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고부동한 경영철학이 없었다면 대우그룹과 몽고제국을 건설하지 못했음은 분명하다.
또한 두 제국이 ‘사상누각(沙上樓閣)’처럼 붕괴된 이면엔 경영철학의 ‘허점’이 있었을 게다.
두 사람의 경영철학은 어땠을까. 김우중과 칭기즈칸의 경영철학 밑바닥엔 공히 ‘고독’과 ‘투쟁’이 깔려 있었다.
‘고독’과 ‘투쟁’은 강인함의 상징이다.
그래서 두 사람의 내면세계 역시 강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두사람의 ‘패착’으로 작용할 줄 누가 알았으랴…. 사실 고독과 투쟁은 ‘강함’ 보다는 ‘부드러움’을 의미한다.
고독(Solitary), 투쟁(Struggle)은 똑같이 알파벳 S자로 시작하는데, 이는 부드러움을 상징하는 ‘물의 흐름’을 뜻한다.
고독과 투쟁을 S자와 같이 부드럽게 행하라는 의미다.
“흐르는 물과 같은 부드러운 철학이 강한 쇠도 부러뜨린다”는 ‘유수부쟁선(流水不爭先)’의 속뜻과 같다.
‘강인한’ 리더십, 부드러운 앞에 좌초 하지만 두 사람은 이같은 원리를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초기엔 ‘강함’이 부드러움을 이기지만 장기적으론 반대의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던 것이다.
세계제패를 위해선 ‘강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채 스스로 ‘자승자박(自繩自縛)’함으로써 부드러움으로 변해야 하는 시기를 놓치고 말았다는 얘기다.
이것이 바로 두 사람의 ‘패망’을 견인한 공통분모였던 것 같다.
자! 이제부터 ‘고독’과 ‘투쟁’에서 파생된 김우중과 칭기즈칸의 경영철학을 21가지로 분류해 하나 하나 짚어보자. 첫 번째는 리더십 분석이다.
칭기즈칸은 태생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의 특성상 역할과 기능을 다할 수 없는 사람은 절대 ‘칸’에 등극할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칭기즈칸의 리더십은 강력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 유목민들에게 리더는 민족 전체의 생사를 ‘쥐락펴락’하는 중대한 존재다.
그래서 칸에 선출되기 위해선 엄격한 검증절차를 통과해야 한다.
칭기즈칸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칸’에 선출될 때 가장 높게 평가받은 대목은 강한 ‘호연지기(浩然之氣)’ 기질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거대하고 드넓은 ‘자연’으로 향하는 성향이 남달랐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솔선수범형의 리더십의 소유자다.
그는 ‘칸’이었지만 결코 뒷짐지고 앉아있지 않았다.
명령 보다는 함께 뛰는 것을 택했다.
전쟁터에 나가면 후방에 남아있는 법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후문이다.
사병과 함께 말을 탔고, 위험에 처한 병사들을 손수 도왔다.
지친 자를 일으켜 세운 사람도, 겁먹은 자를 분발케 한 주인공도 그였다.
칭기즈칸은 그야말로 ‘동반자형’ 리더였다.
흥미롭게도 김우중 역시 같은 성향의 리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한때 국내 최고 회사 대접을 받았던 한성실업 샐러리맨을 단숨에 때려 친 그는 ‘호연지기’ 하나로 먹고살 만큼 포부가 원대했다.
그가 대우그룹의 리더에 등극할 때의 일화다.
김우중은 70년대 쟁쟁한 선배들과 대우실업을 공동창업했는데, 사세가 확장되면서 리더가 필요했다.
김우중은 당시 샛별 같은 선배들과 리더 자리를 두고 다퉜다.
그 때 리더의 제1 덕목으로 손꼽혔던 게 바로 ‘호연지기.’ 큰 포부를 가진 사람을 리더로 선출하자는데 의견이 모아졌던 것이다.
김우중이 누군가? ‘호연지기’ 하나 만큼은 그를 따라올 자가 없었다.
그는 리더에 올랐고, 대우그룹을 한 때 세계 속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호연지기’도 남달랐지만 그는 결코 ‘명령’하는 법이 없었다.
직접 발로 현장을 뛰어야 직성이 풀리는 기이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세계현장을 누비며 고생하는 종업원들을 손수 격려하고, 분발시키는 것은 순전히 그의 고유권한이었다.
80년대 중반, 김우중이 아프리카를 횡단하는 자재운반열차를 탔을 때 얘기다.
당시 김우중은 새우잠을 자며 운반자재를 지키는 건설직원을 발견하고 이같은 대화를 나눴다.
김우중: 왜 웅크리고 자고 있는가? 직원: 자재를 운반할 때 분실되는 사례가 많아 어쩔 수 없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통 큰’ 리더였다.
곧바로 그 건설 직원에게 ‘일계급 특진’이라는 영전을 수여했다.
누구도 말릴 수 없었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그만한 대접을 받아야 마땅하다”는 논리 때문이었다.
또 다른 일화도 있다.
그가 80년대 말 리비아 사막현장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김우중은 당시 신장 160㎝, 체중 120㎏의 직원과 만났다.
한눈에 봐도 과체중이었다.
김우중은 ‘동반자형 리더십’을 가지고 있는 총수였다.
스스럼없이 이 직원에게 다가가 이렇게 말했다.
동반의 리더십으로 호평 그러나… “3개월 후까지 체중을 70㎏까지 감량하지 않으면 사표를 받겠다.
” 총수의 ‘명령’이 떨어졌으니 과체중의 이 직원도 어쩔 수 없었을 터. 그는 불철주야 일을 하면서도 운동을 게을리 하지 않았고, 결국 50㎏를 감량하는 기적을 연출했다.
3개월 후 김우중은 잊지 않고 이 직원에게 찾아가 이런 말을 남긴다.
“…노력하는 사람에겐 반드시 행복이 온다.
살 빼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을 보니 남다른 인재인 것 같다…” 언뜻 보면 사소한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다.
총수가 직원들과 속 깊은 대화를 나누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런 맥락에서 김우중은 탁월한 ‘동반자형 리더’였던 셈이다.
이처럼 김우중과 칭기즈칸은 상생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직원들과 ‘소통’이 가능했고, 직원 또는 부하들의 속사정을 훤히 꿰뚫어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동반자형 리더십’이 조직의 융통성과 자율성을 깨뜨리는 위험성이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두 사람은 이를 인지하지 못했고, 결국 ‘패망’을 피하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글= 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저작권자 © 이코노미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