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기즈칸에겐 본래 두가지 정신이 있었다.
하나는 불의 정신이고 또 다른 하나는 물의 정신이다.
전자는 파괴, 승부, 충동, 고혹, 유혹, 욕망의 성질을 가지고 있다.
반면 후자는 자기성찰, 생명과 사랑, 흐름, 변화의 성질을 나타내고 있다.
한마디로 불은 도전을 일컫고, 물은 창조를 의미한다.
이런 불과 물의 정신은 겉으론 상극으로 보이기 마련이지만 내면으론 상호 보완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Spirit는 이를테면 정신(情神)이 아닌 정신(精神)이다.
물과 불로 대변되는 칭기즈칸 정신 정신(情神)은 마음 心을 의미하며 감정에 따라 오락가락할 수 있는 마음(mind)이다.
반면 정신(精神)은 쌀 米가 있는 것으로,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되는 필수 요소(essence)다.
칭기즈칸은 이같은 정신을 제1의 가치로 여겼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실체는 고유의 정신이 있다고 믿었다.
가령 말은 누군가를 태워서 끝없는 초원을 질주하길 원하고, 호랑이는 밤에 홀로 화려한 용태를 뽐내고 싶은 식이다.
때문에 정신이 없다면 호랑이는 맹수가 아니요, 말은 질주할 수 없다.
전부 똑같은 특색 없는 동물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다.
칭기즈칸은 다양한 민족의 정신을 불과 물의 정신으로 결합, 승화시킴으로써 서로 다른 민족의 이질성을 한개의 힘으로 결집했다.
불과 물. 모양도 비슷하지만 이 둘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칭기즈칸은 상극이면서도 뗄 수 없는 불과 물을 민족의 정신으로 삼았다.
그렇다면 칭기즈칸은 왜 불과 물에 집착했을까. 아마도 혈혈단신으로 살아가는 과정에서 불과 물의 소중함을 체험했기 때문일 것이고, 또 다른 이유는 두개의 특징이 본인이 추구하고자 하는 도전과 창조의 정신에 꼭 맞아떨어지기 때문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대우그룹의 정신도 불, 물과 연관돼 있다.
대우그룹의 정신은 도전, 창조, 희생이다.
신입사원 때의 일이다.
당시 연수원에서 1개월간 교육훈련을 받았는데, 제일 먼저 배운 것이 도전, 창조, 희생이라는 사훈의 정신이었다.
새벽 5시에 기상해 밤 12시 취침에 들 때까지 한시간의 간격마다 도전, 창조, 희생이라는 구호를 우렁차게 외치곤 했다.
새벽 5km를 구보할 때도 한걸음 뗄 때마다 도전, 창조, 희생이라는 구호가 찬 공기를 갈랐다.
그때 모든 훈련생들은 의아 했었다.
당시 유행했던 사훈 대부분이 충성, 성실, 근면, 열성, 정직이었던 것하고는 상당히 뉘앙스가 달랐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회사들은 종업원들에게 피동적으로 회사에 성실근무하기 만을 요구했었다.
그러나 대우그룹의 사훈은 이와 반대로 종업원들이 능동적으로 회사를 이끌어 나가기를 요구했다.
이 정신을 구현하기 위해서 김우중은 손수 그룹의 정신을 대표하는 사훈을 지어냈다.
이 정신을 모토로 하지 않고는 넓은 세상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 낼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700여년 전, 칭기즈칸의 도전을 뜻하는 불의 정신, 창조를 뜻하는 물의 정신과 우연히 딱 들어맞았다.
하지만 이는 우연의 일치가 아니라 필연적으로 일치 할 수밖에 없다.
세계를 지배하고자 하는 자는 이 두개의 정신을 꼭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 김우중이 대우직원들에게 요구한 도전 정신은 대단했다.
무슨 일이든지 장애물이 나타나면 돌아 나가는 게 아니라 정면 돌파로 해답을 찾곤 했다.
안 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푸는 해답을 찾으라는 것이 그의 주문이었다.
쌍용자동차를 정부 방침에 따라 대우가 인수했던 98년 때의 일이다.
조급한 정부 방침에 따라 전격적으로 인수계약서에 사인, 언론에 공표한 후 김우중은 긴급출장으로 해외에 나갔다.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 사람들은 인수조건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다.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인수 조건으로 계약서에 이미 사인을 했기 때문이었다.
인수자에게 약 2천억원 이상의 세금부담이 불가피했다.
도전정신 대단했던 김우중 이 세금은 법에 따라 부과되는 것으로 법을 고치지 않고는 피할 수가 없었다.
구조본 관계자들은 김우중에게 부득이 계약취소를 할 수밖에 없는 사정을 보고하고 정부에 양해를 구하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느 누구도 이런 조건으로는 회사를 인수해 경영할 수가 없다.
정부측에도 설명을 하면 충분히 인수 계약취소 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김우중은 달랐다.
비행기에서 내리자마자 다시 비행기에 올라타고 귀국했다.
구조본 관계자에게 지시한 것은 인수 계약취소가 아니라 세금부담을 없애라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도전하라는 것이다.
“회장님. 이 세금부담은 불가피한 것으로 사실상 어렵습니다.
” “무슨 소리야! 안되는 게 어디 있어. 무조건 세금부담 없앨 방법을 강구해. 죽는 한이 있더라도 해. 장애물을 없애는 도전이야말로 진짜 도전이야!”하는 회장의 목소리가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울린다.
2달간에 벌린 사투 끝에 세금의 장애물을 없애고 지금의 화려한 쌍용자동차를 부활시킬 수 있었다.
다른 그룹의 총수였다면 이 장애물 때문에, 포기했을 업무가 김우중의 도전 정신으로 장애물을 극복하고 추진된 것이다.
97년 외한위기에서도 곰의 동면처럼 모두가 축소지향적인 경영을 할 때, 오로지 김우중만은 이때 일수록 더 확대지향적인 경영을 해야 한다는 소신이었다.
정부가 앞장서서 기업의 경영을 옭아맬 때 그만 홀로 정부에 반대, 더욱 세계경영을 확장 한 것은 그의 평소경영철학이 도전, 창조의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의 단명을 초래했을지도 모른다.
글= 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저작권자 © 이코노미21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