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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컴퍼니]나눔 실천하여 ‘선의의 힘’ 될 것
[CEO&컴퍼니]나눔 실천하여 ‘선의의 힘’ 될 것
  • 박선영
  • 승인 2007.11.19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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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석 대표의 첫인상은 부드럽다.
중저음의 목소리도 그렇거니와 천천히 분명하게 말하는 어투, 인터뷰 사이에 편하게 웃음 짓는 표정이 그렇다.
그런 외모와 달리 그의 별명은 뜻밖에도 ‘탱크’다.
이유는 유 대표 자신도 잘 모른다.
본인과는 전혀 딴판인 별명이라고 생각하는데 오히려 자신을 잘 아는 지인들이 그렇게 부르니 억울하다며 웃는다.
150억에서 15억으로 뉴스킨 엔터프라이즈 코리아는 미국 유타주 프로보에 위치한 다국적 직접 판매 기업인 뉴스킨 엔터프라이즈의 한국 지사로서 1996년 국내에 진출했다.
현재 뉴스킨 엔터프라이즈 코리아는 ‘뉴스킨’이라는 브랜드의 화장품과 ‘파마넥스’ 브랜드의 건강 기능 식품을 판매하고 ‘빅플래닛’ 브랜드로 테크놀로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1996년 국내 진출시에는 ‘뉴스킨’ 화장품만 있었다.
당시 회사 이름 또한 ‘뉴스킨 코리아’. 2월8일에 사업을 시작해 첫달에만 36억원어치의 매출을 올렸고, 4개월이 지난 이후 월 매출은 100억 원을 돌파했다.
국내 화장품 수입 실적 1위, 시장 점유율 5%였던 96년 상반기에 취급하고 있던 제품은 단 35개였다.
대한민국 시장에 진출을 결정한 본사 임원진은 물론, 국내 임직원들도 전혀 예상치 못한 대성공이었다.
유병석 대표는 “아직도 ‘뉴스킨’이라고 하면 ‘아! 옛날에 써봤던 화장품이다.
지금도 있느냐?’라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뉴스킨 엔터프라이즈 코리아의 지난 과거를 단적으로 얘기해 주는 표현이죠”라고 말했다.
그는 97년 3월에도 150억원이 넘던 월매출이 다음달에 110억원으로 떨어졌을 때만 해도 일시적인 현상인 줄 알았다.
하지만 5월에 100억 밑으로 떨어진 매출은 그 해 10월 30억 아래로 곤두박질쳤고 뉴스킨 코리아가 간신히 월매출 20억원원 선 을 지킨 다음 달인 12월 4일, 임창렬 당시 부총리는 IMF 긴급 자금 지원 양해 각서에 서명했다.
전문 컨설턴트에서 경영인으로 뉴스킨 엔터프라이즈의 블레이크 로니 회장이 유병석 대표이사를 찾은 것은 혹독한 IMF의 시기로 뉴스킨 코리아의 월매출이 10억에서 20억 사이를 오고 가던 98년이었다.
81년 도미, 브링엄 영 대학교와 하와이 대학교 경영 대학원을 졸업한 유병석 대표는 당시 여러 미국 기업들에 한국 관련 비즈니스를 자문해주는 전문 컨설턴트였다.
유 대표는 “힘든 시기였습니다.
건강 기능 식품 브랜드인 ‘파마넥스’를 총력을 기울여 론칭하고 반전을 일으켜야만 했습니다.
그래도 안 될 때는 ‘최후의 조치’까지 고려하던 상황이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로니 회장은 고국으로 돌아가 뉴스킨 코리아의 파마넥스 사업부를 맡아 줄 것을 권유했다.
개인적으로 좋은 기회였지만 아이들 때문에 선뜻 결정을 내릴 수가 없었다.
당시 아들 희재는 8살, 딸 맑음이가 6살이었다.
귀국해서도 미국에서처럼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을지 고민하자 로니 회장은 “그것만큼은 확실하게 보장하겠다”며 흔쾌히 결정했다.
로니 회장과 유병석 대표는 대학 동문으로 과거부터 유 대표 또한 뉴스킨 엔터프라이즈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가족의 가치를 소중히 여기는 분위기와 정직한 경영진이 있는 회사. 그리고 회사의 사명이 세상을 이롭게 하는 ‘선의의 힘(force for good)’이라는 것이 결국 뉴스킨 엔터프라이즈 코리아를 선택하게 된 동기가 되게 되었다.
1998년, 유 대표는 뉴스킨 코리아의 부사장으로 부임했다.
그리고 이듬해에는 건강 기능 식품 브랜드인 ‘파마넥스’를 출범시키고 파마넥스 사업부 사장으로 취임했다.
회사 이름을 엔에스이코리아로 바꾼 후 브랜드마케팅의 시작을 위해 ‘뉴스킨’과 ‘파마넥스’라는 브랜드를 전면에 내세워 소비자들을 찾아갔고, 사업부를 달리해서 직원은 물론 판매원들도 별도로 관리했다.
그 결과 경쟁과 시너지 효과가 동시에 생겼다.
2000년 연매출이 300억원을 넘나 싶더니 그 이듬해엔 600억원 고지를 밟았고 2002년엔 800억원을 돌파했다.
2003년 9월, 유 대표는 엔에스이코리아의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다시 법인명을 뉴스킨 엔터프라이즈 코리아로 바꾼 2005년 11월, 월매출이 100억 원을 돌파했다.
97년 4월 이후 8년 7개월 만이었고, 10억을 간신히 넘긴 최하 월매출을 기록한 98년 8월 이후로는 7년 3개월 만이었다.
매장을 찾은 회원들에게 떡을 돌렸다.
한고비를 넘긴 순간이었다.
2006년 뉴스킨 엔터프라이즈 코리아의 연매출은 1313억원. 2007년 예상 연매출액은 1500억원이다.
성장과 나눔 통한 제2의 도약 뉴스킨 엔터프라이즈 코리아의 처음 10년을 유 대표는 ‘생존의 시기’라고 정의했다.
“비유를 하자면, 밥을 지으려고 해도 쌀이 없었던 상황이었으니까요” 밥을 지을 쌀을 구해야 했다.
매번 밥을 지은 후에도 쌀이 바닥나지 않게 하는 것이 급선무였다.
2006년 유 대표는 앞으로의 10년을 ‘성장과 나눔의 시기’라고 정의했다.
“지금과 같아서는 쌀이 바닥날 것 같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밥을 많이 지어 여러 사람과 함께 먹으려고 합니다(웃음). 그러려면 꾸준한 성장을 해나가야 합니다.
어려운 10년을 보냈으니 다시 신발끈을 조이고 제2의 도약을 펼쳐야 합니다.
바로 뉴스킨 엔터프라이즈의 사명인 ‘선의의 힘(force for good)’이 되려고 말이죠.” 유 대표가 주장하는 ‘성장’과 ‘나눔’ 중에 ‘성장’의 첫번째 동력은 제품이라고 했다.
‘뉴스킨 180°’ 같은 제품은 낱개 판매량까지 따졌을 때 국내에서 70만 개 이상이 팔렸다.
지금도 월 2만개가 팔리고 있다.
종합 비타민제인 파마넥스 라이프팩의 단일 제품 매출액은 월 10억 원. 두 제품 다 국내에 최초 형태로 소개된 지는 7년이 넘었다.
뉴스킨 엔터프라이즈만의 제품력을 믿고 구매하는 고객들의 신뢰가 제품의 꾸준한 소비를 낳고 이는 또다시 혁신적인 제품 개발의 선순환을 일으킨다고 유병석 대표이사는 말한다.
둘째는 ‘당면한 유비쿼터스 시대의 앞선 개척’을 들었다.
뉴스킨 엔터프라이즈의 ‘빅플래닛’ 브랜드가 제공하는 것은 테크놀로지 서비스. 직접판매 업계에서는 좀처럼 보기 어려운 사업 분야이다.
유 대표는 “뉴스킨이 아름다움을, 파마넥스가 건강함을 제공한다면, 빅플래닛은 편리함을 제공합니다”라는 말로 빅플래닛을 설명한다.
뉴스킨 엔터프라이즈 코리아는 현재 빅플래닛 브랜드로 정수기를 판매하는 동시에, 회원들이 운영하는 일관성 있는 홈페이지 서비스(GWP 4C), 이동 통신 가입 서비스(KTF와 제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2008년에는 이러닝(e-Learning) 서비스와 디지털 이미지 통합 관리 서비스도 제공하여 본격적인 빅플래닛 사업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각오다.
“구분과 경계가 점점 그 의미를 잃는 ‘유비쿼터스’ 시대는 이미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변화에 맞추어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변화의 시대를 앞서 개척해 나가는 사람만이 생존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 유병석 대표는 ‘유비쿼터스 시대’를 개척해 나가는 키워드로 단순함(Simple)과 혁신(Innovation)을 제시하였다.
현재 시행하고 준비중인 빅플래닛의 여러 서비스들은 모두 혁신성을 쉽고 편리하게 접할 수 있는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그의 의지는 지난 7월 말에 새로 입주한 신사옥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서울시 강남구의 신축 건물 ‘레베쌍트 빌딩’으로 이사하며 매장과 사무실을 여러 신기술로 가득 채웠다.
제품에 소형 반도체 칩을 부착해 사물의 정보가 무선으로 인식되는 RFID 시스템을 도입, 매장을 찾은 고객들이 따로 직원에게 물어보지 않고도 직접 제품을 LCD 모니터 앞에 이동시켜 제품에 대한 상세 정보를 알 수 있게 했다.
또한 키오스크 주문 시스템으로 제품 구입도 쉽고 간편하게 바꿨다.
키오스크 시스템에도 RFID를 접목시켜 ID 카드를 발급받은 회원들은 본인 정보를 일일이 입력할 필요 없이 ID 카드를 RFID로 인식시켜 간편하게 쇼핑을 즐길 수 있게 했다.
3개의 터치스크린 대형 LCD 모니터를 설치하여, 고객들로 하여금 수시로 업데이트 되는 정보들을 능동적으로 습득할 수 있게 하였다.
심지어는 매장 한편에 화려한 그래픽 효과가 스크린에 대한 접촉을 따라다니며 반응하는 인터랙티브 미디어 테이블을 설치하여 정보 전달에 즐거움까지 가미하였다.
이번에는 나눔을 말할 때 늘 강조하는 ‘선의의 힘’이 무엇인지 물었다.
본사인 뉴스킨 엔터프라이즈가 전세계 지사와 함께 추구하는 기업의 사명이란다.
혁신적인 제품과 훌륭한 사업 기회, 풍요롭고 향상된 문화의 제공을 통해 사람들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 ‘선의의 힘(force for good)’이 되는 것이 뉴스킨 엔터프라이즈의 사명(Mission). 실제로 이를 위해, 뉴스킨 엔터프라이즈는 ‘뉴스킨 포스 포 굿 재단’이라는 비영리 사회 복지 법인을 설립, 전세계를 무대로 사회 기여 활동을 펼치고 있다.
희귀 난치병인 ‘수포성 표피 박리증’의 치료 연구를 위해 스탠포드 의과 대학 내에 피부 연구를 위한 ‘뉴스킨 센터’도 설립하였다.
또한 자서전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유명한 리 아이아코카 전 크라이슬러 회장이 이사장직을 맡고 있는 너리시 더 칠드런(Nourish the Children) 운동은 지금까지 아프리카 대륙의 기아 어린이들에게 총 8천만 끼의 식사를 제공하였다고 한다.
뉴스킨 엔터프라이즈 코리아는 현재 국내에서 진행하고 있는 기업의 사회 책임 활동을 앞으로 계속 확대해 실시할 계획이다.
사회적 인식이 미미한 국내 수포성 표피 박리증 환자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시작된 수포성 표피 박리증 환우 가족 모임이 올해로 5회를 맞이했고, 11월27일에는 작년에 이어 관악구 일대에서 임직원들이 참여하는 쌀 배달 봉사활동을 펼친다.
노인 복지 시설에 대한 제품 후원과 루게릭병 협회에 대한 후원도 꾸준히 펼치고 있다.
또한 회원들의 자발적인 성금으로 다양한 사회 공헌 활동을 펼쳐 왔다.
한국 월드 비전에서 실시하는 ‘사랑의 도시락 나눔 운동’에 후원한 것만 도시락 5만7천개 분. 도시락 배송 차량도 2대를 기증했다.
그 밖에도 수포성 표피 박리증 환우를 위한 수술비 지급, 영동 세브란스 병원에 수포성 표피 박리증 연구비 후원 등의 활동을 펼쳐 왔다.
향후 뉴스킨 엔터프라이즈 코리아의 임직원과 회원들이 역점을 두고 있는 프로젝트는 지방 소규모 초등학교에 대한 도서관 리모델링 사업. 유병석 대표는 당장 이번 겨울 방학에 2개 도서관을 시작으로 향후 꾸준히 도서관 리모델링 사업을 추진하여 기업의 사회적 책무를 다할 계획이라고 밝힌다.
미국에서 대학과 대학원을 마치고 현지에서 컨설턴트로 활동하다 귀국해 경영자로 성공적인 변신을 이룩한 유병석 대표. 어려운 기업 여건을 극복하고 안정을 찾고 나서 바로 새로운 도약을 설계하고 추진하는 그의 모습에서 사람들이 ‘탱크’를 연상하는 것이 그에게 그리 억울한 일은 아닌 듯하다.
그의 책상에는 두 장의 사진이 있다.
하나는 딸 맑음이의 사진이고 하나는 지난 10월9일 직접 판매 협회 회원사 임직원과 밥퍼 운동 본부를 찾아 봉사활동을 한 후에 촬영한 기념사진이다.
두 장의 사진이 가장으로서, 경영인으로서 현재 그의 마음속을 잘 보여주고 있다.
유 대표는 “지금껏 이뤄온 11년 시간보다 앞으로 성장할 시간이 더 기대된다”며 뉴스킨 엔터프라이즈 코리아의 제2의 도약을 지켜봐 달라고 당부했다.
박선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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