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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런트]'다수 계약 보험' 낭패보기 십상이다
[커런트]'다수 계약 보험' 낭패보기 십상이다
  • 황철 기자
  • 승인 2007.09.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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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사 가입 내역 통보 않으면 계약 해지 ‘판결’ … 소비자 "보험사 입장만 대변" 반발 국내 보험계약의 상당수가 무효 처리될 수 있는 충격적인 재판 결과가 나왔다.
지난 8월30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보험 계약시 타사 가입 내역을 통보하지 않으면 보험사가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
고지의무 위반으로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다수 계약의 통지 의무를 강도 높게 적용한 판례지만, 이를 계기로 대규모 줄소송이 이어질 경우 극심한 혼란이 예상된다.
문제의 발단은 피고인 A씨가 암 진단을 받은 후, 가입보험사들에 보험금을 청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L손해보험사는 A씨가 보유하고 있는 10여개 관련 보험을 문제 삼아 소송을 제기했다.
보험 계약시 타사 가입 여부를 정확하게 고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현재 A씨가 가입한 보험회사 중 여섯 군데는 완전하진 않지만 보험금을 지급(부분 지급 포함)한 상태다.
그러나 나머지 회사들은 보험 집행을 미룬 채, 사태를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목에서 첫번째 오류를 발견할 수 있다.
보험회사들이 각기 다른 조치를 취한 것 자체가 이들조차 사건에 대한 공통된 입장을 정리하지 못했다는 점을 방증한다.
사실 보험가입 과정에서 이전 계약건을 고지하는 소비자는 드물다.
다수 계약 통지 의무가 있는지조차 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보험사 역시 이 사항을 사전에 확인하는 일은 거의 없다.
실제로 보험사들에 문의해도, 타사 가입 사실을 고지하지 않아도 큰 문제가 없다는 응답이 대부분이다.
보험소비자단체에서는 이번 판례가 적용되면, 적어도 절반 이상의 보험 계약이 무효 처리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김미숙 보험소비자협회 회장은 “대부분 보험 소비자들이 두세 개 이상의 유사 상품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판례를 따르면 누구든 피해를 받을 수 있다”며 “현재 사고 없이 유지하고 있는 계약 중 상당수가 보험료를 내도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없음을 확인한 사례”라고 말했다.
“가입 당시 보험사들조차 확인하지 않는 사안에 대해, 이같은 판결을 내린 것은 일방적으로 보험사의 입장을 반영한 결과”고 덧붙였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진퇴양난의 상황이다.
언제든 무효 처리될 수 있는 계약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그렇다고 보험을 해약하는 것 또한 녹록지만은 않다.
수년간 부어온 불입액이 아까운 것은 물론, 위약에 따른 손해까지 감수해야 한다.
보험사 입장에서도 뜨거운 감자이긴 마찬가지다.
보험업계 공통의 입장을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나홀로 분쟁에 나섰다간 자칫 이미지 훼손 등 역풍을 맞을 공산이 크다.
보험계약자들이 판례를 역이용할 경우, 대규모 계약 취소 사태에 봉착할 가능성도 있다.
실제로 보험소비자협회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계약자들이 해지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의견을 모으고 있다.
김 회장은 “고지의무를 설명해야 할 보험회사의 책임도 큰 만큼, 계약자가 납입한 보험료와 이자를 돌려줘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상황은 보험가입자에게 점점 불리하게 전개되고 있다.
최근 국회를 통과한 상법 개정안은 보험사들에 힘을 실어줄 조항을 명문화하고 있다.
이번 개정안에는 동일한 목적의 다른 보험 계약을 체결한 경우, 반드시 보험사에 통지하도록 했다.
이를 어기면 보험사에 무효권을 부여해(제672조 2) 언제든지 계약을 해지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보험소비자의 해지 권한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황철 기자 biggrow@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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