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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 타임머신]전쟁에서 이기는 법은 ‘기술혁신’
[이코노 타임머신]전쟁에서 이기는 법은 ‘기술혁신’
  • 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
  • 승인 2008.01.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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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칸, 기술자 우대해 강력한 무기 개발 … 김우중, 기술원 설립해 핵심제품 육성 지금의 기업판매나 옛날의 전쟁이나 마찬가지다.
한정된 시장에서 자기의 제품을 더 판매하려면 차별화된 신제품을 가지고 경쟁자의 시장을 빼앗는 것이 최선의 방법이다.
새로운 황무지의 신시장을 개척한다는 것은 시장의 형성 가능성, 계속성 여부, 경제적 타당성 여부 등의 리스크와 여러 가지 비용 측면을 고려했을 때 성공 확률이 낮을 수밖에 없고 기존 시장의 울타리가 좀처럼 없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미 정착된 시장을 빼앗는 것이야 말로 무혈입성이나 다름없다.
그러나 그 대가로 신제품의 출현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이 출현을 위해서는 바로 R&D에 대한 엄청난 관심과 투자가 쏟아져야 한다.
칭기즈칸도 이미 성곽과 주민들로 견고하게 이루어진 다른 나라의 수도를 치려면 새로운 신제품의 공격무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공격하는 쪽이 방어하는 쪽보다 더 우수한 무기가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칭기즈칸이 절대 죽이지 않는 부류가 있었는데 바로 기술자 집단이었다.
기술개발 중요성 강조 칭기즈칸은 초반 몇 년간의 전쟁에서 잡아들인 기술자 수가 무려 6만명에 달했고 이들을 한데 모아 집단촌을 형성해 기술개발에만 몰두케 했다.
피정복자의 입장에서 칭기즈칸으로부터 목숨을 부지하려면, 아부나 충성, 혹은 도망이 아니라 스스로 본인이 기술을 개발하고 습득하는 길만이 유일한 수단일 정도로 기술자를 최고로 우대했다.
지금으로 얘기하면 미국의 실리콘밸리나 한국의 대덕연구단지와 같은 격이었다.
그렇게 해서 성곽을 공격하는 신무기를 개량하고 당시 중국의 금나라에서 축제용으로만 쓰고 있었던 화약을 전투에 활용했다.
갑옷도 무거운 철갑통 대신 옷 속에 얇은 철사로 된 스프링을 집어넣어 가볍게 했고 이것은 몸 움직임을 좋게 했을 뿐만 아니라 화살을 웬만큼 막아 내는 역할을 했다.
활의 소재도 물소 뿔과 힘줄을 사용해 단단한 탄력을 가지게 했고 화살촉은 촉의 소재로 철보다 강한 흑요석이라는 물질로 만들었다.
또 손잡이 화살에는 구멍을 뚫어 날아갈 때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게 해적들로 하여금 공포감을 가지게 했다.
칼도 직선형이 아니라 반달형으로 만들어 달리는 말 위에서 힘 안 들이고 적의 몸에 살짝 갖다 대어도 엄청난 살상력을 가지도록 했다.
전쟁무기의 모든 제품을 혁신적으로 변형시켜 다른 적들보다 경쟁력을 가지게 했던 것이 이른바 기술패권주의의 상징인 셈이다.
김우중 R&D 부분 전력 김우중은 기업전쟁에서 이기는 방법은 기술혁신에 따른 새로운 개념의 신제품을 만들어 내 경쟁자가 가지고 있는 기존 시장을 잠식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초창기부터 계열사들의 R&D 부분에 전력을 집중했다.
1980년대 중동의 오일쇼크 여파가 몰려오자 대우그룹은 매년 전년대비 50% 경비절감이라는 대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전 계열사들을 독려했다.
ⓒECONOMY21 사진
이 일은 필자가 근무한 기획조정실 경영관리팀에서 주관했는데 연말 계열사별 절감실적을 점검할 때 상상치 못했던 일이 벌어졌던 적이 있었다.
계열사별로 경비절감 실적을 점검하던 중 김 회장은 갑자기 R&D 부분의 경비를 별도로 계산하도록 지시해 필자는 경비절감 내용 중 R&D 부분을 따로 발췌 보고했다.
김 회장은 이 보고를 받으면서 경비절감 실적 1등인 회사를 꼴찌로 순위를 매기고 경비절감 실적 꼴찌인 회사를 1등으로 올려 순위를 새로 매겼다.
이 순위가 각 계열사 직원들에 대한 승진 및 인사고과의 인센티브가 되기 때문에 계열사들의 최고 관심사이기도 했다.
모두가 어리둥절한 가운데 김 회장은 이렇게 설명했다.
1위였던 회사는 절감내용 중 R&D 부분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하지만 꼴찌였던 회사는 R&D 부분이 오히려 늘어나 다른 부분에서 절감했다.
하지만 회사 전체로는 경비절감은커녕 거꾸로 늘어난 것이다.
단순한 실무진에서의 순위 매김은 회사 전체의 절감 실적을 기준으로 했지만 김 회장은 특유한 그만의 철학을 가지고 순위를 다시 매겼던 것이다.
기술패권주의 철학 실행 이처럼 김우중은 그 자신이 기술자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대우조선이 합리화 과정을 밟을 때나 대우자동차가 합리화 과정을 밞을 때도 그는 단연코 본사에서의 책상물림을 마다했다.
그리고 옥포조선소에서 1년, 부평자동차공장에서 1년을 작업복차림으로 현장직원들과 숙식을 같이하면서 기술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그의 기술패권주의는 1993년 절정을 달했다.
한국 최초의 공익법인인 고등기술원을 만드는 것이었다.
당시 기술은 현장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고정관념과 고등기술원을 만드는데 필요한 막대한 자금사정으로 각 계열사 대표들의 반대가 많았다.
거의 2천억원 이상이 소요되는 일이었는데 현장에서 아닌 고등기술원이라는 별도의 기구에 거금을 기부한다는 게 사실상 어려웠다.
그러나 필자와 각 계열사 사장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현재의 용인에 거대한 기술원을 설립케 했던 것은 바로 그의 기술패권주의 철학인 것이다.
이 기술원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첨단 기술을 위한 보루가 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이다.
김우일 전 대우그룹 구조조정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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