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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리뷰]대문호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북리뷰]대문호의 가장 속물적인 ‘돈’ 이야기
  • 한상오 기자
  • 승인 2008.03.31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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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으로 읽는 돈의 철학, 돈의 심리학, 돈의 해부학 경기 침체가 장기화되면서 사람들은 흔히 ‘돈벼락’ 한번 맞고 싶다고들 이야기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 살면서 돈의 소중함이야 뼈저리게 느끼는 것이지만, 가끔은 ‘돈 걱정 없이 우아하게 살수 없을까’하고 꿈을 꾸곤 한다.
이런 마음을 달래주는 책이 최근 예담에서 출간되었다.
그 주인공은 다름 아닌 <도스토예프스키, 돈을 위해 펜을 들다>. 도스토예프스키가 평생 돈 이야기만 하고 살다가 돈 문제로 싸우다 죽었다고 말하면 누가 믿을까? 하지만 그는 당대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부유하게 살았던 톨스토이나 투르게네프와는 확실히 달랐던 것 같다.
돈·인간·사회를 읽어내는데 천재적이었던 그의 혜안 도스토예프스키는 러시아 민중을 교화하고 인류에게 신의 섭리를 전달하고 예술의 전당에 불후의 명작을 헌정하려는 거룩한 목적이 아니라 대부분은 당장 입에 풀칠하기 위해, 가족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빚을 갚기 위해, 선불로 받은 원고료를 위해 소설을 썼다.
그는 ‘팔리는’ 소설을 써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래서 그는 늘 독자의 기호와 시장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당대 세상과 일반 대중의 마음을 읽어 거기에 부합하는 소설을 쓰려고 노력했다.
특히 평생 절실히 ‘돈’을 필요로 하고 돈과 인간과 사회를 읽어내는 데 천재적이었던, 그는 놀라운 혜안으로 돈을 이해하고 당대뿐 아니라 미래의 인류 사회에서 돈이 수행하는 막강한 역할을 꿰뚫어 보았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이 오늘날에도 구태의연하거나 식상하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처럼 가장 통속적인 이야기들이 가장 심오한 주제와 어우러져 시공을 초월하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은 저자가 고려대 학부와 대학원에서 강의하면서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고 진정으로 공감하며 도스토예프스키를 읽은 현장 경험을 생생하게 되살려낸 책이다.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자신의 강의를 수강한 학생들이 “도스토예프스키가 재미있다!”고 했다면서 이에 ‘신바람이 나서’ 이 책을 곧장 쓰기 시작했다고 집필 동기를 밝혔다.
저자 석영중은 도스토예프스키의 너무나 인간적인 생애와 거의 매 쪽 돈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 소설들을 넘나들며 그만의 통찰력이 빛나는 돈의 철학, 돈의 심리학, 돈의 해부학을 들여다보면서, ‘돈’에서 세기를 뛰어넘는 철학과 사상과 예술을 빚어낸 위대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에게 더욱 재미있게 다가가는 길을 열어준다.
저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이 무작정 형이상학적이고 고리타분하며 어려운 주제를 함축하고 있을 것이라고 지레짐작할 필요가 없다고 강조하면서, 누구보다 ‘돈과 인간’을 예리하게 꿰뚫어 보았던 도스토예프스키의 생애와 대표적인 소설들을 가장 현대적이고 철학적인 코드 ‘돈’으로 새롭게 읽어낸다.
돈에 얽매여 사는 인간에 대한 연민도 엿볼 수 있어 돈을, 무조건 인간을 타락시키는 부정적 요소로 보는 당대의 전근대적인 시각을 지양하고 돈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일절 배제한 채, 도스토예프스키가 얼마나 ‘돈과 인간의 심리’를 본질적으로 파고들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돈’이 필요하여 ‘돈’을 만들어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젠 ‘돈’에 얽매여 좌지우지되는 인간에 대한 도스토예프스키의 무한한 연민도 엿보는 것도 이 책의 묘미라 할 수 있겠다.
한상오 기자 hanso110@economy21.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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