기관이 더 많은 물량을 확보하면, 주가조작 자체가 어려워져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결국 작전 세력에 자금을 대며 주가를 끌어올린 후, 자멸하고 마는 살신성인의 역할은 개인 투자자의 몫일 뿐이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작전주의 최대 피해자가 개미들인 것은 사실이지만, 이들의 노림수를 성공하게 하는 기반 역시 일반 투자자”라며 “개인들의 무분별한 대박 심리가 사라지지 않는 한 작전 세력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무법천지 ‘코스닥’ 작전 세력이 노리는 종목들은 대부분 일반 투자자들이 선호하는 중소형주다.
10명 내외로 구성된 작전 세력의 자금으로는 대형주의 시세조종이 힘들기 때문이다.
이들은 손쉽게 주가를 움직일 수 있는 자본금 500억원 이하의 소형주를 주요 목표로 한다.
적은 초기 비용으로 작전에 돌입할 수 있도록 거래량이 적은 소외 종목을 택하는 것도 방법이다.
△지난해 감독기관이 적발한 불공정 주식 거래 행위의 80% 이상이 코스닥 시장에서 발생했다. ⓒECONOMY21 사진
중소형주가 주축을 이루는 코스닥은 작전 세력들에겐 황금 시장이나 다름없다.
작전을 세우기 안성맞춤인 종목들이 넘쳐나고, 개미 투자자들의 대박 심리도 폭발 수준이다.
실제로 금융당국이 조사한 지난해 (2005년7월~2006년6월) 증권시장의 불공정거래 및 공시위반 사례를 보면 코스닥시장은 무법천지나 다름없다.
전체 사건(858건)중 약 70%(592건)가 코스닥시장에서 발생했다.
작전주에 해당하는 시세조종 행위도 51건(86.4%)이나 발견됐다.
세력들이 작전에 돌입하면 원활한 임무 수행을 위해 우선적으로 대주주(일반적으로 회사 대표)를 포섭한다.
대주주는 역으로 작전 세력을 끌어 모으거나 단독으로 내부자 정보를 이용해 주가를 조작하기도 한다.
시세조종의 열쇠를 쥐고 있는 장본인은 다름 아닌 최대 지분을 보유한 대주주이기 때문이다.
소형주의 경우 대주주가 50% 이상 지분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주가는 언제든 급변할 수 있다.
작전 세력들에게 대주주를 포섭하는 것은 매집에 나서기 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핵심과제 중 하나다.
작전 막바지까지 시의적절하게 호재·악재성 재료들을 시장에 주입하며, 작전 효과를 극대화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작전 세력들 역시 루머를 풀어내며 주가 조작에 나서지만, 대주주의 입장 표명은 파급력 자체가 다르다.
작전주에 대한 투자자들의 의심이나, 감독당국의 감시망을 피해가는 데도 이들의 공시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대주주 입장에서도 불법이라는 점만 눈감으면, 거부할 이유가 없다.
세력과 동조해 막대한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고, 웃돈까지 기대할 수 있어 일석이조다.
경영권을 걱정할 이유 또한 없다.
대주주는 상종가에서 주식을 팔고 이득을 챙긴 후, 하한가를 기다렸다가 지분을 다시 확보하면 그만이다.
중소형 기업 대표로서 주가부양을 통해 기업 자금난 해소를 꾀했다는 그럴싸한 명분도 쌓을 수 있다.
작전 세력에는 대주주 외에도 브로커 역할의 증권사 직원, 매도를 도와줄 펀드 매니저, 바람잡이로 나서는 애널리스트 등 업계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하기도 한다.
증권사 한 관계자는 “작전 세력들이 주가 급등의 루머를 퍼트리고, 대주주가 근거성 멘트를 날리며 개미투자자들을 현혹하는 게 일반적”이라며 “기업 실적 등을 분석하지 않고, 차트에만 의존해 투자하면, 작전주의 덫에 걸리기 쉽다”고 말했다.
또 “작전주 대부분은 유심히 살피면 실체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비정상적인 주가 변동을 나타내므로, 가치에 입각한 철저한 분석으로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종 다단계 수법 ‘성행’ 그러나 최근에는 작전 세력들의 수법도 점점 지능화·고도화되고 있다.
투자자에게 작전임을 알리고 시작하는 신종 기법이 등장하는가 하면, 대형주에 장기 투자하는 대담한 세력들도 나타나고 있다.
증권시장이 성숙하고 시장 감시가 촘촘해지면서, 전통적 작전기법만으로는 설 자리가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ECONOMY21 표
이런 관점에서 올초 발생한 루보 사태는 기념비적 사건으로 기록될만하다.
다단계를 응용한 투자자 모집 수법이 참신(?)했고, 법망을 피하는 방식 또한 교묘하고 치밀했다.
루보 작전 세력들은 다수의 일반 투자자들을 직접 끌어들여 주가조작에 나선 후, 재차 모집한 개미들의 자금으로 주식을 매입, 차익을 남기는 방식을 택했다.
이른바 ‘체증식 다단계 자금 모집’이다.
수익률에 따라 배당금을 지급하며, 투자자들을 끝없이 몰려들게 하는 유인 전술도 지능적이었다.
이들은 이번 작전에 1500억대 자금을 끌어들였고 700여개에 달하는 차명계좌를 이용, 주가를 뻥튀기했다.
치밀함 또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루보 주가는 하한가보다 40배 이상 폭등했지만, 단 한 번도 감독 기관의 감시망에 걸리지 않았다.
이들은 5일 연속 상승한 후, 조정을 받게 하는 방식으로 이상 급등 종목으로 지정되지 않았다.
당시 규정상 이상 급등 종목 지정은 5일간 주가 상승률이 75% 이상인 경우가 2일 이상 지속돼야 한다.
솜방망이 ‘처벌’ 불법 확산 부추겨 내부자 거래나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주가를 끌어올리는 불공정 행위도 극성을 부리고 있다.
특히 코스닥 시장의 내부자 거래는 2005년 29건에서 지난해 37건으로 늘어나는 등, 해마다 급격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러한 행위는 작전세력과 결합해 복합적으로 나타나, 개인들의 피해액을 불리기도 한다.
김현철 증권거래소 시장감시팀장은 “국내 증권 시장은 기업 정보에 대한 반응이 굉장히 빠르고 민감하다”면서 “과장된 정보를 고의로 공표하거나, 미공개 기업 정보를 먼저 유출하는 행위가 확산돼 피해가 우려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주가 조작 행위에 대한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치고 있다.
사법계의 관대한 평가가 불공정 행위를 부추긴다는 지적까지 제기되고 있는 상황. 현행 증권거래법은 불공정 행위자의 벌금에 대해 부당이익금의 최대 3배라는 상한선만 그어놓았다.
하한선 규정이 없다 보니 지금까지 유죄 판결을 받은 경우도, 이익금의 50% 정도만 벌금으로 내면 그뿐이었다.
걸려 봐야 집행유예로 풀려나거나 1~2년 고생하고 나면 막대한 자금을 손에 넣을 수 있는 구조다.
김 팀장은 “법원의 태도가 실형보다는 벌금형에 맞춰져 있고, 죄질에 비해 형량 또한 낮은 것이 사실”이라며 “처벌을 과하게 높일 경우, 시장 위축 등의 부작용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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