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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스토리]원자재발 쓰나미가 몰려온다
[커버 스토리]원자재발 쓰나미가 몰려온다
  • 신승훈 기자
  • 승인 2008.02.25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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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 철광석, 곡물 3高 물가인상 등 경제비상 전세계를 인플레 공포로 몰아넣고 있는 ‘원자재 가격폭등’이 드디어 한반도에도 상륙했다.
철광석과 철강, 원유, 나프타, 알루미늄 등 산업 원재료는 물론 식생활과 밀접한 원료인 밀과 콩 가격까지 요즘엔 가격이 오르지 않는 것을 찾기 어렵다.
유가는 100달러 시대를 열었고 지난해 1월 톤당 79달러였던 철광석 현물가격은 현재 200달러 수준까지 두 배 이상 폭등했다.
유연탄 가격도 큰 폭으로 올랐다.
여기에 곡물가격도 인상돼 1년새 콩(95%), 밀(79%), 옥수수(25%) 모두 급등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인플레 선행지표격인 원재료 및 중간재의 1월 물가 상승률은 작년 같은 달에 비해 17.3% 올라, 외환위기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특히 지난달 수입물가가 21.2%나 수직상승하면서 물가에 비상이 걸린 상태다.
이런 수입물가 인상율은 IMF 직후인 지난 1998년 10월의 25.6% 이후 최고치여서 다른 물가에 미칠 영향이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수급 불균형에 투기적 요소 결합 최근 유화업계는 석유화학제품의 원재료인 나프타 가격 폭등으로 비상이다.
지난해 1월 1t에 530달러이던 나프타는 지금은 880달러까지 치솟았다.
GS칼텍스와 SK에너지 등 유화 업계는 수익성이 악화돼 제품생산을 멈추거나 줄이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해 유가상승이 신흥시장의 투자 붐에 기인한 수요 측면에 있었다면 올 해는 텍사스 정유시설의 폭발 사고, 나이지리아 및 베네수엘라의 엑손 모빌에 대한 수출 중단 가능성, 3월 5일 예정된 OPEC 회의에서 감산 결정 논의 등 공급 쪽에 차질이 생긴 측면이 더 강하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국제 유가의 변동을 야기시키는 요인으로 “세계 경제 성장에 따른 수요 측면, 산유국의 공급 측면, 투기적 선물 거래로 인한 가격 변동폭 확대, 미국의 추가 금리 인하 및 경기 둔화 가능성에 따른 달러화 약세를 방어하기 위한 비달러화 자산 투자” 등을 꼽았다.
ⓒECONOMY21 표
철강제품의 원료인 철광석의 가격인상 역시 수급 불균형과 함께 사재기 등 투기적 요인이 맞물린 결과라는 분석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글로벌 달러 약세가 지속되면서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글로벌 유동자금이 금, 원유, 곡물 등 원자재에 몰리면서 가격을 끌어올리고 있다는 지적이다.
오는 4월부터 철광석 수입가격이 65% 인상되는 데다 유연탄 값도 급등할 것으로 예고돼 있어 이것이 후속물가 인상으로 고스란히 이어질 전망이다.
이미 국내 산업계 곳곳에서 철강, 시멘트 등 중간 생산재의 ‘사재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이 같은 사재는 추가적인 가격 인상을 우려한 불안 심리가 주요 원인인 경우가 많다.
때문인지 건설업계는 요즘 ‘철근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철근값이 크게 올랐지만 원하는 물량을 확보하기는 어려워 그야말로 ‘하늘의 별따기’다.
올 들어 두 달 동안 15%(t당 10만원) 이상 올랐다.
철근은 건설업체들이 구매하는 전체 자재의 25%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크기 때문에 업체로선 반드시 물량확보에 나설 수밖에 없다.
시멘트와 유화 업계에서도 가격 급등에 따른 수급 구조 붕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작년 여름 t당 4만8000원 선에 거래되던 수도권 시멘트 가격은 이달 들어 5만9000원으로 20% 이상 올랐다.
식료품 시장에서도 사재기 현상이 나타나 원자재 대란의 여파가 생활전체로 퍼져나가고 있음을 알게해준다.
밀가루가격 상승은 라면, 과자, 자장면값을 올려놓았다.
곡물값 상승여파로 돼지 사료값도 ㎏1년전보다 33%나 올랐다.
식품 대리점을 통해 전국 음식점에 밀가루 대두유 전분류 등을 공급하는 CJ푸드시스템은 지난해 하반기 말부터 하루 수요량의 20% 정도를 공급하지 못하고 있다.
추가 가격 인상을 예상한 대리점과 식당들이 미리 비축했다가 가격이 더 올랐을 때 내다팔기 위해 사재기에 나선 탓이라는 분석이다.
수출도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작년 말 현재 통관기준으로 원자재 수입은 전체 수입 품목 중 58.8%를 차지하며, 원유는 19.0%에 달한다.
우리 나라는 이러한 원자재를 가공해 중화학제품을 생산해 수출해 왔다.
전체수출 품목에서 전기전자제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31.3%, 기계류와 정밀기기가 10.4%, 화공품 9.7%, 자동차 9.0%, 선박 8.7%, 철강제품 8.2% 순이다.
작년 한해동안 우리나라의 주력 수출업종인 반도체 및 정보통신기기는 악재를 수출물량 확대로 극복해왔다.
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원자재 가격의 상승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면서 성장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장기 호황이었던 과거와 달리 글로벌 경기의 불확실성이 높은 지금에 와서는 예전과 사뭇 다른 양상으로 전개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삼성증권 황금단 연구원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기업은 제품 가격 인상이 용이했지만 향후 세계 경기 둔화로 수요가 위축된다면 가격 결정의 힘도 과거만 같지 않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이익의 성장성이 둔화될 가능성을 열어 두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출구는 어디에 대다수 전문가들은 지금의 가격 수준이 정점 부근에 있다고 진단하면서도 한동안 고공 행진이 불가피하다는 분석이다.
일시적으로는 추가 상승할 수 있지만 늦어도 하반기부터는 하락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가격 급등세가 진정되더라도 하락 폭은 그리 크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종합해 보면 원자재발 인플레 압력이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물론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가 하반기부터 다소 누그러질 경우 원자재 투기 자금이 다시 주식 등 금융시장으로 서서히 ‘U턴’하면서 투기 수요가 감소하리라는 전망도 있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핑크빛 가정인 셈이다.
ⓒECONOMY21 표
현실적 문제는 원자재 대란에 대한 해답을 구하기 힘들다는 데 있다.
삼성경제연구소 장재철 수석연구원은 “원자재가격 상승은 세계적인 수요 증가에 따른 구조조적인 영향이 크기 때문에 앞으로도 지속될 가능성이 있다”며 “우리경제가 통제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에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고 저적했다.
‘“투기가 투기를 부른다” 최근 일부 유통ㆍ판매업자들의 악성 ‘매점매석’에 대한 각 업계의 평가가 싸늘한 것도 이때문이다.
공급 및 유통업체들은 출하물량을 줄이는 반면 소비자들이나 수요업체들은 조금이라도 많은 물량을 확보하는데 열을 올리고 있는 철근이 대표적이다.
철근은 보관에 특별한 기술이 필요없고 변질되지 않아 쉽게 사재기 대상이 되고 있다.
정부는 이와 관련, 합동실태조사에 착수했으며 관련업자들을 처벌할 방침이다.
철근을 4년만에 처음으로 매점매석 상품으로 지정하는 등 성의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업계 종사자들은 “원인이 외부에 있기 때문에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며 냉랭한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가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투기 열풍으로 인해 원자재 값 상승이 또 다른 가격폭등을 낳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가히 투기가 투기를 낳는 셈이다.
원유값 상승이 대체 에너지 수요를 늘릴 것이므로 원료가 되는 옥수수 등 곡물 가격이 더욱 뛰게 되는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자칫 ‘스태그플레이션(물가급등 속 경기침체)’이 현실화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국내 서민경제의 발목을 잡는 생필품 가격 인상을 두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새 정부가 내수경기 진작을 통한 성장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고물가로 인한 내수경기 침체가 도래할 경우 경제 전반의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이런 국제적인 고물가 추세에 우리 정부가 능동적으로 대응책을 내놓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 전망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충격 때문에 금리정책이나 일시적인 물가인상 억제 같은 대증요법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므로 정부로서도 시원한 답을 내놓을 수는 없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신승훈 기자 shshin@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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