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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 타임머신]‘관용’의 미학 … 세계경영 ‘밑거름’
[이코노 타임머신]‘관용’의 미학 … 세계경영 ‘밑거름’
  • 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
  • 승인 2007.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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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을 동지로 만드는데 일가견 있는 칭기즈칸 … 김우중, ‘관용’으로 조직원 단속 김우중과 칭기즈칸의 여덟 번째 공통점은 Tolerance(관용)이다.
칭기즈칸은 동지가 없었다.
아버지인 예수게이의 독살로 혈혈단신 고난과 역경을 이겨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에게 필요한 것은 생명을 함께 할 수 있는 ‘동지’였다.
칭기즈칸은 동지를 만드는 데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적’을 포섭해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은 기본 전략이었다.
어쩌면 그에겐 ‘피아’ (被我) 개념이 없었을지 모를 일이다.
적과 나라는 ‘이분법’으론 그를 따르고 충성하는 ‘동지’를 만들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칭기즈칸 ‘관용’으로 대제국 건설 한 가지 가정을 해보자. 만약 칭기즈칸이 어제의 적을 오늘의 적으로 계속 뒀다면 그는 영원히 혈혈단신이었을 게다.
그 역시도 자기 아버지처럼 독살당했을 지도 모른다.
그에게 ‘동지 만들기’는 숙명과도 같았을 터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동지를 규합할 수 있었을까. 칭기즈칸은 무자비한 칼을 버렸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힘만이 동지를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이것이 바로 Tolerance, 즉 관용이다.
칭기즈칸의 관용은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수많은 서구 역사학자들이 그를 두고 전쟁광, 학살자, 정복자, 야심가라는 혹평을 서슴지 않지만 이는 다분히 의도적인 면이 적지 않다.
자신들을 무릎 꿇게 한 칭기즈칸에 대한 왜곡일 가능성이 크다는 이야기다.
그의 관용을 잘 보여주는 사례를 살펴보자. 그의 아내 버르테가 적에게 납치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적을 소탕하고 아내를 되찾았지만 아쉽게도 아내 버르테는 적장의 아이를 임신한 상태였다.
강간을 당했던 것이다.
그러나 칭기즈칸은 “내 아내의 아들은 곧 나의 아들이다”라며 관용으로 버르테의 아들을 장남으로 받아들인다.
관용이 없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후계구도에서 장남을 배제하지만 그 장남과 후손들에게 새로운 영지를 개척도록 해 유럽을 손아귀에 넣도록 간접적으로 도와준다.
이 장남의 이름이 ‘조치’다.
그리고 조치가 유럽을 정벌해 세운 국가가 다름 아닌 킵차크칸국이다.
칭기즈칸이 ‘관용’ 하나로 최대의 ‘적’을 훌륭한 ‘부하’로 변신시킨 사례도 찾아볼 수 있다.
그에겐 대제국을 건설한 주역인 여덟 명의 최측근이 있었다.
이들이 얼마나 무섭고 용맹했는지는 호칭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적들은 이들을 가리켜 네 마리의 준마와 네 마리의 맹견으로 불렀는데, 준마와 맹견은 싸움도 잘하지만 하나같이 칭기즈칸에 충성하는 절대 부하였다.
이 여덟 사람이 다름 아닌 적군의 장수, 전쟁고아, 천민 출신이었다는 점은 칭기즈칸이 얼마나 관용을 베풀었는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칭기즈칸의 이같은 관용정신은 부하들에게도 본보기가 돼 그의 부하들은 모두 철저한 충성심과 결속심으로 무장하게 된다.
실제 그의 보초병들은 절대 잠을 자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직 칭기즈칸을 지키겠다는 일념 때문이었을 게다.
이를 잘 보여주는 일화는 적지 않다.
어느 한 병사가 보초를 서다가 자신도 모르게 한참을 졸다 깨어났다.
깨어나니 주위에는 아무런 일도 없었지만 그 병사는 바로 수비대장에게 달려가 자신이 경비의 책무를 다하지 못했음을 자백하고는 처벌을 원했다.
칭기즈칸은 그에게 이렇게 물었다.
“아무 일도 없었는데 구태여 그럴 필요가 있느냐.” 병사의 대답이 걸작이다.
“한순간 졸음으로 칸의 생명뿐만 아니라 수많은 병사들의 목숨을 위태롭게도 할 수 있었다는 자책감으로 처벌을 받아야 합니다.
” 결국 그 병사는 수많은 병사 앞에서 태장 500대의 가혹한 형벌을 받아 초죽음이 됐다고 한다.
칭기즈칸만큼 김우중의 ‘관용’도 유명했다.
김우중은 혈혈단신이었고 보따리 장사하는 대우실업이라는 수출회사 한 개가 전부였다.
대우그룹의 모든 회사가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형태였다.
재산도 없고 동지도 없는 그에게는 오로지 부실기업을 인수해 정상화시킬 수 있는 의지와 지혜가 있었고, 그 길만이 세계경영을 펼 수 있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부실기업의 경영진이야말로 사실상 책임을 지고 퇴진하여야 함에도 인수 후 김우중은 한 번도 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은 적이 없고 오히려 그에게 정상화의 막중한 권리와 책임을 맡겼다.
더구나 인수 실무 작업을 지휘했던 구조조정본부입장에서는 구(舊) 경영진의 퇴각은 절대적인 인수의 전제조건이었다.
인수 작업 시에 구 경영진들이 펼쳤던 방해 및 협박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회사가 넘어 가면 자신들이 모두 잘릴 것으로 우려했던 구 경영진들은 생존수단으로 노조를 앞세운다거나 자료를 숨긴다거나 거짓자료를 제출한다거나 하는 갖가지 방법으로 손을 떼게 만들려는 심사였던 것 같았다.
새로운 오너 입장에서 과거의 오너 습성이 배어 있는 경영진은 마땅히 퇴진시키고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는 것은 경영의 상식이다.
그러나 인수할 때마다 구조조정본부에서 가져다주는 새로운 경영진의 진용 복안은 무용지물이 됐다.
구조정본부의 방침과 회장의 방침이 달랐다는 이야기다.
그럴 때마다 회장은 구관이 명관이고 그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진정한 대우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다는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적에 대한 관용이었다.
보따리 쌌던 구 경영진들이 다시 회장의 관용으로 보따리를 풀게 되었으니 그들의 충성심이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 했다.
결국 적에 불과했던 피 인수기업의 경영진들이 동지가 돼 경영에 참여하게 됐다.
대우그룹의 경우 어느 그룹보다 이질적인 요소들의 복합체다.
그룹의 주력회사가 전부 타 회사를 인수한 것이다 보니 서로 다른 체질일 수밖에 없다.
이때 적과 나의 이분법을 쓴다면 끊임없는 노사갈등과 인수기업 및 피 인수기업간의 알력으로 대우그룹의 조직체는 만들어 지지 않았을 것이다.
김우중은 관용으로 적을 모두 대우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80년도 한국중공업(현재의 두산중공업)을 인수 할 때의 일이다.
정부(전두환 정부)의 강요에 의해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인수한 것인데 인수하고 보니 엄청난 부실과 경영의 잘못이 있었다.
새로운 각오로 경영하지 않으면 정상화가 불가능했다.
이때만큼은 어쩔 수없이 경영진들을 모두 사퇴시키고 김우중이 한국중공업의 회장으로 취임하고 그룹의 기획조정실이 한국중공업의 기획조정실로 탈바꿈했다.
대우그룹은 내팽개치고 오로지 한국중공업에만 그룹의 역량을 집중했다.
필자는 그때 대우센타 5층 그룹기획조정실을 경남 마산에 있는 한국중공업 기획조정실로 이사 한 사실이 기억에 생생하다.
마산에 근무하기 싫은 일부 직원은 사표를 내기도 했던 사실이 기억난다.
모든 구 경영진들이 사표 내고 대우의 새로운 경영진들이 포진되니 혁신적인 경영이 기대되었다.
김우중, 인수 후 경영진 교체 안 해 그러나 김우중의 관용정신이 또 발휘됐다.
구 경영진 가운데 한 사람을 지목하고 그에게 막중한 일을 맡겼다.
그는 집에서 실업자 생활을 하다가 회장의 부름을 받고는 감격한 나머지 평생을 대우그룹의 경영자로 충성을 다 했다.
필자하고도 많은 일을 같이했는데 그의 열성은 대단했다.
회장이 시키는 일은 뭐든지 생명을 걸다시피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매달렸다.
그의 대우그룹에 대한 기여도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는 93년도에 유명을 달리했다.
과로에 따른 심장마비였다.
이 사건 이후 대우임원들의 건강진단이 철저하게 시행되는 계기가 되었고 한 사람에게 초인적인 업무를 시키는 관행이 완화되었다.
그의 이름은 정시창이었다.
실명을 거론함은 그의 대우그룹에 대한 기여도가 남달라 그의 명복을 빌고자 함이다.
김우중의 관용정신을 엿볼 수 있는 사례는 또 있다.
대우그룹은 구조조정본부에서 계열사의 감사를 수없이 했다.
감사 후 신상필벌을 요구하는 구조조정본부의 의견이 채택되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조그만 사손(社損) 행위도 용납되지 않는 것이 감사팀의 의무이다.
그러나 김우중은 넓은 관용으로 큰 비리가 아닌 한 사표를 강요하지 않았다.
이 관용이 대 재벌기업을 만든 동인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한 편으로는 조직의 기강을 무너뜨리는 동인도 될 수 있었다.
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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